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서로를 완전한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먼저

최근 벌어지고 있는 남북 간의 난타전을 보고 있자면, 남북은 아직도 서로를 완전한 개별적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위대한 '최고존엄'을 모시고 있는 조선로동당은 남한을 제국의 식민지로 바라보면서 지도편달할 대상으로 보는 듯하다. K-시리즈의 연쇄효과에 고무된 '대한민국'은 북한을 못 사는 동생 내지 철딱서니 없는 조카 정도로 보는 듯하고.

한때 무반주로 오직 북으로만 장단을 맞춘 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는 정태춘의 목소리에 비장해지기도 했었다.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여전히 그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감정은 감정이고, 현실에 대해서는 "하나의 민족, 하나의 조국" 따위 언술은 더 이상 통용이 되지 않는다. 진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더 나가 세계평화를 바란다면, 남이고 북이고 간에 서로를 완전히 국가로 인정해주는 선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6.15 선언의 핵심 가치는 선언의 본문이 아니라 맨 마지막에 남과 북이 서로의 국호와 그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위직의 직함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 있다고 해왔다. 통일에 대한 방향에 이견이 있더라도, 그 이전의 단계에서 서로의 독립적 지위를 공공연하게 인정하게 되었다는 최대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유엔 동시가입도 애저녁에 된 것이었고, 상호 간에 이러한 공식적 인정이 2000년에 들어와서야 이루어졌다는 것이 만시지탄이었고.

하지만 그 이후에도 빈번하게 남북은 서로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아왔다고 본다.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평화의 진척을 위한 어떤 행동이 얼마나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더 이상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하기 전에 진정 동반자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있는지 상호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 김여정의 말폭탄을 보면서 일각에서는 맞는 말만 한다면서 한국정부의 무능함을 질타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동안 뭘 했냐는 거다. 그런데 반대로 조선은 그동안 뭘했나? 무엇때문에 남북철도연결문제나 동란 중 전사자 유해발굴이나 기타 남한에서 제시하는 몇몇 조치들에 대해 회피했을까? 그 부분은 왜 비판하지 않는가?

내가 뭐 문정권을 옹호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 간에 어떤 일을 하는 게 어느 일방의 마음에 언제나 쏙 들게 할 수만은 없는 거다. 그렇게 되지 않으니 협상도 해야 하고 때론 엄포도 놓아야 하고. 하지만 서로를 인정하는 게 먼저 아닌가? 그래야 답이 나오지.

난 이 기회에 한국에서도 조선과의 관계를 염두에 둔 외교정책을 다시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즉 '통일'이라는 별도의 정책 및 실무단위를 꾸릴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외교관계 속에서 조선과의 관계를 검토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거다. 통일부는 어쩌면 아직 조선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채 '국토를 불법 점유하고 국가를 참칭하는 반란세력'이지만 토벌하기보다는 좀 평화롭게 흡수해보자는 의지를 가지고 있기에 존속되는 것이 아닐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20/06/19 09:48 2020/06/19 09:48
Trackback Address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