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문제는 돈인가?

행인에게 있어서 민주노동당은 딱 "바람막이" 정도의 의미다. 처음 중앙당으로 가면서 주변사람들이 "왜 하필 민주노동당인가?"라고 질문했을 때 행인이 답했던 것은 이거다.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이 50명쯤 있으면, 그 때 한국사회에서 더 왼쪽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놓고 활동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는 것.

 

정치적 포지션으로 보자면 정 중앙에서 딱 1cm만큼 왼쪽에 있는 민주노동당이지만, 적어도 이 당이 어지간한 실력을 가지게 된다면 공산당이 되었든 사회당이 되었든, 혹은 아나키스트 당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과거처럼 공안바람에 의해 한 큐에 정리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행인의 계산이었던 거다. 현실정치에서 "1cm"가 가지는 공간적 거리감은 그만큼 크다.

 

그러나 당의 정 중앙에서 들여다본 민주노동당의 모습에는 많은 문제점이 존재한다. 남한사회 내의 진보진영이라는 사람들을 다 끌어다가 앉혀놓다보니 이념적 스펙트럼이 천차만별이다. 한때는 이를 통합하겠다는 지도부도 있었고, 사실 지금 지도부 역시 이런 이야기 공공연히 하고 있지만 이 다양한 편차를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은 개뿔, 행인의 뻥구라를 능가하는 개구라에 불과하다.

 

기왕에 이념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공히 드러내고 서로 경쟁할 일이다. '경쟁'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다. 그러나 어느 정파고 자신의 색깔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 좌파라고 하는 조직들은 지들 색깔을 드러내고 싶어하지만 '쪽수'가 딸려서 좌절한다. 게다가 지역조직의 확보라는 측면에서는 지지부진이다. 우파는 평소에는 '쪽수'를 과시하며 지들의 세력을 공공연하게 자랑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다른 소리를 한다. 예컨대 일심회사건이나 북핵사건, 가까이는 통비법 관련 당 성명파동이 있었을 때 이들이 보여준 행위는 자신들의 이념적 지형을 자랑스럽게 내놓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중간세력들 역시 마찬가지다. '다함께'는 예외로 하자. 예들이야 당 안에서 지들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면 어느 쪽으로든 붙을 수 있는 애들이니까.

 

좌파의 무능이야 달리 까봐야 별 소용이 없는 것이겠고, 겉으로 봐서는 당을 완전 장악하고 있는 우파, 소위 자민통그룹은 보면 볼 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있다. 예를 들자면 이들은 '노동'의 가치를 잘 모른다. 밖에서는 이랜드를 비롯한 비정규직 투쟁현장이나 장투사업장에 결합하면서 노동에 대해 소리를 높이는데, 정작 당 안에 들어오면 전혀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다. "활동가는 노동자가 아니에요"라는 시덥잖은 소리나 늘어놓으면서 노동자를 "탄압"하고 심지어 "착취"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걸 "운동"의 일환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당 노조가 결국 이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아직까지는 아주 온순하게 하고 있다. 질의서 몇 장, 성명서 몇 번... 민주노동당 노동조합은 태생적으로 '어용노조'의 한계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 노조는 단지 당내 근로체계와 관련된 경제적 사안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한 일환이라는 점을 고민하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남한 사회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중요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성장과 발전은 그래서 당 노조의 사활을 건 문제가 된다. 결국 당 노조는 당의 발전을 위해 헌신봉사하는 '어용노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어용노조가 당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건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상식'의 문제다. 우파가 장악하고 있는 이 정당의 재무구조는 동네 구멍가게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생길지 안 생길지도 모르는 재정을 전제로 예산을 짠다. 당이 도박장이냐? 당 사업한다는 핑계로 상근자들 임금도 수시로 체불되고 있고 지역에 내려갈 교부금이 정지된다. 도대체 당 사업이라는 것이 뭔가? 당 최대의 사업은 사람을 찾고 기르고 움직이는 거 아니었나?

 

돈이 없다고 징징거리면서 상근자 임금체불에 사업비 집행조차 하지 않으면서도 대선기간에 필요하다고 대규모 임시직 채용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당 내에 있는 인력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연초에 도시계획 정책연구원 2명이 사직을 했다. 한명은 주택정책을 담당했고 다른 한명은 도시계획 일반에 관한 연구를 담당했었다. 이 두 사람이 당 정책연구원을 그만 둔 것은 특히 이번 대선과정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한나라당 대표주자 이명박의 개발논리에 대응할 수 있는 선명한 당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내논 자식 취급하다 결국 당 나가게 만들더니 이제 한다는 짓이 기껏 선거과정에서 잡일할 사람들 왕창 뽑는데 난리가 났다. 그뿐이 아니라 당 내에는 무슨 위원회, 어쩌구 하는 조직 만들어서 이래 저래 말 많은 사람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하나같이 같은 동네 제 식구들이다. 와서 일을 잘하느냐 하면 그것도 완전 황이다. 가장 적나라한 예는 당 3역. 당 대표,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이들은 당 조직 장악력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뭐하려고 당 3역 나와서 설레발이를 쳤던가? 이런 예는 한이 없다. 집권전략위원장이라고 앉아있던 사람은 2년 임기를 지나면서 집권전략이라고는 쥐뿔 내놓은 것이 없다. 하다못해 2012년 집권을 천명하는 당에서 아직까지 정부 각 부처에 적임한 사람들에 대한 내부 인선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아닌 말로 뭘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정당이 운동권 백수들 고용안정 프로그램 차원에서 운영되는 곳인가? 이래 저래 문제제기가 있지만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당 지도부는 입닥치고 잠수타던가 아니면 이게 다 먼저 있던 사람들 책임이라고 하던가 하는 것 뿐이다. 그것도 아니면 이게 다 돈문제라고 뻗대던가...

 

돈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더라도 재정의 문제는 어디서나 발생한다. 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단지 돈때문이 아니라 그놈의 '운동권' 마인드 때문이다. 생계를 위해 직장생활을 해본적이 없고, 운동한답시고 제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그걸 당연한 것이라고 여전히 믿으면서 지가 살아왔던 방식대로 당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당을 장악하고 있는 한 행인이 바라는 '바람막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당의 미래는 요원하다. 제 안에서 새는 바가지도 못 막는 주제에 밖에서 새는 바가지를 어떻게 때우겠다는 것인지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러나 억울해서라도 당을 떠날 수는 없다. 단 한번만이라도 이 저질스러운 사람들과 전면적으로 싸워본 적이 있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도 없이 혼자 궁시렁 거리다가 당 떠나는 것은 행인이 가졌던 원대한(?) 꿈과도 맞지 않는다.

 

다만, 이 중차대한 시기에 논문쓴다고 들어앉아 있다보니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쩌랴... 이대로 휩쓸리다가는 장차 행인이 욕하던 사람들처럼 제 일신조차 챙기지 못하면서 다른 이들의 희생이나 바라면서 살아야할 터인데... 이래 저래 갈등과 고민이 많은 시간이다. 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8/23 16:12 2007/08/23 16:12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842
  1. 글쵸... 한번이라도 싸우고 깨지고 떠나더라도 원없이 한번 붙어봐야죠..
    오늘 특별당비 내라고 전화 왔길래 내겠다고 했는데, 좀 아깝네.. 백수들 고용안정프로그램에 내돈 들어간다면 넘 아까운데..ㅠㅠ

  2. 낮에 레디앙에 들렸다 상근자 임금체불에 열받아 있었는데(그보다는 여기까지 온 당의 현실에) 마침 여기 진보넷에 나보다 더 열받아 계신 분이 있네요. 당에서 일하시는 분 같은데 얼마나 좌절하고 있을지...
    어느 정도 들어올지 모르는 세액공제 같은 걸로 경상비 예산을 짜는 집권을 외치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30명 될때까지 집권을 얘기하는건 금지하는 당규라도 만들어야..
    종종 글 읽으러 들려도 되죠?

  3. '운동권 마인드'는 정말이지 '뷁'이얌.
    사회운동포럼에서조차도 "착취를 발판으로 성장한 운동사회 고찰"을 주제로 토론회 한 번 열지 않는 것 보니 '운동권 마인드'는 정말 당만의 문제도 아니니 당 떠났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으이~ 당에서 버틸거라면 너무 억울해 하며 버티진 마시길...

  4. 상근자들의 노동자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면 의례히 한 마디 던지는 부류들이 있죠. 이들이 하는 말은 "내가 상근할 때도 힘들었어. 그래도 상근비 안준다고 뭐라한 적 없어" 요런 식이죠. 그래서 그런 사람들 지금 뭐하고 있을까요. 다른 직장 다니고, 장사하고 그러죠. 당에서 상근비 안주니까 돈 벌라고.

  5. 산오리/ 원없이 한 번 붙을 겁니다. ^^ 아마 내년 총선 직전쯤 되지 않겠나 예상합니다.

    찬별/ 언제든 환영합니다. ^^

    말걸기/ 우리 사회에서 '운동권'이라는 용어 자체가 사라질 날이 와야할 거염...

    하늘소/ 그런 부류들이 끝내 당에 남아 계속 같은 짓을 하고 있으니 갑갑합니다....

  6. 내년 총선 직전에 붙은거 구경할라믄 그만두지도 못하겎구먼 ㅎㅎ ㅡ.ㅡ;;

  7. 어용노조가 제대로 파업을 하면, 진짜 감동일 것 같습니다.

  8. 삼순/ 한 판 붙는데 삼순의 역할이 중요함. ㅋ

    박노인/ 감동을 드려야할 터인데 잘 될지 몰겠어요... ㅜㅜ

  9. 어용노조 화이팅! 이거 대선보다 총선이 더 기다려지는데요 ㅋㅋ

  10. 무위/ 헉... 대선보다 총선을 더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요. 지금 당 안에서 한 자리 하겠다는 사람들이요. ㅎㅎ 대선에서 각 잡고 그걸로 총선에 자기 한 몸 띄워보겠다는 사람들때문에 골이 아프답니다. 총선을 더 기다리지는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