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이는 검경의 밥그릇 싸움

[미디어참세상에 올린 글입니다] ==================================================================== 에피소드 “경찰의 적극적인 미아찾기 활동으로 2004년(상반기)은 장기미아 없음” 이 멋지고 자신 있는 결론을 보라! 경찰, 갑자기 믿음이 듬뿍 가지 않는가? 지난 6월 말에 열린 미아찾기 시스템 개선 실적 간담회에서 경찰이 자료로 내놓은 성과이다. 어디 이 뿐이랴? 올 초 3개월 간의 집중단속을 통해 “장기미아사건 전면 재수사 및 앵벌이 등 아동관련 범죄수사 4,074건 검거, 이 중 2,070건 구속”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내었으며, 이 기간 중 18명의 어린이를 가족에게 인계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0. 0-1. 경찰은 장기미아찾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시설 수용 미아 및 장기미아 부모들의 유전자 샘플을 채취한 후 유전자 정보를 분석하여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이를 잃고 가슴 저미는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부모들, 그리고 부모를 잃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경찰이 발 벗고 나서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발 벗고 뛰는 것도 모자라 속옷까지 벗어버리는 경찰이다. 뜬금없이 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0-2. 유영철 사건이 터지고 나자 밤거리에 나돌아 다니기가 겁난다는 하소연이 들려온다. 민생치안에 밤낮을 잃고 동분서주하고 있는 대~한민국 검찰들, 이 민중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과학수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과학수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과학수사’, 누가 말리나? 과학수사하는 것은 좋은데 뜬금없이 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1. 앞서 우리는 올 상반기 미아찾기와 관련한 경찰의 혁혁한 공로를 보았다. 불과 반년 만에 초동수사 강화하고 전담반 설치하고 열심히 뛰니까 이런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결과를 발생시킨 경찰이 지금까지 뭘 하고 있다가 장기미아 찾는다고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한다고 난리를 치는 건가? 지난 세월동안 자식 잃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부모들이 애간장이 끊어지도록 울며불며 하소연 할 동안 집중단속은커녕 초동수사 강화조차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흘려들었던 것이 경찰이다. 검찰이라고 다르지 않다. 유영철 사건 때문에 시민들이 불안해하는 거, 그거 검찰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정작 유영철 잡은 결정적 계기가 ‘과학수사’ 덕분이었나? 천만의 말씀이다. 유영철 잡은 것은 피해자들을 고용하고 있던 업소의 업주들이지 ‘과학수사’가 아니었다. 업소 주인들이 신고를 했고, 그것도 모자라 수사관들이 어영부영하고 있는 사이 자기들이 직접 격투를 해서 유영철을 잡아냈던 거다. 허구한 날 ‘과학수사’ 노래를 부르고 있던 검찰이 잡은 것이 아니란 말이다. 2. 몇 달 차이를 두고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의 필요성을 절절히 호소하는 경찰과 검찰은 정작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관할권을 둘러싼 문제를 제기하면 딴소리를 한다. 겨우 미아 찾는다는 구실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만들 준비를 하고 있던 경찰은 갑자기 범죄자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떠드는 검찰을 보면서 신경질을 낸다. 후발주자(?)인 검찰은 경찰 눈치봐가면서 어떻게 해서든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관할권을 가져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검찰과 경찰의 음흉한 속내가 들여다보인다. 이들에게는 마음고생하고 있는 미아부모나 미아, 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시민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가 더 확실한 명분을 가지고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관리 권한을 장악하느냐, 여기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2004년 상반기, 미아를 단 한 명도 발생시키지 않을 수 있었던 경찰이 지금까지 미아찾기를 방치해오다가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한 전초단계로 수사강화 운운하는 현상. 스무 명이 넘는 여성들이 실종되는 동안 단서 하나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가 기껏 업주들에 의해서 붙잡힌 유영철을 계기로 갑작스레 범죄자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주장하는 검찰. 국민의 안전과 사회질서의 확립을 위해 과학수사를 고민하는 고뇌에 찬 검경의 모습이 떠오르는가? 아니면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관할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검경의 치열한 밥그릇 싸움이 연상되는가? 3. 정보의 관할권을 가지고 검경이 부딪친 것은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이전에 이미 전력이 있는 일이다. 다름 아닌 지문정보 관할의 문제였다. 60년대부터 70년대 내내 경찰과 검찰은 서로 자신들이 지문정보를 가지는 것이 낫다는 주장을 계속 해왔다. 관할권을 놓고 이렇게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것은 그 관할권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밥그릇이기 때문이다. 일단 정보수집과 활용의 업무를 가지게 되는 전담기구가 구성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관리권한을 가지고 있는 일정직급 이상의 임원이 배치되게 되고, 인력이 투입되며 예산이 투하된다. 여직까지 없던 상당한 규모의 조직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 결과 전체 조직의 덩치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말빨 또한 세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검경이 득달같이 달려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 과정에서 눈여겨 보아야할 것은 밥그릇 싸움의 과정에서 국민의 개인정보는 점차 포괄적으로 국가기관에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6~70년대 검경이 지문정보의 관할권을 놓고 각축을 벌이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주장되었던 것은 지문날인을 할 사람들의 범위를 전 국민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관할권을 가지고는 머리 터지게 싸우던 검경이 지문날인대상자의 확대에는 똑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다. 검경은 모두 외국의 사례를 들면서 유전자 샘플채취 대상 및 데이터베이스 저장정보 범위의 확대를 계속 주장한다. 전국민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만들면 가장 좋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있다. 왜? 그래야 밥그릇이 사정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 전초전으로 이미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내에 ‘DNA 분석과’를 독립 설치했다. 올해 중반의 일이다. 4. 일단 한 번 설치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는 종국에 그 범위를 무한확장하게 된다. 그것은 다음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건 어느 나라던 공식적인 수순이다. 4-1. 감성에의 호소 졸지에 자식을 잃어버리고 생사조차 몰라 애통해하는 부모의 모습. 누구나 가슴 아픈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 부모들의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 경찰은 유전자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럴듯한 논리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다. 강력범죄,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행범들로 인해 두려워하는 시민들. 공포는 전염된다. 이 공포감을 없애기 위해 검찰은 유전자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과학수사를 위해서란다. ‘과학’이라는 단어는 신비감과 함께 신뢰감을 부여한다. 4-2. 실적의 선전과 통계의 마술 일단 구축된 데이터베이스는 어떤 형태로든지 일정한 성과를 거두게 되어 있다. 그 성과는 사실 데이터베이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아니다. 그래도 상관없다. 모든 성과는 데이터베이스의 실적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과학’적으로 통계작성이 이루어진다. 대중을 현혹하기에는 이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그런데 이 선전과 통계의 바로 뒷장에 ‘더 많은 데이터는 더 많은 효과를 가져온다’는 호소가 덧붙여진다. 4-3. 법제화 다음 단계로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법률적 정비가 동원된다. 더 많은 효과, 즉 더 이상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부모가 없도록 하기 위해, 모든 시민들이 안심하고 밤거리를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체 국민에게 기속력이 미치는 조문이 필요하게 된다. 죄 없는 자라면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이데올로기가 확산된다. 그리고 법제화의 필요성에 대해 모든 언론과 지식인들을 동원한 선전선동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법률이 만들어진다. 4-4. 내놓고 뺏어가기 전 국민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는 법률이 완성되면 그 때부터는 감성에 호소할 필요가 없다. 법대로 처리하면 될 일이다. 법률에 정해진 대로 따르지 않는 자들은 처벌을 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아니면 사회적 활동에 지장이 있도록 하면 된다. 미아 부모의 눈물을 보여줄 필요도 없고, 강력사건의 두려움을 조장할 필요도 없다. 법대로 하지 않으면 저만 손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4-5. 이런 일이 정말 있는지 궁금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그 표본이 있다. 바로 전 국민 지문날인제도이다. 만 17세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열손가락 지문을 강제채취하게 된 과정이 바로 저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유전자은행의 효율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오던 영국에서는 급기야 전 국민 유전자 정보은행 구축이 논의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차원에서 법제화되지는 않았지만 상당수 주들이 개별적으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의 범위를 확대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5. 유전자 정보를 활용해서 ‘과학수사’하는 거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그러나 ‘정보의 일괄적인 데이터베이스 저장’과 ‘정보의 활용’을 동일시하는 장난질은 그만하기 바란다. 더구나 그 장난질을 위해 고통을 겪고 있는 미아부모들을 이용한다거나 공포에 떨고 있는 시민들을 이용하는 파렴치한 짓들을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지들 밥그릇을 위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이용하는 위선을 언제까지 저질러야 속이 편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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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2 13:37 2004/10/02 1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