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시대라고?
고향역에 열차가 도착할 때가 되면 언제나 역무원이 승강장에 나타났다. 낮에는 기를 흔들고 밤에는 등을 흔들었다. 역사 입구에는 또 다른 역무원이 나와 표를 받았다. 청량리역에서 끊은 두껍고 납작한 종이표엔 기차를 탈 때 뚫어준 구멍이 선명했다. 고향역 개찰구에서 표를 받던 역무원은 동네 아저씨였고, 오랜만에 시골에 놀러오는 동네 꼬마의 얼굴을 기억해줬다. 몇 달만에 온 시골,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아는 척을 해주는 아저씨 덕분에 신이 났다. 어른들끼리 다 형님 아우 하는 사이고, 어차피 멀고 가까운 친척 사이이기도 했다. 그렇게 고향의 작은 역은 사람들끼리 얼굴을 맞대면서 시간의 흐름과 삶의 변화를 감지하는 곳이었다.
어느 순간 승강장이나 역사 앞으로 마중을 나오던 역무원들은 사라졌다. 표를 받던 사람 대신 작은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구멍이 뚫린 종이표는 그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나 역에 도착하면 당연히 인사를 드렸던 분이 보이질 않았지만, 또 그건 그렇게 일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이젠 시골역에서 청량리역으로 나올 때 표를 끊지 않게 되었다. 그냥 승강장에 나와서 기다리다가 열차가 도착하면 올라탔고, 열차 안의 승무원에게 어디서 탔는지 말을 하면 되었다. 한가위에 그 엄청난 귀향객들 사이에 끼어 죽을동 살동 겨우 기차에 실려 고향역에 닿으면 만발한 코스모스와 반가운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다 사라지고 코스모스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르자 철도는 폐선이 되고 인근에 전철이 깔리면서 고향역은 폐쇄되었다. 이젠 아무도 없는 그곳에 코스모스는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ATM기기가 처음 설치되었을 때는 마냥 신기했다. 창구에서 일일이 통장을 깐 다음 어떤 양식을 채워넣은 종이와 함께 창구의 직원에게 전하고, 종이쪼가리를 확인하고 통장을 어떤 기계에 넣은 후 야릇한 기계음이 들린 후 통장과 현찰을 받았던 그런 과정 일체는 사라졌다. 모르는 사람과 얼굴을 맞대는 계면쩍음 없이 일이 처리될 수 있다는 게 어쩌면 속이 더 편했는지도 모르겠다. 연세드신 분들이 ATM기를 이용하지 못해 창구로 가는 걸 보면서 이 쉬운 걸 왜 못한다고 하는 건지 의아해한 것 같기도 하다.
어릴 적엔 저축을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어린이 창구 어여쁜 언니 웃으며 통장주며 어휴 부자군, 하하호호 우리는 착한 어린이 아껴 쓰고 저축하는 알뜰한 어린이” ‘저금통’이란 동요인데, 앞뒤 맥락은 어쨌든 간에 통장 만들고 돈 찾아 쓰고 하기 위해서는 창구를 찾아야 했던 때다. 그랬는데 ATM 기기가 등장한 이후 창구 직원 만날 일이 없어졌다. 그보다 더 혁명적인 사건은 신용카드의 등장이었는데, 이젠 아예 현찰이라는 게 필요가 없어진 세상이 도래했던 거다. 은행 창구에서 통장 들이밀면서 현찰 오고 가는 일은 그냥 이전 세기의 추억이 되었다.
그뿐이랴. 아파트에서는 경비아저씨들이 사라졌다. 전철역 개찰구에서 표를 검수하던 사람들이 사라진 건 오래된 이야기다. 병원에서 혈압을 재는 건 당연히 기계가 할 일이 되었다. 그 외에 또 뭐가 있으려나? 뭔가 당연히 사람과 사람이 마주 봐야 일이 될 것처럼 여겼던 일들의 상당수가 이젠 얼굴 맞댈 필요 없이 해결되는 세상이 되었다. ‘자동화’의 핵심은 어떤 일의 시작과 결과 그 사이에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 현상은 한 마디의 콩글리쉬로 정의된다.
‘언택트’
코로나19 이후 세계를 누군가가 언택트의 시대라고 했던가. 여전히 의문인 건, 코로나19는 대면의 세계를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 1억의 인류를 요단강 저편으로 보낸 스페인독감이 창궐할 때 지금과 비슷한 경향이 있었단다. 마스크를 하고 손을 씻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했다. 조선에서만 물경 30만의 사망자를 냈다고 하는 그 독감의 뒤 끝에 도래한 세상은 언택트의 세상이었던가? 근대가 끝나고 현대로 도래하던 그때와 AI가 인류의 두뇌를 대체하고 로봇이 물리적 활동의 전반을 수행하는 시대를 비교할 수 없다고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건 사람들이다.
고향역에서 역무원들이 사라지고, 창구의 직원에게 통장을 내밀지 않게 된 ‘언택트’는 코로나 이전에 이미 보편적 삶의 형태가 되었다. 이 ‘언택트’는 사람에게 돈을 쓰지 않는 것이 핵심이었다. 코로나19 이후에 나타날 언택트의 세계도 결국 사람에게 돈을 쓰지 않는 것이 핵심일 뿐 그게 인간의 인식과 양식을 바꿔서일 것은 아닐 거다. 문제는 코로나19가 아니라 돈이다.
아마도 코로나19는 스페인독감이 그렇듯 인류와의 공생을 위한 균형점을 찾는 순간 평범한 감기처럼 될 거다. 그 사이 인류는 백신도 만들고 치료제도 만들어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고 다시 어울려 침을 튀기며 이야기도 하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게 될 거다. 학교를 가게 될 거고 직장에 출근을 하게 될 거다. 교회에서 예배도 보게 될 거다. 달라지는 건 사람에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분야가 되리라. 본격적인 언택트의 구조가 만들어지겠지.
코로나19 이후 다시는 예전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예언들이 난무한다. 어떤 예전의 시대를 말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