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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47 호
청년들의 젊음을 압류하는 자본주의 / 용모단정?
| 청년들의 젊음을 압류하는 자본주의 - 승영 |
“청년 실업이 20만 명을 육박하는 이 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정부와 주류 언론은 개인들의 변화를 요구한다. “눈높이를 낮추고”, 기업이 요구하는 새로운 능력들을 기르라는 것이다.
취업 준비 여성 열 명 중 한 명은 성형수술 경험이 있다. 그 사람들 중 일부는 목소리 성형까지 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익히지 못한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돈이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젊은이들은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가고 싶어도 자릿수도 세기 힘든 비용에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다못해 학원 수강료도 큰 부담이다.
기업들은 이 기회를 틈타 노동유연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유연화는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늘릴 것이다. 그러나 실업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대로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누구에게나 초등학교, 중학교 때 장래희망이 하나쯤 있었다. 과학자, 문학가, 연예인 등 …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이 이 꿈들을 포기하는 것은 그저 의지가 없어서나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다. 한 대 한 대 맞으며 의식을 잃어가는 권투선수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가난, 입시, 실업 같은 자본주의의 강펀치에 조금씩 꿈을 잃어 가기 때문이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은커녕 노동력을 파는 것조차 힘들다.
여러 경제 지표들은 한국 자본주의에 더 큰 불황을 예고한다. 그것은 젊음을 압류당한 수많은 청년들에게 더 힘든 현재와 더 불안한 미래를 뜻한다. |
| 용모단정? - 이예송 |
나는 올해 2월 졸업을 앞둔 많은 여성 구직자들 중 한 사람이다. 고교 졸업자의 취업률이 11년 만에, 대학교 졸업자 취업률은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추락하는 등 살인적인 실업률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최근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특히 여성에게는 취업문이 더 좁고 ‘외모’를 엄격하게 따진다는 것을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취업전문업체 스카우트가 지난 9월 말 기업 인사담당자 2백43명에게 “채용 시 구직자의 외모가 영향을 미치는가” 하고 물은 결과, 66.7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73.7퍼센트의 인사 담당자들은 “실력이 뛰어나지만 외모가 호감형이 아닌 사람보다, 실력이 부족하지만 외모가 호감형인 사람을 택하겠다”고 답했다.
사무직보다 더 노골적으로 외모를 고용 기준으로 삼는 직종이 바로 서비스직이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외모에 따라 벌어들이는 수입이 천차만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모는 곧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인생과 성공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이러한 광적인 외모지상주의는 평범한 여성들을 끔찍한 피해자로 만들었다. 방송이 나간 뒤 많은 사람들의 동정과 관심을 받은 ‘선풍기 아줌마’도 그러한 예다.
야만적인 이 사회의 모습은 많은 여성들의 한숨과 눈물에서도 고스란히 보이고 있다. |
다함께 47 호
병 주고 약 주는 집권당 개혁쇼 / 자본주의 정치인들과의 동맹 전술은 파산했다.
| 병 주고 약 주는 집권당 개혁쇼 - 전지윤 |
노무현과 열우당은 2004년의 마지막과 2005년의 새 출발을 역겨운 배신으로 더럽혔다. 이 배신자들은 끝까지 갈지자 사기극을 연출하며 민주개혁의 염원을 우롱했다.
노무현은 “4대 입법이 되든 안 되든 대세에 크게 지장이 없으니 … 차근차근 풀어 나가자”며 야합의 물꼬를 텄다. 노무현은 친미 우파를 향해 “지금부터 잘 해 보자”, “따뜻한 인간 관계가 맺어지길 바란다”고 눈웃음쳤다. <조선일보>는 “옳고 바른 방향”이라고 반겼고, 한나라당도 노무현과 열우당이 “한나라당의 합리적 주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칭찬하기에 마땅하다”(2004년 12월 24일 논평)고 기뻐했다.
한나라당과 열우당의 야합은 껍데기만 남은 4대 개혁의 개혁 ‘흔적’까지 닦아냈다. 언론개혁법에서는 시장점유율 산출 단위를 애초 중앙 일간지에서 전국 일간지로 조정해 조·중·동을 규제 대상에서 빼 주었다. 지면 50퍼센트 광고 제한 조항과 편집위원회 설치 의무화 조항도 빠졌다.
‘개혁 없는 개혁법’들마저 통과되지 않았다. 한나라당과 열우당은 합의와 결렬을 거듭하다가 결국 막바지에 파병연장동의안과 함께 신문법만 통과시켰다.
국회 앞 길거리에서 추운 겨울에 6백여 명이 한 달 가까이 단식을 하며, 심지어 1백50명은 물과 소금까지 끊고 보안법 철폐를 바랐지만 배신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열우당의 개혁적 이미지와 반동적 실체의 모순 때문에 균열이 생겼다. 당의 왼쪽 기반을 의식해 ‘왼쪽 깜박이’ 노릇을 하며 농성까지 한 소위 ‘강경파’에게 ‘온건파’들은 “그만해라. [이미 카메라가] 많이 찍었어” 하고 비웃었다. ‘강경파’는 열우당의 배신과 야합을 가리고 지지자들을 묶어 두는 구실을 한 것이다.
이해찬은 생뚱맞게 “2007년 대선도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말했지만, 더러운 실체가 드러날수록 열우당의 분열과 파산은 가속화할 것이다. 이 때문에 도로 민주당과 합당하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미래가 없는 이 더러운 배신자들의 파산을 더 앞당겨야 한다. |
| 자본주의 정치인들과의 동맹전술은 파산했다. - 전지윤 |
배신자들의 파산과 함께 배신자들과 동맹해 개혁을 이룬다는 전술도 파산했다.
민중운동 진영은 노무현과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파병반대 투쟁과 공무원노조 탄압 항의 행동들에 의미 있고 실질적인 대중 동원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노무현이 우리 운동을 탄압하는데도 “열우당은 적과 아를 분명히 구분[하고] …개혁공조를 복원해야 한다.”(<민중의 소리> 2004년 11월 2일치 논평)며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지배계급의 개혁파와 동맹한다는 전술은 독립적 대중행동 건설에 소홀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점을 놓치고 민족주의 좌파는 “국가보안법 폐지 대중운동, 왜 힘이 안 실리나?”(<민중의 소리> 10월 14일치)하고 조급해했다.
호흡곤란, 탈수증, 구토, 근육경련까지 무릅쓰며 싸우던 국회 앞 단식 농성자들은 야합 소식에 분노해 국회로 향하다 노무현 정부 경찰의 방패에 찍혀 피 흘리며 쓰러졌다.
만약 우리 운동이 노무현의 파병연장, 공무원 탄압 등에 맞서서 대중행동을 건설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처럼 아무 저항없이 파병연장안이 통과되지 않았을 것이고 진정한 민주개혁에 좀더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농성단이 마지막 성명에서 말했듯이 “이 배신자들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할 뿐 아니라, 배신자들에 맞서 투쟁을 건설 해야 한다. |
다함께 47 호
지진해일은 자연적이지만 , 그 결과는 그렇지 않다 /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진해일 피해자 구호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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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해일은 자연적이지만 , 그 결과는 그렇지 않다 - 자이 자일스 웅파콘 (타이 노동자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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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동남아시아 사회주의자가 이번 지진해일 대참사에 대해 맑스주의적으로 논평한다 |
폭풍·지진·지진해일 같은 자연 재앙들의 원인은 자연적일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단순히 자연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연 재앙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계급 사회에 의해, 또 평범한 사람들의 삶보다 우선시되는 가치들에 의해 좌우된다.
지진해일이 빈번히 발생하는 태평양과 달리 수마트라 주변 인도양에서 마지막으로 지진해일이 발생한 것은 1백 년도 더 전이었다. 하지만 1년 전에만 해도 아시아 각국의 지도자들은 지진해일 경보체계를 구축하라는 기상학자들과 지질학자들의 제안을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현대적인 경보체계가 없었더라도 각국의 정부는 피난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하와이의 지진해일센터는 위험을 알았지만 “누구한테 연락을 취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재앙의 결과를 결정하는 둘째 요인은 세계 자본주의의 발전이다. 이것은 긍정적인 영향도 있고 부정적인 영향도 있다.
수마트라 북부의 아체는 최악의 타격을 입었다. 거기에는 발전한 관광산업이 전혀 없었다.
자연 재앙의 영향을 결정하는 셋째 요인은 계급투쟁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저항 수준이 중요하다. 지진해일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의 다수는 가난하지 않다. 인도는 핵강대국이다. 타이는 급속히 발전하는 나라다. 타이 총리와 그의 측근들은 억만장자들이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 지역의 어떤 나라에도 복지국가 시스템이나 제대로 조직된 긴급구호 서비스가 없었다. 구급차들조차 거의 없었다.
인도네시아 군대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군대 가운데 하나이지만, 수마트라 피해자 지원에 서둘러, 그리고 충분히 동원되지 않았다.
지진해일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넷째 요인은 제국주의다. 제국주의에는 여러 수준이 있다. 인도네시아·스리랑카·타이는 “소(小)제국주의 국가들”이다. 이들 나라의 중앙 정부는 자국 국경 내의 모든 지역을 “지배하고 통치할” 수 있음을 전 세계에 “입증해야” 한다. 이것은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자국 자본들의 이익에도 매우 중요하고 세계화 시대에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들 나라의 내전은 미국과 영국 제국주의의 이라크 전쟁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자원을 소모하고 있다. 아체와 스리랑카에서 정부는 국내 상황을 핑계로 구호·복구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우리는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미국 제국주의를 칭찬하는 데 열을 올릴 만큼 오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반전 운동 내의 일부 사람들은 그런 유혹에 빠질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타이에서는 이번 재앙을 보도하는 TV 뉴스 화면 한쪽 구석에 기업 상품광고들이 등장했다. 민간항공사들은 피해자들이나 의료진을 수송하는 무료 항공편을 제공하고 있다고 광고하는 데 열을 올렸다.
세계의 기업들이나 군사 기지들이 해체돼 미국 정부의 원조를 받아도 괜찮다고 느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라크 전쟁이 지금 당장 끝나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다. 그래서 막대한 군사비가 생산적 용도, 특히 당장의 위기가 끝난 뒤 시행될 재건 사업에 투입돼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다.
우리는 용기를 내 인류의 진정한 정신을 살펴볼 수 있다. 지금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은 인종·국적·종교를 떠나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슬픔과 연민으로 가득하다.
그렇다.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를 전쟁터에서 싸우게 만들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기적이고 가증스런 태도를 취하게 만드는 흡혈귀 같은 자들부터 제거해야 한다.
타이 현지 주민들은 정부가 자신들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더 많이 도와 줬다고 말하며 모든 외국인들을 미워하기 시작할 것이다.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은 분노를 진정한 표적 ― 계급 사회 ― 이 아니라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 할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정치적 토론과 논쟁을 계속해야 하고 더 나은 세계를 위한 투쟁의 결의를 다져야 한다.
자이 자일스 웅파콘 (타이 노동자민주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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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정부는 지진해일 피해자 구호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 - 아체민중운동연대 |
지진해일이 인도네시아 아체 주와 수마트라 북구 일대를 휩쓴 지 엿새가 지났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구호물자 보급을 지연시키면서 수십 톤의 기증품들이 자카르타 공항 등에 가득 쌓여 있다.
아체민중운동연대(Solidarity of People Movement for Aceh: SEGERA)는 2001년에 아체인의 민주적 권리를 지원하기 위해 결성됐으며, 노동조합·학생회·민주화 운동 단체·정당 등으로 구성돼 있다. SEGERA는 현재 15명의 자원자를 아체 재해지역에 파견했다. SEGERA는 구조활동을 태만히 하고 있는 정부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2. 국가기구와 군대는 국내와 국제 시민단체들이 구호 활동을 더 자유롭게 벌이고 필요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
3. 인도네시아 정부는 즉각 재건사업을 시작하고 재난으로 파괴된 사회기반시설을 복구하라.
2005년 1월 1일 |
다함께 47 호
혁명으로 가는 다리 - 아닌디야 바타차리야(Anindya Bhattachary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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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으로 가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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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중 파업은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그녀의 고전적 저작 ≪대중 파업≫을 쓴 1백 년 전보다 |
2003년 10월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이 대통령궁을 에워쌌다. 그들은 증오의 대상이던 백만장자 대통령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의 퇴진을 요구했다. 며칠 후 그는 불명예 퇴진하고 마이애미로 도망가야 했다.
그런 파업들은 얼마나 중요한가? 어떤 상황에서 대중 파업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를 사회주의 사회로 대체하기 위한 투쟁을 대중 파업이 도대체 어떻게 진전시키는가? 1905년 1월 러시아에서 일어난 일련의 놀라운 사건들은 이런 논쟁의 양상을 바꿔 놨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푸틸로프 기계 공장에서 전투적인 노동자 네 명이 해고된 것에 반발해 시작한 파업이 도시 전체의 대중 파업으로 확산했다.
그 학살이 1905년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이 사건들에서 영감을 얻은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사상을 구체화시켰다. 룩셈부르크는 당시 독일의 대규모 노동계급 사회주의 운동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던 폴란드 태생의 혁명가였다.
1906년 룩셈부르크는 ≪대중 파업, 정당, 노동조합≫이라는 팸플릿을 썼다. 오늘날까지도 이 팸플릿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대중 파업이 하는 구실에 대한 고전적 맑스주의 분석으로 남아 있다.
첫째, 룩셈부르크는 대중 파업에 대한 이전의 분석들이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분리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중 파업≫에서 그녀는 “이 둘 사이에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고 썼다.
전에 어떤 행동도 취한 적 없는 집단들이 가장 기본적인 노동조합 문제들을 제기할 수 있다. 또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도약해 근본적인 정치적 변화를 요구할 수도 있다.
둘째, 룩셈부르크는 대중 파업이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상호작용을 통해 보수적인 이데올로기 ― 노동자들이 체제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 를 무너뜨리기 시작한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대중 파업은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노동자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드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같은 이데올로기에 도전한다.
물론 룩셈부르크는 일상적 시기에 파업 노동자들이 집세나 융자금을 낼 수 있을지, 일자리를 잃게 되지는 않을지, 아이들을 위해 충분히 돈을 모을 수 있을지, 그 밖의 수많은 걱정거리들을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룩셈부르크의 세번째 통찰로 이어진다. 대중 파업 때문에 노동자들은 투쟁 속에서 스스로 변화해, 자신들의 염원을 더욱 키우고 사회를 운영하기에 적합한 계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995년 프랑스 대중 파업 당시 드뢰 시에서 일어난 일은 이런 활력과 정신을 잘 보여 준다.
대중 파업은 다른 사회를 위한 투쟁과 오늘의 투쟁을 잇는 다리다. 대중 파업은 노동자들의 힘을 보여 주고, 노동자들에게 미래를 힐끗 보여 주며, 새로운 조직 형태들을 만들어 낸다.
1905년에 대중 파업은 소비에트[노동자 대표들의 평의회]를 탄생시켰고, 소비에트는 삶의 모든 측면을 조직하고 토론하기 시작했다. 소비에트는 기존의 사회 운영 방식에 대항하는 새로운 권력 형태였다.
대중 파업은 개혁을 위한 요구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그 끝은 혁명을 향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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