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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노예들 - 번역

지난 2001년 앰네스티 소식지 에 번역해서 올렸던 기획기사... 

다른 파일을 찾다가 우연히 열어보게 되었음...

작년인가 아동노동 착취에 의한 초콜렛 불매 운동이 벌어진다고 했을 때 이 기사를 떠올렸다가 까먹고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여러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포스팅.

 

나름 21세기에 노예제도 반대 운동이 필요할 거라고 누가 상상 했을까?

 

 

" 이러한 신종 노예제도의 특징은 착취의 기본적인 경제 공식에 극적인 변동을 초래했다는 데 있다.  오늘날의 노예 가격은 인류 역사의 그 어느 시기보다 낮다. 1850년에 앨라바마에서 천 달러(현재 가치로 5만 달러) 했던 농장 노예를 오늘날에는 100달러 정도면 살 수 있다. 이러한 가격 하락은 노예제도에서 얻는 이윤 뿐 아니라 노예와 주인 사이의 관계도 변화시켰다. 과거의 값비싼 노예는 보호해야할 투자대상이었지만 오늘날의 노예는 값싸면서 간단히 폐기해버릴 수 있다. "

 



노예노동은 세계 경제에 깔끔하게 들어맞는다. 케빈 베일즈(Kevin Bales)는 이제 비용-편익 분석 그 너머를 보아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2001년) 4월, 전 세계 언론은 베닌의 ‘노예선’을 집중 조명했다. 그 배에는 200명의 어린이 노예들이 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가봉과 카메룬에서 입항을 거부당했다. 그런데, 조사단이 배치되는 이틀 동안 배가 사라졌고, 이 어린이들의 운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침내 배가 다시 나타나 베닌에 정박했을 때, 거기에는 겨우 43명의 어린이들과 약 100여명의 어른들이 타고 있었다. 조사 끝에, 그 어린이들의 대부분이 가봉에서 일하기 위해 인신매매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선장은 어떠한 연루 가능성도 부인했다. 베닌 정부는 또 다른 어린이 노예선의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하나도 찾을 수는 없었다. 또 다른 어린이 노예들이 있을까? 또 다른 노예선이 있을까? 아무도 그 답을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이러한 혼란스러운 사건이 베닌과 가봉 사이에서 일어나는 통상적인 인신매매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국제 언론에게는 뉴스거리가 될 만한 일이겠지만 이 곳 서아프리카 (한 때 노예 해안 Slave Coast라고 불렸던)에서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 노예 교역은 지속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수의 어린이들이 국경 안팎에서 매매되어 가정과 시장, 농장에서 값싼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유니세프는 매년 20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서/중부 아프리카에서 인신매매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린이 노예는 베닌과 토고 같은 국가에서 중요한 수입원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부모들은 속임수에 현혹되어 아이들을 노예상에게 넘겨준다. 지역 유니세프 담당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람들이 찾아와 가족들에게 돈을 쥐어 주면서 이야기해요. 아이들이 농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 집에 돈을 부쳐줄 수 있다고... 그들이 가족들에 주는 돈은 겨우 15-30달러 정도에 불과한데, 그리고 나면 부모들은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요.’


아프리카 해안의 노예선이 21세기 벽두에 충격을 주고 있다지만, 그것은 1945년 이후 급속히 성장하면서 그 특성이 극적으로 변한 세계 노예 시장의 아주 작은 일면을 보여줄 뿐이다.
세 가지 요인이 이러한 급속한 변화를 촉발시켜왔다. 첫째, 세계 인구는 1945년 이래 Majority World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의 폭발적 성장과 더불어 세 배나 증가했다. 둘째, 경제 변화와 세계화는 가난한 국가의 농촌 주민들을 도시로 끌어내고 이들을 빚더미에 앉혔다. 이렇게 가난에 빠져든 취약 계층으로 인해 잠재적인 노예들의 대풍년이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부패 또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법과 질서를 책임져야 할 자들이 뇌물에 눈이 멀면서, 노예상들은 아무런 제재 없이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신종 노예제도의 특징은 착취의 기본적인 경제 공식에 극적인 변동을 초래했다는 데 있다.  오늘날의 노예 가격은 인류 역사의 그 어느 시기보다 낮다. 1850년에 앨라바마에서 천 달러(현재 가치로 5만 달러) 했던 농장 노예를 오늘날에는 100달러 정도면 살 수 있다. 이러한 가격 하락은 노예제도에서 얻는 이윤 뿐 아니라 노예와 주인 사이의 관계도 변화시켰다. 과거의 값비싼 노예는 보호해야할 투자대상이었지만 오늘날의 노예는 값싸면서 간단히 폐기해버릴 수 있다.


 타이의 집창촌으로 팔려 간 14세 소녀의 경우는 그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소녀를 처음 사온 가격은 1천 달러가 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소녀가 그 곳을 빠져나가려면 그 네 배에 해당하는 돈과 집세, 식대, 의료비를 갚아야만 한다. 소녀가 하루 밤에 10-15명의 남자들을 상대한다고 해도 허위 장부를 통해 빚은 늘어만 가고, 그곳을 결코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주인’이 소녀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엄청난데, 심지어 800퍼센트에 이르기도 한다. 소녀의 연간 총 매출, 즉 남자들이 화대로 지불한 돈은 7만 5천 달러가 넘지만 그녀는 단돈 1페니도 볼 수가 없다. 포주들은 이러한 수익을 이용해서 경찰의 단속을 피해가며, 사회지도층이나 자치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집창촌에는 에이즈 감염이 흔하기 때문에, 소녀를 5년 정도 부려먹으면 포주의 운이 좋은 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녀들의 몸값이 매우 싸기 때문에 언제라도 쉽게 대체할 수 있다. 소녀가 아프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혹은 성가신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저 처분해버리면 그만이다. 


타이의 집창촌은 새로운 노예제를 볼 수 있는 곳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노예들은 단순하고 기술이 필요 없는 전통 노동에 주로 쓰인다. 그래서 대부분이 농업 분야에서 일하지만, 벽돌 만들기, 채광/채석, 직물 짜기, 가죽 작업, 성 매매, 보석과 귀금속 가공, 옷이나 양탄자 제조 등에도 종사하고 있다. 혹은 집안 머슴으로 일하거나 벌목, 숯 굽기, 상점의 점원으로 일하기도 한다. 이러한 노동의 대부분은 지역 수준에서의 판매와 소비를 목표로 하지만, 노예노동으로 만들어진 상품이 세계화된 경제로 퍼져나가 서구의 가정에서 끝을 맺기도 한다.


 연구들은 양탄자, 설탕, 보석 같은 몇몇 국제적 생산물들이 노예 노동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혀왔다. 우리는 알지 못한 채로 노예가 만들어낸 상품을 사용하거나 노예제도에 투자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노예들이 수확한 코코아는 우리가 사먹는 초콜릿으로 변한다. 인도, 파키스탄, 네팔의 어린이 노예들이 만들어낸 양탄자는 주로 유럽과 미국으로 수출된다. 전 세계적으로 노예 노동의 가치는, 노예 생산 상품의 엄청난 국제 교역량을 포함하여, 약 123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응 조처를 취하는 북구의 기업이나 조직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무역 단체들은 어떤 생상품의 근원까지 복잡한 경로를 추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거나, 퉁명스럽게 자신들의 책임이 아닐 뿐이라고 말한다. 세계무역기구는 강제 노동에 의한 생산을 금지하는 ‘사회적 조항’을 도입할 능력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공정 무역(fair trade)’ 사업이 착취의 중요한 대안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노예 노동자들의 요구를 직접 다루지는 않는다. 분명, 노예제도의 경제학과 노예제 근절의 가장 효과적인 전략에 대해 답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다.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인신매매의 증가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부는 연간 5만 명 이상이 미국으로 인신매매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유엔 국제범죄 예방센터는 범죄조직들에게 인신매매가 마약과 무기 거래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소득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재 믿을만한 자료가 없다는 것은, 정부들이 관련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효과적인 금지 방안을 개발하며, 인신매매 희생자들을 해방시키면서 재활의 방법을 마련하거나, 법률을 제정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연구를 수행하는데서 난항을 겪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업 또한 최근에 폭로된 공급업자들의 노예 노동에 대해 조치를 취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작년에는 코떼 디봐르 코코아 농장의 노예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져, 초콜릿 불매 운동을 일으켰다. 코떼 디봐르는 전 세계 코코아의 약 절반을 생산한다. 일부 지역 활동가들은 전체 농장의 90퍼센트가 노예 노동을 사용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초콜릿 제조 회사들은 자체 조사를 약속해왔었다.


 코떼 디봐르의 상황은 현대 노예제도의 많은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코코아 농장의 노예들은 대개 말리 출신이다. 일자리를 몹시도 원하던 데다, 좋은 일자리를 주겠다는 약속에 속아 사람들은 마을 장터에서 1인당 40달러의 가격으로 팔려온다. 그들을 소유한 농장주들은 시장의 독과점 상태를 종식시키려는 세계은행의 압박 때문에 국제 코코아 가격의 심각한 하락에 직면해 있다. 한편, 코떼 디봐르는 세계은행과 다른 채권자들에게 135억 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국가 보건의료 예산의 다섯 배가 넘는 빚을 갚아야 하는 이 나라에, 주요한 현금 소득원인 이주 노예노동자들까지 보호할 수 있는 자원이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서아프리카의 노예상들은 노예의 수입은 물론 잘 사는 나라들로 수출도 한다. 카메룬과 가나의 교육받은 젊은 여성들은 미국에서 좀더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말에 현혹되어 워싱턴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또한 많은 수의 나이지리아 여성들은 이태리에서 성매매에 내몰리고 있다. 아프리카 해안에서의 이러한 노예 수출입은 많은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에서 재현되고 있다.


 파키스탄과 인디아, 북아프리카, 동남아시아와 중남미에 걸쳐 2천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보다 전통적인 채무 노역 방식의 노예로 일하고 있다. 3대나 4대째 노예 생활을 계속해온 이들은 노예 수출시장에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다. 강제 노역에 대한 법들은 엄격하지도 못한데다 집행도 잘 되지 않고 있다. 경찰들은 흔히 그런 법에 대해 무지할 뿐 아니라, 브라질이나 타이에서처럼 노예 노동 그 자체에서 수익을 얻기도 한다.
 그 결과, 재원도 부족한 비정부 기구들이 종종 정부의 저항에 직면해가면서 노예 해방의 주력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해방은 노예들을 자유의 삶으로 돌려보내는 첫 단계에 불과하다.

 

 베닌의 노예선에서 구조된 43명의 어린이들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자. 그들의 미래에 관한 질문은 그들의 최근 과거에 대한 것만큼이나 모든 면에서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많은 어린이 노예들은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받아 왔으며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들 대부분은 자유에, 그리고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시련에 적응해야 한다. 다행히 재활프로그램들이 이들을 도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에 관여하는 정부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현대의 노예제도와 관련해서 좋은 소식이 있다면, 언론의 관심과 대중의 인식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이다. 노예선의 사례가 국제적으로 다루어진 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유엔은 유럽연합에서 했듯 노예와 인신매매에 대한 몇 가지 새로운 대책들을 주도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노예 반대 운동 단체들이 급격한 관심을 끌고 있다. 노예 반대 국제기구의 한 대표자는 최근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수년 동안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이제 노예반대 국제 운동의 일부가 된다는 것에 기운이 납니다.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있기는 하지만, 이 운동은 날마다 성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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