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특수성

박정희가 유신을 단행했을 때, 이놈의 유신 헌법이라는 것이 완전히 제왕적 대통령제를 인정하는 것이라서 양심있는 사람들로부터 숱한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 때도 복고풍이 유행했는지 어쨌는지 민주공화국이라고 떡하니 헌법에 집어넣어놓고는 그 주제에 대통령을 가장한 왕을 만들어 놓았으니 복고를 해도 지나치게 복고를 한 셈이라.

 

헌법을 그따위로 만들어놓고 나니 맘이 편한 것이 아니라 더 불편하긴 했나보다. 그래서 박정희, 지 말 잘 들을만한 헌법학자들을 모아놓고 유신헌법을 이쁘게 포장하라고 하명한다. 그 때 동원된 한모, 갈모 교수들, 노심초사 어떻게 하면 이 유신헌법을 민주주의의 완성체라고 선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이 뛰어난 인재들이 유신헌법을 미화하기 위해 만들어냈던 구호가 그 유명한 "한국적 민주주의"다. 그런데 이거가지고는 좀 불완전하다. 아니, 그럼 유신헌법 이전의 헌법들은 미국적 민주주의냐? 프랑스적 민주주의냐? 뭐 이런 시덥잖은 비판도 불거지고 뭔가 화끈하게 와닿지 않는 구석이 있었던 거다.

 

그래서 또 만들어 낸다. "영도적 대통령제" 벌써 찡~한 무엇이 가슴을 후벼파지 않는가? 이 시기 북한과 남한, 누가 형제국이 아니랄까봐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김일성은 "위대하신 민족의 영도자" 하시고 박정희는 "영도적 대통령"하시고... 아무튼 이러한 삽질들 속에서 남한 사회는 "영도적 대통령"의 영도 하에 "한국적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었다.

 

이 동서고금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영도적 대통령제"의 "한국적 민주주의"의 한 예를 보자.

 

유신 헌법 제39조 제1항 "대통령은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토론없이 무기명투표로 선거한다."

 

이 얼마나 "한국적"인 "민주주의"인가? 기냥 후보 내면 토론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이 무기명으로 투표해서 끝장을 본다. 한국적 민주주의에 말은 필요 없는 거다. 까라면 까지 뭔 말이 많냐...

 

좀더 확실한 "한국적 민주주의" 하나만 더 보도록 하자.

 

유신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이게 왜 "한국적 민주주의"인지 가슴에 확 와닿지 않는 분들은 현행 헌법조문을 비교해보시기 바란다.

 

현행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렇다면 "영도적 대통령제"의 단면은 어떤 것일까? 이것도 하나의 예를 보도록 하자.

 

제59조 ①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

"영도적 대통령"께서는 지 맘에 들지 않을 경우 국회도 해산할 수 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한다.

 

"영도적 대통령"이 영도하는 "한국적 민주주의" 상황에서 우리나라 사람들, 머리카락을 기를 수도 없었고 미니스커트를 입을 수도 없었다. 바리깡을 들고 장발단속 나온 경찰관을 피해 우리의 청춘들은 대로를 질주해야했고 그 뒤로 송창식의 "왜불러"가 나즈막히 깔렸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던 윤복희의 미니스커트에 열광했던 이 땅의 언니들은 그냥 열광할 자유만 있었을 뿐 그 옷을 입을 자유는 허락받지 못했다.

 

"한국적 민주주의"는 정권의 안녕을 위해선 언제든지 긴급조치와 계엄령이 떨어지는 것을 허락했다. 그리고 수시로 누구든지 간첩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기도 했다. 개헌에 대한 말은 금기시 되었고, "아침이슬"은 이유도 없이 금지곡이 되었으며, 신중현의 "미인"은 퇴폐라는 명목으로 금지곡이 되었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왜색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건만 청와대에 상주하시는 "영도적 대통령"께서는 이 노래가 18번이었다나?

 

난데없이 "한국적 민주주의"가 생각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잠도 오지 않고 해서 웹서핑을 하다가 지난 기사를 훑어보던 중 황우석 박사가 연구원의 난자를 사용한 것을 두고 "동서양의 문화차이" 내지는 "한국적 특수성"이 거론된 것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난처한 것은 도대체 뭐가 한국적 특수성 내지는 동서양의 문화차이라는 거냐 이말이다.

 

헬싱키선언에서 중요한 부분은 다음 두 부분이다.

 

8. 의학 연구는 전 인류에 대한 존중심을 증진시키고 인류의 건강과 권리를 보호한다는 윤리 기준에 적합해야 한다. 일부 실험군은 위험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특별한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 경제적, 의학적으로 불우한 처지에 있는 피험자가 특히 필요로 하는 것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스스로 동의서를 승인 또는 거부할 능력이 없거나 강제된 상황에서 동의했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 또는 연구를 통해 아무런 개인적 이익이 없거나 연구와 치료가 병행되는 피험자에 대해서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23. 시험 수행에 대한 동의를 얻을 때 의사는 피험자가 자기에게 어떤 기대를 거는 관계가 아닌지 또는 그 동의가 어떤 강제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에 대하여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만일 그러한 경우라면 동의는 그 연구에 참여하지 않고 피험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연구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의사가 얻도록 하여야 한다.

여기서 "특별한 주의"라는 부분이 문제다. 어떤 이는 이게 주의의무를 다 하라는 거지 돈주고 쓰지 말라거나 연구원의 난자를 쓰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느냐는 투로 항의한다. 애쓴다. 여기서 "특별한 주의"를 하라는 이야기는 국내법과 국외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그와 같은 상황을 피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그 방법 밖에 없는 경우에 그렇게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연구원의 신체를 연구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어렵게 한 것은 다름 아니라 "지위를 이용한 강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는 "특정한 대가를 전제하는 강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이 "동서양의 문화차이"에서 기인하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한국적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것도 아니라는데 있다. 이건 어느 나라든지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위험이지, 한국에서만 독특하게 존재하는 기이한 현상이 아닌 것이다.

 

한국의 대학 또는 기관의 연구원 내지는 대학원생, 거의 교수의 '시다발이'다. 황우석이 그랬던가? "우리 연구원들은 라면만 먹고도 이런 성과를 거두었어요" 욕 튀어나온다. 제자들 라면만 먹고 있을 때 황우석 뭐했나? 암튼 라면 이야긴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거의 제왕적 위치에 있는 연구책임자의 말 한마디를 거부하거나 심경을 조금만 거슬르더라도 연구에서 짤리는 것은 물론 학위논문 쓰는데도 심대한 위협이 가해질 수 있는 것이 연구원 내지 대학원생들의 현실이다. 한국만 그러랴,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일 거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한국의 경우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이건 한국적인 현상이라면 현상일 수 있다.

 

아무튼 바로 그런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 "특별한 주의"다. 따지고 보자면 외국에서보다 한국에서는 더욱 강조되어야할 부분이 바로 이 "특별한 주의"인 거다. 그런데 오히려 이 인간들이 "특별한 주의"는 하지 않고, 마치 "특별한 주의"를 하지 않는 것이 용인될 수 있는 어떤 특수성이 우리 사회에 있어왔던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 지금 제정신인가?

 

하여튼 어떤 단어 앞에 "한국적"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왠지 가슴이 떨린다. 또 뭔가 있는 것 같고 또 뭔가 속을 것 같다. 이러한 감정이 잘못된 선입견에 의한 것이라면 좋겠건만 지나고 나면 역시 속고 말았음을 안다. 뭐 이런 깓뗌스러운 일이 있나??

 

황우석이 오늘날 이렇게 주어터지는 것은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그냥 놔둔 덕분이다. 진작에 사실을 인정하고 정상적 조치를 취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잘못된 것을 자꾸 덮어놓고 감추려고 했기 때문에 일이 이렇게 틀어지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걸 또 한국적 어쩌구 하면서 본질을 희석시킬려고 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지 말자. 나중에 어떻게 뒷감당 하려고 그러나?

 

워터게이트사건은 닉슨을 정치적으로 매장시키게 된 결정적 사건이 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도청이라는 불법행위가 닉슨을 밀어낸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데 있다. 닉슨이 대통령자리를 떠나야만 했던 직접적인 이유는 도청이 아니라 바로 닉슨 행정부의 거짓말이었다.

 

'연구'보다는 '정치'를 하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르고, 이걸 덮으려고 거짓말을 하고, 잘못된 행위를 "한국적"이라는 수사로 덮으려는 짓들이 벌어지는 현실. 이게 무슨 개코메딘가?? 이러니 박정희 향수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는 것 아닌가? "한국적"의 원조는 바로 박정희 그 사람인데, 그 후예들은 사용료도 내지 않고 박정희의 특허품을 써먹고 있는가??

 

비가 부슬부슬 온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사람~~~ 환장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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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7 08:18 2005/11/2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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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짜 환장할 노릇입니다요~~

  2. 학술 연구자들이 통탄해 마지 않고, 서울대와 한양대, 그리고 의사협회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것이 정상일텐데... 엉뚱하게 당 게시판이... ㅜ.ㅜ 저는, 교수사회와 의학계가 보여주는 침묵의 카르텔이 더 문제라고 생각되요...

  3. http://www.mentalese.net/blog/index.php?pl=392

  4. 감비/ 그래서 참 답답합니다... 비도 오고 날도 추워지는데 건강챙기시면서 투쟁하시길...

    홍실이/ 교수사회와 의학계에 더해서 언론도 문제죠. 사실 언론들이 황우석을 너무 심하게 띄워줬거든요. 문제가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말 하지 않은 채 그저 세계최초, 국위선양... 이제와서 뭐라고 할려니 안 되는 거에요. 며칠 전에 엠비씨 100분 토론에 중앙일보 기자인 홍혜걸이 나왔어요. 저는 짜증나서 보다가 말았는데, 그 프로 다 본 사람의 이야기로는 홍기자가 입에 거품을 물고 "애국"하자고 하면서 황우석이 최고다라는 이야기만 줄창 하더라는군요. 이게 울나라 기자의 한계라니... 어떻게 하면 이 침묵의 카르텔을 깰 수 있을까요...

    비누/ ㅠㅠ... 그 사건 너무나 잘 압니다... 슬프죠... 아, 그리고 그 몇해 전에는 밤에 연구실 들어가려고 배수파이프 타다가 떨어져 죽은 대학원생도 있었군요... 도대체 우리 연구환경은 왜 이런 건가요... ㅠㅠ

  5. 아 그이름도 찬란한 홍혜걸. 그 이름을 보면 작년 1월의 엠바고를 깬 사건이 오버랩 되면서 그저 웃기기만 합니다-.-

    의학 공부 제대로 했다면, 황우석 연구의 문제점과 한계점을 분명히 알고 있을텐데, 능청스럽게 저러고 있으니 저걸 개그로 봐야할지 진지하게 봐야할지.. 작년에 벌어진 사건으로 인한 망가진 이미지를 만회해보려고 하는거 같은데, 거짓말과 구라로 꾸며진 쑈는 좀 그만했으면 하는 바램이-.-

  6. 8콘/ ㅋㅋㅋ 홍기자, 지은 죄가 있으니 제 발이 저려 그러는 거 왠만한 사람들 다 알죠. 하지만 뭐 지금 그게 대숩니까? "윤리가 문제냐 국익이 문제지"하는 거 보면서 기절했다니까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