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향에 대한 착각들
- 흐... 이 포스팅의 카테고리를 '소소한 일상 구라'로 해야겠다. 뭐 이걸 정치카테고리에 넣기도 그렇고 제도쪽에 넣기는 더 이상하니까. 카테고리를 더 만들어야 하나...
자, 가끔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유형의 착각이냐 하면, "진중권은 우리편"이라는 착각이다. 진중권의 별명, '모두까기 인형'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진중권은 그냥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깐다.
뭔가 '일반적인 사람들의 상식'이라는 틀에서 벗어났다 싶으면 깐다. 그러다보니 자신들이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와, 진중권 우리편"이러며 환호한다. 그러다가 이 땅의 다수가 떼거리로 쓸 데 없는 짓을 한다 싶으면 진중권은 또 느닷없이 들이 깐다. 그러면 자신들의 생각이 '보편적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자들은 "아니 저 쉑휘가 미쳤나?" 이러면 진중권을 깐다.
이게 돌고 돈다. 무한 회귀라는 말이 이렇게 딱 어울리는 상황이 없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린다. 진중권은 누구편인가?
앞서 포스팅에서 제기한 의문도 그 형태는 유사하다. "누가 보수인가?" 기본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불분명하다보니, 진중권이 경향신문 칼럼에서 지적한 "보수의 위기"는 도대체 그 주체가 누군지 헷갈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이를 분명하게 구분하기란 쉽지가 않다. 문재인은 '진보'인가? 황교안은 '보수'인가? 얼핏 보면 정답이 딱 정해져 있다. 왜냐하면 황교안과 문재인을 양자대비할 때 당연히 문재인은 진보이고 황교안은 보수다. 그런데 그 옆에 진중권을 낑궈 넣어가지고 3자 대비를 하게 되면, 황교안은 보수가 되고 문재인은 중도 쯤 앉게 될 것이며 진중권은 진보 어름에 서 있게 될 거다. 거기에 행인이 끼어가지고 4자 대결을 하게 되면?
이 이상한 물고 물림은 사실은 매우 쉽게 결론이 날 수 있다. '진보'고 '보수'고 그게 다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걸 인정하는 거다. 내가 아무리 공산주의자에 가까운 이념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젠더의 측면에서 보자면 잘해봐야 중도쯤이고 녹색의 측면에서 본다면 나는 보수에 가깝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 녹여내지 못한 한계들이 존재할, 나는 그 해당 분야에 대하여 어떤 '주의자(-ist)'가 되기 어렵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사람들이라는 건 죄다 그렇다.
진중권이 다시 '모두까기 인형' 모드로 돌아와서 종횡무진 신나게 까고 다니다가 뜬금없이 안철수당 행사장에 가서 발언을 했다. 뚝배기가 비어있는 게 거의 확실시되는 안철수가 또 당을 만든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서 진중권이 기조강연을 한 거다.
중앙일보: 진중권, 닻 올린 안철수신당 강연 "조국 사태에 내 가치 무너져" 울먹
조국이 스스로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빡이 쳤었다고 이야기하는 진중권을 두고 안철수는 흡족한 마음에 그를 "민주주의자"라고 규정한다.
노컷뉴스: 안철수, "진중권의 솔직함, 그가 진짜 민주주의자"
일단, 여기서 먼저 언급할 것은, 안철수가 오늘은 진중권을 보며 웃고 있지만 내일은 진중권 때문에 마빡의 털을 쥐어 뜯게 될 거라는 점이다. 안철수는 이 시간 진중권을 "내편"이라고 착각할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저게 왜 저래?"라고 생각하게 될 거다. 진중권은 자신이 잠수탈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올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안철수가 진중권 때문에 뒷목 잡게 될 날도 예상보다는 빨리 올 거라고 내 장담한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오늘 내 생각이 길어지게 된 결정적 원인은, 진중권이 안철수당에 가서 강연한 것을 두고 진보라는 사람이 어찌 안철수 신당을 기웃거리냐며 놀라거나 화를 내는 사람들이 보여서다. 이분들은 아직도 진중권을 "내편"이라고 착각하는 부류다. 다시금 말하거니와 진중권이 니편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진중권은 그냥 진중권편이다. 이걸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착각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가 진중권의 정치적 지향을 좌파 내지 진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에서 진중권 스스로 자신을 '빨간 바이러스'라고 칭하는 통에, 그 이후 정치적 행보에서 주로 진보진영과 함께 했다는 것 때문에 진중권을 마치 좌파의 아이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까놓고 진중권은 정치철학적 기준들을 놓고 판단해보면 중도 자유주의자 정도일 뿐이고, 이런 중도자유주의야말로 '모두까기 인형'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그게 진중권의 장점이라는 뜻이다.
그는 그가 할 바를 다 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 내 생각과 많은 부분 일치하고 있을 뿐이고. 그래서 난 그냥 진중권이 끝까지 진중권 편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