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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건강보험공단 지하강당에서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의 '진보정당의 사활을 걸고 비정규직 파견법 개악안 투쟁에 나서야 되는 이유' 에 대한 특강이 있었다.
7시에 시작하는 거였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퇴근하고 8시 쯤에야 도착할수 있었다. 덕분에 앞부분에 있었던 발제는 다 날라가고 중간부터 들을수 밖에...
앞부분은 주로 노동계급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것을 강조하는 이야기들이,
그 뒤에는 그 자신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노동운동에 헌신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노동조합 간부임에도 불구하고, 어용노조가 아닌, 흔히들 씹어대는 '전투적 노조' 의 간부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들에 대한 차별적인 입장을 가지고 '당장 내 일이 아니니까' 하는 식으로 그들의 상황을 방기하거나 심지어 투쟁을 저해하기까지 하는 관점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있었다.
특히, 원광병원 청소용역 아줌마들의 투쟁에 대한 정규직 노동조합의 태도라든지 식당 용역 아주머니들은 비정규직도 아니라고 치부해버리는 노조간부의 이야기는 뼈아픈 것이었다.
짐승으로 말하자면, 지금도 매년마다 고용계약을 갱신해야 하기 때문에 계약직이라고 볼수 있지만 동시에 직원이라고는 나를 포함해서 딸랑 두명뿐인 개인사업장에서 일하는 덕분에, 특별히 '비정규직의 설움' 같은것은 느끼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몇년전에 한번,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막 제대할때쯤, IMF 라는 것이 터져버렸다. 100 만원 월급받던 노동자에게 60만원 받고 일하든지 아니면 나가든지 당신이 선택하라고 욱박지를수 있었던, 그나마 대부분은 그런것도 없이 하루아침에 해고통지서를 받아야 했던, 아기 분유값이 없어 공중전화 박스를 뜯어내서 안에 들었던 동전 다 빼내고는 빈 박스를 다시 제자리에 돌려 놓겠다고 들고 나가다가 경찰서에 잡혀가는 실직가장의 이야기가 신문을 장식하던 그런 시기였다. 제대와 동시에 이런 저런 이유로 대학까지 때려치운 나로서는 딱히 일할만한 곳이 없어서 주유소 같은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할수밖에 없었는데, 그 아르바이트를 얻어내기 위한 경쟁이 아마 내가 겪었던 최고의 경쟁률일 것이다. 알바 면접본다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주유소 사무실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밖에까지 긴 줄을 섰던 그런 때였다.
하여튼 언제까지 알바만 하고 있을수는 없는 일이라서, 지역정보지를 뒤적이며 직장을 알아보니 자동차 부품 생산하는곳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광고를 냈더라. 별 볼것도 없는 이력서랑 자기소개서를 주섬주섬 챙겨들고 가봤는데, 이상했다. 공장이 아니라 도심 한복판의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도저히 그 회사의 본사라고 봐줄수 없는 사무실에서 사람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파견직' 이라는 것이었는데, 당시만해도 열나 무식했던 짐승은 '선진국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고용방식' (뭐 틀린말은 아니다 -,-;) 이라는 파견담당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더랜다.
그래 여차저차해서 대구 진량공단에 위치한 AMP 라는 외국계 기업에서 자동차 퓨즈박스용 기판에 칩을 박아넣게 되었는데, 몇달 지나다보니 일일 생산해야할 물량이 자꾸만 늘어가는 거다. 근무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거기서 짬을내어 밥도먹고 음료수도 사먹고 담배도 피고 화장실도 가고 하는건데 할당량이 자꾸 늘어가니 점점 식사시간도 짧아지고 휴식시간도 줄어들수 밖에. 문제는 그게 달이 지나갈수록 나아지기는 커녕 더 늘어만 가는거다. 조장들 잔소리와 압박도 비례해서 올라가고.
그 회사에도 노동조합이 있었다. 노동조합 현판에 보면 금속노동조합 산하라고 명시까지 되어있는, 퇴근하려고 옷을 갈아입고 현관을 나서다보면 항상 마주치게 되는 조그마한 사무실이 있었다. 매일 늘어가는 작업량에 모두들 짜증을 내고 있었던지라 퇴근할때마다 '노조나 가입할까' 하는 이야기들도 심심찮게 나왔더랜다. 그래서 하루는 (직접 찾아가기는 좀 어색해서) 조합 사무실 전화번호를 적어뒀다가 집에가서 전화를 했더랬지. 여차저차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전화받는 분이 하는 말이 받은 사번이 임시사번 아니냐는 거였다. 맞다고 하니까 잠시 침묵. 그러더니 임시 사번이면 파견직이신거 같은데, 안타깝지만 '아직' 우리 조합은 파견직을 가입받는것에 대한 결정이 안 나왔다는 거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파견직과 정규직의 차이를 몰라서. 그 다음은 미안했다. 왠지 연락하면 안되는곳에 이야기 해버린 꼴이어서, 잘못건 전화나 다를바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는 혼란스러웠다. 노동조합이 뭐하는 곳인가 싶은 생각이 든거다. 결국 마지막에는, 화가났다. 조합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지금 생각하면 서러웠을거 같은데, 이상하게 당시에는 그리 서럽다는 감정은 못 느꼈던거 같다. ^^;
그 회사는 그러고도 몇달을 더 다니다가, 결국 나와버리고 직업훈련원에 들어간 덕분에 지금 컴퓨터 가지고 밥벌이 한다고 하게 된거다.
비정규직에 관련한 경험을 짧게 이야기 해본다고 한건데, 어쩌다보니 길게 늘어졌다. 지금 나도 내 스스로 만들어낸 스크롤의 길이에 놀라고 있다. --; 어쨌든 김진숙 위원의 강의는 유익했고, 재미도 있었다. 유머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다가도 지난번 김주익 열사 추모사를 들을 때처럼 눈물을 자아내게 하기도 하고, 암튼 좋은 시간이었다.
다만 '강의' 의 형태여서 아쉬운 것도 있었다. 짐승은 김진숙 지도위원이 말하는 '정규직이 잘하면 비정규직은 사라질수 있다' 와 노무현 정권이 입만열면 떠드는 '정규직이 양보하면 비정규직 처우가 개선된다' 는 말이 일견 비슷하게 들릴지 몰라도 결코 같은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슷한 내용이라도 말하는 사람의 입장과 관점이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에 양 논리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점도 발견할수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사회적 의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정규직의 임금 인상안도 포기해야 한다' 는 말에는 공감할수 없다. 비록 그 말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각성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부적절했고 비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떻게 해석하면 '너무 높이 올라간 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이 다소 하락되어야' 비정규직 문제에 진지하게 연대할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는 노동계급의 하향평준화를 전제로 한다' 는 식으로 왜곡될수도 있다. 만약 그것이 강의가 아니라 포럼이었다면 이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해볼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아쉬운것은 내 생각보다 적은 인원만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서울 시당 주최로 하는 행사인데, 중요한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참여한 인원은 그렇게 많아보이지 않았다. 행사를 준비한 쪽에서 좀더 진지하게 조직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특히 당내에서 조직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던가, 중앙위원이라던가 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들어봤어야 하는것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런 행사가 일회성으로 끝난다면 안될것이다. 지속적으로 준비하고 열려서, 더 많은 당원들을 대상으로 할수 있어야 한다. 사실 이번만 해도, 서울 시당 차원이 아니라 중앙당 차원에서 진행해봄직한것 아니었나? 지난번 화씨911 때처럼, 국회강당에서 국회의원들까지 데려다놓고 김진숙 위원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연사로 초대해서, 포럼형식으로 진행할수도 있을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온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서 간이라도 놀이방을 운영해 볼수있을 것이고 등등,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발전시켜야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아쉬움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의미있는 행사였다. '노동자는 하나다' 라는 말이 헛된 공문구가 되지 않도록, '수십번씩 조합원들을 위해 목숨걸다 직권중재에 조인하는' 모습들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모습들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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