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지도 않냐, 그놈의 개헌...
박병석 국회의장은 개헌에 대해 상당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작년 제헌절 축사에서도 개헌을 해야 한다고 했고, 올 2월 임시국회 개회에서도 개헌하자고 주장했다. 문 정권 들어서면서 한다고 했던 개헌은 그냥 해프닝으로 끝났다. 백화점식으로 의제 나열하면서 미사여구만 채워 넣는다고 한들 개헌주체들은 별 관심이 없다는 게 확인됐다. 지금 시국에 개헌한다면 "땅 투기자들은 3대 멸족" 정도는 넣어 줘야 그나마 관심이 좀 붙을라나.
지금 개헌론이 사람들 입길에도 오르지 않는 이유가 몇 있다. 일단, 그 개헌 누가 한다고 설레발 치고 있는 건가? 현재의 기득권 집단이다. 민주화세대, n86세대가 주축이 된 이 세대가 주축이 된 두 당이 있다. 국힘이라는 당은 보수라고 분류되고 더민이라든 당은 진보라고 분류되고 있지만 요즘 들여다보니 둘이 뭐 다른 게 없더라는 게 보인다. 그런데 이것들이 개헌을 한다고? 어떻게 할라고?
다음으로, 이들 정치인들이 하고싶어하는 개헌의 핵심은 권력구조개편이다. 다른 여러 의제들은 실은 곁가지일 뿐이고,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 이게 예전엔 참 흥미로운 주제였는지 몰라도 이젠 국민들이 시큰둥 하다. 아닌 말로 박근혜 임기 1년 빼봐야 그 다음 들어선 정권이 뭐 나은 게 없고, 문재인 임기 3년 늘려줘봐야 지금보다 뭐가 더 나아지겠는가? 조국 같은 이들이나 판치고 '내' 땅투기나 활황 타는 거고.
뭐니뭐니 해도 기대치가 없다. 그놈이 그놈인데 그놈이 개헌을 한다고 하면, 개헌 한 후 그놈이 또 그놈이 아니라는 보장이 어딨단 말인가? 개헌을 하고 나면 지금보다는 손톱만큼이라도 뭔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야 개헌주체들이 그럼 심심한데 개헌이나 해볼까 하고 나서는 거지, 쥐뿔이나 개헌한다고 힘만 들고 기껏 해봐야 씨알만큼도 나아지는 게 없을 것 같은데 뭐하러 귀찮게 개헌 어쩌구 신경을 쓰나?
줄창 하는 이야기지만, 현재 나오는 개헌론은 되지도 않을 이야기 뿐이다. 헌법 제정에 가까운 개헌 백날 이야기해봐야 이해관계의 충돌만 가중될 뿐이다. 사회적인 공론을 거치지 않은 채 대충 청와대 내부조율이나 국회내부 협의만 거치면 지난 번 청와대안이나 국회안처럼 맥락도 없는 의제만 나열될 뿐이고...
최근 녹색생태 쪽에서 내각제 개헌 주장이 있었다. 기존 논의와는 다른 내각제를 제시했다는 차이는 있었지만, 사실 내각제가 과연 오늘날 생태위기와 기후위기를 극복할 대안체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오히려 원리주의적 생태주의자가 대통령이 돼서 아주 기냥 확 마 다 쥐 쎄리 패뿓는 게 더 확실하지 않겠나? 내각제 하니까 JP가 생각나기도 하고.
난 이런 식으로 통치구조론 중심의 개헌론이 계속되어야 하는지도 의문이고, 때만 되면 온갖 현란한 용어를 써가며 뭔가 그럴싸한 문장을 만드는데 혼신의 공력을 쏟아붓는 개헌논의는 좀 지양되었으면 한다. 현행 헌법의 한계라는 거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내' 공사 땅투기 하는 것들이 땅투기할 때 헌법이 그걸 보장하고 있어서 했겠나?
차라리 보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소위 '원포인트 개헌'을 좀 추진했으면 싶다. 헌법에 국민발안과 국민투표 제도를 도입하는 것만 가지고 개헌을 해보자는 거다. (현행 헌법의 국민투표제도는 그냥 대통령이 국민동원하기 위한 제도일 뿐이니 없는 걸로 치고) 국민이 개헌안을 발안할 수 있고,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즉시 국민투표를 할 수 있다는 규정만 헌법에 들어가 있으면, 이후 국민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헌법의 규정에 따라 발안하고 투표하면 되지 않겠나?
국체와 기본권의 내용을 바꾸는 건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만, 통치구조라든가 경제구조라든가 하는 내용은 국민발안과 국민투표로 보다 쉽게 개정할 수 있도록 해놓으면 되는 거 아닌가. 예컨대, 국민발안과 국민투표가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고 하자. 국민들이 생각해보니, 대통령제 이거 아주 몹쓸 제도로세. 내각제로 바꿉시다! 이렇게 결의하고 국민발안하는 거다. 잘 되면 내각제로 개헌하는 거고, 안 되면 뭐 또 다음 기회를 노려보는 거고.
아무튼 간에 국회의장이 선동 뜨고 국회의원들끼리 20년도 더 묵은 자료 죄다 꺼내든 채 시종여일하게 입에 발린 소리만 쳐발라대는 개헌은 사양이다. 아니, 그런 자들 입에서 개헌 얘기 나오는 것 자체가 이젠 신물이 난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내' 투기나 어떻게 발본색원을 해보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