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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페트로그라드여!!" - 세계를 뒤흔든 열흘

부끄러운 고백부터 하나 하고 넘어가자면, 그다지 두껍지 않은 이 책 한권 보는데 거의 두달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것입니다. 입버릇처럼 '짐승은 게으르다' 고 말하면서도 아직 고치지 못한 이놈의 나태함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_-;;

 

 

 

 

 

 

 

 

 

 

 

 

 

 

 

 

 

 

 

 

 

 

 

 

 

 

 

 

 

 

 

 

 

'세계를 뒤흔든 열흘' 이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것은 좀 더 오래전의 일입니다. 모임이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같이 활동하는 분으로부터 이 책을 추천받았죠. 러시아 혁명에 관한 이보다 더 자세하고 생생하며 옳바르게 전달하고 있는 책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오래된 책인데다가 절판된지도 꽤 지난 시점이라 구하기가 쉽지 않을거라고 하시더군요.


워낙 무식한 짐승인지라 이런 저런 책들을 많이 소개 받습니다만 그 즉시로 사거나 다시 추천받거나 하지 않는이상 솔직히 책들의 제목을 100%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세계를 뒤흔든 열흘' ( 추천받을 당시에는 '세계를 뒤흔든 10일' 이라는 제목이었던것 같습니다 ) 만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남더군요. 과연 찾는것이 쉽지는 않았는데, 올해 다시 번역되어 재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는 길가다 돈 주운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


중,고등학교 시절을 기억해 내는게 별로 달갑잖은 짐승입니다만, 중학교때 무엇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수입시간중 국사 선생님이 ( 아닐수도 있고... 누구였는지는 정확히 기억 안납니다 ;; )  굉장히 재미있는 말을 하던것이 기억이 납니다. 대충 기억나는것만 해도 '농민은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집착이 강하기 때문에 사회주의 하고는 모순적이다' , '볼셰비키란 원래 다수파 라는 뜻이고, 멘셰비키는 소수파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볼셰비키들이 소수였다. 그 소수들이 힘으로 정권을 쿠테타 한것이 러시아 혁명이다' 등등의 말들을 하셨던거 같습니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러시아의 10 월 혁명 이라고 하면 위와 같이 '볼셰비키의 무력 쿠테타' 라는 인식이 가장 일반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 혁명에 대한 왜곡은 광범위하게 이루어 졌는데, 노동자 민중이 스스로 권력을 잡는것을 두려워하는 자본가 정권, 지배계급에 의한 왜곡뿐만 아니라 그에 맞서고 있는 좌파진영 안의 스펙트럼들 - 스탈린주의, 민족주의, 사회민주주의, 최근에 부상하는 자율주의 등등 -  에 따라 다양하게 왜곡되어 우리에게 알려져 왔습니다. 사회발전단계를 무시한 볼셰비키만의 독단적 결정이라는 주장, 무리하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불필요한 유혈사태를 일으켰다는 주장, '프롤레타리아 독재' 라는 독선적인 방식때문에 레닌이나 트로츠키가 사람들을 탄압했다는 주장 등등 의 왜곡들이 그러한 것입니다. 사실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대안세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신념 때문에 그에 배치되는 러시아 혁명을 깍아내리고 싶었겠지만, 그로인해 결과적으로 지배계급의 논리에 동조하는 꼴이 되어 자신들 역시 탄압받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특파원으로 유럽에 건너간 미국인 저널리스트 존 리드 가 러시아 혁명의 한복판에서 혁명을 지켜보고 '중립적이지 않은 감정으로, 그러나 개관적으로' 기록한 '세계를 뒤흔든 열흘' 은 그러한 모든 왜곡들을 한번에 걷어내어 우리에게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볼세비키들이 어떻게 단 4-5개월만에 소수파에서 다수파로, 러시아 민중의 혁명의지를 온전히 실현하는 집권세력으로 성장할수 있었는지에 대한 과정이면서 동시에 레닌과 트로츠키를 비롯한 볼셰비키에게 집중하지 않고 혁명에 참여한 노동자, 병사, 농민들의 입장에서 써 내려간 기록들이기에 그 가치는 더욱 소중합니다.


1917년 2 월의 혁명을 통해서 로마노프 왕조는 사라졌고 전제정치도 역사속으로 모습을 감추었지만 이후 임시정부를 주도한 러시아 자본가계급을 대변하는 카데츠 정당, 그리고 자본가들과 타협하려고 했던 멘셰비키들은 민중이 이루고자 했던 핵심적인 요구사항, 즉 러시아가 평화협상을 맺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는것과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토지재분배를 통해 농민들이 농업노동자 상태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하는 일 등을 수행할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정 러시아 하에서 신음하던 피억압민족들의 자치에 대한 요구사항도 있었으나 임시정부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혁명 이후에도 여전히 지배계급의 일부에 대해서 타협하는 자세를 보이며 중도파로 남아 있고자 한 케렌스키 정권이 민중들의 삶을 무엇하나 나아지게 하지 못했고, 이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를 유발하여 마침내 민중의 손에 의해 붕괴되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것은 현재의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좌파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할 것입니다.


기록은 10월 혁명이 노동자·병사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봉기 보름전의 소비에트 중앙회의에서 레닌과 트로츠키를 제외하고 아무도 봉기에 대해서 지지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봉기에 대한 안건이 부결되었을때 페트로그라드 노동자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는 봉기에 찬성합니다. 여러분은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소비에트가 파괴되는 것을 보고만 있겠다면, 우리와의 관계는 끝날 것입니다' 라고 말한 부분, 봉기 직후 존 리드가 인터뷰한 한 사회혁명당원의 고백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대중이 따르고 있는 것은 볼셰비키죠. 우리에게는 추종자가 없습니다.' 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책중에 언급된 장갑차 부대 병사들의 사례는 10월 혁명이 러시아 노동자,병사 들의 민주적 결정에 의한 것임을 잘 나타내어주면서 동시에 혁명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는지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병사들처럼 사태를 이해하고 결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이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으로 연설을 경청했다.… 수많은 노동자·병사·수병 들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현명하게 결정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 마침내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로 결의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바로 그것이 러시아 혁명이었다.'


그러한 노동자,병사 들의 지지에 힘 입어 혁명은 거의 무혈혁명에 가깝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혁명을 완성하는것이 단순히 매끄럽게만 진행되었던것도 아닙니다. 임시정부 관료들과 카데츠, 도시의 소 부르조아들이 다수를 장악하고 있었던 시 의회(두마) 등이 새롭게 탄생한 노동자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한 '구제위원회' 의 반혁명적 태도, 임시정부의 수장이었다가 도망친 케렌스키가 군대를 끌고 일으킨 내전 등은 몇차례나 소비에트 (평의회) 를 기반으로 새롭게 조성되고 있던 권력을 위기에 빠트렸고 노동조합 관료들은 일반 조합원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혁명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러시아 혁명 뿐만 아니라 모든 혁명의 시기에 이와 같은 우파들의 조직적 반격이 일어날 것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러시아의 노동자,농민,병사들이 그러했듯이 이와 같은 시도들에 정면으로 맞서야 할 것입니다.


'세계를 뒤흔든 열흘' 은 러시아에서 1917 년 10 월에 무슨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마치 눈앞에서 펼쳐보이듯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단지 활자에 불과할 뿐인 기록된 사실들에 마음졸이고 흥분하고를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 동시에 이 책을 통해서 단순히 '존재했던 사건들의 나열' 만을 얻지는 않을 것입니다. 혁명의 과정을 쭉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레닌의 추천사처럼 ‘프롤레타리아 혁명 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충분한 이해' 를 가질수 있게 될 것입니다. '카탈로니아 찬가' 와 함께 르뽀문학의 걸작으로 불리며 '혁명을 기록한 모든 책들 중에서 단연 최고' 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세계를 뒤흔든 열흘' 을 짐승도 강추하고 싶습니다^^

 

운전을 하던 늙은 노동자는 한 손에 운전대를 쥐고 다른 손으로 저 멀리 빛나는 수도를 가리키며 환희에 찬 몸짓으로 말했다.


" 내 것입니다!" 그는 빛나는 얼굴로 외쳤다.

" 이 순간, 모든 것이 내 것입니다! 나의 페트로그라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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