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목숨을 걸고 로스쿨을 유치하려 할까?

행인님의 [로스쿨 평지풍파] 에 관련된 글.

이건 지난번 포스팅의 2부쯤 되는 이야기일 거다. 아마 이런 식으로 가자면 시리즈가 이어져야할지도 모르겠다. 뉀장, 할 거는 못하고 이렇게 시간보내게 될 줄이야...

 

로스쿨 총정원은 어찌 되었든 2000명을 넘기지 않을 거다. 교육부가 은근슬쩍 '윗선의 결단' 운운하면서 말을 흘리고 있지만 노무현이 결단한다고 해도 최종 2000명 수준에서 동결될 것이다. 현재의 계획은 2009년 1500명에서 단계적으로 2000명으로 늘려나가는 것이지만 수정된다면 첫해에 1800명 수준이 될 거고 종국엔 2000명까지 늘리는 방안이 유력하다. 어차피 조삼모사다.

 

이런 상황에서 각 대학 난리가 나고 사립대학 총장들이 모여 로스쿨신청을 보이콧 하겠다고 설치는가 하면 교육부장관 퇴진까지 요구하고 나선다. 들인 돈이 아깝기도 하겠지만 뭔가 오바스러운 면이 있다. 전국 100개 가까이 되는 법학과 중 43~47개의 법학과가 로스쿨 유치전쟁에 뛰어들었다. 이것만으로 보면 전 대학 중 50%가 로스쿨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추세로 볼 때 인가대학은 많아봐야 20개 대학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전체 법학과 보유 대학 중 기껏해야 20%만이 로스쿨 유치대상이 될 것이다.

 

간단한 산수로 보자면 최대 대상비율인 20%를 제외한 나머지 80%의 대학은 별로 로스쿨에 목을 걸지 않아도 될 듯한데 왜 이렇게 이구동성으로 나서서 정원을 늘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가?

 

로스쿨을 유치하려는 각 대학, 특히 로스쿨 유치를 위해 발로 뛰고 있는 현직 교수들이 자교의 구성원들에게 하는 소리는 이거다. "로스쿨을 유치해야 학교가 발전한다"

 

이거 전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이라는 곳 하나만을 놓고 볼때는 전적으로 맞는 이야기다. 로스쿨이 유치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따라 학교의 위상 자체가 달라지고 장기적으로는 해당 학교가 한국 사회의 이너서클에 자교출신들을 배치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정원때문에 각 대학교에서 이 난리를 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이걸 좀 더 쉽게 알아보자. 각 학교가 정원증원에 한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우선 인가기준에 따른 설립인가가 경우에 따라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왕에 인가를 받았더라도 설치 후 적정한 효과가 발생하지 않거나 신고사항과 달리 인가기준을 지속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학교가 있을 때 기존의 인가가 취소될 수 있고, 따라서 이전에는 인가를 받지 못했던 학교에도 새로운 인가의 기회가 돌아갈 수 있다.

 

즉, A대학이 현재는 인가를 받지 못했지만 권토중래를 노리면서 인가기준을 충족시키도록 노력한 후 지속적으로 교육부를 압박하게 되면 언젠가는 새로이 인가를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 차례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가능성 하나로 80%의 마이너 대학들이 다른 인가가능 대학들과 함께 정원 증원하라고 난리가 난다. 정원이 많으면 많을 수록 인가의 가능성이 더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왜 대학과 교수들은 로스쿨을 유치하면 대학이 발전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걸까? 그건 로스쿨이라는 제도가 사법시험과는 달리 일정한 법조인의 배출을 확신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법시험제도 하에서는 우리 학교 출신 중에 몇 명이 이번 사시에 합격할지 예상할 수 없지만, 로스쿨이 유치되면 일단 로스쿨에 입학한 학생들 중 일정 비율(현재 예상으로는 70~80%)의 자교출신 법조인이 배출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80년대 중반 이후 갑자기 법대에 엄청난 투자를 한 모 대학이 있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공대중심으로 학교가 운영되던 이 학교는 10여년에 걸친 장기투자를 통해 90년대 후반에는 사법시험 합격자 배출 순위에서 5위 안에 들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법조인을 배출했고, 의대와 더불어 학교이미지 창출의 쌍두마차인 법대의 위상 재고 덕분에 학교 자체의 위상까지 높아진 사례가 있다. 물론 고시합격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으로 학교의 위상이 높아지는 현상이 코메디인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에서는 어쨌든 "학교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것만은 틀림없다.

 

로스쿨은 바로 이런 효과를 극대화한다. 즉 로스쿨이 유치된 학교는 바로 위에서 예를 든 모 대학의 경우와 같이 로스쿨에서 배출되는 법조인의 숫자를 통해 자기학교의 위상을 재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

 

A대학은 현재 한 학년 당 100명의 법대생 정원을 가지고 있다. 연간 100명이 법학과를 졸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사법시험을 합격하는 사람은 가물에 콩나듯 한다고 가정하자. 사실 전국 100개 가까운 법학과 중 아직까지 사법시험 합격생을 단 1명도 배출하지 못한 학교도 부지기수다. 어쨌건 A대학은 그래도 한 해 5~15명의 사시합격자를 배출한다고 가정하자.

 

학교 입장으로 봤을 때는 15명 합격한 해에는 대박이고 5명 합격한 해에는 평년작이라고 자위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그래봐야 교수들은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사시합격이야 지들이 알아서 공부하는 것이라고 치부하면 그뿐이고 실상 고시공부의 대부분은 신림동 학원이 해결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학교의 위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자교출신 법조인의 수가 이렇게 해마다 널뛰기를 하면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런데 A대학에 로스쿨이 유치되고 여기에 한 학년 당 100명의 정원이 있다고 해보자. 현재 계획대로라면 이 가운데 70~80%의 학생들이 법조인이 된다. 중간탈락률 10%로 하고 합격률을 80%라고 하면 연간 72명의 법조인이 안정적으로 배출된다. 과거 해마다 사시합격자 몇 명 나올까 하면서 조마조마 하던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상황이 발생한다.

 

더 그럴싸한 가능성을 보자. B라는 대학은 법학과에 100명의 정원이 있지만 그동안 한 명도 사시합격자를 배출하지 못했는데, 덜컥 로스쿨을 유치하면서 로스쿨 정원 100명을 확보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앞서의 계산에 따를 때 예전에는 사시합격자 한 명만이라도 나와달라고 정안수 떠놓고 빌었어야 할 대학 당국의 입장에서 해마다 70명 이상의 합격자가 배출된다는 것은 상전벽해, 로또맞은 형국이 된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자교 로스쿨에는 자교 학부출신 학생들을 최소 50% 이상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A대학이던 B대학이던 일단 자기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 중 적어도 30~40명은 반드시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게 된다. 법조인을 지망하는 학생들은 당연히 로스쿨이 설치된 대학에 입학하려 할 것이고 입시과정이 치열해지면 치열해질 수록 해당 대학의 위상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게 된다. 한국의 현실에서는 당연한 이야기다.

 

이러니 각 대학들이 정원 증원을 하고 인가기준을 낮춰서 더 많은 학교에 로스쿨이 설치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난리를 치게 되는 것이다. 당장 로스쿨을 유치할 형편이 못되는 대학들도 언젠간 형편이 피어서 로스쿨 유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욕심 하나로 동반투쟁을 하는 것이고.

 

지금까지 각 대학이 로스쿨 유치를 위해 투자한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동안 해마다 등록금 인상하면서 교육환경개선에는 쥐꼬리만한 투자를 하는 것도 아까워했던 대학들이 로스쿨 하나를 유치하기 위해 투자한 돈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그 간략한 수준을 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통계에 나와있는 숫자만 합쳐도 물경 2500억원에 가깝다. 그런데 학교 사정상 뻥을 친 금액도 있겠지만 자료공개를 하지 않은 학교도 있음을 감안하면 로스쿨을 준비했거나 준비하고 있는 학교가 50개교에 달한다고 할 때 이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금액을 훨씬 초월하는 돈이 로스쿨 유치를 위해 투자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실제 로스쿨 유치를 위해 투자를 하지 않은 대학들이라고 할지라도 로스쿨로 인한 여파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치열한 교수초빙전으로 인해 법학과 교수를 왕창 뺏긴 일부 학교는 아예 일반대학원과정을 폐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로스쿨 유치와 상관 없이 새로 법학교수들을 초빙하기 위하여 재원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결과적으로 로스쿨은 "사법개혁의 화룡점정"이라는 화려한 미사여구, 획기적인 법조인 증원을 통한 고품질의 법률서비스 제공이라는 그럴싸한 목적보다는 각 학교의 이권쟁탈전의 목적으로 기획되고 진행되었다는 비난을 받을만 하다. 로스쿨 유치로 인하여 새롭게 형성되는 대학서열화에 대해서 각 대학은 물론, 대학교육 정상화를 위해 법학전문대학원이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고 난리를 쳤던 민교협에서조차 입 꽉 다물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 광란의 도가니탕에서 학생들은 이게 그저 남의 일이거니 하는 표정으로 오늘도 법전과 영어책을 옆구리에 끼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물론 당장은 남의 일일 것이다. 어차피 지금 대학에 재학하고 있는 법대생들의 경우 로스쿨은 아직 자신의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 졸업하고 나서야 문제가 생길 것이고 고민은 그 때 가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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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9 17:12 2007/10/1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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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7/10/19 17:59

    행인님의 [왜 목숨을 걸고 로스쿨을 유치하려 할까] 에 관련된 글. 이거 이러다가 진짜 시리즈 되겠다... 어제 신문을 보다가 이 대목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대학의 교육 역량을 문제삼는 것은 법학계에 대한 모독" 정원 1500명을 정한 이유로 일부에서 현재의 법학교수진들이 실무형 로스쿨을 위한 교육을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내밀자 "한국밥학교수회"의 사무총장이라는 분이 하신

    • Tracked from
    • At 2007/10/29 22:53

    행인님의 [왜 목숨을 걸고 로스쿨을 유치하려 할까?] 에 관련된 글. 로스쿨 정원논쟁 2차전에 돌입한 기념으로 관련 포스팅 시리즈를 더 이어가 보도록 하자. 트랙백을 건 위 포스팅에는 이은영의원실에서 발표한 각 대학의 로스쿨 유치를 위한 투자금액이 일부 올라가 있다. 그 표에 나와있는 자료는 일단 '빙산의 일각' 정도임은 미리 이야기해 두자. 그러나 그 표에 나와있는 것만 가지고도 로스쿨 유치를 위한 각 대학의 행태와 이에 대응하는 교육부의 속마

  1. 신림동에 살고 있는 나도 아는 친구들 얼굴이 지나가면서 숨이 턱턱 막힘-ㅅ-

  2. 모든 대학에 로스쿨을 다 설치하면 안될라나요?

  3. 당고/ 저도 숨이 턱턱 막혀요...

    산오리/ ㅎㅎ 그래도 상관 없죠. 어차피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라면 로스쿨이 전 대학에 다 설치되던 아예 로스쿨을 만들지 않던 간에 아무 상관이 없을 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