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이라고?

* 이 글은 행인[전자팔찌] 하고도 관련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1. 예전에...

예전에 들락거리던 어느 사이트에서 '성소수자의 성적 경향이 왜 발현하는 것인가'에 대해 논쟁이 있었다. 누군가가 성소수자의 성적 경향은 선천적이라고 주장했던 거다. 이 분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가지면 안 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고 있었다.

 

행인은 이에 대해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를 이야기하는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눈에 콩깍지가 씌이는 데는 이유가 없는 거다. 그게 이성이든 동성이든 관계가 없다. 어느 순간 누군가가 내 연인으로 여겨진다는데야 이를 어쩔 것인가? 그걸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 따지게 될 경우 논의의 방향이 이상한 곳으로 빠진다는 생각이다.

 

즉,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간에 이를 병리적 현상의 징후로 파악할 때에는 '치료'라는 방법이 동원된다. 동성애를 치료해야할 무엇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 결과 유전자 조작이니 뇌의 특정 부분을 어떻게 한다느니 정신심리치료를 한다는 둥 하는 벼라별 소리가 다 나오게 된다. 안 그래도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선천론과 후천론의 제기는 이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 쉽게 연결된다.

 

그거 그렇게 보면 안 된다는 거다. 누군가를 '성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말 그대로 연애감정일 수 있다. 쉽게 말해 '콩깍지'가 씌이는 거다. 외부의 사람들이 아무리 뭐라 해도 콩깍지는 콩깍지인 거다. '남녀상렬지사 제3자개입 금지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이건 이성간에뿐만 아니라 동성간에도 적용된다.

 

2. 최근에...

최근에 전자팔찌 논란의 와중에 일부 사람들이 성폭행범들의 범죄행위가 발현하는 것이 병리적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거의 병적인 사람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걸 병적인 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어째 좀 말이 맞지 않는다.

 

성폭행범들을 환자로 규정한다면 그들의 성폭력행위는 발병 내지 발작 증세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병적인 발병이나 발작은 정신적인 제어로 해결되지 않는다. 아, 물론 정신세계의 우수성을 높이사는 분들의 경우 생각만으로 몸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시기도 하나 이건 너무 높은 차원의 이야기라 감히 감이 잡히질 않는다.

 

해서 일반적인 경우만을 생각해본다면 발병이나 발작은 심리적 제어만으로는 가라앉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간질환자나 고혈압환자의 경우 간질발작이나 뇌출혈 등이 일어났을 때 심리적인 억제만으로 이 증상이 가라앉는 것이 아니다. 그 앞에 경찰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경찰이 총을 뽑아들고 "계속 발작하면 발포한다"라고 소리쳐도 간질발작같은 경우 몸이 제어를 할 때까지는 이 위협이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오히려 간질발작을 일으킨 환자 앞에서 총뽑고 헛소리한 경찰이 옷벗기 딱이다.

 

그런데 성폭행범들의 경우를 보자. 얘네들이 갑자기 발기한 자기의 물건을 주체하지 못해 어떤 피해자에게 성폭행을 시작했다. 그 순간 경찰이 나타나 총을 뽑아들고 "움직이면 쏜다"라고 했을 때, 얘네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토끼든가, 무릎꿇고 살려달라고 하던가, 피해자 붙잡고 인질극을 벌이던가... 즉, 경찰이 나타나기 전까지 진행하던 '발작'현상을 계속 유지하는 경우는 없다는 거다. 경찰이 총을 뽑아들고 있는 앞에서도 지들의 '발작'증상을 계속 진행시키면서 성폭행을 계속하는 경우는 없다는 거다.

 

3. 환자가 아니란 말이다...

이야기인 즉슨, 성폭행범들에게 교정교육을 시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들을 전적으로 환자대접해서는 곤란하다는 거다. 자꾸 그들이 무슨 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몰아간다는 것은, 술취한 사람이 실수를 하는 것 정도로 성폭행을 무시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만취자들의 실수에 대해 우리나라만큼 관대한 나라도 드물다. 술먹고 실수를 해도 "술 먹음 그럴 수도 있쥐"라고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이 관용정신. 개뿔이 관용은... 사실 취한 사람의 실수에 관대한 이유는 언제 자기 자신이 그렇게 실수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취중실수한 사람을 몰아치면 다음번 자신이 술먹고 실수를 했을 때 그 비판 감당하기 어렵다. 이건 관용이 아니라 상호 부조다. 일종의 보험이다. 내가 너 술처먹고 꼴값 떨 때 암말 안했으니까 너도 나한테 그러지 마라... 하긴 뭐 사람이 잘못했냐, 술이 웬수지...

 

성폭행범들을 자꾸 환자취급해주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할 수 없다는 아주 그럴싸한 이해, "그 인간은 원래 그래, 병이야 병"이라는 관용. 혹시 이 관용은 관용이 아니라 누군가가 표현을 빌자면 성폭력이 일상화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마초들이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아랫도리 동맹"이 아닐까?

 

성폭행범들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할지라도 이건 곤란하다. 그들을 사회와 격리시켜야 하는 이유가 그들이 '환자'이기 때문이라면 이건 더 큰 인권침해다. 왜 요즘 소록도가 문제가 되고 있나? 정신병자들을 오로지 격리라는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만연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그 병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 등의 인권침해가 어느 정도인가?

 

4. 대안은...

대안을 만들어야할 때이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전자팔찌는 답이 아니다. 더구나 성폭행범들을 환자취급하는 것 역시 답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래, 그게 문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게 지금부터 빡시게 고민해야할 우리들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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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3 15:17 2005/05/0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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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6/02/23 05:01

    행인의 [질병이라고?] 에 관련된 글. 1. 죽음, 그리고 분노 한 어린 여자아이가 죽었다. 그것도 참혹하게. 가해자는 구속되었다. 조만간 처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처벌인가? 그 처벌

  1. 우선 죄질대로(?) 다루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환자취급해서 정신병원에 넣은것도 한 방법일것 같은디...
    ㅡㅡ;;

  2. 캘리포니아에서는 화학적 거세의 방법을 도입하고 있어요. 상습적 아동(13세이하) 성폭행범에게는 징역 후 외과적 거세 혹은 평생의 화학적 거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하고, 그 외에는 징역 혹은 화학적 거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화학적 거세'방법은 남성호르몬을 강제로 낮추면 성욕상실과 성기능저하가 오고, 결국 상습적 성범죄를 감소시킨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건데... 자세한 통계를 잘 모르겠네요.. 정말 감소시켰는지는... 잠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상습범의 경우는 재범률이 확실히 떨어진다고 하네요...

  3. 멒/ 정신병원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위험합니다...
    hand/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경우에 전자장치던 홀몬 억제던 그런 방법들은 모두 가석방, 보호감호 등과 관련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죠. 형기를 마친 사람에게 따로 이런 조치를 더하는 것은 예외적으로 시행되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은 이걸 형기와 관련 없이 시행하자는 것이구요. 2007년에 상용화한다는데 가관입니다. 참고로 일정한 조치를 취한 사람의 경우 재범율은 확실히 떨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조치가 끝난 이후에는 그럼 어떻게 하느냐죠...

  4. 음.. 주로 가석방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더라구요. 예외적인 경우는 상습적 아동성폭행범인 경우만이죠. 근데, 정말 한나라당 안이 형기와 상관없는 것이었나요? 아이구.. 건성으로 읽어서 그걸 잘 몰랐네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5. hand/ 그런 생각하고도 남는 사람들이죠 ㅋㅋㅋ 80%의 지지라는 여론몰이로 지들의 인권에 대한 무지를 감추려고 하는데 그게 좀처럼 잘 안 될 겁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성폭력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당사자들의 권익을 어떻게 보호하고 지켜줄 것인지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어보이더군요.
    아무튼 미국 상황에 대해 알려주시니 큰 힘이 됩니다. 혹시 가능하시다면 그와 관련된 법이라도 좀 올려주실 수 있을지요??(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이 심뽀에 용서를...)

  6. 법률이 굉장히 복잡하고 여러가지 관련법률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잘 정리된 것을 찾기는 힘드네요. 일단, 성범죄자들에 대한 법률들은
    http://www.dmh.ca.gov/socp/ca-svp-statute.asp 에 대강 모여 있는 것 같고, 1996년 추가된 기타처벌법령개정안(화학적 거세안 추가)은 조금 찾기가 힘든데, http://www.leginfo.ca.gov/bilinfo.html 로 들어가서 1995-1996 Session을 선택한 후, Search 항목에 AB3339 쳐넣고 찾으면, 관련 법령과 수정과정, 상하원+상임위원회의 토론내용과 투표결과등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도움이 될 지 잘모르겠네요 ^_^;;

  7. hand/ 오오... 땡큐~! 감사합니다. 어떻게 보답을 드려야할지 ^^;;;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

  8. 난 딴것보다 '남녀상열지사 제3자 개입금지의 원칙'이 딱 마음에 드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