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OTL

"단지 '정치인 노무현'의 꿈이 표류하고 있는데 불과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역사의 대의가 표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와대 브리핑에 노무현이 직접 올린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 - 최근 정치상황에 대한 심경을 밝힙니다"라는 글을 죽 읽다가 바로 이 대목에서 폭소를 터뜨렸다는 거 아닌가. 노무현, 과대망상도 이정도면 빨리 정신과 전문의의 조언을 들어야 한다. 남이 하면 삽질이고 지가 하면 "역사의 대의"고... 정동영과 김근태가 열우당 깨는 건 양아치 짓이고, 지가 민주당 깨고 나온 건 "역사의 대의"고...

 

청와대 브리핑에 올라온 이 글이 복사되어 서프라이즈 대문으로 올라가자 자칭 '서프앙'이라는 무현교 신자들, 반나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300개의 리플을 달며 눈물로 환호한다. 물론 이 글에 대해 비아냥 거린 글들은 삭제를 당했다. 반면 장문의 비판글 하나에 대해선 '서프앙'들의 비아냥이 줄을 이었다. 교주나 신도나 하는 짓이 똑같다. 맘에 안 들면 잘라내고, 지들 욕하면 양아치 짓이고, 지들이 욕하는 건 "역사의 대의"고...

 

가끔 가다가 노무현의 말이나 글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는데, 성질머리 급한 노무현, 스스로 자기 욕을 한다. 물론 잘했다고 하는 소린데,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이번 글에서도 요런 구절을 쓰고 있다. "가치와 노선에 따라 당을 같이 하는 것이고, 각 당은 그 가치와 노선에 맞는 후보를 내는 것입니다. 특히 대선에서는 당과 후보의 가치와 노선이 분명해야 합니다"

 

노무현이 고통스러워할지도 모를 이 정신분열적 현상을 보면서, 매우 안타까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으나 행인, 아차 하는 순간에 이미 폭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이처럼 처절하게 욕설을 하는 경우, 대게는 안쓰러워 해야하는 법이다. 반대로 자신의 치부조차 자랑거리로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 비웃게 되는 것 역시 그닥 자연스럽지 못한 일은 아닐 터이다.

 

노무현이 이렇게 비장하게 '가치와 노선'을 언급하는 것은 정동영과 김근태가 당을 깬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급해진 노무현, 왜 열우당을 만들었는지 그 창당정신으로 돌아가 양아치같은 정치놀음을 중단하라고 촉구한다. 그 촉구를 위해 동원된 논리가 바로 정당의 '가치와 노선'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열우당이 정당이 갖추어야할 최소한의 '가치와 노선'도 없이 급조된 것이었음을 잊고 있다.

 

열우당, 애초부터 '노무현'이라는 상품가치 하나때문에 정계의 이합집산과정에서 온갖 잡동사니들이 한 우물에 모인 정당이었다. 노무현이 그토록 애달프게 주장하는 정당의 '가치와 노선'이라는 거 자체가 없었던 조직이었던 거다. '상품' 노무현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니 열우당의 조직원들이야 당연히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보러 떠나는 거다. 한미 FTA를 밀어부치면서 시장자유주의에 대한 철저한 신뢰를 보였던 노무현이 이걸 모른다면 말이 안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무현이 이야기하는 '통합'이라는 거 자체가 허황된 소리다. 뭐가 통합인가? 어중이 떠중이 모아놓으면 통합인가? 영남과 호남 출신의 의원들만 모아 놓으면 통합이냐? "국민통합"이라는 말이 가지는 위험성은 여기 있다. 통합될 수 없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이 통합이라면 그건 이미 타오르고 있는 폭탄의 뇌관을 입으로 불어서 끄려 하는 짓에 불과하다.

 

게다가 상품가치 떨어져서 떠나는 투자자들에게 효용가치 떨어지고 부가가치 창출의 가능성이 전무한 상품을 붙잡고 있는 것이 통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시장자유주의자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 웃겨도 상당히 웃긴다. 장문의 글을 올렸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식이다.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정치인 노무현'으로서 쓴 글이라는 이 글 말미에 노무현은 열린 우리당 창당 선언문을 붙여 놓았다. 창당선언문을 보면서 "구-웅민 토-옹합"을 외치고 박수를 치던 지지자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는 취지였겠으나 솔직히 가소롭다.

 

노무현의 글은 노무현의 좌절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 좌절은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이 아니다. '상품' 노무현의 좌절일 뿐이다. 문제는 노무현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계속 코미디를 하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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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8 08:34 2007/05/0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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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무현이 퇴임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저 '코미디'를 계속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던데, 에프티에이 이후에, 그리고 노무현의 노선 때문에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에서 보호나 우대를 해 주지 않을까요? 그럼 성공하는 노무현이 되겠죠..ㅎㅎ

  2. 이른바 '정치인'들이 정치에 관해서 언급하는 것을 보고 듣노라면, 정말이지 정치라는 개념이 행정으로서의 정치만이 아니라, 다른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으로서의 정치라는 개념으로도 사용이 될 수 있을지 자꾸만 의심을 하게 되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에서 사용되는 개념이라면 좀 소중하게 여길 줄도 알아야 하는데, 어떻게 저것들은 하나같이 모두, 조낸(^.^;)......

  3. 훔.. 역시 어려운..ㅠ_ㅠ 정치따위 ㅠㅠㅋㅋ

  4. 산오리/ ㅎㅎ 그렇게 될 수도 있겠죠. 아마 조중동에 칼럼 쓰면서 용돈벌이나 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무한한 연습/ 정치인들 덕분에 유권자들은 매일 다른 삶을 살게 되죠. ㅎㅎ 문제는 이 돌아이들이 만들어 놓는 다른 삶이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인지 유해한 것인지를 이넘들은 잘 모른다는 거에요. ^^

    chesterya/ 정치가 어려우면 노무현같은 개코미디를 하지는 않습니다. 너무 간단하다보니 너무 가볍게 여겨서 그렇게 되는 거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