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표

전의경에게 이름표를 착용하고 집회시위 진압을 하도록 하는 방침을 고려중이라고 경찰이 발표했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이를 주장해왔다고 한다. 실명이 보여지는 상황이라면 아무래도 과잉진압 등을 하기가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는 것이 이름표 착용 찬성측의 생각이다. 한편 반대측의 논거는 전의경의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부당히 그 이름이 노출될 경우 불측의 침해가 일어나게 될 수 있다는 거다.

 

시민단체들이 그간 시위진압 전투경찰은 이름표를 부착하라고 요구해왔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게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강하다. 거기 더해서 혹여 전의경을 해체하지 않는 대신 일정하게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경찰대응이 먹혀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또는 이런 식으로 문제를 일으킬 경우 요즘 들어 부쩍 그 목소리가 높아져 가는 폭력시위 중단 내지는 엄중처벌 요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몸싸움하다가 방패로 머리를 찍히거나 곤봉으로 심하게 맞을 때, 전경 옷에 이름표라도 있었으면 죽기 살기로 그 이름표라도 떼어놓을텐데 하는 생각 한 두번 한 것이 아니다. 전투경찰에게 이름표를 달아서 내보내라고 주장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반대로 전투경찰 역시 집회시위 나온 사람들이 이름표 달고 나왔으면 하는 생각 했을 수도 있다. 바로 사진 찍어놨다가 증거물로 제시하면 얼마나 간단하겠는가?

 

한 20년 전쯤이라면 이런 식의 방안도 꽤 실효성 있는 과잉진압 대책이 될 수 있었을 거다. 20년 전에는 그때까지도 군사독재시절이었다. 이름표 달고다니라는 요구를 해봐야 먹히지도 않았겠지만 그 요구 자체로 하나의 운동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 주장되어야할 것은 전의경의 해체이지 전의경에게 이름표 달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동안 시간 있을 때마다 전의경을 시위진압에 내보내지 말고 월급 제대로 받고 다니는 경찰이 진압나오라고 요구했던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경찰은 자신이 경찰직을 그만두기 전까지 그 직업에 종사하는 직업인이다. 과잉대응이 발생하여 사고가 터질 경우 사건발생에 책임이 있는 경찰은 자신이 경찰에 재직하는 동안 어떤 형식으로든 그 사건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 감봉이 되었든 정직이 되었든 인사이동이 되었든, 심할 경우 파직이 되거나 처벌을 받게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의경은 제대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의무복무 중에 발생한 일, 기간 채워 제대하면 말 그대로 과거를 묻지 마세요가 되는 거고, 징병제 체제에서 본의아니게 끌려간 것(의경 지원도 마찬가지다. 징병제 아니었으면 의경 지원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고, 의경제도 자체가 젊은이들 끌고가 공짜로 부려먹기 위해 만든 제도이므로 군대 끌려가는 거나 하등 다를 바 없다)도 모자라 사고책임까지 지라고 하면 이 청춘들, 완전히 국가에 의해 신세 조지는 형국이 되어버린다.

 

전의경 진압복에 이름표 붙여서 나오는 것이 과잉진압 해소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다. 그거 가지고 싸울 필요도 없다. 전의경 부모님들, 매일매일 전쟁터에 자식 보낸 것 같은 불안감에 떨고 계시느니 차라리 이 기회에 전의경제도를 철폐하라고 요구해주셨으면 어떨까? 단체들이야 뭐 그전부터 전의경제도 해체하라고 주장하고 있었으니까 이번 기회에 경찰청은 장난치지 말고 전의경제도 해체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해주면 어떨까?

 

언발에 오줌누는 것도 한 두번이다. 날 추운데 계속 그짓 해봐야 발 썩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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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6 10:13 2006/01/16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