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기자정신과 공무원정신
행인님의 [기자정신과 공무원정신] 에 관련된 글.
이 문제 터졌을 때, 솔직히 이게 뭔 큰 일인가라고 생각했었다. 다만, 공무원과의 대면접촉을 억제하겠다는 발상을 보면서 또 오바질 한다는 생각은 했더랬다. 그런데 왠걸, 언론은 언론대로 난리 부르스를 추고 그 반대편에서 블로거들은 일정정도 기자실 폐쇄(또는 통폐합)에 대해 찬성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의아한 것은 왜 이게 이토록 큰 이슈가 되었을까였는데, 시간이 흐를 수록 이게 큰 이슈가 됨으로써 과연 누가 이익을 보는가로 관심이 이동했다. 그 경로를 조금 훑어보면 이렇다.
일단 언론사들의 기자실 폐쇄 반대 목소리. marishin님의 포스트에도 나타나 있듯이 기자실 폐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기자실은 "양날의 칼"이다. 그런데 양날의 칼은 어디에나 있다. 기자실 밖도 예외는 아니다. 공공기관의 내부 어느 구석, 어떤 공무원의 업무처에서도 양날의 칼은 존재한다.
기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크게 두 측면으로 나뉜다. 하나는 기존의 관행에 익숙해져 말 그대로 주는 대로 받아 먹는 즐거움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 혹은 출입처기자로서 누리던 '기득권'을 박탈당한다는 상실감. 다른 하나는 취재원에게 "빨대" 꼽을 능력이 되는 메이져 언론사에 비해 고급정보에 접근할 기회가 현저하게 약화된다는 중소 언론사의 위기의식.
그리하여 관점은 다르지만 목소리는 같이 나오는 어정쩡한 오월동주가 계속된다. 물론, 신실한 기자들은 이런 이분법과는 달리 본질적인 측면에서 왜 하필 이 시기에 청와대가 이런 강공을 펼치는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를 파헤친다. 그러나, 이런 기자들의 목소리는 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서나 가끔 보일 뿐 언론사 지면에는 할당되지 않는다.
대신 언론사의 지면은 이런 글로 장식된다.
이 글을 쓴 헌법학자와 행인과는 학문적 족보로 따질 때 조손관계에 있다. 인연의 끈이야 그렇게 맺어진다고 해도 비판을 중단할 수는 없는 일. 이런 칼럼이 실리는 배경에는 역시 이 앞 포스트에서 지적했던 언론사 데스크의 이빨이 존재한다. 공무원과의 대면접촉 자체를 제한하겠다는 발상에 위헌적 요소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자실 통폐합을 위헌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알 권리"는 기자실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의 오바질은 그렇고, 블로거들은 또 어떤가? 블로거들의 대부분은 기자실 폐쇄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삿대질을 하는 언론사에 대해 냉소를 보내고 있다. 블로거들이 노빠라서? 천만의 말씀이다. 언론사의 기사만큼이나 다양하고 충실한 분석들을 내보내는 블로거들 사이에 기자들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주요하게 바라보고 지적되어야할 것은 바로 그놈의 기자실에서 나온 소스라는 것이 천편일률적으로 이 신문이고 저 신문이고, 이 방송이고 저 방송이고 똑같이 소개된다는 것이다. 또는 아침 저녁으로 지하철에 수북히 쌓이는 무가지들의 기사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어느 언론사의 기사를 '은, 는, 이, 가'만 바꿔 내보내고 있다는 거다. 유가지는 뭐 다른가?
그렇다면 이번 사태가 이렇게 경천동지할만한 사태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 진원지인 청와대를 슬쩍 들여다 봤다. 당연히 청와대 브리핑이 그 대상. 그런데, 청와대 브리핑의 논리대로라면 언론사의 이 호들갑은 말 그대로 웃기는 짓이다. 왜냐하면 이미 기자실 통폐합은 예정되어 있던 수순일 뿐만 아니라 기자들조차도 일이 이렇게 진행되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이것만 가지고는 좀 그렇다. 그래서 이번엔 국정홍보처를 가봤다. 난리가 아니다. 역시 국정홍보처, 죽을둥 살둥 하면서 언론과 일대 격전을 벌이고 있다.
기자실 특혜가 국민 알 권리인가 - 언론의 곡해에 대한 5가지 반문
청와대브리핑이나 국정홍보처의 논리는 상당히 세련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눈에 띄는 것은 세련된 논리보다는 이게 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에 있다. 예컨대 이미 정부는 2003년 6월부터 개방형 브리핑제도를 도입하면서 '기자실'을 브리핑룸과 송고실로 개편하는 등의 조치를 한 바 있으며, 과천종합청사에서는 몇 개 부처들의 기자실을 이미 통폐합해서 운영해오고 있었다는 식의 논리다.
그래도 조금 궁금한 것이 있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결국 써프라이즈에서 찾아낸 글이 이 글이다.
'전직 기자'라는 필자는 "과천 청사에서는 재경부, 산자부, 농림부, 공정위 등이 이미 통합 브리핑 룸과 기사 송고실을 쓰고 있답니다. 이걸 현재 독립적인 기자실을 가진 복지, 노동, 과기, 건교부까지 확대하는 것이 이번 방안의 주요 내용이라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뭔가? 기왕에 추진되던 일들이라는 거 아닌가?
결국 청와대 브리핑의 논리나 국정홍보처의 논리, 또는 저간의 사정에 대해 뭔가 아는 듯이 보이는 '전직기자' 등의 이야기를 보면 이번 일이 그렇게 난타전으로 치고 받을 일이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왜 예상과는 달리 이 난리가 나는 걸까?
이 블로그 개장한 이래 아마도 행인의 포스팅에 가장 잦은 빈도로 이름을 올렸던 이는 노무현일 것이다. 노무현은 그다지 큰 일이 아닌데 마치 엄청나게 큰 일인 것처럼 사건을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건 노무현 개인의 능력치가 높아서라기 보다는 노무현이라는 이름만 나오면 자다가도 경기를 일으키는 일부 찌라시들의 씨잘데기 없는 곤조때문이긴 하다.
어쨌든 이번 경우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일정한 파급효과를 통해 뉴스메이커로서의 지위를 확고부동하게 보장받고 싶다는 의욕이 전혀 없지는 않았겠으나 노무현이 추진한 이번 사건은 실제적인 효과는 크게 없으면서도 확실히 빅뉴스가 되었다. 정부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보아도 기왕 하던 거 기냥 추진하는 건데 더 큰 무슨 효과가 나타날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사건 하나로 노무현은 또다시 언론지상에서 다른 거대한 사태들을 한 큐에 밀어내 버렸다. 한미 FTA 협상문이 공개되었는데, 이에 대한 언론사의 보도보다는 며칠 전에 발생한 기자실 통폐합이 더 많은 분량으로 지면을 장식한다. 뭐 내일부터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만서도...
이번 조치가 청와대나 국정홍보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측면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공무원의 근무환경 운운하면서 접근성을 현저히 떨어트리는 조치에 대해선 그대로 용인하기 어렵다. "누구나 접근하기 쉬워야 하는데 왜 기자들만 특혜를 받으려 하느냐?"는 정부측 항변은 그래서 더욱 밉쌀맞아 보인다. 그럼 앞으로 내가 가면 기자들과 똑같이 정보제공 해줄 거냐?
근본적으로 좀 더 프로다운 '기자정신', 좀 더 프로다운 '공무원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 오늘날 이 얼토당토 않은 희한한 사태를 마무리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예컨대, 한미 FTA에 대해서 기자들은 더 깊숙히 그 문제를 파고 들어가고, 공무원들은 소신을 가지고 문제에 대한 과감한 지적과 공개를 하는 거다. 그렇다면 혹시 아나? 차라리 이럴 바엔 기자실 운영해서 정형화된 브리핑으로 때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생각한 청와대가 다시 기자실 확대운영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