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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정 (1)

 

# 블레이드 러너 (드니 빌뇌브 감독, 2017)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으로 나온다 그래서 대실망했는데, 의외로 너무 탁월한 선택이었음
드니 빌뇌브 감독을 SF 장인 인정해주기로 나 혼자 결심함.
 
일단 음악과 그 아득하고 황량한 풍광의 완벽한 계승과 발전에 일단 10점 만점 주고,
꼼꼼한 플롯과 개연성 있는 스토리에 다시 10점을 주겠네...
도대체 음악은 어떻게 그 핵심을 가져오면서 이토록 색다르게 변주한 것일까... 난 오리지널 버전의 OST만 들어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사람이라고......
 
영화 후반부, 드디어 데커드가 등장해서 '내가 니 에비다' 할까봐 엄청 노심초사 ㅋㅋㅋ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음.
데커드보다는 예상 못했던 레이첼의 등장이 너무나 반가웠지 뭔가...
 
인터뷰들 보면 해리슨 포드는 아직도 데커드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니, 배우가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는 이 웃픈 상황 ㅋㅋ
 
이 영화를 둘러싸고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한 비판들이 꽤나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그게 좀 과도한 억측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음.
어리버리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는 K, 그저 구조를 기다리는 무력한 존재로 그려진 데커드에 비해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인물들은 모두 여자 아니였나 말여...
세상의 구체적 존재로 물화되기를 시도하는 조이, 우리 LAPD 멋쟁이 국장님은 너무 시크해서 저 분 밑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막 솟구쳤음. 게다가 세상 살벌한 러브, 꿈의 세계를 만드는 면역결핍 행세 박사님.... 심지어 레플리컨트 반란군 보스와 핵심 메신저도 여성임.
공식적으로 정의된 주인공은 찐따 같은 남성 둘이지만, 이 세상을 움직였던 것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모두 여성들 아닌감???
이 정도로 여성을 주체적으로 그린 영화마저 반여성적이라고  비판하는 건 어쩐지 너무 기계적 평가라는 생각...

 

# 스타워즈: 라스트제다이 (라이언 존슨 감독, 2017)

 

 
 
중2병 남자들 어쩔 거임?
 
아니 루크는 이제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그 모냥 ㅠㅠ
와, 난데없이 '나는 자연인이다' 찍는데 나 정말 현웃 터졌음... 어쩜 요다 스승님한테 받은 가르침으로 기껏 바다괴물 모유나 갈취하고 개폼 잡으면서 물고기 작살낚시나 해대는 건가... ㅋㅋ
 
요다 스승도 잠깐 스노크 악령 들린 중 알았잖아.. 왜 그리 갑자기 나타나서 잔망을 떨어대는지....
 
레아공주가 보낸 옛적 홀로그램 보니 참으로 짠하더군.... 그토록 오랜 세월 레아는 우주를 떠돌며 투쟁하는데 루크는..... 자연인 행세하며 전설 코스프레하다 조카 잘못 건사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했음 아이구야... 그러다 조카한테 졌으니 더 횡당...
 
오스카 아이작의 포 다메론은 온 우주 말아먹을 민폐 캐릭터에
아 우리 카일로 렌...... 어쩜 이렇게 남주에게 매력을 1도 못 느끼게 만드는지 이것도 능력...
웃통벗고 훈련하다 레이와 연결되었을때 레이가 화들짝 놀라며 얼른 옷 입으라고 잔소리하는데 여기에 나도 진심 공감 ㅋㅋㅋㅋㅋ
레이 구해내서는 스노크 일당 처단하고 뜬금없이 '노인네 다 죽이고 우리가 우주 지배하자' 하는데 역시 현웃 터짐... 쟤 뭐야??? ㅋㅋ
 
레아는 고귀한 가문 출신인가 했지만 역시 흙수저얐고 드디어 스토리는 완전히 새로운 프레임에 안착하게 되었음. 고귀한 귀족 혹은 제다이 혈통의 영웅서사에서 아무 것도 아니지만 용기를 가진,  보통 존재들의 서사로 전환됨... 이름없던 스톰트루퍼에서 한 명의 온전한 존재가 된 핀이며, 충실한 가드에서 전사로 거듭난 로즈며, 심지어 노예 생활을 하던 어린이들까지...
 
그나저나 레아 장군 저리 함들게 살려놓았는데 실재에서 돌아가심 ... 어쩌....
 
그리고 우주 최강 전투로봇 BB8 너무 갖고 싶네 ㅋㅋㅋㅋㅋㅋ
우리 편이길 너무 다행.... 그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모습 뒤에 숨겨진 냉혹한 킬러본능 ㅋㅋㅋㅋ
 
 

# 1987 (장준환 감독, 2017)

 

 
 
낯익은 공간과 시간, 낯익은 (실존) 인물들이 눈앞에 흘러가면서 묘한 감정....
 
아마도 80년대 초중반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 '그나마 아쉽지만' 승리의 역사로 기억되는 반면, 90년대 초반 패배 또 패배, 고립 또 고립만을 경험했던 세대에게는 뭐랄까 슬픔과 회한을 극대화시킨 영화... ㅡ.ㅡ
나중에 이야기해보니, 87학번 선배들 중에는 아직 대면할 용기가 나지 않아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이들도 있었음...  해피엔딩이기는 하지만, 고문과 죽음과 상실과... 이 모든 것들을 다시 대면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일 거라고 짐작만... 나만 해도 백골단 쫓기는 장면에서 모골이 송연.. 이런 게 '재경험'이구나 실감할 수 있었으니....
 
학생운동만을 과도하게 부각시키지 않고, 특정 인물의 초인적 영웅담에 기대지도 않고, 
보통 사람들, 아주 완전 선량하지는 않지만 대강 직업적 자존심은 가진 사람들의 작은 결단이 역사를 바꾸는데 조금씩 기여한 것으로 그려낸 방식이 몹시 마음에 들었음. 검사나 교도소장이 지나치게 미화되었다는 비판도 있는데, 영화를 봐도 그 사람들이 절대 선인이나 결의에 찬 사람은 아니라는 게 잘 드러남.
 
한편으로는 여성주의 시각에서 여성의 비중이 작고, 나이어린 여자(연희)가 주변 남자들의 도움으로 각성해가는 모습으로 그린 것이 성차별적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이것도 동의하기는 어려움...
 
전반부에서 권력게임에 몰두하는 조폭같은 망나니들이 떼로 등장한 때야 남초인 것이 당연할 것이고, 후반부 운동의 조직화로 가는 상황에서 이름 가진 여성들이 더 많이 나왔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은 물론 있음. 그러나 이 때는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채 40%가 안 되던 시절이고, 대학생 숫자에서 남/여 격차가 엄청났던 것은 사실....
특히 연희만 주체성이 결여된 것처럼 그렸다는 비판은 정말 동의하기 어려움. 앞서 등장한 주요 인물들의 개인별 '전사'가 한두마디로 간략히 설명되는 데 비해, 오히려 개인의 서사가 살아있는 실제 인물은 연희밖에 없음. 광주 비디오를 보고, 선배의 죽음을 경험하고, 운동에 뛰어드는 경험은 너무 전형적이지만 당시 정말 상황이 그랬었고, 연희에게 비디오를 보여주고 데모에 데리고 나갔던 선배들도 다 똑같은 과정을 거쳤음. 다만 그 과정을 처음부터 보여준 게 연희였고, 그래서 나는 살아있는 개인 서사가 있다는 점에서 여성차별적이라고는 보기 어렵다고 생각함....
만일 뒤집혀서, 여자 선배들이 처음부터 '타고난, 자발적으로 결의한' 운동권으로 그려지고 남자 후배의 개인 성장서사가 그려졌다면, 오히려 그게 더 성차별적이지 않을까 말여... 
 
영화 중 의외로 나 혼자 빵터진 장면은 하정우가 김윤석에게 북한사투리 고만 쓰라고 말하는 장면 ㅋㅋㅋ 경상도 사투리, 북한 사투리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는데 내 속이 다 시원해짐...
 
문성근, 우현 배우는 본인 역할 하면서 너무 흥미진진했을 것 같음. 보통 사람이라면 경험하기 어려운, 자신의 적이자 가해자 역할을 천연덕스럽게 해내야 하는 도전을 이들은 어떻게 해냈을까? 
 
강동원 마스크 벗는 장면에서 극장 안에 일제히 터지던 '탄식'에 진심으로 빵 터짐 ㅋㅋㅋㅋㅋ 극장에서 이런 거 첨 봤는데, 아마도 전국적으로 동일한 현상이 있었던 듯....  정말 강도원님 현재 꽃미모 원탑일세....

 

 

# 패터슨 (짐 자무시 감독, 2016년)

 

 
 
 
 
이 영화 보고나서 후향적으로 카일로 렌을 좋아하게 됨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담 드라이버  이사람, 매력있잖아??? 왜 이제서야..
이런 배우를 왜 그리 찐따로 만들었나 좀 어안이 벙벙 ㅋㅋ
 
와.... 폭력과 빈곤이 물든 패터슨에서 자연시를 쓰는 전직 해군 출신 버스기사의 삶이란 무엇인가? 패터슨 시 로미오 줄리엣 커플 총질쇼에서 순간 카일로 렌이 광선검 꺼내는 줄 알았음 ㅋ
 
패터슨 시에 사는 패터슨 씨를, 아담 드라이버가 맡아서 버스 드라이버 일을 하는데, 시 너머로 흐르는 “조금만 아름다운 “ 풍광, 그리고 의외로 울림 좋은 아담 드라이버의 낭송에 푹 빠져들었음....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지만 어느 하루도 정말 똑같지는 않았음. 아 그 미묘한 변주.....
인생이 루틴으로 굴러가는 것 같지만 정말 어느 한 날도 같지 않고, 세상에 현재가 두 번 반복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미묘한 '리듬'이 생긴다는 걸 깨달아버렸다니까....... 
 
그런데 내가 너무 세파에 찌들었는지, 강아지 마빈이 어느 날 유괴/납치라도 될까봐 영화 보는 내내 전전긍긍했다구.... 그런 영화 아니잖아...
그런데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더라는... 
 
영화적 경험을 충만하게 해주는 매우매우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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