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아침 7시반부터 시작된 토론회. 이건 미친짓이라고 생각하면서 투덜투덜 궁시렁궁시렁 혼자 중얼중얼 거리면서 국회로 갔다. 본관 221호에서 진행된 토론회.

"담장없는 국회 만들기" 토론회.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이다. 제안은 상당히 오래 전에 했는데 이제서야 첫 출발이 이루어졌다. 고생한 사람들에 대한 치사는 뭐 굳이 안 해도 될 것이고, 행인이야 제안만 했을 뿐 실제 역할한 것이 없으니까 그다지 썰을 풀 일도 없지만 어쨌든 기분 삼삼하다. 너무 이른 시간에 토론회가 진행된 것만 빼고는...

 

토론회에는 민주노동당을 비롯하여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당에서 의원 한 명씩이 나왔다. 민주노동당 이외의 정당 의원들은 토론자 자격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토론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직 머~~얼었다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열린 우리당 우원식 의원.

문제의식 좋다. 전체적인 측면에서 별로 다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원식의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뭔가 찜찜한 구석이 생긴다.

 

우원식의원, 계속 국회 "안"에 국민이 들어오게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가 이야기하는 국회 "안"이란 국회를 둘러싸고 있는 "담장" 안을 의미한다. 이건 결국 우의원의 사고방식으로는 국회의원회관과 국회본청 이외에도 그 10만평의 담장 안 전체 공간을 "국회"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왜 그게 국회 "안"인가? 국회 "앞"이지.

 

국회 총부지가 현재의 국회담장 안쪽 영역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뭐 별로 틀린 말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회 담장을 없애는데 동의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국회 "안"이라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치 국회가 국민을 위해 제 집 안방을 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혜적인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서울시청 앞 광장은 엄연히 서울 시청의 관할권 안에 속해있는 공공시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서울 시청 "안"에서 만나자는 말은 하지 않는다. 시청 "앞" 광장이라고 하지 시청 "안" 광장이라고 하는 사람 봤나??

 

더불어 우의원은 너무 급하게 국회담장철거작업을 주장하면 의원들이 불안해하므로 의원들을 안심시키면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security문제도 있고 해서 국회의원들의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전제였다. 뭐 굳이 문제삼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지만 속으로 웃음이 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지금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안심시킬 대상은 국민이지 국회의원들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의 동작 하나 말 한 마디에 국민들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 앉는다. 국회 경호인력이 얼마나 되는데 그깟 담장 좀 없앤다고 불안해할 국회의원들이라면 문제가 있다. 그만한 배짱도 없이 어떻게 일국의 국사를 담당하려고 했나?

 

다음으로 한나라당 김애실 의원.

역시 취지에 공감한단다. 발제자들이 이야기하는 새로운 국회의 상에 전적으로 공감까지 한다. 원론적인 이야기 이외에 김애실 의원의 주장 중 특이한 점은 국회의원의 업무에 방해가 되는 행위, 즉 의정활동을 왜곡하는 행위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회의원 집무실 바로 앞이 혼란해지면 일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 되겠다.

 

딱 여기까지였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 더 비판할 것도 없다. 국회의원이 열심히 일하시겠다는데야 그거 마다할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 근데 뭣때문에 의정활동이 방해가 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욕먹는 게 두려워서였을까나??

 

그나마 이정도는 양호한 편이었다. 오늘 아침의 하일라이트는 민주당 손봉숙 의원.

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솔직히 말하건데 오늘 손봉숙 의원에 대한 행인의 평가는 정확하게 한 단어로 말해 "ㄲㅌ"이라는 거다. 수준이하였다.

 

우선 손봉숙 의원, 국회담장을 없애고 국회의 권위주의를 청산해서 국회 앞마당을 국민의 공간으로 만들자는 토론회의 취지가 무색하게 토론회의 주제와는 별개의 이야기를 전개했다. 국회의원들이 일할 공간이 없어 힘들어 죽겠다는 거다. 그 심정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골방같은 의원실에서 의원까지 포함해 한 서너명이 있으면 충분할 공간에 의원까지 10명 이상이 바글대는 현실이니 그런 하소연 나올만도 하다.

 

또한 17대 국회 등원이후 국회의 모든 공간에서 쉴 시간 없이 토론회니 세미나니 하는 행사가 열리는 바람에 행사 하나 잡기에도 이만저만 애를 써야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민주노동당이 있었다만 어쨌든 의원들이 일할 공간 자체가 부족한 것은 이해가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왜 이 토론회에서 그렇게 장황하게 이야기되어야 할까? 손봉숙 의원의 이야기의 골자인 즉, 국회본청과 의원회관을 security line으로 묶고 그 앞을 국민들에게 개방하면 자신들의 쉴 공간이 없어지며 자신들에게는 회색빛 건물만 남고 녹지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는 거다. 도대체 이런 발상이 어떻게 가능할까?

 

뭐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은 국회 앞 공간에 나오지 말라고 막고 서기라도 할 것이란 건가? 손봉숙 의원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자기가 국민들에게 매우 많이 알려진 의원인 양 생각하는 듯 한데 꿈깨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국회 앞에 오는 사람들, 손봉숙 의원이 명함 돌리기 전까지 얼굴도 못알아볼 사람이 태반이다.

 

손의원의 이야기 계속된다. 국회 안이 너무 삭막하단다.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아, 이게 이래서 권위주의적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단다. 복도는 어둡고 그림 한 점 걸려있지 않고 회기가 없으면 본청 건물 내 중간복도도 막아놓고 있어서 돌아다녀야하고 어쩌구 저쩌구... 아니 그럼 자기는 그림 한 점 사다가 복도에 걸어놓아보기를 했나? 조명기구 사다가 어두운 구석에 달아놓기를 했나? 그걸 세비받는 국회의원이 지 돈으로 하지 않으면 국민 세금 또 걷어서 해결해야하나? 뭔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더 깨는 거는 담장을 없애더라도 국회 앞 개방은 국회 회기가 없을 때 해야한다는 주장. 국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밖에서 꽹과리 치고 장구 치고 확성기 틀어놓고 마이크로 구호 외치면 업무를 못한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상하다. 지금은 국회 근처에 시위대가 오지도 못하는데 일 잘하고 있나??

 

여기 덧붙여 손봉숙 의원의 마지막 주장은 결정적이었다. 앞으로 시위문화가 선진적으로 바뀌어야 한단다. 조용하고 소규모로 하는 시위, 특히 1인시위 같은 "선진적 시위문화"가 정착되어야지 대규모로 모여서 떠들고 와~~하고 몰려오는 것은 "후진적 시위문화"란다. 웬만하면 그냥 넘어갈라다가 그 대목에서 실소를 하고 말았다.

 

이분은 근본적으로 민주국가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이해당사자가 목소리를 높이는것이 용인되어야 한다는 것 자체를 매우 불온시 하고 있다. 자기 주장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어차피 국회담장 없어져도 공공기관 100m 이내 시위금지라는 현행 집시법 규정 때문에 국회 앞에서 "불법폭력시위" 할 수도 없다. 만에 하나 "불법폭력시위" 일어나면 현행법으로 처벌하면 될일. 뭐가 선진적이고 뭐가 후진적이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프랑스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아비규환을 보라. 그걸 선진적이라고 해야하나 후진적이라고 해야하나?? 집회시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아 혼자 묵묵히 판넬 하나 들고 공공기관 정문앞을 지키고 있는 일인시위자의 모습이 선진적인 모습이라고?

 

갈등의 분출을 두려워하는 국회의원. 너무나 반어적인 모습이다. 자기들이 국회의원이 된 과정(손봉숙 의원이 비례대표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이 어떠했는지를 되새겨볼 일이다. 지들은 선거기간 동안 시장판이며 골목길이며 대로 한복판이며, 하다못해 공중파, 인터넷, 신문, 잡지 등 이용할 거 다 이용해서 전국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 난장판의 핵심은 바로 정당간의 갈등이었다. 그리고 선거판은 그 갈등의 분출이었던 거다.

 

그러나 그거 다 민주주의 실현의 한 모습이라는 판단에서 우리 국민들 너그럽게 용서해주고 투표까지 해주신 거다. 국민들의 수준은 이정도인데 그 난장판 덕분에 의원뱃지까지 찬 사람이 갈등을 두려워해? 아무튼 뭐가 뭔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 조류형 두뇌의 사고방식은 보는 이를 어이없게 만든다. 뭐 덕분에 약간 즐겁기도 했지만...

 

아무튼 이렇게 새벽별보기 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된 아침 토론회는 끝이 났다. 저 권위로 똘똘 뭉친 국회의 폐쇄성을 깨트리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국회 담장 없어지는 날, 지금 국회정문을 지키고 있는 해태상 밑에 있는 포도주를 꺼내 잔치를 하자고 해야겠다. 그 날이 오면 행인도 금주선언을 깨고 몇 십년 묵혀있던 그 포도주 한 잔 마시고야 말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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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9 10:44 2005/11/0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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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애실의원은 'ㅗㅗ'이라는 말씀이시죠?ㅎㅎ
    (난 저 토론회 안내글에, '시간' 적힌거보고는 오타인줄 알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