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간 정당정치를 찾습니다~~

언론보도야 언제나 그모양 그짝이다. '이미지정치'라는 말이 근래 상종가를 치면서 지면마다 한마디씩 나오는데, 그걸 비판하는 언론 역시 바로 그 이미지정치를 확산하는 공범이다. 이미지로 포장된 정치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이다. 이성을 추동시켜야 하는 정책이나 구체적 대안의 제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특정 이미지를 극대화시켜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는 인물이면 된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경선대회에서 3명의 후보가 정견발표를 하는 과정에서 장래 서울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의 기간 동안 얼마만큼의 돈을 들여 이러저러하게 바꾸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누가 당을 오래 지켰느냐? 누가 열우당 후보와 대적할만 하냐? 누가 정권탈환의 선봉장 자격이 있느냐? 이 이야기가 다였다. 도대체 서울시장 후보선출을 하는 것인지 당대표 선발전을 하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상황이었는데(이거 내내 들여다보고 있던 행인, 알맹이 하나 없는 이야기 듣는데 왜 그리 웃음이 나오는지...) 좌중에 몰려있던 선거인단은 난리가 났다. 말 한 마디 끝날 때마다 박수치고 환호하고...

 

뭐 개인적으로는 홍준표가 당선되기를 바랬다. 행인, 욕을 많이 해서 그렇지 사실 정치적으로는 홍준표 좋아한다. 얼마나 확실한가?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유감없이 보여줄 수 있는 인물로 그만한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박근혜, 정형근, 김용갑 등과 함께 한나라당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당연 홍준표가 꼽힐 것이다. 민주노동당 입장에서도 홍준표가 서울시장, 아니 대선 후보로 나와준다면야 맞붙기도 엄청 쉬울 거다. 해서 홍준표가 되기를 바랬는데...

 

정수기 앞에서 땀흘리며 요가를 선보이던 오세훈. TV 광고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몸으로 보여주면서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되었다. 이건 굉장한 사건인데, 한국에서만큼은 당비도 내지 않고 당 활동도 하지 않고 아예 당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살던 사람일지라도 TV광고에 나가 요가동작 몇 개 보여주고 물 한 컵 마시는 일만 꾸준히 해두면 수도 서울의 시장후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획기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항마로 나선 열우당의 강금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이번 지방선거에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나오지 않기를 바랬다. 까이꺼 조금만 더 버티다가 아예 대권후보로 나서보심이 어떨까 하던 사람이기도 했다. 오세훈처럼 TV 광고 몇 번 하면 대권후보 그게 뭐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닐듯도 싶다. 그런데 행인의 바램과는 무관하게 어쨌든 현재 열우당의 가장 확실한 서울시장 후보로 강금실이 뜨고 있다.

 

그런데, 이 분 역시 서울시장 후보가 될 뾰족한 자격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고, 게다가 열우당이라는 당의 후광을 업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오직 only 자신의 이미지만을 가지고 선거에 돌입했다. 보랏빛 돌풍이라고 언론이 대서특필까지 했는데, 이거야 언론이 간만에 뉴스거리 하나 만났다 싶어서 호들갑 떤 것에 불과하고 도대체 보랏빛 강금실의 이미지 뒤에 뭐가 있는지는 보이질 않는다.

 

요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시민사회 각층에서 '메니페스토 운동'이란 걸 한다. 당 정책연구원들, 이거 대응하느라고 비지땀을 흘렸다. 일본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톡톡한 효과를 발휘한 '메니페스토 운동'은 정책선거를 확산하고자 하는 이념에서 출발한다. 후보들은 자신이 당선된 이후 무엇을, 왜, 어떻게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소요되는 기간과 비용 등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서 발표한다. 유권자와 운동주체들은 각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 분석하고 각각의 공약에 대해 평가하며, 당선자가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계속해서 공약사항에 대한 보고를 받고 평가를 수행해 점수를 매긴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하여 선거시기 유권자에게 공표함으로써 유권자로 하여금 올바른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게 '메니페스토 운동'의 가장 간단한 골격이다.

 

'메니페스토 운동'의 기준에 따라 각 후보들의 현재 활동을 보면 대부분 빵점에 가깝다. 서울시장 후보경선에 나선 한나라당 3인의 정견 속에는 이 운동의 조건을 만족시킬 요건이 하나도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강금실 역시 마찬가지. 지금까지 언론에 노출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종합할 때, 전혀 이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은??

 

민주노동당이 만들어낸 260페이지 분량의 메니페스토 공약해설집은 쥐뿔이나 그런 게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역단위에서 메니페스토식 공약마련을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 정책위에 수많은 문의가 오고 있고, 선거철이라는 특별한 시기상 문제이기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책연구원들이 나름대로 최대한 열과 성의를 다해서 문의를 해소하기 위한 자료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해봐야 뭔 소용이 있냐는 자탄이 점점 흘러 나온다.

 

예비후보의 선거운동방식이 아무리 제한되어 있어도 오세훈과 강금실은 언론 기사의 한 꼭지씩을 어김없이 차지한다. 그들이 뭐 특별한 뭔가를 내놓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별 내용도 없이 그들은 언론을 탄다. 보도의 내용은 누가 누구에게 경쟁력이 있겠는가, 누가 당선되었는데 상대편에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등등 별 영양가도 없는 내용이 다다. 거기에 정책이나 비전이나 이런 거 없다. 민주노동당의 정책 같은 것은 뉴스의 가치가 없다. 정책선거를 위해 한 판 붙자고 큰 소리로 떠들어봤는데, 각 정당들은 물론이려니와 언론 역시 별무반응이다.

 

이러니 유권자들이 정책선거에 동참하고싶어도 동참할 방법이 없다. 선거공보물을 보내는 것은 제한되어 있고, 발품을 팔려고 해도 이것 저것 선거법에 다 걸리고, 오직 언론의 기사만 침흘리며 바라보아야 하는데, 이 언론이라는 것들은 경마장 생중계 하듯 누가 잘났고 누구 색깔이 뭐고 이런 것만 날리고 앉았으니...

 

정당정치가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요원한 것인가라는 회의를 깊이 품게 하는 요즘이다. 정책을 고민하고 만들어내느라 2달 사이에 얼굴에서 기름기가 다 빠져나가고 있는 동료 정책연구원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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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6 21:17 2006/04/26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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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게요. 정말 답답한 현실입니다.
    앞으로 언론에서 매니페스토니 뭐니 지*하면 그럼 서울시장 선거는 뭐냐고 따져야 합니다. 물론 따진다고 들어줄 넘들도 아니지만...
    이 글 제 네이버 블로그로 담아갑니다.

  2. 민주노동당의 정책선거는 항상 그랬수. 너무 실망치 마쇼. 그리고, 굵직한 선거 때마다 수백 페이지씩 정리해 두변 나중에 좋지. 지난 대선, 총선에서는 몇 명이서 하던 거 30명이 함께 하니 좀 편하다는 것으로 위로를 받으슈. ㅎㅎㅎ.

  3. 국회의원 백명쯤 가지고, 여론조사 30%쯤 나오면 그때 정책고민할 필요 없이 티비광고에 나오든, 노란색 점퍼내걸고 나오든 어찌해도 언론들일 지랄 많이 떨어주겠죠... 그때까지 우리는 헛지랄들 많이 할수 밖에 없는 거 같네요..ㅎㅎ

  4. 새벽길/ 힘내시구요. 새벽길님같은 분들이 힘써 바꾸어놓은 세상이고 또 바꾸어가시는 세상입니다. 행인은 거기 대충 묻어서 가겠습니다. ^^;;; 아니,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ㅎㅎ

    말걸기/ 지난 대선 총선에서 몇 명이 하던 거하고 지금 30명이 하는 거하고는 성격이 다르지. 폭과 깊이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위로는 안 됨. 하지만, 그 때보다는 덜 외롭다고 하면 그건 인정 ㅋㅋ

    산오리/ 오세훈은 녹색, 강금실은 보라색, 또 누군가 어디서 튀어나온 인간이 지는 빨간색이라고 하더만요. 김종철이 노란색 입고 튀어나오면 서울시장 선거는 텔레토비 녹화방송 될 거 같다는 어떤 분의 말에 동의하는 요즘입니다. ㅋㅋ 어쨌든 '헛지랄' 열심히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일이라고 받아들여야겠습니다. ^^;;;

  5. 헐... 바르샤가 챔스 결승 진출했다는 소식에 기뻐했는데 이런 >_<; 뭐 이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닌 듯 싶지만요. 답답한 부분을 그대로 이야기 해주시는 듯... 문제는 이게 답답한체로 끝날 거 같아서 아쉽... 에휴.. 언론 뭐하니 ㅠ.ㅠ

  6. 에밀리오/ 이번 챔스 결승전에 행인이 좋아하는 팀이 모두 올라갔더군요. 세브첸코와 카카를 결승에서 볼 수 없게 된 것이나 노란잠수함이 침몰한 것은 정말 아깝긴 하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