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권리와 의무

이런 글을 놓쳤었네.

경향신문: [고병권의 묵묵] 정말로 '노동의 권리'가 이런 거라면

잠시 잊고 있었다. 모든 '권리'로 이름붙여진 것들에는 투쟁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노동권도 투쟁으로 쟁취한 거였고, 적어도 누구보다 노동에 대해 천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임에도, 이렇게 그냥 당연히 노동권이 있는 것처럼 스치고 지나가기 일쑤다. 반성한다.

칼럼에서 이야기하는 '권리'의 의미는 필자와는 달리 내게 있어서는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의무'에 대해서는 좀 생각을 달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노동의 권리는 필자가 표현한 그대로 '먹고 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온다. 그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굶어 죽는 거니까. 그래서 노동권은 생존권과 등치될 수 있다. 그냥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걸 권리라고 할 수 있느냐는 필자의 의문은 그래서 내겐 오히려 생소하다.

하지만 노동의 의무에 있어서는 또 생각이 같았다. 왜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그 의무를 져야 하는가? 국민에게 노동권이 있다는 것은 반대로 국가가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회계약론 이래 형성된 국가와 인민의 관계에서 충분히 도출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이 국가에 노동력을 제공할 의무를 진다는 건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보편적 의무, 통상의 의무로 제시될 수 없다.

그런데 필자의 글을 보다보니, 기실 공화주의적 사회국가 내지 사회주의국가에서 노동은 공동체에 대한 의무가 될 수 있을 법하다. "국가와 노동자의 관계는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가 아니라 사회와 생산적 구성원의 관계"라는 필자의 지적은 그런 의미에서 곱씹을만한 내용이다. 적어도 이렇게 될 경우 마르크스가 이야기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 시스템이 성립될 수 있을 터이니. 그런 상황이라면 노동은 단지 나 혼자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을 넘어 사회 전체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도록 만드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노동의 의무가 공동체 구성원, 공화국 시민의 덕성으로 인정될 수 있기 위해선 뭔가 좀 부족한 듯하다. 이 부족한 감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노동의 의무가 헌법상 국민의 의무로 적절하지 않다는 나의 견해를 철회하기엔 많이 찝찝하겠다. 아무튼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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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5 13:25 2020/08/1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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