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구리'치기

행인님의 [죄짓고 살지 말지어다...] 에 쬐끔이나마 관련된 글.

양아치들 은어로 연장등을 동원하여 집단으로 두드려 패는 일을 '다구리'라고 한다. "다구리 놨다"는 말은 죽도록 두드려 팼다는 의미고 "다구리 맞았다"라는 말은 죽도록 두드려 맞았다는 말이다. 연장질도 모자라 집단으로 행해지는 이 '다구리'는 불행하게도 양아치의 세계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현실에서 특히 인터넷 안에서는 수시로 벌어지는 일이다.

 

사이버세계에서 벌어지는 다구리는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다구리와는 성격이 다르다.

일단 사이버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다구리에 주로 이용되는 연장은 욕설과 딱지붙이기, 패륜적 발언 등이다. 실제로 살가죽에 야구방망이나 칼이 부딪치거나 복부를 개방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지만 정신적인 타격을 입기 쉽다.

 

다음으로 사이버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다구리는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벌이는 것이 아니다. 현실세계에서는 다분히 의리로 똘똘 뭉친 막가는 인생들이 알음알음 모여서 일을 치는 것이 다반사지만 사이버공간에서는 그게 필요 없다. 이슈 하나만 맞아 떨어지면 연령과 국경을 넘어 온갖 종류의 군상들이 한꺼번에 동참할 수 있는 거다.

 

한편 사이버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다구리는 자기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어도 충분히 벌어진다. 현실세계에서는 조금이라도 집단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야만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함께 움직이지만 사이버공간 안에서는 그런 거 필요 없다. 이해관계가 아니라 마음만 움직이면 다구리의 조건은 충족되는 거다.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는 다구리는 이게 좀 웃기는데, 상당히 윤리적이고 공익적인 측면의 것들이 주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벌어졌던 대표적 사이버공간의 다구리 현상을 보면 '개x녀 사건', '중학생 급우구타사망사건', '왕따동영상사건' 등이 있다. 물론 성적편향에 의하여 벌어지는 다구리도 있다. 과거 '월장사건'이나 '제대병가산점사건' 같은 경우에는 전국의 예비역 남성들이 후끈 달아올라 몇 개 사이트를 완전 초토화시키는 단결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장하다, 대한민국 예비역들이여, 니들 덕분에 북한 괴뢰가 못쳐들어오는 거 인정~!!

 

그런데 지난 번에도 언급한 바,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는 다구리, 이게 참 묘한 성격을 가진다. 이 다구리 현상은 자기 자신에게 현실적인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대상에 대해서는 별로 크게 문제가 되질 않는다. 적어도 자기보다 만만한 장삼이사이거나 혹은 특정한 위치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현실적인 여건 상 자신에게 해꼬지를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사이버공간 다구리현상의 특징이다.

 

황우석 문제로 인해 또다시 역사에 기록될 사이버 다구리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이번 다구리는 '애국'이라는 연장으로 상대를 두드려패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일단의 현상들을 한 번 보면 다음과 같다.

 


mbc 피디수첩 자유게시판

 


민주노동당 자유게시판

 

이걸 혹자는 '집단광기'라고 하는데, 글쎄 그런 식의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사실은 그 표현을 막 쓰고 싶은 유혹에도 사로잡힌다. 하지만 집단광기라고 하기 보다는 왠지 '사이버 다구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듯 싶기도 하다. 이건 그냥 주어 패는데 의미가 있는 것일 뿐 예를 들어 이들이 황우석교를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고 황우석을 대통령으로 추대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 뭔가 광기라고 하기에는 특별한 메리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더 묘한 것은 이 사이버 다구리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월장사건'이나 '제대병가산점사건' 같은 경우는 그 진통이 꽤나 오래 이어졌었지만 다른 경우 일어났던 사이버 다구리는 길어봐야 한 달 이상 끈 역사가 없다. 즉, 다시 말해 냄비에 물끓듯 일어났다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식어버리는 것이 사이버 다구리의 또다른 특징이라는 것이다.

 

이번 건 같은 경우에는 좀 생각이 다른다. 이런 건은 다구리를 놓는 측이나 다구리를 당하는 측이나 좀 길게 끌고 가면 어떨까 싶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윤리문제가 이렇게 크게 논의되었던 적이 언제 있었나? 지금이야 황우석 하나가 주제가 되어  있고, 황우석의 치부를 드러낸 일부 집단이 다구리를 당하는 처지에 있지만, 이러한 윤리논쟁이 발전하게 되면 혹시 아나,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어떤 반윤리적 행위를 하였을 때 제대로 된 논쟁이 일어나게 될지.

 

열심히들 도배질 하시고 열심히들 싸움질 하시고 열심히들 다구리 놓으시기 바란다. 이렇게 해야 단련도 되고 내성도 생기지 않겠는가? 뭐 별로 슬픈 일이라고 보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잠깐 들어서 주절거려 봤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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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7 19:39 2005/11/27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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