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정치 실종의 한 사례
- 정책적인 측면에서 나는 금태섭의 견해에 더 가깝다. 예컨대 공수처라든가 검찰개혁의 문제 등
- 그런데 금태섭의 징계를 '민주 vs 반민주' 구도로 가져가거나 '위헌 vs 합헌' 구도로 가져가는 단순분할은 위험하지 않나?
- 대의제체제와 의회주의 원리 안에서 자유위임원칙과 정당기속의 원리가 충돌하고 있는 상황인데, 내가 비록 금태섭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징계를 당내민주주의의 후퇴라든가 위헌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찮은 게 많지 싶다.
- 이번 기회에 좀 들여다보려고 이런 저런 문헌들을 들추고 있는데, 사실 한국 정당구조와 의회구조는 정당기속보다는 자유위임에 더 치중한 것이 맞고 현실적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다.
- 각종 논문에서 보듯 당론과 배치되는 의원 개인의 입장 개진에는 공천제의 문제라든가 개인의 이념이라든가 하는 복합적인 배경이 깔려 있지만, 난 그것보다 '의원실'이라는 공간이 기실 정당 내부의 당론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
- 거두절미하고, 오늘날 한국 국회 의원실은 그 의원실 하나하나가 정당사무국에 맞먹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 인턴까지 9명을 쓸 수 있는 보좌진에 국회사무처, 국회입법조사처, 국회예산정책처, 국회도서관이라는 강력한 서포터기관이 의원 앞에 도열해 있다.
- 이 상황에서 웬만한 의원들은 소속정당의 도움이 없이도 의정활동에 필요한 모든 자원의 도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의원실의 운영과 보좌진의 임금에 부담도 전혀 없고, 지들끼리 만들어놓은 거의 곗돈 같은 수당체계를 통해 필요한 만큼의 재정도 뽑아낼 수 있다. 일 한 번 하기 위해 당으로부터 쥐꼬리만큼의 재정지원을 얻기 위해 골머리를 썩을 이유도 없고, 당론이 어떻게 만들어지든 간에 자신들의 지역구 혹은 지지자들의 입맛에 맞게 자신의 입장을 정할 수 있는 정책라인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 다시 말해, 의원실 하나 하나가 실은 하나의 정당이다.
- 이런 상황에서 '당론'은 무엇이며, 정당기속은 무엇인가?
- 그렇게 될 경우, 당을 왜 같이 하여야 하나?
- 금태섭 징계 문제는 사실 이런 부분에서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여지가 있다. 진보정당의 경우, 과거부터 어떤 논의구조에 대한 일정한 방향이 있었는데 그게 소위 민주집중제였다. 민주집중제가 어느 정도 제 역할을 유지한다면 그 결과는 아마도 당론의 관철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진보정당 역시 이게 어려웠는데, 17대 국회에 진입했던 민주노동당 당시에도 어떤 의원은 의정활동 초기부터 "왜 의원의 자율성을 당이 막느냐?"며 불만을 내질렀다. 그게 합당한 반론이었는지는 나중에, 누군지는 나중에...
- 암튼 결론은, 정당정치가 엉망진창이 된 거는 '당론'을 정하는 과정이 엉망진창이 되었기 때문이고, '당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헌법관련 논의들 중에는 이제사 무슨 정당정치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시대착오적 언술들이 종종 보인다. 뭔 소리들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