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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울림 2호] 그 순간, 그 곳에서 당신은 왜 그 표현을 주저했었나요?

그 순간, 그 곳에서
당신은 왜 그 표현을 주저했었나요?

 


편집자의 말/

‘아, 내가 왜 그 때, 그 표현을 하지 못했을까?’
‘무엇이 그 상황에서 내 표현을 스스로 검열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어때요? 당신은 어떤 순간에 하고 싶었던 말이나 행동을 포함한 자신의 의사표현을 주저하면서 얼버무렸거나 옴짝달싹하지도 못하고 얼어있었던 경험들이 있으신가요? 위계, 선정성의 기준, 청소년보호 논리, 영예, 저작권, 불온하다는 지적, 안보논리, 그 외 어떤 이데올로기나 논리들.... 이런 것들이 어떤 순간에 우리의 표현을 가로막거나 우리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들곤 하죠. 울림에서는 ‘표현의 자유’라는 맥락에서 활동가들과 독자들의 이런 경험을 나누고 존엄을 지닌 우리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어떤 가치와 용기가 필요한지, 그것을 위해 우리가 어떤 실천들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울림 독자 여러분들의 글을 기다립니다. (보내실 곳 : hrfilmfestival@empal.com)

 

  세상은 계속 나아질 거라는 희망과는 반대로 점점 믿을 수 없는 혹은 믿고 싶지 않은 뉴스들이 난무하는 요새 그나마 즐겁게 뉴스를 볼 수 있는 건 가끔 인터넷 뉴스에 달리는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 재치 있는 댓글 덕분일 것이다. 다양한 기사에 달린 셀 수 없이 많은 댓글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단지 재미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주장에 의한 공감과 새로운 시각에 대한 깨달음까지 이끌어낸다. 또한 댓글의 존재는 언론에 의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정보에 대해 즉각 쉽고 자유롭게 반응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인 매개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부터 한 연예인의 성상납 스캔들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그 일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포털 사이트 첫 페이지에 기사가 노출되어 있을 때에나 약간의 호기심으로 클릭하곤 했다. 양측의 상반된 입장이 보도되고 점점 사건이 구체화되어 성상납에 관련된 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기사가 나왔을 즈음이었다. 여느 날처럼 기사 밑의 댓글을 살피려 스크롤을 내렸을 때 그곳엔 댓글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대신 포털 사이트 회사의 안내문만 적혀있었다. 댓글을 통해 리스트와 관련된 출처가 불분명한 사람들의 이름이 떠돌아 댓글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문득 앞날에 생길지도 모르는 부작용 때문에 정당하게 댓글을 달 많은 네티즌들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은 포털사이트의 일방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내문은 사실 네티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가정하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표현을 막기 위해 사전검열과도 같은, 그러나 더 쉽고 확실한 댓글 원천봉쇄라는 방법을 택한 포털사이트의 통보였던 것이다. 비교적 최근 다른 연예인과 관련해 비슷한 사례가 몇 번 있었을 땐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이런 나의 지적에 어떤 이들은 위에 언급된 예는 특별한 경우였다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정한 이유에 의해 인터넷 공간에 주어졌던 자유가 제약될 수 있다면 그 특정한 이유의 정당성과 그에 의한 자유의 제약정도의 척도는 누가 정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포털사이트들이 언제나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할 우리의 권리, 즉 “표현의 자유“를 자신들의 잣대로 막고 제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이제 의심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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