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약속을 지켰느냐?" - 스티브 유
스티브 유(한국명 유승준)로 탐라가 시끌벅적하다. 무슨 유승준방지법인가 뭔가가 발의되었다는 소식과, 이 소식에 빡친 스티브 유가 유튭에서 항변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예외없이 시대의 유목민들은 예의 그 유튭 화면을 캡쳐했고, 온라인의 파도는 이 캡쳐화면들을 확산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캡쳐화면에 비춰진 스티브 유를 희화하는 국민 스포츠가 펼쳐졌다.
그러다가 어지간히 이성적인 반응들이 시작되었다. 특히 그 무슨 방지법인가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 과정에서 병역법과 헌법과 출입국관리법과 그 밖에 관련된 온갖 법률의 이름들이 다 튀어나왔다. 과연 어느 정도까지 법을 위반했는지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향후 만들어질지 모를 무슨 방지법의 타당성까지 검토되고 있다.
여기 더해, 인권의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하고 병역체계에 대한 지적이 뒤를 잇는다. 더 나가, 캡쳐한 이미지에서 보여지듯, 이제 이 문제는 사회적 도덕윤리의 차원으로 진화한다. 너희는 약속을 지켰느냐? 이쯤되면 가히 나비효과라고 할만하다. 십수년전 벌어졌던 스티브유 개인의 먹튀사건은 이렇게 국가 전체의 법, 제도, 인권, 윤리의 영역 전반에 걸쳐 물음표들을 뿌려놓는다.
법률이야기가 나오고, 제도 이야기가 나오니 나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닌데, 솔직히 말해 그 이야기들에 말 한 마디 더 얹을 생각은 전혀 없다. 솔까 지금 이게 법 문제냐, 뭐 제도의 문제냐? 난 그런 거 별로 관심 없고, 애초 스티브 유가 한국에 들어오건 말건 그게 한국사회에 어떤 큰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난 스티브 유가 뭔 노래를 불렀고 뭔 소리를 했는지도 잘 모른다. 스티브 유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이 하도 시끄러워서 대체 얘는 누구며 뭔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야 할 듯한 의무감이 생겨서 그제야 좀 살펴봤더니 제법 흥미로운 사건들이 있었더라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이번 사건이 터졌는데, 아닌말로 뭔 법을 이따위로 한 개인을 타케팅해서 만든다는 발상이 국회의원의 대가리에서 나올만한 것도 아니고, 스브티 유가 빡돌아서 뭐라 한들 그거야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던 건데 또 탐라가 시끌벅적하길래 아이구, 사람들 참 할 일도 없다 뭐 이러고 말려했는데...
그러다가 어딘가에서 퍼 온 저 캡쳐 화면의 멘트에 눈이 커졌다. 스티브 유 개인의 문제를 넘어 이 시대의 혼란이 어디에서 발원하고 있는지를 지극히 명징하게 폭로하는 질문으로 보였다. 특히 촛불 이후 지난 몇 년 간 바로 이 질문이 한국사회 전반의 갈등의 근저에 깔려 있었던 핵심이 아니었던가?
박근혜를 실각시킨 후 그 자리를 대체한 자들이 보여준 작태에 대해 사회가 물었던 질문이 바로 이거였다. 니들도 똑같은 놈들 아니냐, 니들이 예전에 했던 말 그거 다 구라였던 거 아니냐. 물론 이 힐난의 배경은 좌우가 다르다. 태극기들은 그런 거다. 니들도 니들 입으로 뱉은 말 안 지키면서 왜 불쌍한 우리 영애를 핍박하느냐? 아스팔트에서 뒹굴고 있는 좌파들은 다르다. 니들 등따시고 배부르니 본색을 드러내는 거냐?
한국사회에 팽배한 회의와 냉소를 배경으로 제기되는 질문의 고갱이가 바로 스티브 유의 저 질문이었던 것이다. "너네는 평생 너가 약속한 거 다 지키고 사냐?"
국가적 도덕윤리체계를 직격한 이 질문은 그래서 권위 있는 해석이 필요하고 공신력 있는 자의 답변이 필요하다. 이건 법의 문제도 아니고 제도의 문제도 아니다. 감정의 문제, 감수성의 문제다. 그것도 상대적으로 인지되는 감수성의 문제.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을 지는 태도가 통상적 윤리로 자리잡고 있는 사회라면 스티브 유의 질문은 폐기될 것이다. 그 반대라면 스티브 유를 뭔 수로 막겠나? 원래 법보다 앞서는 게 주먹이고, 합리적 이성따위 쓰레기 취급하는 게 감정이다.
아마 지금 이 순간, 이 문제에 대해 가장 권위있는 해석과 답변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전직 민정수석을 거쳐 전직 법무부장관을 역임하고 현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조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명철한 해석과 깔끔한 답변을 기대한다. 우려되는 것은 이분이 스티브 유의 질문에 본인의 전공에 갇혀 법률적 해석과 답변을 주는데 멈추지 않을까 하는 건데, 워낙 명석하신 분이니 질문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