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의를 넘어서는 헌법의 질서를 희망하며

붉은사랑님의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와 법질서는 폭력의 악순환을 부른다.] 에 어쩌면 관련이 없을 수도 있는 글

 

이 글을 보는 사람의 절대다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아니, 100%가 '대한민국 국민'일 것이다. 행인이 뭐 국제적 인사라도 된다면 모를까, 지구 어느 구석 얼굴도 모르는 '외국인'이 내 글을 보면서 히히덕 거리고 있지는 않을 거다. 그렇다고 해서 서운하진 않다.

 

붉은 사랑님의 포스팅을 보다가 문득 우리 헌법이 생각났다. 헌법이 생각나게 된 두 개의 매개는 이렇다. 하나는 왜 자본은 국경마저 없애가면서 자신들의 철옹성을 쌓아 나가고 있는데, 그 저항의 인자들은 국경을 극복하는 것이 어려울까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주민과 소수자에 대한 정책이 가장 개방적이라고 알려져 있던 프랑스에서 오늘날과 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작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실정에 처해 있는 걸까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생각이 얽히고 설키다가 문득 우리 헌법의 구절들을 떠올린 것이다. 우리 헌법의 규정들? 그게 왜 뜬금없이 생각났을까나... 더불어 행인의 국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 국적이 이 땅에서는 하나의 기득권이 될 수도 있음마저 느끼면서...

 

우리 헌법의 기본권 규정을 보자. 제10조에서부터 제37조까지 열거되어 있는 기본권 조항에는 반드시 "모든 국민은" 또는 "국민의"라는 말이 들어간다. 예를 들자면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제12조제1항 전단)"라는 식이다. "모든 국민은" 또는 "국민의"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은 기본권조항은 이 28개 조문 중 오직 제33조 노동3권 조항 뿐이다.

 

먼저 제33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이 노동3권은 헌법 기본권 조항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른 모든 기본권이 개인 대 국가의 관계에서 국가로부터 보장되어야할 개인의 기본권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임에 반해 이 제33조만은 개인이 아닌 집단의 기본권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다른 모든 기본권 조항이 개인 대 국가의 대립항을 전제로 하고 있는 반면에 이 조항만큼은 노동자의 자주적 집단과 사용자의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본 조항에 "모든 국민은"이나 "국민의"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더 깊은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고...

 

제33조의 규정을 제외한 나머지 기본권 조항들을 살펴보면 의문이 생긴다. 왜 하필 "모든 국민은"일까? 예를 들어 앞에 소개한 헌법 제12조 신체의 자유 규정을 보자.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외국인은? 우리 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은? 또는 무국적자는? 이주노동자는??

 

과연 이 기본권 조항이 "국민"이라는 개념 안에서만 보장되는 것이어야 할까? 외국인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그 사람의 국적국가와의 상호주의에 의해서 처우를 결정한다. 그러한 기본적 사항을 염두에 둔다고 할지라도 굳이 헌법의 기본권 조항이 "국민"을 우선 전제할 필요성이 무엇인지는 의문이다.

 

미국이 한국인에 대해서 불법체포와 구금, 심지어 고문까지 일상적으로 자행한다고 해보자.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미국인에 대해 불법체포와 구금, 심지어 고문까지 일상적으로 자행해서는 안 된다. 현실에서도 이런 사례가 존재한다. 미국은 출입국과정에서 한국인의 지문을 지들 멋대로 채취한다. 그러나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한 한국정부는 미국인에게 출입국과정에서 지문을 채취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미국이야 뭐 원래 대단한 나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미국 아니라 다른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보다 훨씬 못산다고(이건 사실 경제적 수준에 따른 구분이라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하는 나라들에서 온 외국인들이 혹시 범법행위를 했다고 해서 그들을 불법감금하고 고문을 해야할까?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이 신체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 헌법이 "모든 국민은"이나 또는 "국민의"라는 수식어를 동원하여 기본권을 규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사실 "모든 국민은"이라는 수식어는 "누구나"라는 용어로 바뀌어야 한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양보를 한다고 할지라도 기본권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모든 국민은"을 "누구나"로 당장 바꾼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헌법 제32조의 규정을 보자.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라고 되어 있다. 이걸 "누구나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라고 바꾸어보자. 이렇게 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일자리를 뺏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엄청나게 반발할지도 모른다. 헌법의 규정이 이렇게 되면 이주노동자를 규제하는 현행법 대부분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 산업연수생 또는 외국인노동자 등록제를 규정한 법률의 경우에는 위헌의 소지마저 안게 된다.

 

그러나 "누구나" 노동을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가 한국국적을 가진 자건 이주노동자건 간에 먹고 살기 위하여 노동을 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교육의 권리는 어떤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제31조) 이 조문이 "누구나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로 바뀐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생기는가?

 

이 땅에 사는 "누구나" 자신이 원할 때는 원하는만큼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한국국적을 가진 사람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달라질 것은 없다. 우리 사회, 아니 우리 국가는 적어도 자신의 주권이 미치는 공간 안에 사는 어느 누구에게건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야할 의무가 있고 지금 현재 그럴만한 능력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는 "국가주의"를 넘어설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적어도 헌법의 기본권 조항들만 봐도 그렇다. "국가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제1항이 천명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용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비록 같은 조 제2항이 주권의 원천을 "국민"으로 한정하고 있을지라도 '공화국'의 이념은 '공화'의 이상이 자국국민에게만 한정적으로 적용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만간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하는, 아 물론 휴전선 이남의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하는 "대한민국" 안에 이주노동자가 전체 인구의 10%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5천만 인구 중에 5백만이 이주노동자로 채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전망이 나오는 시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의 구조가 얼마나 '국가중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의 인식을 하루 속히 바꾸지 않는 한 프랑스의 사태를 스스로 겪을 날이 도래할 수 있음에 위기감을 느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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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5 04:58 2005/11/15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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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헌법을 지켜야 하는 존재로서의 국민이라는건...곧 국가라는 권력에 사로잡힌 하나의 노예라는 방증 아닐까요..ㅋㅋ 물론 자유를 덫칠해 교묘하게 그걸 위장하지만....문제는 그 자유가 제한적이라는 사실...

  2. <공화>의 의미에 대해서 별로 생각을 못했는데... 음... 공부 좀 해야겠네요...*^^*...

  3. 글을 읽고 캐나다 헌법을 한번 찾아봤더니.. 기본권에는 'everyone'이라고 되어 있고, 선거권 등에는 'every citizen'이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좋은 지적이었던 거 같아요.

  4. 티코/ "국민"이라는 용어로 "노예"를 만들고 "국가"는 국민을 노예로 훈육하죠. 헌법이 거기에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구요. 그러나 헌법이 중요한 이유는 그 법률이 단순히 부르주아 정치체계의 이데올로기적 옹호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계급간의 투쟁 속에서 계급 상호간의 이해가 일정정도 반영되어있기 때문이겠죠. 자유권 보장을 위한 투쟁의 결과 인권에 대한 내용이 국가최고규범에 들어가게 되고, 자본주의의 폐해가 심해지는 과정에서 사회권이 포함되고, 이후 소수자의 인권, 여성의 인권 등 자유권이나 사회권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권리들이 기본권의 항목에 포함되는 일련의 과정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이때문이겠죠.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권리의 획득은 결국 헌법의 규범 안에서가 아니라 인민의 투쟁 속에서 일궈지겠지만, 현존 헌법의 부르주아적 해석을 극복하는 인민적(내지 프롤레타리아트적) 재해석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개헌 논의 하기 전에 현재 있는 헌법규범만이라도 재해석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구요, ^^

    이재유/ 홍세화님이 공화주의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하고 계시더군요. 그분 말씀이 좀 추상적이고 예시의 대상이 주로 프랑스다보니 많은 부분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사실 우리 사회에서 "공화"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있었는가를 살펴볼 때 매우 의미있는 행보라고 여겨집니다.
    네오/ 뭐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렇죠. 적어도 "국민"이라는 말 자체가 근대 일본이 "people"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황국신민의 의미를 담은 용어로 만들어진 것인데, 이게 한국에서 계속 사용되고 있는 거로 보입니다. 우리는 헌법조차도 식민지배의 영향에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한 걸까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