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은 왜 성명을 내렸을까?

지난 7월 18일, 정보통신부는 당에 한 장의 공문을 보냈다. 당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북한관련 문건을 내리라는 것이었다. 7월 27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망법에 의해 고발되어 형사처벌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중한 표현이었으나 완전 협박이었다. 그래서 성명을 하나 냈다. 그 성명은 이거다.

 


[성명서] 정보통신부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

지난 7월 18일, 정보통신부는 민주노동당에 공문을 발송하면서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게재되어 있는 ‘불법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으면 고발하여 형사처벌하겠다는 협박을 하였다. 7월 27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정보통신부의 공문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임과 동시에 민주노동당에 대한 도전으로 판단하며 강력히 항의한다.

19개 단체와 민주노동당을 대상으로 보낸 이 공문에서 정보통신부는 “불법 북한 선전게시물이 상당수 게시”되어 있으며, 이것이 국가보안법 위반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즉시 삭제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 내용이 “북한체제를 옹호하고 주체사상이나 김일성부자를 노골적으로 찬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나
해방이후 지금까지 종교집단의 포교행위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를 걸어 처벌한 역사는 없다. 당 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일부 “북한찬양문건”은 사회과학적 차원에서 인정되는 사상관련 문건이 아니라 주체사상에 대한 신앙고백 내지는 포교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게시판을 찾는 시민들이 이 글들을 보고 국가전복을 꾀하거나 무장혁명을 준동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체사상에 대한 종교적 경도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일인지를 확인하는 훌륭한 교육의 기회가 될 수 있을 정도다. 정보통신부는 온라인 공간에서 종교의 자유마저 박탈하려 하는가?

더불어, 한국사회 최대의 극우정당인 한나라당에서조차 북한방송과 통신을 조건 없이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이 때, 세계 최강 IT국가의 정보통신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정보통신부가 지난 세기의 냉전적 사고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 온라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폐기되어야 마땅한 국가보안법을 언급하면서 사법권마저 행사하겠다는 정보통신부는 발전된 한국 시민들의 자발적 정보유통에 대하여 전혀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부는 문제가 된 공문의 말미에 “개방된 인터넷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법질서가 존중”되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 자신이 하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는 것을 보면 고소를 금할 수가 없다. 정보통신부가 표현의 자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숙고하길 바랄 뿐이다.

민주노동당은 정보통신부의 시대착오적 작태에 대해 다시 한 번 엄중히 경고한다. 정보통신부가 위헌적인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들먹이며 이와 같은 행위를 계속한다면 민주노동당은 위헌소송을 비롯한 법적 · 제도적 대응은 물론 온라인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를 원하는 사회 제 단체들과 연대하여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2007년 7월 20일
민주노동당

 

7월 20일 성명이 나간 후 지금까지 당 내에 어느 누구도 이 성명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무려 2주가 지나는 동안 당 안에서 대표든, 사무총장이든, 정책위의장이든, 최고위원들이든, 하다못해 당직자들조차 그 누구도 이 성명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랬는데, 어제 "한국진보연대(준)자주통일위원회"라는 곳에서 공문이 한 장 날라왔다. 이 성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한편, 당의 입장을 밝히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마침 어제 최고위원회 회의가 있었고, 한국진보연대가 보낸 한 장의 공문이 발단이 되어 원래 안건에도 없었던 '성명' 문제가 긴급히 안건으로 상정되어 논의가 되었다. 그리고 이렇다할 해명도 없이 문제의 성명은 당 홈페이지에서 삭제되었다.

 

최고위원회 회의록에조차도 논의된 내용에 대해 언급이 없다. 45차 최고위원회 결과에는 달랑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안건 5. 기타안건 - 7월 20일자 당 성명서에 대한 진보연대 질의에 대한 입장 정리의 건"

 

뭘 이야기했고 어떻게 정리했고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이야기도 전혀 올라와 있지 않다. 이 문제는 이렇게 대충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지도부에 계신 높은 분들은 이렇게 하면 되는 사안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절차가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를 좀 더 확인한 후 문제제기를 할 것이다.

 

첫째, 당 성명을 당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이유가 정확하게 무엇인가? 절차상의 하자때문인가, 내용상의 문제때문인가?

 

둘째, 한국진보연대가 보낸 공문에 대해 당일도착한 건을 기타토의로 올려서 안건처리한 이례적인 사정이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진보연대의 공문은 당의 입장을 요청했는데, 이러한 공식적 요청에 대해 당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힌 후 성명을 내린 것인지?

 

셋째, 당 성명을 작성한 행인과 이 성명을 처리한 대변인실에 대해서는 일체의 해명이나 성명삭제에 대한 의견을 묻지 않고 성명을 내린 이유가 무엇인가?

 

넷째, 앞으로도 당 성명이나 논평 기타 다른 사안으로 인해 외부에서 문제제기가 들어오면 이번처럼 스리슬쩍 입장 다 내리고 입 씻을 것인가?

 

누군가 개인적 글 쓰기와 공식적 글쓰기에 차이점이 있고, 이번 성명은 공식적 글쓰기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을 했다. 그 지적의 타당성은 받아들인다. 그러나 적어도 당 명의로 나가는 성명을 개인적 글 쓰기 차원에서 했다는 지적은 동의할 수 없다. 적어도 그 성명을 쓰기 위해 당 게시판을 일일이 다 확인하였고, 당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각종 '북한관련문건'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분석해본 바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성명의 내용을 작성한 것이다. 그것도 최대한 개인적 글 쓰기를자제하면서.

 

논란이 제기된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전적으로 환영한다. 다만, 기왕 논란이 될 수 있으니 진짜 논란을 만들어주기 바란다. 당게에 올라와 있는 주체사상 관련 문건이 과연 사회과학적 논의의 수준인지 아니면 종교적 포교의 수준인지 그것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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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3 17:01 2007/08/03 1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