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9와 3:3

상갓집에서 고스톱 칠 때와 축구경기를 볼 때는 잠이 오질 않는 독특한 체질을 가진 행인이다. 고스톱은 예전에 손 뗀 관계로 요즘은 고스톱 치면서 날 샐 일이 없지만, 축구만은 그렇질 않다. 날 새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기의 경우 재방송을 보면서 복기를 하기도 한다.

 

전 지구의 축구팬들을 후끈 닳아오르게 만들었던 유로 2004를 보면서 행인의 생체시계는 포르투갈 현지 시각에 맞추어져 있었고, 유로 2004가 끝난 한 달 후까지 포르투갈 현지시각에 맞추어져 있넌 생체시계를 서울의 그것으로 맞추기 위한 시차적응에 상당한 고생을 해야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요즘 그리스 현지시각에 생체시계가 맞추어지고 있다. 어떤 가수가 그랬다던가? "그리스는 왜 축구를 새벽에 한데요??" 음... 깨는 소리였다...

 

암튼 그렇게 오늘도 날밤을 샜다. 한국과 말리의 예선리그 마지막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넘의 올림픽 축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한국경기만을 생중계해줄 뿐이지 다른 나라의 경기를 생중계해주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팀의 전력분석이나 선수들의 특징, 그리고 이를 종합한 다음 경기의 예상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유로나 코파아메리카, 월드컵 등에 비해 재미가 많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게 축구경기를 볼 준비를 하며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다가 예상치도 못했던 여자 핸드볼 경기를 보게 되었다. 상대는 우승후보이자 지난 양차의 올림픽에서 한국 낭자군의 발목을 잡았던 덴마크...



한국과 덴마크의 여자 핸드볼은 그야말로 피튀기는 한 판 승부였다. 쫓고 쫓기고, 뒤집어졌다가 엎어졌다가 그야말로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계속 되었다. 관중석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덴마크 응원단의 열화와 같은 응원의 소리에도 주눅들지 않고 멋지게 싸우고 있는 한국선수들이 대단하고, 한편 안타깝기도 했다.

 

한국 선수들 중 3명인가가 소속팀이 없는 상황에서 훈련을 하고 대표팀에 합류했다고 한다. 현재 한국의 여자 핸드볼은 거의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고 그나마 있던 실업팀마저 거의 다 해체되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먹고살 방법조차 묘연한 현실을 딛고, 그리스 한 복판에서 싸우고 있던 한국선수들.

 

반면에 덴마크는 축구 다음으로 인기있는 종목이 핸드볼이고, 특히 여자 핸드볼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각별하단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응원단이 괜히 온 것이 아니었던 거다. 특히 관중석에 덴마크의 왕자까지도 와 있었다고 하니 그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간다.

 

이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 핸드볼 여자 대표들은 29:29로 덴마크와 무승부를 이루었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한국 축구를 보기 위해 핸드볼 경기를 끝까지 다 못보게 되었다. 그리고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들여다보던 축구는 졸전 끝에 3:3으로 말리와 비겼다. 3:3의 스코어를 만들어놓고 난 후 남은 20여분간을 서로 공만 돌리다가 경기를 끝냈다. 이게 스포츠정신인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국가대항전이 이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자칫 엉뚱한 쇼비니즘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또한 사실일 그렇고. 하지만 국가고 뭐고 이런 것을 떠나 경기를 진행한 두 대표팀을 놓고 볼 때 과연 박수를 받을 사람들이 누구인가는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아무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고 여기에 더해 냉대까지 받으면서도 묵묵히 자신이 좋아 계속해서 운동을 하고 있는 핸드볼 선수들, 반면에 온 국민의 관심을 받으면서 그 어느 종목보다도 많은 지원을 받고 있는 축구선수들. 한편은 경제적 사정이 열악하지만 그것을 감수하면서도 열심히 뛰고, 다른 한편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환경을 제공받으면서 하나의 직업으로 공을 찬다.

 

물론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8강 진입을 이루어낸 한국 축구팀도 칭찬받을만 하다. 그러나 그 칭찬보다도 더 큰 박수를 여자 핸드볼 팀에게 보내주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두 경기의 결과는 모두 무승부였다. 그러나 새벽까지 가슴졸이며 승부를 바라보던 행인에게 진짜 감동을 남겨준 것은 온갖 홀대에도 굴하지 않고 몸을 던져 투혼을 불사르던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흘러내리는 땀방울이었다.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 선수들,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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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8 11:57 2004/08/1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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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갈채를 보내주어야 겠습니다. 여자핸드볼 선수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