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공사구분
사적(私的) 애도를 중단하라는 게 아니다. 사인 간의 '인간적 도리'를 지키겠다는 개인들의 의지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사적 애도를 공적 의전(公的)으로 전환하지 말라는 거다. 그것도 이번 사달의 근원지인 서울시가 나서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거다.
서울시는 작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할 주체다. 장례의전을 담당하겠다고 할 시국이 아니다. 공공기관으로서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 등 중요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야 할 때이다.
백보 양보해서, 수장에게 일어난 변고의 여파가 너무 커서 잠시 감당이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당장 서울시는 이처럼 큰 일이 벌어진 점에 대해 서울시민에게 유감을 표하고, 다른 절차에 들어가기 전이라도 사건 관계 고소인에 대한 2차 가해에 대해 용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어야 한다.
지난번 안희정 모친상에서도 애도의 공과 사가 구분되지 않으므로 인해 구설이 있었다. 그때 몇몇 사람들이 '인간적 도리'를 운운하면서 추모한 공인들에게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을 반인륜적인 사람들로 매도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인간적 도리'라는 건 결국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았기에 인간인 것이니까.
왜 젠더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피해자에게 가야할 '측은지심'이 되려 가해자에게 돌아가는 건가? 가해자에게 '측은지심'의 감정을 이입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터질 때마다 분노하는 사람들이 왜 분노하는지를 도대체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수사기관이야 일방 당사자가 원천적으로 보재하는 상황이 발생했으니 공소권 없음으로 고소건을 종료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을 비롯한 여타 근거법령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니 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사안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문책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체계를 정비하고 사건을 망각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라고 하는 것은 형사법절차를 지키라는 의미가 아니다. 사회적 책임의 요구다. 인권침해 사안에 대한 조치의 일반적 전형이다.
- 매우 중립적 입장에서 부연하자면, 여기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진상규명의 과정에서 확인될 수 있을 뿐이다. -
이러한 전형이 국제적 규범이며 보편적 절차임을 우리에게 소개했고, 이러한 규범이 사회적 기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던 사람들 중에 선도적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바로 '인권변호사'라고 별칭되었던 사람들이었다. 박원순 시장이 그 중 한 명이었다.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프레임으로 사안을 몰아가선 안 된다는 말들이 있다. 그렇다. 그게 문제다. 이토록 심각한 사안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당사자 중 한 명이 죽은 것으로 종료되는 건 위험하다. 당사자 개개인의 명예때문이 아니다. 이들 당사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전체의 삶이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정의롭고 평화로울 수 있기 위해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않을 때, 언제든 나 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가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