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하루

쌀 비준안이 통과되었다.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했고, 그래서 더욱 더 조바심이 났던 안건이었는데, 9명 의원은 본회의장 출입마저 저지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전국의 고속도로와 철도에서는 서울로 상경하려던 농민들이 전경들에게 막히고, 점거를 하다가 연행되고 했다는 소식들이 들어온다.

 

명색이 국회의원인데, 열우당 당직자들과 경위들이 본회의장 출입을 막아섰다는 소식을 듣고 울화통이 치민다. 도대체 이것들은 민주노동당을 얼마나 X같이 보기에 이따위 짓을 하나...

 

저녁에 국회 앞에서 벌어진 집회. 어찌 보면 꼭 "죽은 자식 거시기 만지듯"이라는 속담이 생각날 정도로 뒷북이라고 느껴지는 집회. 가보니 참 암담하다. 옆에서는 비정규직 집회 준비가 한창이다. 너도 나도 절박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국회 안에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본회의장을 어떻게 진입했고, 의장석을 어떻게 점거하고 있었고, 나중에 어떻게 밀려났고... 그러나 그러한 보고가 왜 그리 식상하게 들릴까. 그냥 "못 막아서 죄송합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저 우리 잘못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용서를 구할 수는 없었을까...

 

민란 수준이다. 300만이라는 농민의 숫자가 실감이 날만큼 사실 전국적으로 농민들의 절규가 높고 싸움이 뜨겁다. 그런데도 보란듯이 열우당 의원들, 불과 11명의 이탈표(불참26명 제외)만을 남긴채 절대다수가 비준안에 찬성했다. 뭘까, 쟤네들... 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 왜 국가보안법, 사학법, 언론법 할 때는 그렇게 미적 미적 뜸을 들이고 눈치를 보고 엎어지고 자빠지고 하다가 모두 걸레를 만들었을까.

 

게다가 하필 오늘이라니... 전국이 수능에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시간에 비준안 통과라... 그래, 너희들의 잔머리를 누가 당하겠냐? 굴러먹고 굴러먹으면서 배운 거라고는 그런 잔머리밖에 없는 것을.

 

농민의 분노를 조직화하는데 실패하고, 우리의 대안을 명쾌하게 보여주지 못했던 민주노동당의 모습. 이게 지금 우리의 한계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가 정말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것 역시 우리의 한계다. 그런 한계들과, 국회 본청에서의 수모와, 농민들의 한숨과, 그런 저런 이유들이 겹쳐 하루 종일 우울하다.

 

그나저나 오늘 수능 본 모든 수험생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수능날 아침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어느 수험생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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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4 02:06 2005/11/24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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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나저나 카메라는 어떤지...
    넘 죄송시럽게도 거기 가져가니 말썽을 부렸다는..ㅡㅡ;
    정 안되면 걍..휴지통으로~

  2. 저도 많이 우울하네요ㅠㅠ... 이제 책임을 지는 방법은 모든 저항 세력들을 반자본의 전선에서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네요... 우리는 잡초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밟혀도 밟혀도 질기게 살아 남아 우리의 단결을 가로막는 담장을 무너뜨리는...

  3. 멒/ 배터리만 교환하면 쓸만할 것 같네요. 그런데 배터리 값이 어느 정돈지 몰라서리... ㅎㅎ

    이재유/ 더욱 우울한 것은 그러한 방법이 유일한 방법임을 알면서도 조직화라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거죠. 어제 몇몇 당직자들과 그 이야기를 했는데,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다가 내내 한숨만 쉬고 말았습니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좀 더 고민이 필요하겠습니다...

  4. 아니 그럼, 그 고물을 벌써 소화 했단 말예요??
    겨우 '베터리만 갈면' 쓸만 하다니...
    정말 놀라운 솜씨 입니다.
    믿기지 않는 행인의 기계 인지력(?). 와~~~~
    다행..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