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법성' 논란이 감추는 것

자꾸 비례 위성정당이 위법이니까 해산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법원에서 선관위의 등록허가가 적법하다는 판단이 나왔는데도 이런 주장은 이어진다. 예를 들면 이런 주장이다.

프레시안: 여야 모두 비례위성정당을 해산해야 하는 이유

물론 향후 미통당과 미한당, 더민당과 더시당이 삑싸리를 내지 말란 법이 없으니 언제 이 정당들의 위법성이 도드라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결과물만 보면 이들에게 해산을 명하거나 위법을 이유로 제재를 가할 수가 없다.

우선 적법여부부터 간단히 보자. 링크를 건 기고문에서 필자가 꺼내든 카드는 헌법 제8조 제2항과 정당법 제2조다. 정당법 제2조는 정당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정당이라 함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을 말한다."

그런데 이 정당법의 정의는 매우 교과서적으로 정당이라는 조직은 이러한 조직이었으면 좋겠다는 일종의 지향을 나타내고 있다. 이 정의조항은 참으로 '아름다운' 말들로 조합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 

단적으로, 정당법 제2조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여기서 정당법 제49조 이하 벌칙조항에 따른 처벌이 성립할 수 있는 여지가 코딱지만큼이라도 있는 부분을 굳이 따지자면 "자발적 조직"일 것이다. 법 제49조 이하 벌칙들은 특히 강요에 의한 거짓된 입당이나 당직선거(대표선거)에 있어서 위법행위 등이 주로 대상이 되는데, 각 위법행위의 구성요건으로서는 고의가 필수적이다. 즉 "~할 목적"으로 위법행위를 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억지로 갖다 붙이자면 정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당원 기타 그 정당의 구성원들의 의사가 "자발적"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자발적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증명하나?

헌법 제8조제2항은 기실 있으나 없으나 아무 문제가 없는 조항이다. 그럼에도 이 조항이 의미를 가지는 건 제8조제4항 때문이다.

제8조 ②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
④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

이 관계는 금방 이해할 수 있는데, 이미 최근에 이 두 조항에 의하여 공중분해된 정당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이 그 주인공이다. 따라서 만일 미한당이나 더시당이 해산되어야 한다면 제8조제4항의 규정에 따라 정부가 제소하고 헌법재판소에서 그 해산을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과연 정당이 미한당이나 더시당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할 수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안 한다는데 100원 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당이 적법하냐 또는 위법한 정당이냐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헌법도 그렇고 정당법도 그렇고 그 법들 자체가 문제다. 헌법에 굳이 정당에 대한 규정을 둘 필요가 있느냐가 우선 의문이다. 헌정사의 과정과 주권자의 정서 등을 고려하여 헌법에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고 최대한 선의로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과연 지금 헌법 제8조처럼 주권자의 정치적 조직을 정치적 과정이 아닌 사법적 판단으로 날려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과연 적절한지도 의문이다. 이게 무슨 2차 대전 이래 형식적 법치주의에 대한 반성과 실질적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하여 방어적 민주주의/전투적 민주주의의 일환으로 그렇게 한 것이라는 소설은 이제 그만 둘 때도 되었다.

굳이 헌법이 정당을 규정하려면 정당설립 및 활동의 자유 보장과 그 자세한 내용은 법으로 한다 정도만 두어도 될 일이다. 그런데 개헌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정당법 조항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드물고, 더 희한한 건 정당들에서조차 이 규정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정당을 별로 본 바가 없다.

다음으로 정당법인데,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아니 그래 진보정당이라는 정당에서 현행 정당법을 근거로 타 정당을 고소고발하고 헌법소원을 거는 게 가당한가? 미통당이나 더민당이 그랬으면 어차피 그것들은 현행 법률에 의해 특혜를 보고 있는 정당들이니 당연히 그렇게 한다고 치부하겠다만,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에서 이 정당법을 근거로 타 당의 해산이나 위법성판단을 법원에 요구하는게 과연 적절한지 모르겠다.

솔직히 물어보고 싶다. 이 정당법이 지금 제대로 된 법이라고 생각들 하고 있는 건가? 역사와 전통 속에서 "악법은 어겨서 깨트리리라, 불법으로 투쟁하리라" 노래를 불렀던 사람들이 그래 악법에 기대 타 정당을 날리자고 소를 제기하고 고발을 하나? 뭐하자는 짓인지 모르겠다.

칼럼의 필자가 느끼고 있을 그 참담함을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저 칼럼에서 헌법 제8조와 정당법 제2조에 관한 부분을 제외하면 나머지 이야기는 다 당위론일 뿐이다. 정말 훌륭한 이야기지만, 그러한 당위론만으로 비례정당을 법적으로 해산시킬 수는 없다. 실은 이 칼럼의 필자 역시 이러한 부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국 이 칼럼은 미통당과 더민당에게 각각 미한당과 더시당을 해산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뭐라고 한들 이제 미통당과 더민당이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미한당과 더시당을 해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데 또 100원 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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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1 00:06 2020/03/2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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