통합진보당 해산 5년
헌법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사건 중 단연 1, 2위를 다투는 사건이 바로 통합진보당 해산이다. 87년 개헌을 하면서 왜 헌법 제8조 같은 규정을 두었는지 이건 학술적으로 연구해볼 의미가 있다. 특히 정당해산을 규정하고 있는 제8조 제4항은 도통 그 존재의미를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존재의미를 알 수조차 없는 조문에 의하여 한 정당이 강제해산당했다.
난 지금도 당시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그동안 배워왔고 이해해왔던 법의 기본적 존재의미가 송두리채 부정당했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판결은 가설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되며, 명문의 규정과 실재의 사실에 근거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법부는 절대로 마이너리티리포트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해산결정문은 온갖 가설과 추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행의 법조문이 적용되었지만 거기에 적용된 내용은 현재 벌어진 사실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예언이었다. 이런 건 사법부가 할 일이 아니다.
법적인 측면을 떠나 정치적 측면에 있어서도 통합진보당 해산은 내게 커다란 절망을 안겨주었다. 우선 정당의 존립에 대한 판단은 주권자가 할 일이지 재판부가 할 일이 아니다. 이게 정당제도를 두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입장이다. 정부가 정당을 제소하고 사법부가 정당을 해산한다면 유권자가 투표를 할 이유가 뭔가?
게다가 진영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나는 통합진보당이 가지고 있는 신념체계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대응을 통해 그 존립기반을 두고 다투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와 내가 혹은 내가 속해있던 진영이 바라보는 세계는 다른 방향의 것이었다. 상호 경쟁을 통해 변화발전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 대상이 공권력에 의해 제거되었다. 강제로 해소된 적대는 결과적으로 내 힘을 완전히 빼놓게 되었다.
그것이 벌써 5년이 되었다. 통합진보당의 명예는 아직 회복되지 못했으며, 해산의 단초를 제공했던 인사들은 아직 감옥에 갇혀 있다. 난 그들이 왜 여지껏 감옥에 갇혀 있는지도 의문이다. 애초 죄가 되지 않는 걸 죄로 만들었던 입법, 행정, 사법부의 권력주체가 다 쫓겨나거나 뒤바뀌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갇혀 있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 것인가?
5주년이 지나고, 해가 바뀌고, 또 1년이 지난 즈음 6주년이 되었을 때, 이 몰상식의 난장판에 대한 일정한 정리와 회복이 가능할 것인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