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정원과 관련된 쟁점 하나

행인님의 [왜 목숨을 걸고 로스쿨을 유치하려 할까?] 에 관련된 글.

로스쿨 정원논쟁 2차전에 돌입한 기념으로 관련 포스팅 시리즈를 더 이어가 보도록 하자.

 

트랙백을 건 위 포스팅에는 이은영의원실에서 발표한 각 대학의 로스쿨 유치를 위한 투자금액이 일부 올라가 있다. 그 표에 나와있는 자료는 일단 '빙산의 일각' 정도임은 미리 이야기해 두자. 그러나 그 표에 나와있는 것만 가지고도 로스쿨 유치를 위한 각 대학의 행태와 이에 대응하는 교육부의 속마음, 그리고 정치인들의 딴청피우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행인이 가지고 있는 자료만 가지고 검토를 해보자.

 


* 단위 : 억원

** 로스쿨 투자비는 이은영의원실 자료, 2007년 10월

*** 각 학교 운영수익자료는 2005년도 자료임

 

이 자료 중 로스쿨 투자비에 대한 부분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은 다음 기사를 보면 금방 확인된다.

 

인하대, 127억 규모 '로스쿨관' 개관

 

실제 들어간 비용을 추산하는 것은 어렵지만 기왕에 국회의원의 보도자료를 통해 확인된 부분만 가지고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 대학의 로스쿨 유치전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으므로 자료대로 분석해 보자.

 

다들 알고 있다시피 한국 사립대학교의 재정문제, 이거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2006년도의 경우 한국 사립대학의 총 재정규모가 10.5조원에 달했는데, 이 중에 등록금 의존도가 전체 74%에 달한다. 다시말해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한국 사립대학교의 재정자립도 정도가 학생들의 등록금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등록금 환원율을 보더라도 재정자립도가 충실한 포항공대 같은 경우에는 1254%에 이르는 반면, 전체평균으로 보자면 겨우 100%를 만족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정리하면 한국의 대학생들, 국가나 사회로부터 교육을 위한 재정의 도움은 거의 받지 못한 채 전적으로 자신의 돈, 아니 거의 대부분의 경우 부모님의 돈만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교육을 받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교육환경이 이처럼 '수익자부담원칙'에 충실한 상황은 한국의 대학교육이라는 것이 얼마나 공공성의 담보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거의 전적으로 학생들이 자비를 들여 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학생들에게 졸업 후 사회를 위해 희생봉사하라고 요청할 방법이 없다. 사회가 뭐 해준 게 있다고...

 

이 와중에 각 학교는 해마다 등록금을 올려댄다. 학생들은 반발하고 여차직하면 총장실을 점거하는 등의 방법으로 '등투'를 진행한다. 그러나 그 효과는 거의 없다. 학교는 언제나 돈이 없다고 주장하고, 거시담론에서는 정당성을 확보하지만 미시담론에서는 정보를 가지지 못하여 주장할 바를 제대로 짚지 못하는 학생들은 언제나 봉이 되어 인상분을 납부해야 한다.

 

학교측의 입장을 100% 인정한다면 등록금을 올릴 수밖에 없는 사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전입금이 상대적으로 많거나 기금확보를 잘 하는 대학 역시도 등록금은 꼬박꼬박 올린다는 사실이다. 거둬 들이는 돈은 그 차이가 천차만별인데도 어떻게 사정 어려운 것은 다들 똑같은지...

 

돈이 없어서 운영이 어렵다면, 사실 학교는 더 열심히 돈을 아낄 방도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사립학교는 돈을 아끼는 것보다는 돈을 더 버는 방법을 취한다. 등록금을 올리고, 그 돈으로 건물을 짓고, 학교 선전을 하고, 이를 통해 기부금을 확보하고, 그리고 또 건물을 짓고, 또 돈 모자란다고 등록금 올리고... 이런 악순환이 없다. 도대체 비축분으로 쟁여놓은 돈은 어디 쓸라고 꿍쳐놓고 풀질 않는가?

 

아무튼 재정이 어렵다고 하는 대학들이 로스쿨을 위해 돈을 쏟아붓는 모습은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위 표를 한 번 보자.

 

이은영의원실 자료에 나와 있는 서남대를 보자. 이 학교 연간 운영수익이 253억 조금 넘는다. 그런데 로스쿨을 위해 217억을 투자했단다. 이 학교 연간 등록금 수입이 164억이 훌쩍 넘는다. 재단 전입금은 연간 86억원 정도 된다. 어떻게 217억을 투자할 수 있었을까?

 

물론 대학 재단이 과감하게 사재를 홀라당 털어서 부었을 수도 있다. 동문들로부터 학교발전을 위한 기금을 많이 받았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돈을 어떻게 모았느냐가 아니다. 그렇게 모아서 풀 수 있었던 돈을 그동안 학교 전체를 위해 풀었었느냐이다.

 

동아대를 보자. 동아대 역시 마찬가지다. 연간 등록금 수입이 1247억으로 전체 운영수익의 80%를 상회한다. 그런데 로스쿨 유치를 위하여 투자한 돈이 물경 542억이라고 발표되었다. 등록금 수입의 43.5%나 되는 돈이 로스쿨을 유치하기 위하여 한 방에 들어갔다. 이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일일까?

 

로스쿨을 유치하겠다고 나선 약 30여개의 사립학교들을 전부 조사해보면 더 기가 막힌 일들이 나오겠지만, 이 이상 조사를 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다. 어차피 본질적인 문제점은 이 단순한 표만으로도 충분히 확인되니까. 각 대학이 보여주고 있는 이 몰상식적인 행동에 대해선 각 대학의 구성원들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문제를 제기할 구성원들이 있을까 모르겠다만...

 

아무튼 대학들이 이렇게 거의 올인 형국으로 로스쿨에 달라붙자 교육부는 입장 난처할 것이다. 현재 사립대학교의 재정자립이 심각한 상태라는 판단으로 인해 교육기관을 비롯하여 교육관계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진작부터 사립대학 재정확보를 위한 여러가지 조치를 주장해왔다. 예를 들어 사립대학 재정확충을 위해 규제완화, 세제감면 및 정부보조금 지원확대를 주장하는 것이다.

 

관련자료는 여기로

 

이들은 정부의 고등교육예산이 국민 총생산 대비 약 0.44%(2006년)에 불과함에 따라 교육재정지원이 열악하고 안정적 재정확보장치가 미흡하여 대학이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대학개혁정책의 추진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혁신적인 사립대학 지원책이 나와야 하고 여기에는 온갖 명목의 면세조치와 규제완화 등이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그런데 최근 확인된 바에 따르면 사립대에 대한 지원이 희안한 형태로 계속 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사립대 자체가 아니라 사립대가 운영하는 병원에 국고로 보험료가 부담되었다는 것인데, 그 금액이 지난 3년 동안 거의 3000억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게다가 각 사립대학교는 이미 재정의 일부를 국고보조금으로 해결하고 있기도 하다.

 

사립대학교가 이처럼 온갖 혜택을 더 달라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이에 대해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런데 교육부가 어떤 지원을 하기 전에 먼저 확인해야할 것은 과연 사립대학교의 위치가 뭐냐는 거다. 사립대학측은 사학이 인재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되 그 운영권을 국가가 아닌 학교법인의 이사회에 속하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국가가 사학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계속 주장해왔다.

 

이러한 상태에서 발생했던 일이 바로 올 7월에 있었던 사학법과 로스쿨법의 딜이다. 사학법 개악을 위해 당의 운명까지 걸었던 전적이 있는 한나라당의 노림수와 로스쿨법이라도 통과시켜 눈에 띄는 치적 하나라도 만들어놓고 싶었던 현 정권의 욕심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로스쿨법은 사학법과 맞바꾸어졌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이미 다들 아는 이야기므로 생략하자.

 

중요한 것은 사학법 개악을 요구하면서 각 사학 재단이 주장했던 바, 간단명료하게 정리하자면 "사립대학은 사유재산이다"라는 것이었다. 사유재산에 대해 국가가 간섭하는 것은 재산권에 대한 침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했던 사람들이 한편에서는 국가로부터 막대한 재정적 보장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러한 이율배반의 한 가운데 로스쿨문제도 끼어들어간다.

 

아닌 말로 사학이 사유재산이라면 그 사학에 대해서는 국가의 재정지원을 일체 받지 않겠다고 해야한다. 국가는 단지 국고보조금만 지급하는 정도의 재정지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 한국 정부는 대학설립의 준칙주의를 통해 대학의 설립과 운영에 거의 무한한 자유를 제공한 바 있다.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면 대학으로 하여금 최소자본으로 장사를 할 수 있는 길을 무한정 열어주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더 뭘 바라나?

 

게다가 그 실효성에 대한 사회적 판단은 제쳐두고 수험생과 학생들을 볼모로 말도 되지 않는 사학법 개악과 로스쿨법을 딜했다. 뭐니뭐니해도 정치인들 간의 이런 '쇼부'치기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대학생들이고 고시생들이다. 이들이 무슨 죄를 졌길래 실험실 몰모트처럼 학제편제를 위한 리트머스가 되어야 하나?

 

그런데 덜컥 로스쿨 문제가 불거졌고 사학은 돈이 없다고 발버둥을 치던 과거는 까맣게 잊은 채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의 투자를 하고 있다. 어디서 돈이 나왔을까? 왜 그동안은 저런 돈을 대학발전을 위해 투자하지 않았을까? 저만큼의 돈을 투자하면서 뭐하러 그 알량한 국고보조금을 더 받아보자고 안간힘을 썼을까? 왜 돈이 없다고 하면서 각종 규제조치를 거두어달라고 응석을 부렸을까? 미스테리도 이런 미스테리가 없다.

 

교육부 입장에서 난처함 점은 바로 이거다. 사립대학에 대한 지원이 개별 학교차원에서는 미미한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 사립대학교로 보면 2005년에만 1조 5천억이 훌쩍 넘어갔다. 로스쿨의 경우 각 사립대학교에 로스쿨이 설치되고 정원이 또 늘어나면 장기적으로 로스쿨 운영과 관련한 예산이 따로 편성되어야 한다. 이미 법학교육위원회를 운영하고 있고, 시시때때로 로스쿨 평가를 위한 작업을 해야하며 관련제도의 정비 및 현장파악, 기타 등등에 돈이 들어가게 된다. 이게 미리 계획을 제대로 세워놓지 않은 교육부 관료들의 무사안일함때문에 심각하게 된 면도 없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사립학교건 어디건 로스쿨 같은 새로운 학제가 만들어지게 되면 국가적 차원에서 예산이 더 소요된다는 것은 불문가지고, 덩어리가 예상 외로 커진다면 그 소요분은 계속 늘어나기 마련이기에 원천적으로 머리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는 거다.

 

가관인 것은 정치인들의 행태다. 로스쿨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일들이 이미 민간인의 상식을 벗어나고 있는데, 이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조차 기껏 정원 몇 명 더 늘여야 한다는 식으로 교육부 때리기만 하고 있다. 지금 로스쿨 정원 몇 명이 문제가 아니다. 로스쿨 이런 식으로 했다가는 그 부담이 전 사회적으로 미치게 된다는 점이 중요한데 이게 자꾸 가려진다. 대학 다니는 학생들의 등록금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전체 국민들 역시 납세분에서 자신들에게 돌아와야할 이익분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손해가 발생하는데 여기에 대해선 검토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냥 술이나 담배에 세금 더 때려서 해결하려고 하나?

 

아무리 따져봐도 로스쿨은 사회적으로나 법조인을 지망하는 학생들에게나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제도다. 이 제도를 통해 발생하는 어떤 이익이 사회 전 구성원에게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다. 이미 법률서비스의 공공성 확보라는 대의명분은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로스쿨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밥그릇 탈탈 털어놓고 지금까지 껍데기차원에서 논의되었던 대의명분들을 알맹이로 삼고 논의를 해야한다. 늦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사법개혁을 위해서도 그렇고 다른 모든 것을 위해서도 그렇고 가장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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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9 23:05 2007/10/2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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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 이야기가 아니라서 오감을 곤두세우고 읽게 됩니다; 잘 읽었어요-
    근데 참 암울하네요.

  2. NeoPool/ 이런... 암울한 이야기만 전해드려서 정말 미안합니다. 하긴 저도 너무 암울하다보니 계속 이런 글을 올리게 되네요. 교육부가 로스쿨 인가기준안을 제시했더군요. 참담한 것은 로스쿨이라는 것이 막갈 수 있는 최대한의 방향이 예측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죠. 제 입장은 언젠가 포스팅에서 밝혔는지 모르겠는데, 로스쿨이 되건 사법시험 대신 변호사시험으로 바꾸건 어떤 것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방법이든 법률이 돈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선택적으로 사람을 가려서 보호막을 쳐주는 세상은 끝나야 한다는 거고, 이걸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라면 뭐든 좋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로스쿨, 적어도 지금의 로스쿨은 그 가능성은 커녕 오히려 이런 왜곡구조를 더욱 심화시킬 거라는 판단이 들죠. 암울하네요...

  3. 암울해도 좋아요, 앞으로도 주욱- 계몽(?)해 주세요-

  4. NeoPool/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