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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주정

1. 어제밤이었다. 자정을 넘겨 거의 막차를 타고 집에 도착했는데, 지하철 입구를 나서는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들이대는 신분증은 경찰의 그것. 순간적으로 움찔했는데 하는말이 근처에서 4 인조 강도사건이 났다면서 죄송하지만 인상착의가 그중 한명과 너무 비슷하니 불심검문을 좀 하겠단다. 기분이야 너무나도 찝찝하지만 신분증제시도 정확했고, 불응하고 저항할 정황이 아니었다. 내가 좀 더 경험이 쌓인다면 그럴경우에 어떻게 대처할지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왜 그놈의 강도 아저씨는 하필이면 짐승이랑 얼굴이 닮았을까... 그래가지곤 여자친구 하나도 사귀기 힘들겠다. 큭.


2. 그동안 판타스틱 영화제를 한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올해는 개나라당 출신 부천시장 아저씨 덕분에 '리얼 판타스틱 영화제' 라는 이름으로 서울 도심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그동안 띵가띵가 하다가 오늘 저녁에야 술렁술렁 가봤는데, 역시 매진이었다. 마르크스는 바쿠닌에게 무식한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일갈을 날렸지만, 게으른것은 다른 누구는 물론이고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너무 당연하지?


3. 더운 날씨의 탓으로 돌려버릴수 있을까? 요즘 난 흥분하는법도 잃어버렸고 의욕도 작년만 같지 못한거 같다. 원래 좋지못했던 기억력은 점점 더 쇠퇴중. 책 잡는것도 갈수록 게을러져만 간다. 종합해보니 갈수록 발톱이 무뎌져 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떻게 무뎌진 발톱에 다시 날을 세울수 있을까? 아무리 이것저것 원인을 따져보고 '날카로워 져야 한다' 고 중얼거려도 되지 않는다.


당연하지. 날을 세우는것은 바위에 부딛쳐야 하는것이니까. 골방에 틀어박혀 지식과 관념으로 날밤은 세울수 있을지언정 발톱의 날은 어쩔수 있겠나?


4. 조종사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 100% 동의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지할수 없는 요구사항이 있기 때문에 그 투쟁 자체가 이기적인 투쟁이고 시민을 볼모로 잡는 투쟁이며, 따라서 지지할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기는 따지고보면 이라크 저항세력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었나? 지난 집회때 누군가(들) 은 이라크 저항세력이라는 집단들이 여성에 대해서 폭압적이기 때문에 지지하기 껄그럽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을 했지 않았던가?


뜬금없이, 이 분들은 하얀 눈 위에 흙탕물이 튀었다고 '이것은 검은눈이다'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분들의 영혼이야 표백제에 29 박 30 일을 담갔다 꺼낸것처럼 순결하겠지. 세상을 어떻게 바꿀것인지, 운동을 어떻게 키워나간것인지 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면 귀찮다고 눈속에 파묻어 버릴까?


5. 얼마전부터, 정확히 박노자씨 강연회가 끝난뒤부터 머리속에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는, 주최측의 누군가가 발언하는것이 일반 참가자들의 발언기회를 가로막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사실 그 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는데, '다른 의견' 이 나왔을때 주최측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반론을 내는것은 발언자에 대한 일종의 '패거리식 밟기' 라는 것이다. 물론 '밟기' 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좌우지당간 그렇다면 '주최측 사람들' 은 할 말이 있어도 참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들은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졌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것은 자연적인 모습일까? 그것은 다른 방향에서의 억압은 아닐까? '너무 많이' 라는것의 기준은 도대체 뭘까?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짐승은 토론회에 참가한적은 있어도 '특정인들은 침묵하기' 대회에 참석한적은 없는데 말이다. 신기하다.


6. 예전에는 위통이 격렬하게 일어 나다가도 한 이주일정도 꾸준히 약을 먹어주면 낫곤 했는데, 요즘은 한달이상을 먹어도 그대로다. 이러다간 술값, 담배값 다음으로 많은 지출항목에 약값이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쳇, 위장이 아픈것보다, 약을 달고 사느라 건강이 악화되는것보다 오천원짜리 지폐부터 먼저 생각해야 하다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그래서 또 한잔에 한개피다. 우리 엄마가 보면 욕을 바가지로 들어먹을 꼬라지인데, 멀리 떨어져 눈에 안보이니 이것도 효도다.


7. 작년에는 무덤덤하니 감성지수가 평균이하니 뭐니 하면서도 가끔씩 생각났었는데, 이제는 내 자신이 섭섭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말 생각이 안난다. 물론 상대방은 절대로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내게 일어난 유일하게 좋은 현상이다.


8. 잊지말자. 이창동이 초록물고기로 데뷔한것은 38살 때였다. 난 아직 서른둘이다. 그나저나 그러고보니 그 아저씨 왜 영화 안찍는지 모르겠다. 설마 시궁창에서 장관자리 달았던게 상처로 남는건가, 부디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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