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즈버그 대법관의 영면을 빌며

일전에 유명을 달리한 미국 연방 대법관 긴즈버그에 대한 글이 탐라에 종종 올라온다. 나로서는 굉장히 이채롭고 흥미로운 현상이다. 물 건너 저 먼 어떤 나라의 법관에 대해 이역만리 한국사람들의 관심이 이토록 높았다는 건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법학에 발 걸치고 사는 입장인데도, 사실 나조차 현재 대법원 대법관들의 이름도 잘 모른다.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고. 대법원장이 김명수 판사라는 건 그냥 대법원장 정도는 알아둬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기억할 수 있다. 김선수 대법관은 워낙 운동판에서도 알아주는 선수였기에 기억하는 거고. 헌법재판소장은 솔직히 이름도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다. 내가 이 정도니 웬만한 장삼이사들에게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들의 이름을 기억하길 바라는 건 요원할 거다. 아닌가? 나만 그런가?

긴즈버그가 추앙할만한 인물인 건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그가 매우 훌륭한 사람이며 존경의 염을 둘만한 사람이라는 걸 알까? 당장 위키만 훑어봐도 긴즈버그에 대해 상당히 자세하게 그 인물의 내력에 대해 정리해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법조인 중에는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정도가 긴즈버그의 이력에 필적할 정도로 정리되어 있다.

긴즈버그를 언급하는 포스팅 중에, 간혹 미국 대법원은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데 우린 왜 이러냐는 식, 또는 미국에는 긴즈버그같은 법관이 나오는데 왜 우리는 안 나오냐는 이야기들이 눈에 띈다. 다들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고 또 그 이유들이 나름의 근거가 있다. 미국 사법시스템이 엄청나게 선진적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뭐 들여다보면 기실 큰 차이는 없는 듯 보인다만.

아무튼 긴즈버그에 대해 법과는 전혀 관계 없을 듯한 사람들조차도 그를 잘 알고 있는 듯 하는 걸 보면 긴즈버그가 굉장히 유명한 사람인 것은 분명한 듯 하다. 그런데 어떻게 유명해졌을까? 질문은 '어떻게'에 초점을 맞춘다. 왜 유명해졌을까가 아니라. 다시 한 번, 어떻게 긴즈버그는 태평양을 가로질로 한반도 남반부의 인민들에게조차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사회적 관심과 감시, 이를 위한 언론의 역할에서 차이가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미국은 법학자들이 판결이 날 때마다 소상하게 대중에게 알려주는가? 문제가 되는 판결을 분석해서 알려주나? 꼭 그런 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알려준다고 한들, 사건의 판단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는 수준이지 그 판결을 내린 재판관, 예를 들면 긴즈버그에 대해 그의 배경과 그의 경력과 그의 성향을 소개하고 그러한 내력들이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그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긴즈버그가 다른 대법관들과 어떻게 조율을 하고 설득을 하며 소통을 이뤄냈는지까지 법학자들이 소상히 밝혀주는 건 아니다.

그런데 주요 사건이 있을 때마다 사회적 관심은 대법관의 성향에까지 미쳤고, 언론은 이를 심층분석해서 제공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효과가 바로 사법부의 자기통제다. 정치적 외압에 반응해서 스스로 검열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타당성을 인정받음으로써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노력 말이다.

가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왜 3권의 한 축이 되어 선출권력들과 같은 권위를 누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론적이지만, 행정부나 입법부와는 달리 사법부의 구성원들이 그 위치까지 가게 되는 과정에서 고도의 리걸마인드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오로지 법적 근거에 따라 법률가로서의 판단을 내놓는다는 전제때문에 사법부는 그 민주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적 정당성은 입법부나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관심과 감시 속에서 유지된다. 그 관심과 감시는 재판의 결과가 어떤가에 대한 것 뿐만이 아니라 판사 개개인이 어떤 개인적 배경과 과정을 거쳐왔으며, 그 사람이라면 이 결정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를 주목하는 데까지 미쳐야 한다. 보통 국회의원들이나 대통령에게는 이렇게 한다. 사법부의 재판관들에게도 이렇게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현상이 한국에 드문 건 법학자들이 게을러서인 듯 보이기도 한다. 내가 뭐 법학자의 대표는 아니지만 좀 변명을 하자면, 법학자가 판결의 법적 논리에 대한 분석과 해석에는 전문성을 가지긴 해도 개인사에 대한 추적과 정리 같은 건 전문성이 많이 부족하다. 물론 법학자 중에도 그런 분이 있긴 한데, 외람되지만 그 분이 법학에 유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요는 그렇다. 긴즈버그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흥미롭다는 것, 한국의 사법부가 신뢰받기 위해서는 사법부 구성원들에 대한 심도 있는 관심과 감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끔 문제적 판결이 나올 때 "그 판사가 과거 어떤 판결을 했고..." 등등이 거론되는 걸 본다. 내용의 적실성 여하는 차치하고라도 한국도 그런 경향이 생겨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본다. 관심과 감시가 여론으로 이어지는 순환고리가 생겨난다면, 양승태 같은 파렴치한 자들이 사법부를 장악함으로써 생기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도 원천적으로 차단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하긴 뭐 미국이라고 해서 사법부에 대한 대중적 불신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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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2 22:24 2020/10/02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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