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피부 보습제

[한동안 취생몽사를 채우지 않았는데, 블로그 황제 달군이 연재를 재개하라는 압력(?)을 가했다. 그것도 평택 일일주점 날... 하긴 뭐 취한 인생들이 벌이는 천태만상만큼 재밌는 일이 또 있겠나? 그런 전차로 이제 또 기억을 슬슬 거슬러 올라갈까...]

 

시골 촌놈(!)들, 밥 숟가락 들기 시작하면 바로 막걸리를 배운다. 지금이야 산골 구석에도 먹을 것이 지천에 깔렸지만 행인 어릴 적 그 깡촌 고향에는 군것질 거리라고 해야 옥수수(동네 말로 옥시기 또는 깡냉이)나 감자가 다였다. 하긴 그것도 배부르게 먹을 만큼 많은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랬던가, 친구녀석들도 그렇고 행인도 그렇고 술맛을 굉장히 일찍 알아버린 감이 없지 않다. 이렇게 음주조기교육 활성화가 성황리에 이루어진 배경에는 고향 친구 c의 역할이 매우 컸다. 이 c란 녀석은 역전 아래 술도가 아들이었다. 집안 구석구석에서 퍼져나오는 누룩 냄새며, 술 익어가는 냄새가 태어날 때부터 익숙했던 넘이었다.

 

고향 막걸리는 매우 유명짜한 물건이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지평막걸리"라는 것이었는데, 그 특유의 달달하면서도 감치는 맛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모았던 술이었다. 당시엔 지역 술이 그 지역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던 때였는데, 일설에는 서울의 모 유명한 호텔이 몰래 지평막걸리를 납품받아 팔다가 걸려서 된통 고역을 치뤘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지평막걸리는 "약술(藥酒)"로도 소문이 났었는데, 특히 중풍 고치는 약이라고 이름이 알려졌었다. 여기엔 행인도 아는 유래가 있다. 행인이 코흘리게 시절이었던 때다. 행인 살던 동네에서 약 20리쯤 떨어진 동네가 있는데, 여기 사시던 한 할아버지가 중풍에 맞고 쓰러지셨다. 시골 산 골짜기에서 약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겨우겨우 운신할 수 있을 정도만 치료가 된 이 할아버지. 반신불수에 제대로 진지도 못자시는 이 할아버지 일로 온 지역 사람들이 다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집 아저씨가 새벽 논일을 하고 들어왔더니 할아버지가 없어지셨다. 거동도 못하는 분이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화장실에 가셨나 아님 어디 기어나가셨다가 봉변이라도 당하셨나, 노심초사 이 아들 되는 아저씨께서 사방팔방으로 할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보이질 않고, 중풍맞기 전에 쓰시던 지팡이가 없어진 걸로 봐서 혼자 지팡이를 짚고 나가신 것은 분명한데 식구들 중 아무도 할아버지의 행방을 몰랐으니 이 아저씨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밭이며 논이며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할아버지를 혹시 못 봤냐 물어보는데 도통 본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가 마을 어귀에서 한 동네분이 할아버지를 봤단다. 논일을 하고 있는데 먼 발치로 노인네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쓰러질듯 쓰러질듯 걸어가길래 혹시나 하고 불러봤는데 들은 기척도 하지 않고 그냥 내처 가던 길 가더란다. 어느 쪽으로 가냐고 물었는데, 하필 그 방향이 행인의 고향이었다.

 

동네 아저씨가 할아버지를 봤던 시간은 이른 아침나절이었고, 이 사실이 확인된 것은 점심때가 지나서였다. 할아버지의 아들은 부랴 부랴 할아버지가 향했다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물어물어 찾아온 길이 바로 20리길 지나 우리 동네 역전 술도가였다.

 

아저씨가 와 보니 가관이라... 할아버지는 술도가 안채 마루에 드러누운 채 코를 골며 주무시고 계셨고, 술도가 주인 아저씨는 어찌 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이었다.

 

- 가끔 이 대목에서 후배들이 "왜 전화를 해주지 않았나여?"하고 물어보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울 시골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을 때였다. 우리 시골에는 행인이 국민학교 3학년 다 지난 때에야 겨우 전기가 들어왔다. 전화는 그러고도 한참 후에야 보급되었으니까... -

 

놀란 아들,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는 노여움이 머리 꼭대기까지 솟구쳐 술도가 주인장의 멱살을 붙잡고 항의 시작. 사실 둘은 또 친구지간이었다. "아, 이넘아, 울 아버지 풍맞아서 낼모레 하는 걸 뻔히 알면서 술을 드리냐?", "아, 임마, 다짜고짜 오셔서 술 내놓으라고 성화를 부리시는데 어쩌란 거냐?"(물론 이 대화 속에는 찐한 욕설이 함께 오고 갔음은 알아서 생각하시고...)

 

이러면서 둘이 주먹질이 오가기 직전까지 갔는데, 마침 그 때 문제의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곤, 심하게 풍맞은 분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명료하게 말씀을 하셨다. "넌 왜 왔냐?" 그러시더니 심드렁하게 한 말씀 더. "집에 가자."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 할아버지, 그날 뗑깡을 부리면서 마신 막걸리가 거진 한말이란다...

 

놀라운 일은 그 다음이었다. 거동도 제대로 못하던 분이 짚고 왔던 지팡이까지 버리고 허위적 허위적 걸어서 집으로 가신 거다. 이날 이후 이놈의 막걸리 불티나게 팔렸단다. 그리고 그렇게 팔리던 막걸리 퍼주는데 기여를 한 넘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c다.

 

막걸리집 아들로 태어나 젖과 함께 막걸리를 빨았던 이 녀석, 술은 막걸리 이외에 없다고 자부하던 넘이었는데, 그 자부심만큼이나 엄청나게 막걸리를 마셔제꼈다. 국민학교, 중학교 다니면서 이넘하고만 붙어 있으면 막걸리는 원 없이 마실 수 있었다. 아아... 산 기슭에서 서산너머로 기우는 석양을 바라보며 마시던 막걸리는 그 얼마나 맛있었던가... 이게 국학교 고학년 때의 일...

 

막걸리가 질리지도 않냐고 묻자 이넘 왈, 평생 막걸리를 마시다가 막걸리에 빠져 죽는 것이 소원이다... 이게 고등학교 때 일이다. 이넘은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중퇴를 하고 서울로 올라와 무슨 목재공장인가에 취직을 했었다. 직장에서 매우 인기가 좋았다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고향에서 수시로 막걸리를 공수해 동료들에게 뿌렸기 때문이었다.

 

암튼 그렇게 술 좋아하는 넘들끼리 죽이 맞아서 방학때만 되면 시골로 내려가 함께 술을 마셨는데, 술도가집 아들이 서울로 일하러 나간 이후 이게 그만 뜸해지고 말았다.

 

고2때 여름. 공부는 하기 싫고 날은 덥고 그래서 방학 하자 마자 바로 시골로 내려온 행인. 여주 이천으로 돌아다니면서 지역 친구들에게 빌어붙어 살며 술 뜯어먹고 지내는 나날이 연속되었다. 그러다가 마침 이 c가 휴가를 받아 시골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시골로 달려갔다.

 

간만에 만난 넘이라 어찌 반가운지, 아니 사실은 그넘 덕에 또 막걸리를 신나게 마실 수 있다는 것이 더 반가워서 희희낙락 같이 술을 퍼 제끼기 시작했다. 과수원집 동무랑 이넘이랑 행인이랑 셋이서 되는 대로 막걸리를 퍼와 마시다가, 막걸리 떨어지면 이넘이 또 냉큼 달려가 막걸리를 퍼오고, 이렇게 밤을 새워 술을 마시다가 이튿날 낮이 되도록 술판을 이어 갔다.

 

간만에 아들이 온데다가 집 구조상 웃방 구석탱이에서 뭔 일이 벌어져도 알 수가 없는 지라 어르신들은 그저 애들이 지들끼리 잘 놀고 있는갑다 하셨을 수도 있다. 어차피 애들이 술 마시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고, 동네방네 떠들면서 술주정만 하지 않는데 뭐 별로 문제가 될 일은 없었던 거다.

 

암튼 그랬는데, 다음날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과수원집 아들내미는 아침나절에 집엘 갔고, 행인은 그냥 그 방에서 엎어져 자빠져 잠이 들었다. 한넘은 도망가고 한넘은 자빠지니 c란 녀석, 혼자 내처 막걸리를 퍼 마시다가 지 평생의 소원을 풀고야 만 거다.

 

막걸리에 빠져 죽고싶다던 이넘, 죽을 날짜를 좀 더 앞으로 당기려 했던 갑다. 날은 덥고, 갈증은 나고, 몸은 끈적대고 하는 차에, 어르신들은 다 논이며 밭에 일하러 나갔고, 들리는 소리라곤 매미소리밖에 나지 않는 여름 한 낮.

 

얼큰하게 맛이 간 c, 빤스까지 훌러덩 벗어 젖치고 마당으로 나갔다. 슬리퍼 직직 끌고 우물가로 가서 펌프물을 퍼올려 등목을 했으나 성이 차지 않았다. 그러다가 눈이 간 곳이 술광, 즉 술창고. 술광은 햇볕이 들지 않는 후미진 쪽에 있었다. 술광 안에는 사람 키보다 큰 술독이 여러 개 땅에 묻혀 있었고 그 안에는 시기별로 담근 날짜가 다른 막걸리가 들어 있었다.

 

술광은 그래서 여름에 서늘하다. 또 술독에 들어 있는 막걸리는 사시사철 딱 그 온도가 그대로 유지된다. 한 여름에도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 가면 가는 동안 주전자가 땀을 흘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어쨌든 술광에 눈이 간 c, 홀라당 벗은 채로 그리고 실실 걸어가선 술독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니 극락이 여긴게라... 그만 풍덩 하고 술독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거기서 진짜 극락행을 했더라면 이넘, 어린 나이에 평생 소원을 푼 케이스가 될 뻔했다. 그러나 살 날이 많이 남았더랬나. 마침 근처 밭에서 일하시던 아버지, 날이 너무 더워서 일을 더 이상 못할 판이라 좀 일찍 들어가 쉬다가 점심이나 먹은 다음 나와야겠다는 마음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셨다.

 

마당에 들어서니, 이게 왠 일... 술광에 문이 활짝 열려있는 것이 아닌가? 날도 더운데 술광 문이 열려있으니 혹시 누가 왔다간건가, 내지는 막걸리 품질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후다닥 술광으로 가셨겠다. 가 보니 술독 뚜껑들이 죄다 열려있지 않은가? 아저씨, 화들짝 놀라 뭔 일이 났나 하곤 얼른 술독 뚜껑들을 덮다 보니 독 하나에 왠 사람머리가 둥둥 떠 있는 거다.

 

기절 직전까지 간 이 아저씨, 겨우 정신을 차려 들여다보니 그 사람머리가 다름 아닌 자기 아들 머리라... 술독에 빠져있는 넘을 서둘러 건져 올려놨더니 인사불성인 것은 둘째 치고 익사 직전이었다고 한다. 난리가 났다.

 

등을 두드리고 보건소로 약을 지으러 가고 물을 끼얹고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 후에야 이넘이 깨어났다. 그리고 그런 소동이 있었는지도 모른채 세상모르고 자빠져 자던 행인도 그제야 일어났다. 너무 잤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집으로 가야겠다 하고 방문을 빠져 나와 마당으로 나가는데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났나, 하고 봤더니 마루바닥에서 c란 넘이 몸을 뒹굴고 있었고, 어머니는 사색이 되어 있고, 아버지는 얼굴이 벌겋게 닳아 올라 시끈벌떡 하고 있었다. 아직 정신이 덜 든 행인, 가까이 다가가서 봤더니 이 c란 넘, 홀라당 벗은 채로 몸도 못가눈채 비비 꼬면서 뭐라고 하는지 웅얼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간 행인, "얌마, 너 미쳤냐? 왜 홀라당 벗고 쥐랄이냐??" 했더니, 이넘, 완전히 풀린 눈동자로 시선도 제대로 못 맞추면서 행인을 보고 하는 말... "넌 누구냠 마!"...

 

아니 이넘이 완전히 맛이 갔군, 하면서 킬킬 웃고 있는데, 갑자기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눔들~~!!"

 

뭔 소린가 싶어 고개를 돌렸는데, 아버지께서 다듬이 방망이를 꼬나 들고 우리 쪽을 향해 성큼 성큼 걸어오시는 거다. 놀란 행인, 순간 술이 확 깨면서 드는 오직 한 가지 생각은 그저 튀어야 산다는 것 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예의바른 행인은 아버지께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를 드리고 잽싸게 마당을 빠져 나왔다.

 

마당을 가로질러 나오는 순간, 행인의 인사도 받지 않으신 아버지가 다듬이 방망이를 선뜻 휘두르는 듯이 보였고, 후다닥 달려나오는 행인의 등 뒤에서 c의 등인지 배인지 모를 부위에서 나는 "철퍼덕"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나오는 어머니의 단말마... "애 죽어유~~"

 

하긴 아버지 심정 십분 이해가 간다. 안 그래도 열이 뻗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마빡에 새똥도 벗겨지지 않은 애쉑덜이 술에 쩔어서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그 어찌 폭발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암튼 그 사건 이후 한 동안 그 집에 막걸리 받으로 가질 못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포장막걸리가 들어오면서 술도가는 폐업 상태가 되었다. 지역규제도 풀어지고 그 맛있던 지평막걸리가 완전 공장제품이 되어 전국으로 팔려 나가게 되었다. 그리곤, 예전에 맛보았던 그 맛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술도가집 그 사건의 여파는 지금도 남아 있다. 20년이 후딱 지난 지금도 c의 피부가 그것을 말해준다. 막걸리 통에 빠졌다 나와서 그런가, 이넘의 피부는 아직도 뽀얀 것이 물 오른 것처럼 촉촉하다. 생긴 거는 양산박 흑선풍같이 생겼는데, 손의 살은 아직도 10대의 피부다. 아깝다... 잠수를 했더라면 얼굴도 아직 동안일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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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4 10:39 2006/09/04 1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