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스크린쿼터, 래쳇시스템

당에서 법제담당을 하고 있다보니 개인적으로 한미 FTA를 결사반대한 이유는 또 있다. 일단 이 협정이 체결되고 나면 그 담부턴 전부 법률검토와 국내적용에 관한 제도정비의 문제가 남는다. 하는 일이 일이다보니 이거 할려면 아마도 마빡에 털이 하얗게 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제발 덕분에 한미 FTA 체결되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알량한 소원조차 로또 대박터트리기랑 비슷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도다... 정안수라도 떠놓고 빌 걸 그랬나.

 

암튼 이거 하고 나니 생소한 법률개념 내지 한국에서는 그동안 존재하지 않던 법률용어들이 마구마구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다. 투자자 국가제소권은 이젠 거의 다 알려진 것이지만 그 시스템에 대해선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이것도 모자라 간접수용, 역진방지제도, 법정피해보상제도, 일방적구제제도 같은 눈 튀어나올만한 제도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앉았다. 이거 그동안 공부한 거 다 잊고 미국법을 새로 공부해야할 판다다. 그레이트 아메리카 반자이~~!! 쉣...

 

이 가운데 역진금지제도, 소위 "래쳇 시스템"이란 거 이거 아주 흥미진진한 제도다. 앞서도 다른 포스팅에서 잠깐 언급했었더랬는데, 이 제도 들어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이러다가 미래학자가 되던 미래소설가가 되던 할 판이다. 장하다, 행인.

 

행인, 첨에 구로공단 어느 공장에 들어간지 이틀이나 지났는가 그럴 때, 작업반장이 "야, 가서 노기스 좀 가져와라"라고 작업지시를 내리는 것이 아닌가? '노기스'라니... 노기스, 노기스, 노기스, 노기스, 노기스... 도대체 그거이가 뭐인가??? 알 도리가 없어 뺑뺑 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버니어 캘리퍼스"라는 치공구를 가르키는 말이었다. 이 썅, 공식 명칭이 있는데 왜 노기스여, 노기스가... 이러고 있는데, 작업반장 하시는 말씀, "야 이 ㅆ ㅂ ㅅ 야, 공고 나온 쉑히가 노기스도 몰라?" 이러면서 그 빌어먹을 넘의 노기스로 정수리를 강타하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뚜껑에 빵구나서 고추장 질질 흘린 사건이 있었다.

 

공사 현장에서 쓰이는 용어 중 상당수가 외래어(특히 일본어)고 당구장 용어가 역시 그러한 환경에서, 이 공구 이름 하나 잘 못 사용하면 아주 떡이 되는 수가 있다. 그러다가 인천 어느 공장에서 일을 할 땐데, 이번엔 같이 일하는 성님이 "가서 따르래기 좀 가져와라"라고 한다. 이건 또 뭣이냐... 해서 또 부리나케 찾고 쥐랄을 떨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라쳇 렌치"를 가르키는 말이었다. 표준어에 가까운 용어를 사용하는 일부 현장 작업자께서는 이걸 '라체트'라고도 발음한다. 이 공구의 생김은 이렇다.

 

그림에 보면 본체에 낑궈져 있는 조 작은 원형(안쪽에 주름진)의 도구가 스패너처럼 나사를 물게 되고, 손잡이를 돌리면 렌치처럼 나사를 조이거나 풀 수 있는 거다. 옆구리에 달린 작은 버튼의 위치에 따라 라쳇의 해드가 돌아가는 방향을 한쪽으로 조정할 수 있다. 오른쪽으로 돌리면 오른쪽으로 계속 해드가 돌아가고 왼쪽으로 돌리면 왼쪽으로 계속 해드가 돌아가는 거다. 그래서 이름이 라쳇(Ratchet)이다. 한쪽으로만 돈다고...

 

공장마다 다른데, 행인 다니던 공장에서는 이걸 "따르래기"라고 했고, 다른 공장에선 이걸 "깔깔이"라고도 하는데 라쳇을 돌릴 때마다 "따르륵 따르륵"하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그런 애칭이 붙었나 보다.

암튼 이 공구의 이름을 거진 15년이 지나 법률용어로 다시 듣게 되다니, 이런 반가울 데가 없... 반갑긴 개코나, 이런 악연이 있나. 라쳇이라고는 따르래기밖에 몰랐던 행인이 한미 FTA 덕분에 이 단어가 법률용어로도 쓰이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이걸 또 연구해야하는 상황에 처하니 꿈만 같고나, 쉬파... 발음은 또 '래쳇'이라길래 그게 다른 건줄 알았더니 가방끈 짧은 넘은 라쳇이라고 하고 가방끈 긴 넘은 래쳇이라고 하는 건가? 썅...

 

암튼 이 공구의 특성과 똑같이 이 '래쳇 시스템'이라는 제도 역시 한 쪽으로만 줄기차게 굴러가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협정 당시에 존재하거나 합의했던 개방의 정도를 낮추는 어떠한 제도의 도입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게 어떤 효과가 있는지 함 보도록 하자꾸나.

 

한국영화를 사랑하시는 많은 영화팬 여러분, 한미 FTA 선결 조건 중 스크린 쿼터 폐지가 들어있다는 소식에 분노하신 분도 있을 것이고, 평소 '슈뤠기' 같은 일부 "귀족" 연예인들의 꼴같잖은 모습 땜시 스크린쿼터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신 분도 있을 거다. 뭐 어찌되었던 이 양쪽 모두 한국영화를 사랑하시는 분들임이 분명하다. 근데, 이 시국에 잠깐 말씀드리면 한국영화 사랑하시는 그 애정의 100만분의 1만 발휘하시여 프랑스영화, 독일영화, 중동영화, 남미영화, 각종 다큐멘터리, 특히 에니메이션 이딴 것들도 사랑해주십사 부탁한다. 어쨌든...

 

그런데 한미 FTA 협정이 본 궤도에 올라가 난리 부르스를 추기도 전에 이 스크린쿼터 기간이 절반으로 뚝 잘려버렸다. 원래 한국영화는 140일 의무상영기간이 정해져 있었는데, 지난 2006년 10월에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의무상영일수가 연간 상영일수의 5분의 1로 줄었다. 1년 내내 영화관을 개방하더라도 73일에 불과한 일수다.

 

헐리웃 블록버스타들이 대거 몰려들고, 자본을 동원해 시장을 장악해버리면 사실 한국영화 갈 곳이 없어진다. 겨우 연간 73일 한국영화를 걸 수 있는데,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이빠이 돌리도록 공격적 마켓팅을 하고 있는 현재 영화시장의 판도를 보면 이 기간 동안 돈 좀 있는 제작사 또는 배급사를 낀 영화는 몰라도 중소영세업자들이 만든 영화는 스크린 확보하기가 로또맞는 거 만큼이나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다양한 영화에 대한 욕구는 완전 개무시 되고, 영화 애호가들은 자본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시장장악력이 있는 영화만 보게 되는 비운의 세월을 맞이해야 한다. 가상소설인 것 같지만 NAFTA 이후 쑥대밭이 되어버린 멕시코를 보면 이게 남의 일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을 거다.

 

그리하여 다양한 영화를 보고자 하는 영화애호가들의 욕구와는 달리 헐리웃에서 만든 영화들이 대거 스크린에 걸리게 됨에 따라 대량안습의 경험을 하게 되는 한국의 영화팬들이 "헐리웃 영화가 이젠 징글징글하다"면서 시청앞에 촛불들고 다 튀어나가고 유명짜한 영화배우와 영화감독들이 청와대 잔디밭에 드러누워 "배째주삼~"하고 드러누워 있게 되면 스크린 쿼터를 조정할 수 있느냐? 개뿔은 무슨...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대오각성, 아 이러다간 한국 영화 다 망하고 아사한 김태희를 보게 될지 모르겠다는 위기의식으로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다시 늘리고자 한 자리에 모였다고 하자. 이들이 마빡을 맞대고 며칠 더 늘릴까 박터지게 궁리해서 법안을 떡 만들어 상정을 하면? 뭐 그럴리도 없지만 그렇게 해봐야 죽은 자식 메추리알 만지기가 된다.

 

한미 FTA 협정의 결과 발동한 "래쳇 시스템"으로 인해 이런 짓거리 할 수도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 쿼터를 강화하는 법안을 만드는 순간 이건 여지없이 한미 FTA 협정을 위반하게 되는 거다. 눈까뤼가 씨뻘개지도록 한국넘들이 뭐 잘못한 거 없나 째려보고 있던 엉클 톰의 독수리 눈깔이 이걸 그냥 놓칠리가 없다. 바로 제소들어간다. 그 책임 한국 정부가 다 져야하고. 따라서 절대 한국영화의무상영일수를 단 하루도 늘릴 수 없게 되는 거다.

 

영화 뿐만이 아니다. 투자자의 자본유동성을 제한하는 제도나 투기활동에 장애가 되는 제도를 도입하는 거 이거 미국분들께서 가만 두고 보지 않는다. 한국 국회의원들 그 때가서 어잌후 큰일 났구나 함서러 새로 제도 만들어보겠다고 빽빽거려봐야 세기를 관통하는 닭짓이 될 뿐이다. 더 개방하고 더 자유롭게 만들 수는 있어도 개방정도를 낮추거나 규제가 될 수 있는 제도는 일체 만들 수 없게 된다. 물론 집시법은 강화해도 한미 FTA 협정에 걸리지 않는다. 이런 븅딱덜이 있나...

 

떠들썩하게 장안에 소문이 났던 "300"이라는 영화가 있다. 랍스타 같은 갑빠를 불끈거리며 자유 기타 뭐 이런 거 지키겠다고 슈퍼맨 망또 뒤집어 쓰고 알몸에 빤스만 걸친 채 100만대군 앞에 나간 스파르타의 정예 용사들. 그 앞에 나타난 "월드 어브 워크래프트"의 호드 연합군들. 오크족에 언데드에 트롤에 죄다 모여 있는 호드종족이 "호드의 영광을 위하여" 외치며 달려들 때 갑빠 빵빵한 랍스터 옾하들이 이 괴물같은 것들을 짚단베듯 넘긴다. Wow, 와우~~~! 근데 이 영화 재밌더나???

 

돈은 쌔려 퍼 부었지만 재미라곤 쥐뿔도 없고, 그저 흰둥이들은 장땡이고 중동 피래미들은 호드족으로 그려놓은 이따구 영화만 사시장철 줄줄이 영화관에 올라간 다음에, 아... 한국영화가 그립다, 어쩌구 해봐야 말짱 도루묵이다. 저 재미대가리 없는 영화를 그것도 쌩돈 이빠이 쳐들여 봐야한다면 기냥 영화 안 보고 살란다. 지들 권리도 제대로 못지킨 한국영화 관계자들하고 같이 손가락 빨면서 고스톱이나 치고 있을란다. 뭐 영화 안 본다고 죽기야 하겠냐? 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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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6 16:40 2007/04/0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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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ㅠ_ㅜ 아흙

  2. NeoPool/ ㅠㅠ

  3. 깔깔이;;; 며칠 전 무대 쌓다가 그거 썼는데... 그게 래챗이었단 말이지요? ㅠ_ㅠ 에이씨.. 진짜로 한미 FTA 협정 체결되면 몰라요.. 저도 무장봉기 일으키렵니다 흑 ㅠ_ㅠ (응?!)

  4. 잘 읽다가 WOW에서 두드러기 일으킨; 역시 맥락없는 시아.

  5. 행인님, 급질인데요. 여권발급할 때 여전히 호주를 써야하는데 그건 새법 통과될때까진 어쩔 수 없는 건가요?!

  6. 에밀리오/ 무장봉기???? ㅎㅎ 그러지 마시고 FTA라는 시스템부터 연구해보자구요. 이걸 왜 반대해야하는지, 반대만 해야하는지, 써먹을 수는 있는 건지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거든요. 이걸 정립하지 않으면 앞으로 남은 무수한 FTA들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지죠. 한미 FTA야 반미운동의 일환으로 생각한 사람들이 달라붙는 바람에 여기까지 온건데, 그게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샤♡/ WOW는 재밌는 게임이져. ㅋ

    글구 여권발급과정에서 기재해야하는 사항 중에 호주란이 있는데, 원래 이게 올해 12월 31일까지 이 양식이 사용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내년부터는 바뀌어야 하는데, 국회가 새로운 신분등록법제정을 하지 않고 있어서 어찌 될지 갑갑하네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