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을 위한 변명

모두까기 인형은 오늘도 두루두루 모두모두 까주느라 여념이 없다. 그는 모두까기 인형이기에 대우받는다. 그가 여전히 언론사로부터 지면을 할애받을 수 있는 건 역시 그가 모두까기 인형이라는 상품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중권이라는 이름은 그 자리에서 빛난다. 누구나 모두까기 인형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누구나 까일 수 있다. 그 역할을 충실히 하기 때문에 나는 그가 영원히 자기 자신의 편으로 남아 하염없는 모두까기 인형 모드로 자리를 지키길 바란다.

그런데 이렇게 하염없이 모두까다보면 스스로 자신을 깔 때가 있다. 사실 그래야 진정한 모두까기 인형이지. 자신마저도 깔 수 있을 때, 즉 자신이 까던 그 '모두'에 자신마저 포함될 때 비로소 '모두'는 완벽한 '모두'가 되고 모두까기인형은 전능의 모두까기 인형이 된다. 진중권의 장점은 바로 이렇게 자기 자신마저 깐다는데 있다. 문제는 진중권은 전지적 시점에서 까다보니 자신은 무오류의 존재가 된 듯 착각을 일으키면서 자신이 자신마저 깐다는 걸 잊고 있다는 점이다.

모두까기 인형... 아, 길다... 그냥 진중권이라고 할란다... 암튼 진중권은 보수화된 '운동권'을 까고 또 깐다. 그 까임은 '운동권'이 그토록 깠던 자들과 똑같이 되어버린 '운동권'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면 이렇게.

한국일보: [진중권의 오디세이] 기득권이 된 운동권, 진보는 보수보다 더 뻔뻔했다

촛불정부 들어섰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알고 봤더니 하는 행태가 과거 문제로 지적되었던 것들과 판박이네? 어떤 건 더한 것도 있고. 게다가 이것들은 더 뻔뻔하기까지! 진보가 뭐 이따윈가? 이게 진중권이 이번 한국일보 글에서 지적하는 문제다. 그러면서, 이렇게 정리한다. 진보가 부패했다. 부해한 보수가 되었다.

진중권의 글은 하나의 도식을 전제한다. '운동권 = 진보 = 386'. 이 대목에서 일단 한 번 웃고 넘어가자. 아니 씨발 그럼 그동안 운동은 386만 해온 거옄ㅋㅋㅋㅋ. 진중권은 변절하지 않은 386이고?

진중권의 논리라면 한국의 '운동권 = 진보 = 386'은 죄다 서초동 몰려가서 "내가 조국이다"라고 진상을 떨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지금도 조국이 뭔 죄를 지었냐고 악다구니를 쓰는 '운동권 = 진보 = 386' 여럿 보이니. 그런데 그보다도 내 주변에서 '운동권'이라고 하면 386과 별 관계도 없거나 아예 그놈의 386 덕분에 똥물 뒤집어 쓴 사람도 한 둘이 아니다. 서초동 갈 일도 없는 사람도 천지태배기고.

기사 제목이야 한국일보 데스크에서 정해줬는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이 땅에서 '운동권'은 저렇게 '운동권 = 진보 = 386'으로 퉁쳐지기엔 그 범주가 너무 넓다. 이쪽 동네에서 인정해주지 않아서 그렇지,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운동권'은 태극기 부대 아닌가? 아, 그거 포함되지 않는 거 다 아니 이쪽 동네 운동권으로 한정지어서 이야기하자고? 그래도 마찬가지다. 소위 '진보'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운동권이라고 해서 별다른 거 없다. 하도 그 범주가 넓고 사람이 많아서 어느 한 경향으로 취합되지가 않으니까.

게다가 진중권은 "진보주의자들은 사회가 선형적으로 발전한다고 믿기 때문"에 오늘날의 사달을 보면서 당혹하다가 패닉에 빠지기까지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한 번 더 웃고 가야한다. 아니 요즘 어떤 진보주의자들이 "사회가 선형적으로 발전한다고" 믿고 있나? '역사발전의 원칙'을 신봉하는 사람들조차 멸종위기종이 된 판국인데. 

오히려 운동권은 이 "사회가 선형적으로 발전"하지 않기에 존재한다. 사회가 역사발전의 원칙에 따라 선형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면 운동권이 왜 필요한가? 가만 있어도 "선형적으로 발전"할 건데. 사회가 선형적으로 발전하지 않으니, 발전은커녕 진중권이 표현하듯 "동일자의 영겁회귀"가 될 위기이다보니 운동권이 등장하는 거다. 퇴행하는 삶을 거부하기 위해, 그 거부를 자신의 개인적 차원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모든 사람들이 더 나아지는 결과가 되도록 하기 위해, 그나마 어떤 이들이 자신의 손해를 무릅쓰고 '운동권'이 되는 거다.

내가 아는 그 '운동권' 중 거의 절대다수는 386이 아니다. 그들이 386과 친할 수도 있고 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말은 그들이 진중권과 친할 수도 있고 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과 같다. 다만 내가 아는 그 '운동권' 중 거의 절대다수는 희안하게도 스스로를 조국이라고 자처하면서 서초동으로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윤석열 검찰의 현재 행태를 적극 동조하고 지지하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왜? 검찰이나 조국이나 그 누구도 내가 아는 그 '운동권' 중 거의 절대다수와 같은 편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아는 그 '운동권' 중 거의 절대다수는 조국과 검찰을 "모두 깐다." 하지만 요새 보면 진중권은 검찰까지 까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물론 검찰을 안 까진 않을 거다. 시간차를 두는 것 뿐이겠지. 어쨌든.

더욱이 내가 아는 그 '운동권'의 거의 절대다수는 진중권이 마치 운동권의 어떤 상징인 듯 가져다 쓴 임종석의 사례와는 달리 "내가 부도덕하다고 말한다면 도덕이 잘못된 것이다. 고로 도덕부터 청산해야 한다"는 따위의 사고관념은 1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정반대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통상적으로 인정되던 도덕률을 행동원리로 삼으면서 운동을 시작했고, 그러다가 그 도덕률에 치여 고뇌하다가 병이걸리거나 정신이 나가기도 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거나 병에 걸려 죽거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또는 그 도덕률을 감당하지 못해 조국이나 최순실이 봤을 때는 별 거 아닌 일에 전전긍긍하다가 운동판을 떠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이 경우, 내가 아는 그 '운동권'의 거의 절대다수의 세계에서는 진중권이 말하는 ""내가 조국이다!"라는 슬로건과 더불어 이 뒤틀린 도덕은 만인의 것이 된다. '포스트-진리'의 시대는 '포스트-윤리'의 시대이기도 하다"는 정의에 전혀 들어맞질 않는다. 다시 말하면 내가 아는 그 '운동권'의 거의 절대다수는 진중권이 말한 저 '만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거다. 진중권이 아는 사람과 내가 아는 사람이 그 숫자에서 얼마나 많이 차이가 날지 모르겠다만 글쎄다, 내가 아는 그 '운동권'의 거의 절대다수만 하더라도 진중권이 이야기하는 "만인"의 숫자가 의심스럽다. 혹시 진중권은 과거의 노회찬이 이야기했던 "滿人과 萬人"의 언어유희를 하고 있는 걸까? 그가 쓴 문장을 보면 진이 그런 언어유희를 하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는 진짜로 세상사람 모두가, 특히 운동권 모두가 "뒤틀린 도덕"을 수용하고 있다고 믿는 듯 보인다.

물론 개떡같이 이야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서, 진중권이 비난하는 자들을 '운동권' 전체로 비약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내가 아는 그 '운동권'의 거의 절대다수는 진중권이 뭐라 하든 자기 갈 길 알아서 간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는 그 '운동권'의 거의 절대다수가 아니라, 진중권을 자기편이라고 착각하거나 가끔은 자기편이라고 우기려 하는 자들에게 이러한 진중권의 글이 잘못된 사인을 주게 된다는 거다. 즉, 상당한 수의 사람들에게 "운동권은 역시 그렇군. 진중권이 깔만하군. 운동권 ㅆㅂㄹㅁ들!"이라는 인식을 주게 된다는 거다.

이게 왜 문제냐 하면,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 사람들을 내가 아는 그 '운동권'의 거의 절대다수가 상대해야 한다는 거다. 그렇잖아도 한국사회에서 내가 아는 그 '운동권'의 거의 절대다수는 말 그대로 좆뺑이를 치면서 살고 있다. 최저임금 1만원 투쟁을 하는데 앞장서지만 정작 자신들은 활동비도 변변히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감내하는 사람들이 내가 아는 그 '운동권'의 거의 절대다수다. 이들은 한국일보에 지면을 할애받기도 무척 어렵고, 저들 386으로부터도 외면당하기 일쑤고, 편향된 사고를 지닌 주변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아가면서 견디는 등 이중 삼중의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 내가 아는 그 '운동권'의 거의 절대다수는 진중권처럼 그냥 모두까면 대접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느 한 편으로부터 대우받는 것도 아니다. 

내가 아는 그 '운동권'의 거의 절대다수는 "어느새 유능하나 부패한 보수로 변신"한 "무능하나 순결했던 진보"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유능하지만 도덕률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순결한 자들이다. 이들을 '운동권 = 진보 = 386"으로 퉁쳐서 몰아부치는 건 결국 진중권이 내가 아는 그 '운동권'의 거의 절대다수의 현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뻔뻔"하게 큰 지면을 통으로 분양받아 자신의 몰이해를 보여줌으로써 진중권은 결국 자기 자신을 까댄다. 이건 정말 칭찬해마지않을 수 없는 모두까기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자기 자신마저 까댐으로써 진중권은 진정한 모두까기 인형임을 만방에 과시한다.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진중권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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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3 10:25 2020/02/1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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