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추첨제 할까?

예전에 도올이 그런 말을 했다. 노태우의 치적 중 하나는 개나 소나 아무나 대통령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라고. 도올이 했던 이야기 중 유일하게 맞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하긴 도올 역시 개나 소나 아무나 철학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람이긴 하다만.

 

"참여정부" 최대의 치적이라고 자화자찬했던 사학법 개정이 다시 재개정될 위기에 놓였다. 박근혜의 뚝심, 이번만큼은 평가를 해줘야겠다. 한나라당 내 정적들의 궁시렁거림을 개무시하고 그 추운 날 차가운 아스팔트바닥을 누비던 박근혜의 뚝심이 결국 노무현으로 하여금 대승적인 여당의 양보를 거론하게 만들었다.

 

대승적이라는 말이 이럴 때도 쓰인다는 것이 참 희안하지만, 건 그렇고. 여당이 한나라당의 주장에 따라 사학법 재개정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객관적 상황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당이 그동안 어디 내놓고 우리 잘 한 거 있다고 주장할 건이 그거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정되었다는 사학법 자체 역시 이미 이리 찢어지고 저리 찢어서 걸레를 만든 상황이라 내막을 아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마저도 자랑할만한 것이 아니다.

 

이걸 "대승적으로 양보"하라고 할 때는 그만한 딜이 있기 때문이다. 급부가 없는데 무턱대고 최대 치적을 물리라는 이야길 할리가 없다. 그럼 그 반대급부가 뭘까?

 

아직 구체적으로 그 반대급부가 뭔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경제문제, 유가문제, 양극화 등을 이야기했다는 전언으로 미루어 딜의 내용 중에 비정규직 문제가 끼어있지나 않을지 촉각이 곤두선다. 사학법 줄께, 비정규직법 밀어다오. 이렇게 될까 심히 걱정되는 상황이다.

 

사실 상황이 이정도 되면 장래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비정규직 신세를 전전하다 급기야 제대로 된 일자리 한 번 겪어보지 못한 채 사회생활을 접어야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난리 굿을 해도 시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잠잠하다. 이런데 신경쓸 시간에 토익 참고서 한 페이지라도 더 봐야겠다는 충실한 모범생들로 "대~~한민국"은 꽉 찼다. 비정규직 법안문제로 나라가 한 번 뒤집어졌던 프랑스 같은 일은 여기서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모범생들만 사는 나라에서 대통령을 선거로 뽑을 이유가 없다. 어차피 모든 일은 대승적으로 처리될 것이고, 자기 목줄 밑에 칼날이 들어와도 토익점수 몇 점 더 받을 수 있다면 신경쓰지 않을 사람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정책이라는 것은 관료 몇 사람이 다 알아서 해도 별로 어려움이 없다.

 

자, 그렇다면 5년마다 한 번씩 난리를 치면서 누구 뽑을까 궁리를 하고 서로 싸움질 하며 대통령 선거 하지 말고 기냥 5년에 한 번씩 전 국민 중의 한 명을 추첨해서 대통령에 앉혀놓자. 돈도 줄이고, 당첨된 사람은 로또 대박맞은 기분으로 인생역전 하는 거고, 다른 4800만 인민들은 또 5년을 기다리며 희망과 흥분 속에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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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9 14:51 2006/04/29 1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