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웬만하면 조중동문 + 한경매경 쪽 기사들은 제끼고 넘어가는 편이다. 왜 그런 거 있잖나?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이것들이 이야기하면 뭔가 딴 얘기 할 거 같은 느낌. "야, 알고 봤더니 그 콩 북한 거래. 그 콩으로 메주쒀서 된장 담가 먹는 것들은 다 빨갱이" 뭐 이렇게 만들 거 같은 느낌 말이지. 같은 기사라도 얘네들 거 긁어오면 왠지 맥락이 엉망진창이 될 거 같은 두려움마저 든다 이거야.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얘들 기사는 제껴버리는데, 그래도 가끔은 오히려 이것들의 기사를 봐야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뭔가가 보이기도 한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세상이 그래서 재밌는 거지 뭐. 어쨌거나 그래서 긁어 보는 매경의 기사 하나.

매일경제: CJ, 홍보 총력전 ... 李남매 '다 계획 있었네'

어제 '기생충' 수상 이후 벌어진 몇 에피소드를 보면서 내가 상 탄 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기도 하다가 걍 소태 씹은 듯 씁쓸하기도 했더랬다. 특히 무대에 CJ 부회장 올라가서 동생에게 감사인사 하는 대목에서는 아, 이 씨앙 '기생충'이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라더니 결국 "가장 한국적"으로 끝맺음을 하는구나 싶더라. 천민자본주의 끝판왕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무대연출.

알려진 바로만 CJ는 100억 원 이상을 이 아카데미수상프로젝트를 위해 썼다고 한다. 돈은 돈대로 쓰면서 이미경 CJ 부회장은 미국 내의 모든 인간관계를 총동원해서 영화를 알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만들어낸 결과는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은 것.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카데미의 영광은 엄청난 자본을 투자한 것도 모자라 몸을 아끼지 않고 달려간 어느 재벌가의 일원이 만들어낸 기획의 결과물임을 이야기한다. 물론 이 기사를 씀으로써 매경은 CJ로부터 앞으로 이쁨과 귀여움을 받겠지.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였다는 극단의 빈부격차, 계급 간 차별, 치워져버린 사다리의 이야기는 기실 이러한 처참한 광경까지도 상품이 될 수 있고, 투자가치가 있으며, 재벌가의 영광을 재현하고, 급기야 돈과 "계획"만 있으면 국제적 무대에서 기업의 재산을 빼돌리고 세금을 포탈한 자의 이름이 공공연하게 상찬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혁명을 선동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 예를 들어 과격한 폭력혁명을 찬양하는 영화가 상을 받게 되더라도 어떤 하나의 장치가 작동하게 된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거. 더 적나라하게는 혁명은 눈으로 즐기는 것이고, 영화에 대한 해석은 머리로 하는 것일 뿐, 더 이상 혁명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수많은 영화감독, 배우, 작가, 관계자는 물론 그 자리를 만들어준 자본에 결코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기생충'도 마찬가지.

이 대목에서, 봉준호의 필모그라피를 좀 훑어보면 재밌는 흐름이 보인다. 플란다스의 개는 제외하고,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으로 이어지는 그의 영화 계보를 보면 나는 이 사람이 점점 더 회의주의 또는 냉소주의로 흘러가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폭력적 사회구조 속에서 어떤 개인적 탈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은유한 살인의 추억, 뜬금없는 폭력 앞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삶을 보여준 괴물, 자본주의가 유발한 처참한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준 설국열차, 모든 것이 자본논리와 시장논리로 귀결되는 세계를 고발한 옥자와 '기생충'의 배경은 그다지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 이 영화들은 연대기적으로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살인의 추억은 특단의 해결책을 보여주지 않지만 결국 사건이 있었던 곳의 노관 끝에는 또다른 시대의 시작이 있음을 암시하면서 끝난다. 왜 당해야 하는지 모르는 폭력이지만 결국 같이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의 연대와 희생으로 함께 싸워야 함을 보여준 건 괴물이다. 새로운 세상은 현실을 넘어서려는 의지와 이를 막으려는 자들에 대한 투쟁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걸 설국열차는 말했다. 자본과 시장에 맞서는 개인은 어쩔 수 없이 패배하지만 그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아야만 세계를 다시 들여다볼 수 있음을 옥자는 보여주었다. 각 영화는 그 방식이 달랐지만 일정하게 열세에 있는 자들이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강도가 점점 달라졌다고 할까. 게다가 '기생충'은 이전의 영화처럼 해결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각 영화들은 연대기순으로 싸움의 강도가 달라진다. 기승전결이 순차적으로 보인다고 할까. 살인의 추억은 서막, 괴물에서는 가족, 설국열차에서는 꼬리칸의 인민들, 옥자에서는 저항조직. 살인의 추억에서,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형사들은 어떤 조직적 차원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그렇게 한다. 기실 경찰이라는 조직 자체, 혹은 그것이 대변하고 있는 국가라는 거대구조는 사건을 해결하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괴물에서 '가족'은 단지 피 속의 유전인자를 공유하는 것에 한정하지 않는다. 함께 '괴물'과 싸울 수 있으면 가족이 될 수 있다. 여기엔 피처럼 끈끈한 연대가 문제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다가 설국열차에서는 전면적인 계급투쟁이 전개된다. 그런데 옥자에서는 이게 뭔가 찜찜하다. '저항세력'은 승리한 것인가, 아니면 투항한 것인가? 이후 세계는 투쟁의 아비규환으로 달려가는가, 아니면 그냥 거기서 그만큼으로 밀당하게 되는가?

어라, 그런데 '기생충'에는 아예 해결의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해결은커녕 열세에 있는 자들은 결국 자중지란을 벌이고, 스스로 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다. 그들은 어쩌면 겨우 그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자들이다. '냄새'나는 것들은 뭔가 때가 되거나 손에 쥐어지더라도 결국 지들끼리 아웅다웅하다가 뭐 하나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끝날 것들이다. 그들은 '기생충'으로 만족할 때에는 그나마 소시민적인 행복이라도 맛볼 수 있지만, 결국 숙주를 끝장내고 지들도 자멸한다. 그럼 뭐야, 이게? 못사는 것들은 그냥 거기서 거기라는 냉소가 이 영화의 주제인가?

아카데미에서 상받았다고 하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나도 그랬는데 뭐. 영화 재밌게 보고 그게 상도 받고 상 받은 영화 나도 봤다고 너스레 떨 수 있고 그럼 된 거지 뭐 더 필요한가?

괜히 이 영화에서 뭔가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현실에 적용해보고 한걸음 더 나가 그렇다면 뭔가 실제로 해봐야하지 않겠어? 이런 따위 생각은 필요 없다. 괜히 그렇게 했다가는 그렇게 하자고 나선 것들끼리 또 머리끄댕이 붙들고 흔들다가 서로 죽이고 죽는 거다. CJ에서 대주는 돈으로 영화 만들고, 그 영화 보면서 희희낙락하고, 그러다가 CJ에서 일하거나 거기서 만드는 상품을 사거나 그러면서 그저 내 사는 방구석만은 똥물에 잠기지 않기를 바라는 것만이 '기생충' 답게 사는 방식이다. 여기서 만족!

'기생충'은 이렇게 영화 안에서가 아니라 영화 밖에서 그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딱 거기까지 해놓으니 아카데미는 상을 준다. 이 영화는 재밌지만, 이 사회의 기득권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 저 태평양 건너 세계 인류의 70분의 1도 되지 않는 인구가 쓰는 언어로 만든 영화에 상을 주는 게 장기적으로 장사가 된다는 것도 알았다. 봉준호가 아카데미의 영역을 '로컬'로 한정했기에 아카데미가 빡이 쳐서 상을 준 게 아니라. 이게 장사가 됨을 인식시키게 해준 건 바로 CJ! 영화 안에서 소시민들은 지들끼리 서로의 가슴에 칼질을 할 때 영화 밖에서는 자본의 개선가가 울려퍼진다.

나는 영화비평같이 문화적 소양이 풍성하게 필요한 분야는 잘 모른다. 그러니 이 이야기들은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면 벼라별 생각이 다 나는 거다. 나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그럼 나만 이렇게 생각하면 그만이지 뭐 더 바랄 거 있나? 더 바라다간 옆에 있는 사람하고 쥐어뜯고 칼부림하다 인생 종치는 겨. ㅎㅎ 그 칼이 향해야 할 방향도 모른 채 말이지.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제일제당에서 했던 입장에서는 뭐 CJ가 돈 벌려고 저 난리 치는 게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봉준호가 다 계획하고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이 아닐지. 음모론일지 모르겠으나 이렇게 생각하면 상황 전반이 이해되다가도 슬쩍 무서워진다. 우리는 결국 봉준호가 만들어놓은 매트릭스 안에서 시뮬레이션 되는 가상현실의 존재들이 아닌지 모르겠다. 빨간약을 먹어야 하나 파란약을 먹어야 하나...

하긴 난 플란다스의 개가 제일 좋았다. 그런 영화는 이제 안 만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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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1 10:02 2020/02/1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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