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서리

어린 시절을 촌에서 보낸 30~40대들은 다만 한 가지씩이라도 '서리'라는 것을 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군바리 전문용어로는 '위치이동' 되겠고 법률용어로는 '절도'되겠다. 그런데 이 '서리'라는 행위가 예전 시골에서는 그렁저렁 용인이 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동네 접장(훈장)하시던 어르신이 계셨는데, 이 냥반 풍채가 남달리 시원한 분이셨다. 칠순을 넘긴 연세에도 꼿꼿한 허리에 새벽같이 논밭 다 둘러보시는 생활이 하루도 빠짐이 없는 분이셨다. 특히 가슴께까지 늘어진 허연 수염이 보기 좋아 동네 꼬맹이들에게 "수염할아버지"라는 별칭으로 통하던 분이다.

 

하루는 달 밝은 밤이었는데, 동네 청년 몇이 이 어르신 집으로 들어가 닭을 한마리 '서리'를 하려했다. 새벽녘 잠귀밝은 노인네가 무슨 소리가 들리자 "게 누구요?" 했더만 이 청년들, 에고 틀렸구나 하고선 "아무갭니다..."하고 고하자, 수염할아버지 대번에 이놈들이 왜 들어왔는지 눈치를 채시고, "장닭하고 씨암탉은 냄겨놓게" 하셨다나?

 

과수원에서는 사과서리, 배서리 재미 있었다. 그래봐야 추수 다 하고난 후 나무에 까치밥 남겨놓은 거 떨어가는 거지만 "훔쳐 먹는 사과가 맛있다"는 사실은 마빡에 새똥도 채 벗겨지지 않은 어린 촌놈들도 이미 아는 사실이었던 거다. 한번은 친구넘 집에 사과서리를 갔다가 그 집 개에게 엉덩이를 물려버렸다. 복수심에 불탄 우리 악동들, 며칠 후 그 개를 '서리'했다. 가을 보신탕도 꽤 괜찮은 맛이다.



워낙에 술을 좋아했던 행인과 시골 친구들. 직장생활하다가 설날 명절이라고 간만에 만나서 매일 술을 퍼마시고 돌아다녔다. 연휴 끝날때쯤 되었던가? 눈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애들 주먹만한 눈송이가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세상 천지가 온통 하얗게 변하고 집집이 피어오르는 흰 연기가 촌동네의 이른 저녁상 준비를 알리고 있었다.

 

휴가 끝나고 또 먹고 살려고 떠나고 나면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기 어려운 처지라 그예 친구놈들이 죄다 모였다. 눈길을 헤치고 기차에 올라 읍내로 나가 대낮부터 술추렴을 하고, 통근열차 타고 들어와 동네 술도가에서 막걸리 거나하게 먹고, 그랬는데도 양이 차질 않는다. 모인 놈들은  행인과 동네친구 둘, 그리고 여주 사는 친구놈 하나 이렇게 넷이었다.

 

일단 갈 곳도 없고 해서 같은 고향 친구놈인 C의 집으로 갔다. 노인네들 계시고 하니 집에서 먹기는 그렇고 영 엄두가 나질 않는데, 이넘이 지네 과수원 농막으로 가잔다. 일동 전원 찬성. 한 겨울 과수원 농막으로 가서 얼어죽을려고 환장을 했나하고 궁금하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농막은 일반 과수원과는 다르게 지어져 있었다. 사방 흙벽이 막혀있고 구들장까지 있다. 장작 몇 짐 때면 방바닥이 후끈거려 잠을 못잘 정도다.

 

해서 댓병짜리 소주 몇 병과 차례지내고 남은 약과며 전, 과일 등속을 싸서 올라갔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고, 문풍지를 울리는 바람소리가 휘파람 소리같이 울리고, 분위기는 끝장이었다. 그러니 술이 저절로 넘어가지 않겠는가? 네 청춘이 둘러 앉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날밤을 새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새벽녘에 안주가 똑 떨어지고 말았다. 술은 아직도 댓병짜리가 두어병 남아있는 상황이었는데, 가지고 올라간 안주가 워낙 부실했던 거다.

 

왠만하면 여기서 끝을 내겠지만 이게 정초 마지막 술자리가 될 것이라는 안타까움으로 인하여 어떻게든 나머지 술을 다 퍼마실 궁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도통 방법이 없는 거다. 그 때였다. C라는 넘이 은근히 말을 꺼냈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있는데..." 다들 귀가 솔깃해서 그게 뭐냐고 다그쳤다. "닭서리를 하는 거지... 불도 있겠다, 여긴 취사도구도 있걸랑. 그러니 어디서 닭 한 마리 줏어와서 해치우면 안주야 뭐 그럴싸하지 않겠냐?" 그럴싸라니 이 신새벽에 닭고기와 소주면 금주미효가 따로 있냐, 춘향이 빠진 변학도 잔치상 정도는 되지 않겠냐 그러면서 죄다 희색이 만면했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눈이 어지간히 와야 출장 닭서리를 할 터인데, 눈이 이렇게 많이 와서야 과수원 내려가기도 힘든 판국이었다. 다시 묘안을 내놓는 C. "가까운데 닭장이 하나 있긴 있는데..." 그게 어디냐, 당장 가겠다 난리가 났다. "어디긴 어디야, 우리 집이지." 아, 이게 제정신인가... 지네 집 닭서리하자는 건데, 이게 과연 닭서리냐, 아니면 그냥 지꺼 지가 먹는 거냐... 순식간에 혼란이 왔다. 그러나 취한 정신에 세세한 생각을 했을리도 만무하고 일단 술을 더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그 외의 이성은 죄다 마비가 된 상황이었다.

 

아, 이 씨방새야 진작 얘기하지 어쩌구 하면서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마침 이미 눈은 그쳐있었고,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듯 개어있었다. 차가운 겨울바람 스쳐가는 하늘 위로 별이 손만 닿으면 한웅큼 긁어낼 정도로 깔려 있었다. 달빛이 없는데도 눈빛이 워낙 쌔서인지 랜턴을 켜지 않고도 발 아래가 밝았다. 네놈은 나는 듯이 과수원 바로 밑에 있는 C의 집으로 달려갔다.

 

집지키는 개들이 먼저 알아챘다. 으르르 거리고 있는데, 지들 주인이 다가가서 머리를 만져주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잠잠해졌다. 개들을 조용히 시키고 뒷뜨락으로 들어가서 닭장 문을 열고 횃대 위에 앉아 잠들어 있는 닭을 한마리씩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이 커질라고 그랬는지 한 두마리로 끝을 냈어야 하는데, 이놈들이 각 한마리씩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술이 거나해진 판국인데다가 빨리 튀는 것이 몸보신의 상책이어서 정신없이 농막까지 올라와서야 각기 한마리씩 챙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큰 닭들은 없고 죄다 중닭들이었다. 이게 이래뵈도 시골에서 지렁이랑 지네랑 이런 거 먹고 큰 토종닭들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겠지 하고선 죄다 아궁이 앞에 앉아서 닭 목을 끊고, 눈녹인 찬물에 피를 뽑고, 생닭의 털을 뽑아내고, 내장을 긁어내고는 나뭇짐 쌓아놓은 곳에서 적당한 나뭇가지 끊어다가 몸통을 꿴 다음 그냥 아궁이에 밀어넣고 굽기 시작했다. 물론 허파와 간은 따로 빼놓았다. 그 맛이 또 일품이니까.

 

구워지는 족족 살을 발라 먹으며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찬 바람 맞고 와서 다시 뜨거운 아궁이 불 쬐고 난 다음 빨아마시는 소주 맛은 또 여간 기가 찬 것이 아니었다. 먹성 좋은 청년 넷이서 중닭 각 1마리씩 해결하고는 댓병짜리 소주 죄다 비우고서야 잠이 들었다. 저 아래쪽에서 아침 홰를 치는 장닭의 숭고한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 것이다.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엄청 소란해진 상황때문이었다. "이놈의 쉑기덜 다 이리 나와, 이넘덜~~~!!" 고래 고래 큰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 이거 무슨 사단이 난 거 아닌가 해서 얼핏 일어나보니 딴 넘들은 그냥 비몽사몽이다. 마구 흔들어 깨우고 있는데, 방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불쑥 들어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C의 아버지였다...

 

"에라, 이 망나니 같은 넘덜, 썩 안일어나?" 지게작대기가 몸뚱이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고, 머리 위로 휙휙 지나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는다는 생각이 퍼뜩 지나갔다. 두드려 맞고 있던 친구넘들, 첨에는 "아, 쉬파 머여?" "야, 니 죽을래?"하면서 정신을 못차리다가 지게작대기를 관운장 언월도 돌리듯 하는 사람이 C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화들짝 놀라서 용수철 튀듯이 일어났다.

 

아마 이게 이렇게 된 판이었다. 새벽 장닭 우는 소리에 소피라도 보실 요량으로 나왔는데 마당에 발자국이 어지럽다. 이게 왠 일이냐 하고 발자국을 따라가니 닭장에 닭이 휑 하니 비었다. 얼른 지게작대기 들고 발자국을 따라 올라가니 아니 글쎄 이게 자기 집 과수원 농막으로 들어가지 않았는가? 아궁이를 들여다보니 한두마리도 아니오, 쌓인 닭털로 이부자리도 하나 만들정도니 어르신 열불이 터져버린 것일게다.

 

"어이구 아버지 진정하시고..."하고 말리자 이 아버지, "진정? 에라 이 빌어먹을 넘덜아, 내가 지금 지서에 진정서 넣게 생겼다. 이넘덜아, 니덜이 도둑넘들이지~~!!" 아하... 이렇게 도둑이 되는구나... 그 순간이었다. 여주살던 친구넘이 횅 하니 밖으로 튀어 나갔다. "아니, 저, 저, 저놈이... 네 이놈, 게 섰거라~!!"하고 아버지께서 지게작대기를 들고 밖으로 따라 나가신다. 이건 뭐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C를 남겨놓고 행인과 또 한넘의 고향친구도 방문을 박차고 나가 아버지가 뛰어가신 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그 길로 서울행 새벽 기차를 타고 날라버렸다...

 

후일담이지만 그 C라는 친구. 아버지가 화가 풀릴 때까지 눈 쌓인 마당에 꿇어앉아 있다가 폐렴 걸려서 골로 갈 뻔 했단다. 몇 해 전에 가서 찾아뵜는데, 그 때 그 도둑놈들 중에 행인이 끼어 있었는지 어쨌는지 기억이 없으신듯 해서 한 번 꽉 안아드리고 왔다. 많이 늙으셨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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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9 01:14 2004/09/29 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