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정신

5월 20일을 '세계인의 날'로 지정한단다. 더불어 그 주간은 '세계인 주간'이 된단다. 지난 4월 국회에서 통과된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에 근거한 일이다.

 

18일 있었던 세계인의 날 제정기념 행사장에서 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국민과 외국인이 한 가족으로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자는 것"이 그 취지라고 밝혔다. 외국인을 포용하는 열린 사회를 만들 거란다.

 

순혈주의에 기반한 민족주의가 점점 기승을 부려가는 반동적 사회분위기 속에서 다원주의 문화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포부는 가상하다. 법무부 장관의 축사 역시 그러한 의지의 반영이라고 보고 싶다.

 

그런데, 김성호 법무부 장관의 이 가상한 포용정신이 때론 엉뚱한 곳에서도 발현한다. 예컨대 술집에서 두들겨 맞은 차남의 찢기고 멍든 눈탱이를 보고 수십명의 조폭들을 동원하여 즉각적인 보복폭행을 자행한 한화 김승연 회장의 행위를 "기특한 행위"로 보고, 이를 감싸안고자 하는 그런 정신.

 

검찰 조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검찰조직의 통할하는 위치에 있는 법무부 장관의 이러한 발언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검찰이 독립적인 수사를 전개할 책임이 있고, 따라서 현직 법무부장관이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한다고 하여 검찰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는 없는 것이 현재의 구조라고 할지라도 그걸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일반의 상식에 따를 때 "기특한 부정(父情)"이란 것은 아들이 두드려 맞았다고 해서 조폭을 동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쉽게 가정해 보자. 이제 20대 초반에 지가 돈 버는 것도 아닌 어린 아들이 아버지가 대주는 돈을 믿고 고가의 유흥주점에서 술처먹고 난장질 치다가 두드려 맞고 들어왔다. 이 때, 일반적으로 "기특한 부정"을 가진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따끔한 꾸지람을 주는 걸까, 아니면 조폭 대동하고 가서 보복폭행 하는 걸까? 요즘이야 그런 일이 많이 없어졌다고 하나, 예전 성질 급한 부친 둔 자식같으면 다리몽댕이 하나 부러지는 일을 감수해야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싶으면 그 때 가서 신고를 하거나 고소를 하거나 하면 된다. 물론 신고나 고소를 하더라도 한화 회장 정도 되는 분의 자제를 건드린 사건이라면, 가난한 사람들의 사건에 대해서는 엉덩이에 오공본드를 붙이고 앉아 뭉기적신공을 발휘하는 경찰이나 검찰이 부리나케 달려들어 해결해줄 수도 있었다.

 

뭐 여기까지 해줘야 "기특한 부정"이라고 감싸안을 수는 있겠지만, 현행법을 죄다 어기고 불법 체포, 감금, 폭행, 상해, 협박, 거기다가 조폭동원하여 오밤중에 일을 쳤으니 가중처벌 사유까지 포함된 범법행위를 한 자에 대해 "기특한 부정" 운운하는 것은 법무부 장관으로서 가져야할 개념을 버리고 다니는 처사다.

 

이렇게 개념 외출 시켜놓고 다니는 법무부 장관이지만,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한미 FTA 반대투쟁 참가자들에 대한 포용정신은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결과적으로 한 국가의 법무부 장관씩이나 하는 사람의 이번 언동은 국민들에게 "무전 유죄, 무전 유죄" 경구가 불변의 진리임을 각인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세계인의 날'로 지정된 5월 20일에, 공교롭게도 한미 FTA 협정문 전문이 공개될 예정이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그 의미가 심중하다. 법무부 장관은 혹시 이러한 우연의 일치를 고려하고 그런 말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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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9 23:05 2007/05/1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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