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신비주의의 파괴를 이야기할 때

경제민주주의21: 미국연방판사의 사생활 보호와 우리나라 법관 불법 사찰 논쟁의 검토

우선,

이 글의 취지이자 결론은, 미국의 경우에 비추어 판사의 성향 등을 검사가 탐문하여 참조한다면 그것을 위법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알량하나마 이쪽 공부를 한 입장에서 보자면, 이 결론은 섣부르다. 

검사 A가 판사연감이나 언론 출판물이나 세간의 평가 등을 확인하여 업무에 활용하는 거야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알려진 정보라고 하여 그것을 검찰이 조직적으로 수집, 가공하여 특별한 사건과 업무를 위해 활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현재 부각된 윤석열 관련 사안에서는, 그래서 위법이냐 합법이냐를 단편적인 사실만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한편, 이 글은 다른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글에서 확인해야 하는 건 한국사회에서 사법부의 신화가 유지되고 있는 원인과 결과이다.

언젠가 긴즈버그 대법관 사망과 관련해 했던 말이지만, 한국 사법부는 그 구성원들, 즉 판사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감춰져 있다. 알려고 해도 알기가 쉽지 않은데, 예를 들자면 판사들 성향파악에 가장 중요한 하급심 판례를 찾고자 해도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판사들에 대한 관심과 감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그 결과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불신은 쌓여가지만 견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 글의 의미는 그런 거다. 판사들의 판결 내역은 물론이려니와 판사들의 관계망, 그리고 공익을 위해 공개되어야만 될 범위(을 한정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에서의 사생활까지도 대중이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거.

이렇게 될 때에야 비로소 이 글에서 예시로 들고 있는 '검사를 위한 기초 공판 기법' 같은 게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 어떤 판사의 성향을 알기 위해 검찰 안에서 조직적으로 그 정보를 수집, 가공,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된 정보를 필요할 때마다 어떤 검사든지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 이러면 아무 문제가 없는 거다.

결국 오늘날 '사찰'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된 이유는 평상시에 법관에 대한 정보가 그만큼 비밀리에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신성한 영역에서 신비화되어 있다. 

좋게 말해서 그런 거고, 적나라하게 말하면 그 안에서 어떤 썩은 내가 나는지 알기가 어렵다. 그러니 양승태 같은 자들이 사법부를 사적으로 유용하려고 시도하게 된다.

따라서 이 기회에 또다시 불거져야 할 사회적 의제는 바로 사법부의 신비화를 제거하는 거다. 판사들의 정보를 어느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진보좌파정치진영에서 이런 거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건데... 음... 말을 하고 보니 갑자기 신세가 처량해지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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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30 17:20 2020/11/3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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