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신의손

행인은 일화의 팬이었다. 지금도 연고지인 서울보다 성남에 더 애착이 간다. 그랬더니 어떤 이 왈, "너 통일교 신도냐?" OTL...

 

일화를 좋아하게 된 것은 행인이 좋아하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이 일화에 있었기 때문이다. 무수한 선수들이 명멸했는데, 그 중에서도 몇을 꼽아보면, 적토마 고정운. 사실 고정운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고정운 하면 그냥 '힘' 이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다. 물론 그 힘 덕분에 말보루컵에서 승부차기를 할 때 공을 하늘로 날려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덕분에 행인은 당시 최신형 TV값을 물어줘야 했지만...

 

고정운은 키핑능력과 볼 컨트롤이 당시 누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능력은 그의 넘치는 파워에 밀려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저 고정운이 나가면 와, 정말 아무도 못말리는구나 하는 정도... 98년 월드컵에서 끝내 엔트리에 제외된 이유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팽이 이상윤도 있다. 이상윤은 지능적인 플레이를 보여준 드문 선수 중 하나다. 하긴 울 나라에서 지능적인 플레이를 펼치면서 제대로 평가받은 선수들은 별로 없다. 최근 들어 핌 베어벡이 지능적인 플레이를 요청하면서 그 진가가 새롭게 조명되는 바도 있고, 이관우나 박진섭 같은 선수들의 능력이 재평가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암튼 이상윤은 그 특유의 지능적인 플레이를 보여준 선수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상윤에 대한 평가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닌 것이 지능적인 플레이라는 것도 여러 유형인데 이상윤은 그라운드의 장악력이라는 측면에서 팬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도록 하는 것에는 실패한 듯도 보인다.

 

일화 하면 대표적인 선수가 신태용이다. 축구선수로서 그다지 훌륭한 체격조건은 아니라고 보여짐에도 신태용의 플레이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원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경기를 읽어낼 줄 아는 능력도 뛰어나고 때론 저돌적인 모습으로 경기를 장악하는 능력은 다른 선수들이 많이 배워야할 점이다. 예컨대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 있는 박주영의 경우 신태용이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를 모범으로 삼으면 더욱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일화의 전성기를 함께 만들어낸 선수로 이 선수를 제외할 수 없다. 바로 발레리 사리체프(Валерий Сарычев), 즉 "신의손"이다. 구리 신씨의 시조 되시겠다.

 

안양 선수 시절의 신의손


2005년 5월 은퇴를 선언할 때까지 신의손이 한국에서 보여준 경기능력은 말 그대로 '신의 손'이 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건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그가 1992년부터 2004년까지(1999년 제외) K-리그를 뛰면서 보여주었던 경기당 실점은 "1.113"골이다. 한 경기당 1점 이상 내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거다.

 

사실 신의손이 가진 이런 비범한 능력은 바로 그것 때문에 신의손의 발목을 잡을뻔 하기도 했다. 벼라별 이유를 들어-예컨대 한국 선수들의 출전기회보장이라는- KFA에서 1998년에 외국인 골키퍼 출전 금지 조치를 내린 것이다. 결국 그 해, 당시 사리체프였던 신의손은 시즌 내내 5경기 출장에 그치게 되었고, 컨디션 난조까지 겹쳐 경기 당 3골 이상의 골을 먹은 기록을 내게 된다.

 

고향인 러시아로 갈지, 아니면 한국에 남아 계속 축구를 할지 고민하던 사리체프는 1999년 안양에 골키퍼 코치로 들어가게 되었고, 2000년에 '신의손'이라는 이름으로 귀화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의손은 다시 현역선수로 복귀하여 제2의 신화를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

 

신의손이 가지고 있는 기록 중 하나는 117경기 무실점 기록이다. 리그 경기 통산 한 골도 내주지 않은 경기가 117회나 되었다는 것이다. 2005년 5월 김병지가 이 기록을 깨고 현재 138경기 무실점 기록을 세우고 있지만, K-리그의 난맥상으로 인해 신의손에게 상당한 태클이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신의손이 가진 기록은 대단한 것이라고 평가받지 않을 수 없다.

 

골키퍼라는 위치가 어느 정도의 부담감을 가지는 자리인지에 대해서 신의손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골을 먹으면 지든 이기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필드 선수들의 실수일지라도 일단 골을 먹으면, 그 순간 모든 것이 골키퍼의 책임이 된다."

 

그러한 골키퍼로서의 부담감, 외국에서의 생활, 게다가 협회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압박 등을 이기고 신의손은 한국 축구 역사에서 또다른 신화를 창조했다. 말 그대로 그의 플레이는 '신의 손'이라는 격찬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 그 닉네임이 귀화 후 본명이 되었다. 신의손은 원래 자신의 한국 이름을 정하면서 이런 저런 이름들을 놓고 고민했었다고 한다. 최후까지 검토되었던 이름은 세 가지였는데, 하나는 사리첩(빠르고 민첩하여 승리한다), 구체포(온 몸으로 공을 잡아낸다), 신의손(신이 준 손) 이었다고 하는데 결국 낙점을 본 것은 신의손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신새벽에 갑자기 신의손이 생각난 것은 순전히 노무현 때문이다. FTA때문에 청와대에서 노무현과 심상정이 설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노무현은 "한국인의 손은 신의 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이론적으로 안 되는 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발언했단다.

 

예전에 DJ가 한국사람들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탁월한 적응능력을 보이므로 세계 곳곳에 진출해서 활동해야한다는 발언을 했을 때만큼이나 희안한 발상이다. 한국사회가 해병대나 공수특전단도 아닌 다음에야 국가정책의 막중한 기로에 선 이 상황에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발언을 한다는 것은 거의 개념 버로우 상태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샤리체프, 즉 신의손이 한 말을 노무현은 새겨 들어야 한다. 골을 먹으면 그 순간 모든 것이 골키퍼의 책임이 된다는 것. 신의손께서도 이렇게 말했다. 다시 말하면, 그 엄청난 중압감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 다지고 노력하고 몸을 던진 결과가 오늘의 신의손인 거다. 그 과정은 완전 생략하고 "한국인의 손은 신의 손"이라고 하는 거, 이거 이빨도 이렇게 까면 욕처드셔야 한다.

 

46살이 되어 경남FC의 골키퍼코치를 하고 있는 신의손이 노무현의 발언을 들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저 쉑이 남의 이름 가지고 장난질치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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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7 07:05 2006/08/27 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