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분이 아닌데...
지난해 중순경부터 지금까지 벌어진 몇 가지 사건을 통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내 주관적 판단이 신의 감별능력에야 절대 미치지 않겠지만, 그래도 제법 사람 볼 줄 아는 눈을 가졌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다 착각이었다. 난 사람들을 제대로 볼 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조차 몰랐다. 나도 그런가하고 돌이켜보니 그런 부분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저 사람들도 그럴까.
조국사태 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충격을 받았다. 다들 '진보' 내지 '좌파' 연 하던 분들이다. 사람을 좀 가려가며 택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주변에 '보수' 내지 '우파' 성향의 사람들도 다수 있지만, 그 사람들은 그다지 예상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진보' 내지 '좌파' 성향의 분들 중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감싸느라 제기된 문제에 반발하거나 심지어 문제제기 자체를 적대시하였다.
총선정국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난 도대체 '진보' 내지 '좌파'라고 하는 사람들이 평소 가지고 있었던 소신과 원칙에 반하는 일들을 그리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민주당과 함께 법안들을 강행추진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위성정당 문제가 불거지자 이걸 그냥 곧바로 법원으로 들고 가는 꼴이며, 나서서 위성정당을 만들겠다던 자들 하며.
이번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에서 또다시 그런 모습들을 본다. 애도와 추모를 독점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피해자를 두 번 세 번 가해하는 행위들을 일말의 양심도 없이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는 그동안 '진보' 내지 '좌파' 연 하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망라되어 있다.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을 이들이 부정하는 배경에는 "그 분이 그럴 분이 아닌데..."라는 인식의 괴리가 자리잡고 있다.
나도 박원순을 생각할 때, "그 분이 그럴 분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내 경험의 교훈들은 바로 "그 분이 그럴 분이 아닌데"라고 했던 사람들이 매우 심각하게 그 기대를 배반해왔음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이런 경우 머리속으로는 찰라의 순간처럼 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더라도, 바로 또 찰라의 순간처럼 그런 생각이 매우 위험하다는 각성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오히려 그럴 분이 아닌데 문제가 생기면 더 조심하고 더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게 어렵나보다. 피해자를 향해 그분이 그럴 분이 아닌데 결국 그분을 그렇게 만든 건 너라는 식의 가해를 하고 있다. 왜들 이러는 걸까, 그것도 '진보'니 '좌파'니 하던 분들이.
어쨌든 이런 저런 사건들을 통해 앞으로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될 수 있으면 일을 같이 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며 일을 같이 하는 일이 있더라도 크게 기대하거나 마음을 주지 않도록 하여야겠다. 추수꾼의 심정이 되어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는 편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