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공정"하다는데
친구지간에 서로 안부를 묻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야기가 자녀의 이야기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물을 수 있으니 친구다. 근간 애들이 어찌 지내는지 묻다보면 시간이 훌쩍훌쩍 지나간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소스라칠 때도 있지만.
연전에 대학을 졸업한 딸이 집에서 놀고 있다는 말을 하며 친구의 얼굴은 어두워진다. 알바를 해도 오래가질 못하고, 일 끊어지면 또 일 찾느라 고민하는 딸을 보면 마음이 편칠 않단다. 그 얼굴 보는 내 마음도 썩 좋지 않고.
여유가 없더라도 대입 시험 보기 전에 학원이라도 많이 보냈으면 어땠을까, 후회도 해본다. 그랬다면 지방대학이 아니라 최소한 인서울 대학에 갔을지도 모르겠고, 또 그랬더라면 지금처럼 취직 못해 알바자리 찾느라 애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돈이 좀 모이면 바리스타를 해보고 싶어한단다. 작은 커피숍을 내고 싶다는 딸의 소망을 어떻게든 이뤄주고 싶다는 친구는 그래서 따로 돈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가게 차릴 때 다만 몇 푼이라도 보태주기 위해서다. 예전 같으면 일단 그 똔 땡겨서 술이나 한 잔 먹자고 농담이나 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농담할 분위기가 아닌 거 같다.
개인적으로는 몇 번 인사를 나눈 일 밖에는 없지만, 사회적으로는 이름 깨나 알려진 분이 있다. 이분은 자식을 외국으로 유학보냈었다. 어린(?) 자식을 만리타향으로 홀로 보내는 게 안타까워서 "없는 시간을 쪼개" 그 나라로 날아가 자녀가 다닐 학교 주변을 함께 돌며 "없는 돈을 들여" 자녀가 유학기간 동안 거주할 집을 알아봤단다. 이후에도 번번히 날아가 정리할 거 정리해주고 위문도 하고.
유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해 번 돈 "을 자녀의 유학자금으로 보내줬고, 틈틈이 자녀가 알려오는 현지의 소식과 자녀의 사는 모습과 자녀를 멀리 떠나보낸 애틋한 마음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자식이 유학을 마치고 온 후에도 이런저런 뒤치닥거리(!)를 하며 가끔씩 그 소회를 넉두리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재밌는 건 이분과 속마음을 훑을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므로 내가 먼저 그 자식의 일을 물어본 일이 없으나, 자식 건사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해주었다는 거.
친구 이야기를 듣다보니 자식 유학 보냈던 분이 생각나는데, 부모 마음은 다 똑같은 거 같다. 하고 싶은 거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마찬가지로 겹치는 뭔가가 있는 듯하다. 능력되는 대로 뒷받침 해주고 싶고 뒷받침 해주기 위해 더 벌고 싶고, 언제나 제대로 뒷받침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고...
두 사람의 자녀들이 다 잘 되길 바란다. 작은 커피숍을 내건, 전문직 종사자가 되어 사회적 지위를 누리건 각자의 몫이 있겠다. 그 두 사람을 비교할 필요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다만 그 애비들이 자녀들에게 보냈던 그 애틋한 사랑이 다음 세대 간의 격차와 갈등으로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