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보이콧을 고민하며
투표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보이콧을 고민 중이다. 이런 정치판에 대한 가장 확실한 심판은 투표장을 휑하게 만들고 개표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단 한 번도 보이콧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보이콧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보이콧을 한들 그 효과가 있을 것인가도 의문이었지만, 정당운동에 참여한 이래 아무리 득표를 적게 하더라도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가 어느 정도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의 동지들이 제 살을 깎아 먹어 가면서 최전선에 나가 뛰는데, 이들이 단 한 표라도 더 가져가도록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언제나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보이콧 이야기는 무관심하게 넘겨버릴 사안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박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과연 이번 선거에 참여하여 투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투표장에 가서 무효표를 만드는 것과 아예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가?
물론 여전히, 어느 곳에선가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또 선거에 뛰어들 터이고, 어느 정당에서는 내가 바라던 어떤 정책들을 내놓고 그에 대해 지지를 요구하고 있을 터이다. 이들에 대한 애증이나 연민이 사라진 건 아니고, 오히려 어쩌면 더 애처로워보이고 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이 단지 어떤 개인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거나 몇몇 마음에 드는 정책을 가진 정당에게 한 표를 주는 것으로 내 정치적 소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통상적인 상황은 아닌 듯하다. 선거일이 다가올 수록, 점점 더 선거 보이콧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굳어져 간다. 그 뿐만 아니라, 나 혼자 소극적으로 그냥 투표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 집단적으로 정치적 저항의 차원에서 보이콧운동을 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자꾸 커진다.
내가 선거 보이콧을 이야기하게 될 줄이야 예전엔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