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색깔
정당의 색깔이 그 정당을 상징하는 건 당연히 그 색깔이 가진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리라. 예를 들면, 적색은 노동, 피, 혁명, '좌빨' 뭐 이런 걸 떠올리게 한다. 녹색은 안정감이라든가 환경, 생태 이런 거와 연결되고. 흑색은 아나키, 무지개색은 소수자 뭐 이렇게 이어지는 거다.
한국의 보수정당은 여기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어찌보면 매우 실용적이다. 그까이꺼 색깔 따위 봐서 좋으면 쓰고, 크고 센 넘들만 쓰지 않는다면야 작고 약한 넘들 쓰는 거 얼마든지 가져다 쓰면 되는 거지 뭘 신경쓰나, 이게 현재 한국 보수정당들의 태도다.
그러다보니 크고 센 넘들이야 뭐 별 문제가 없는데, 작고 약한 넘들은 언제나 피떡이 된다. 대표적으로 한나라당을 접수해서 신천지...가 아니라 새누리로 이름을 바꾼 박근혜는 당의 상징색을 바꿨는데, 하필 그게 빨간색이었다. 전통적으로 파란색을 쓰던 것들이 졸지에 빨갱이색을 도용한 거다.
문제는 당시 빨갱이색을 쓰고 있었던 진보신당. 난장판이 벌어졌다. 당장 총선이 코앞이었는데 새누리당이 빨간 잠바 입고 선거운동을 하는데 진보신당도 빨간 잠바 입고 나가야 할 판. 당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우리가 나가서 선거운동하면 새누리당 선거운동해주는 효과가 나온다...
뭐 이따위 논리가 횡행하더니만, 일부 선거운동원들이 녹색을 입고 튀어나왔다. 어라? 녹색은 녹색당 색깔인데? 문제제기를 했는데 어쩔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니 이러면 빨간색 들고 튄 새누리당과 뭐가 다른가? 난 지금까지도 그 녹색 선거운동 잠바 생각을 하면 기함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다가 안철수가 국민의당을 만들었는데 이것들이 이번엔 녹색을 가져다 썼다. 녹색당의 입장에서는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터. 그런데 당시 녹색당은 국민의당에 대해 니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우린 신경 안 쓴다는 태도를 보냈다. 대인배의 풍모를 보여줬던 거다.
난리가 난 진보신당이나 대인배의 풍모를 보여준 녹색당이나 선거 치를 때 똥망한 건 마찬가지. 작고 약한 넘들은 뭔 짓을 해도 주어 터지게 된다. 어차피 한국에서 정당은 그 당의 색깔로 사람들에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니 이게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하긴 좀 어렵지만.
이번엔 또 안철수가 만든 국민당이 주황색을 가져다 쓰는 바람에 민중당이 발끈했다. 주황색은 민주노동당의 색깔이었다. 민중당에 대한 회의와는 별개로 난 여전히 민주노동당의 색깔을 그리워한다. 아무튼 그런데 국민당이 이걸 홀랑 가져가겠다는 거다. 민중당 입장에선 빡칠 일이다.
민주당이 녹색과 노란색을 어영부영 섞어 쓰다가 한나라당이 새누리당 되면서 빨간색 쓰자 냉큼 파란색을 가져갔다. 아마 민주당은 이 색깔을 내놓을 생각이 없을 거다. 좋잖아. 얼마만에 가져온 색깔인데. 황교안이야 파란색을 땡기고 싶다만 그게 안 될 거고, 그러니 보수통합 운운하면 기껏 핑크색을 꺼낸다. 황교안이 핑크라니, 이게 어울릴지 안 어울릴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정당의 색깔이 유권자들에게 어필하는 건 한국사회에서는 그다지 유력하지 않아보인다. 대부분의 대중들은 먹고 사는 게 바빠서 색깔이 어쩌구 해봐야 아, 그래? 그런가보지 뭐. 이러고 넘어간다. 색깔보다는 여전히 인물이다. 어, 그 당 거 누구 있는 당 아녀? 이러면 끝.
대중들은 동네 점빵이나 시장통에서 물건 싸주는 비니루가 검은색인지 흰색인지조차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플라스틱 문제로 인해 비니루 없애는 방침으로 나가니 이제 장바구니를 에코백으로 바꾸는 게 중요할 뿐이다. 에코백이 주황색이든 빨간색이든 뭔 상관이 있나? 물건 잘 들어가고 터지지만 않으면 되지.
아, 그래도 여전히 주황색은 좀 아깝다. 민중당과는 다른 의미에서 그렇다. 아깝고 아깝도다, 민주노동당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