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당'이 아니라 다행일까
근본없는 짓거리들을 함으로써 정치혐오를 심화시킨다는 점을 논외로 한다면, 요즘 정치권에서 벌이고 있는 코미디만큼 실소가 뿜어져 나오게 만드는 일이 드물다. 최근의 개막장 사례인 '미래한국당' 창당과 '안철수신당' 창당 과정을 보면 이건 웬만한 코미디작가들이 석달 열흘 쑥과 마늘만 처먹으면서 대가리 싸매고 굴러도 나오기 힘든 희극의 대서사다. 난 이것들 하는 짓거리들만 봐도 웃음이 나온다.
그 중에 '안철수신당'은 그 괴이하기 짝이 없는 당명도 그렇지만 이걸 또 선관위 들고 갔다가 찜빠먹고 빠꾸 당했다는 기사를 보다 그만 뿜고 말았다. 선관위도 꽤나 고민을 했던 모양인데, 선관위가 이 당명이 특정인의 사전 선거운동이 된다고 본 것은 좀 과장하자면 '신의 한 수'다. 아, 이 '신의 한 수'라는 이름의 꼴통 유튜브가 있던데 뭐 그건 그렇다 치자.
안철수측에서는 입이 댓발은 튀어나올 일이겠지만, 어쩌면 이건 선관위가 안철수를 살려준 결과가 될지도 모르겠다. 저 당명 그대로 갔으면 아주 웃기는 꼴이 발생하고 급기야 제 살 깎아먹기로 막을 내렸을 테니.
당명 다섯글자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뭐냐하면 너무 '길다'는 것이다. 다섯 자가 길다니 하고 의아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명 다섯글자도 길어서 그걸 보통 세글자로 줄이거나 아예 복모음을 써서 부르기도 한다. 관공서나 언론에서야 뭐 힘 좋은 정당에서 풀네임 다 불러달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공식적인 표기로 다섯 글자를 다 쓰기도 한다만 장삼이사들이야 어디 그런가.
예를 들어 '자유한국당'이라고 하면 통상 이걸 '자한당'이라고 부르거나 더 줄여서 '쟌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꼴에 여섯 글자씩이나 되는데 이걸 또 세 글자로 줄여 '더민당'이라고 부르거나 '덤당'이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발음상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쟌당'은 꼭 '殘당'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떨거지들 남아서 부스러기 주워먹는 것이 연상된다. '덤당'은 'dumb당'이라고 하는 것 같다. 둔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 모여 있는 듯하다.
'안철수신당'은 어떻게 줄여질까? 통상적으로 단어의 첫글자들을 따서 부르는 것을 감안하면 아마도 '안신당'이 될 듯하다. '안신당'이라... 신당이 아니라는 뜻일까나? 두 글자로 줄이면 '안당'이 되는데 이건 아예 당도 아닌 것들이 도당을 지어놓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다. 이들이 한참 선거운동할 때, 사람들이 어디 뒷골목 소주집에라도 앉아 정치판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가, "거 있잖아, 안당이라고..." 그러면 "뭐? 안당이 뭐여? 그게 당이여?" 이러다가 주제는 사라지고 당명만 남아 낄낄거리게 되고, 술 좀 퍼먹다보면 뭔 당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다 까먹게 되고...
그렇게 보면 이번 선관위의 결정은 안철수에겐 하늘의 보살핌같은 것이 될지 모르겠다. "개 코미디도 정도껏 하거라"라는 신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