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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5/01/10

청년들의 젊음을 압류하는 자본주의 / 용모단정?

다함께 47 호

청년들의 젊음을 압류하는 자본주의 / 용모단정?    

http://www.alltogether.or.kr

 

 

청년들의 젊음을 압류하는 자본주의 - 승영

 

“청년 실업이 20만 명을 육박하는 이 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작년 유행어 순위 5위에 오른 한 시트콤의 유행어다. 재작년 초에 시작한 이 시트콤에서 20만 명이라는 숫자는 회를 거듭할수록 30만 명, 40만 명으로 늘어갔다. 종영 때는 50만 명으로 늘었다.

 


2004년 말 노동부는 청년실업자, 비경제 활동 인구, 유휴 비경제 활동 인구가 모두 90만 5천 명이라고 발표했다. 실제 일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거의 1백만 명이라는 얘기다.
올해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13퍼센트 줄일 계획이라 청년 실업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청년 실업자들의 카페나 사이트에서는 “미치겠다” “너무 힘들다” “우울하다” 같은 절박한 단어를 쉽게 볼 수 있다. 청년 실업자들은 텅 빈 주머니 사정 때문에 간식으로 따뜻한 군고구마 하나 사먹기 힘든 사람이 많다. 주름살 진 부모님 얼굴을 볼 때마다 죄송스러움이 온 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 같다.

 


조금이나마 생계를 꾸리고자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작년 인터넷 검색순위에서 알바는 4위로 올랐으며 취업은 그 순위가 5계단이나 떨어진 32위에 올랐다. 그러나 아르바이트에 시간을 빼앗기면, 높은 취업 경쟁의 벽을 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는 것이 딜레마다. 

 

정부와 주류 언론은 개인들의 변화를 요구한다. “눈높이를 낮추고”, 기업이 요구하는 새로운 능력들을 기르라는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적성에 맞지 않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젠 더 이상 취업이 어려워 공장으로 가려고 생각중입니다. … (지원서를) 한 30통은 넣은 거 같은데 연락이 없네요 ㅡㅡ;”  한 청년 실업자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고통은 눈물겹다.

 

취업 준비 여성 열 명 중 한 명은 성형수술 경험이 있다. 그 사람들 중 일부는 목소리 성형까지 한다고 한다.
디자이너가 꿈인 한 여대생은 “기업들이 여성복 디자이너들에게 ‘피팅모델(만든 옷이 괜찮은지 보기 위해 입어 보는 사람)’까지 함께 시키기 때문에 키 167 이상에 ‘몸매도 좋아’야 해요. 제 친구는 키가 작아서 포기했어요” 하고 말했다. 
오늘도 학원가와 도서관에는 토익점수 5점이라도 더 받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 중 대다수가 연인과 친구를 만나는 시간, 심지어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공부하고 있다. 

 

사람들이 익히지 못한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돈이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젊은이들은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가고 싶어도 자릿수도 세기 힘든 비용에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다못해 학원 수강료도 큰 부담이다.
청년 실업은 개인들이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 개인의 노력이 경쟁 무기는 될 수 있을지언정 일자리 수를 늘리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1년 5개월째 언론사 취업을 준비하는 한 대학 졸업생은 “제가 100을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누가 120을 노력하면 아무 소용없으니까요. 그게 참 힘들어요” 하고 말했다.

 

기업들은 이 기회를 틈타 노동유연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유연화는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늘릴 것이다. 그러나 실업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대로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누구에게나 초등학교, 중학교 때 장래희망이 하나쯤 있었다. 과학자, 문학가, 연예인 등 …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이 이 꿈들을 포기하는 것은 그저 의지가 없어서나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다. 한 대 한 대 맞으며 의식을 잃어가는 권투선수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가난, 입시, 실업 같은 자본주의의 강펀치에 조금씩 꿈을 잃어 가기 때문이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은커녕 노동력을 파는 것조차 힘들다.

 

여러 경제 지표들은 한국 자본주의에 더 큰 불황을 예고한다. 그것은 젊음을 압류당한 수많은 청년들에게 더 힘든 현재와 더 불안한 미래를 뜻한다.           

 

 

용모단정? - 이예송

 

나는 올해 2월 졸업을 앞둔 많은 여성 구직자들 중 한 사람이다. 고교 졸업자의 취업률이 11년 만에, 대학교 졸업자 취업률은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추락하는 등 살인적인 실업률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최근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특히 여성에게는 취업문이 더 좁고 ‘외모’를 엄격하게 따진다는 것을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무직 모집 광고에는 ‘용모단정’이라는 자격요건이 명시돼 있었다. 도대체 용모가 단정하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한 중견기업의 인사담당자는 “뚱뚱하거나 키가 160센티미터 이하인 여성은 면접에서 감점 처리한다”며 “남성과 달리 여성의 경우는 안경을 쓰거나 지나치게 수수한 것도 감점 요인”이라고 밝혔다. 

 

취업전문업체 스카우트가 지난 9월 말 기업 인사담당자 2백43명에게 “채용 시 구직자의 외모가 영향을 미치는가” 하고 물은 결과, 66.7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73.7퍼센트의 인사 담당자들은 “실력이 뛰어나지만 외모가 호감형이 아닌 사람보다, 실력이 부족하지만 외모가 호감형인 사람을 택하겠다”고 답했다. 

 

사무직보다 더 노골적으로 외모를 고용 기준으로 삼는 직종이 바로 서비스직이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외모에 따라 벌어들이는 수입이 천차만별이다.
의사·변호사 등 상류층의 피부 관리를 전문으로 한다는 한 피부 관리 숍에서는 키 163센티미터 이상, 외모에 자신있는 20∼25세 이하 여성들에게 하루에 적게는 18만 원에서 많게는 30만 원의 일당을 지급한다. 
반면 평범한 여성들에게는 일당 3∼4만 원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 기회만 주어진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전일 근무하는 여직원에게 50만 원을 주겠다는 한 중소기업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모는 곧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인생과 성공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최근 여성 포털 사이트 팟찌닷컴이 20∼30대 여성 4백32명을 대상으로 “올해 가장 큰 스트레스”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43퍼센트가 다이어트를 꼽았다. 이 중 63퍼센트가 “몸매로 인한 사회적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취업 시즌을 맞아 많은 여성들은 집단으로 성형수술이나 몸매관리를 받기도 한다. 한 도우미 대행사는 한 성형외과와 제휴를 맺어 도우미 여성들의 경우 성형수술 시 수술 비용의 30∼40퍼센트를 할인해 주는 혜택(?)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이러한 광적인 외모지상주의는 평범한 여성들을 끔찍한 피해자로 만들었다. 방송이 나간 뒤 많은 사람들의 동정과 관심을 받은 ‘선풍기 아줌마’도 그러한 예다.
그녀는 여러 차례 성형수술 실패 후 외모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자신이 직접 파라핀과 콩기름을 얼굴에 주입한 결과 얼굴이 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말았다. 

 

야만적인 이 사회의 모습은 많은 여성들의 한숨과 눈물에서도 고스란히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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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주고 약 주는 집권당 개혁쇼 / 자본주의 정치인들과의 동맹 전술은 파산했다.

다함께 47 호

병 주고 약 주는 집권당 개혁쇼 / 자본주의 정치인들과의 동맹 전술은 파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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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주고 약 주는 집권당 개혁쇼 - 전지윤

노무현과 열우당은 2004년의 마지막과 2005년의 새 출발을 역겨운 배신으로 더럽혔다. 이 배신자들은 끝까지 갈지자 사기극을 연출하며 민주개혁의 염원을 우롱했다.

 

노무현은 “4대 입법이 되든 안 되든 대세에 크게 지장이 없으니 … 차근차근 풀어 나가자”며 야합의 물꼬를 텄다. 노무현은 친미 우파를 향해 “지금부터 잘 해 보자”, “따뜻한 인간 관계가 맺어지길 바란다”고 눈웃음쳤다.    

<조선일보>는 “옳고 바른 방향”이라고 반겼고, 한나라당도 노무현과 열우당이 “한나라당의 합리적 주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칭찬하기에 마땅하다”(2004년 12월 24일 논평)고 기뻐했다. 

 

한나라당과 열우당의 야합은 껍데기만 남은 4대 개혁의 개혁 ‘흔적’까지 닦아냈다. 언론개혁법에서는 시장점유율 산출 단위를 애초 중앙 일간지에서 전국 일간지로 조정해 조·중·동을 규제 대상에서 빼 주었다. 지면 50퍼센트 광고 제한 조항과 편집위원회 설치 의무화 조항도 빠졌다.  
친일진상규명법에서는 진상 규명의 대상에서 ‘언론’을 뺐고, 심지어 법안 이름에서 ‘친일’도 뺐다. 과거사법에서는 한나라당이 요구한 ‘친북 좌익에 의한 테러 규명’이 받아들여졌다.

 

‘개혁 없는 개혁법’들마저 통과되지 않았다. 한나라당과 열우당은 합의와 결렬을 거듭하다가 결국 막바지에 파병연장동의안과 함께 신문법만 통과시켰다.
온갖 협잡과 난동으로 몇 달을 허비한 배신자와 전쟁범죄자들은 파병 연장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 의원의 5분 연설에 “처리할 법안도 많은데 시간을 끈다”며 짜증을 내고 야유를 보냈다. 열우당에서는 파병 연장 찬성표가 심지어 한나라당보다 두 배가 넘게 나왔다.
파병연장안을 통과시키고 난 직후, 범죄자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 서로 ‘정겨운 2005년 새해 덕담‘을 나누었다. 

 

국회 앞 길거리에서 추운 겨울에 6백여 명이 한 달 가까이 단식을 하며, 심지어 1백50명은 물과 소금까지 끊고 보안법 철폐를 바랐지만 배신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지적했듯 다시 한 번 “노무현 정권의 개혁이 정치적·도덕적으로 파산”했고 “우리당 견인을 통한 개혁법안 처리는 환상임[이]” 분명해졌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열우당의 개혁적 이미지와 반동적 실체의 모순 때문에 균열이 생겼다. 당의 왼쪽 기반을 의식해 ‘왼쪽 깜박이’ 노릇을 하며 농성까지 한 소위 ‘강경파’에게 ‘온건파’들은 “그만해라. [이미 카메라가] 많이 찍었어” 하고 비웃었다. ‘강경파’는 열우당의 배신과 야합을 가리고 지지자들을 묶어 두는 구실을 한 것이다.

 

이해찬은 생뚱맞게 “2007년 대선도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말했지만, 더러운 실체가 드러날수록 열우당의 분열과 파산은 가속화할 것이다. 이 때문에 도로 민주당과 합당하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미래가 없는 이 더러운 배신자들의 파산을 더 앞당겨야 한다.

 

 

자본주의 정치인들과의 동맹전술은 파산했다. - 전지윤

 

배신자들의 파산과 함께 배신자들과 동맹해 개혁을 이룬다는 전술도 파산했다.

 


지난해 9월 노무현이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칼을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자”고 말하자,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를 주도한 민족주의 좌파와 NGO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노무현·열우당과 손잡고 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헛된 기대로 기울었다.
“과거를 불문하고 노선을 따지지 말고 민주개혁을 바라는 모든 세력을 … 노 대통령을 포함하고 여야를 떠나 … 반(反)수구냉전 전선으로 결집하는 것이 우선”(<민중의 소리> 2004년 9월 10일치 사설)이라는 것이다.
노무현은 민중운동의 다수파가 자신에 게 의존하는 틈을 이용해 운동을 분열시키고, 파병연장, 공무원노조 탄압, 기업도시법 통과 등 각종 더러운 악행들을 저지를 수 있었다.

 

민중운동 진영은 노무현과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파병반대 투쟁과 공무원노조 탄압 항의 행동들에 의미 있고 실질적인 대중 동원을 할 수 없었다.
노무현을 궁지로 몰아선 안 된다는 방침 때문에 파병 같은 진정으로 중요한 쟁점들이 외면됐다.
이런 전술은 4대개혁에서도 진정한 개혁을 쟁취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노무현과 열우당의 배신으로 4대개혁의 알맹이가 빠지고 껍데기만 남았는데도 민중운동 진영은 무기력했다.

 

심지어 노무현이 우리 운동을 탄압하는데도 “열우당은 적과 아를 분명히 구분[하고] …개혁공조를 복원해야 한다.”(<민중의 소리> 2004년 11월 2일치 논평)며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의 형법보완은 ‘위장 폐지’일 뿐이라고 비판했지만, 사실상 그나마도 통과되길 바라는 애처로운 신세를 자초했다. 이처럼 우리 운동이 “열린우리당 행보에 따라 일희일비”(<민중의 소리> 12월 10일치)한 것은 바로 이런 잘못된 전술 때문이었다. 

 

지배계급의 개혁파와 동맹한다는 전술은 독립적 대중행동 건설에 소홀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점을 놓치고 민족주의 좌파는 “국가보안법 폐지 대중운동, 왜 힘이 안 실리나?”(<민중의 소리> 10월 14일치)하고 조급해했다.  
결국, 투쟁은 결의된 소수 사람들의 단식 등으로 이어졌다. 추운 겨울에 길거리에서 6백여 명이 한 달 가까이 단식을 하고, 심지어 1백50명은 물과 소금까지 끊고 보안법 철폐를 바랐지만 배신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민족주의 좌파는 “민중진영은 투쟁의 주도권을 확실히 움켜쥐었다. … [우리의] 노선은 정당했고 그 위력은 지금 보는 그대로다. … 이 싸움은 이미 승리한 것”(<민중의 소리> 2004년 12월 29일치 사설)이라며 한사코 현실을 외면했다. 

 

호흡곤란, 탈수증, 구토, 근육경련까지 무릅쓰며 싸우던 국회 앞 단식 농성자들은 야합 소식에 분노해 국회로 향하다 노무현 정부 경찰의 방패에 찍혀 피 흘리며 쓰러졌다.  
단식 농성자들의 영웅적 투지는 실로 놀라웠다. 그럼에도 노무현과 열우당의 더러운 배신에 쓰디쓴 좌절을 겪어야 했다.    

 

만약 우리 운동이 노무현의 파병연장, 공무원 탄압 등에 맞서서 대중행동을 건설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처럼 아무 저항없이 파병연장안이 통과되지 않았을 것이고 진정한 민주개혁에 좀더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 운동의 미래와 성장을 위한 자산이 됐을 것이다. 아직도 “열린우리당 견인 성공”, “열린우리당 배신 막아낸 농성단 ‘승리했다’”(<민중의 소리> 2005년 1월 1일치)며 오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쓰디쓴 교훈을 배워야 한다.

 

농성단이 마지막 성명에서 말했듯이 “이 배신자들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할 뿐 아니라, 배신자들에 맞서 투쟁을 건설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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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해일은 자연적이지만 , 그 결과는 그렇지 않다 /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진해일 피해자 구호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

다함께 47 호

지진해일은 자연적이지만 , 그 결과는 그렇지 않다 /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진해일 피해자 구호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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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해일은 자연적이지만 , 그 결과는 그렇지 않다 -

 자이 자일스 웅파콘 (타이 노동자 민주주의) 

 

 

- 한 동남아시아 사회주의자가 이번 지진해일 대참사에 대해 맑스주의적으로 논평한다


 

폭풍·지진·지진해일 같은 자연 재앙들의 원인은 자연적일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단순히 자연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연 재앙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계급 사회에 의해, 또 평범한 사람들의 삶보다 우선시되는 가치들에 의해 좌우된다.
최근 아시아에서 발생한 지진해일의 경우, 적어도 여섯 가지의 인위적 요인들이 이 비극의 결과를 좌우했다.

 


첫째 요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태평양처럼 제대로 된 조기경보체계가 갖춰져 있었다면, 지진해일로 말미암은 사망자는 훨씬 더 적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인근 한 섬의 주민들은 지진이 바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선조들이 말해 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들은 진동을 느끼자마자 언덕 위로 뛰어갔고 많은 사람들이 지진해일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 지역의 다른 많은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진해일이 빈번히 발생하는 태평양과 달리 수마트라 주변 인도양에서 마지막으로 지진해일이 발생한 것은 1백 년도 더 전이었다. 하지만 1년 전에만 해도 아시아 각국의 지도자들은 지진해일 경보체계를 구축하라는 기상학자들과 지질학자들의 제안을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타이의 한 주요 기상학자는 몇 년 전부터 푸껫 섬이 지진해일 위험 지역이라고 경고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대적인 경보체계가 없었더라도 각국의 정부는 피난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하와이의 지진해일센터는 위험을 알았지만 “누구한테 연락을 취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각국 정부의 전화번호 목록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스리랑카와 인도는 3시간 전에 피난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다. 타이 기상청도 약 1시간 전에 지진해일 위험을 알았지만 긴급 회의 끝에 위험을 강조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정부 당국에 알리지 않았다. 그들의 머리 속에 맨 먼저 떠오른 것은 “잘못된 경보”가 관광산업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었다.

 

그런 재앙의 결과를 결정하는 둘째 요인은 세계 자본주의의 발전이다. 이것은 긍정적인 영향도 있고 부정적인 영향도 있다.
비록 타이에서도 엄청난 인명 피해가 있었지만, 타이가 아체나 스리랑카보다 타격을 덜 입은 이유는 부분적으로 타이 경제가 더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사회기반시설이 입은 타격이 더 작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더 튼튼한 집에서 살고 해변에서 작은 배로 생계를 꾸리는 데 급급할 필요가 없다면 그들은 재앙의 충격을 더 잘 견딜 수 있다. 인근 도시들은 훨씬 더 빨리 구조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인간이 재앙을 견디도록 도울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데도 세계화가 사회의 모든 부분을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불평등은 더 심각해지고 빈민이 대부분 고통을 겪는다. 그뿐 아니라 관광산업의 급속한 발전으로 더 많은 관광객들과 관광산업 노동자들이 위험해졌다.
그렇다면,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우리는 경제와 관광산업을 발전시키지 말아야 하는가? 그 해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수마트라 북부의 아체는 최악의 타격을 입었다. 거기에는 발전한 관광산업이 전혀 없었다.
물론 지구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은 어떤 경우에 결정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 지구 온난화 억제 조처들을 거부하는 서방 정부들의 행동이 위험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는 최근 아시아의 지진해일에서 주요 쟁점이 아니다. 조기경보체계와 적절한 피난·긴급구호 절차 등이 훨씬 더 중요하다.
세계 자본주의 덕분에 우리는 자연 재앙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수단들을 얻게 됐지만, 자본주의의 막대한 잠재력을 자유 시장과 자본주의 정부들의 우선순위에 내맡긴다면 그 잠재력은 결코 인류 대다수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아래로부터 투쟁이 중요하다.

 

자연 재앙의 영향을 결정하는 셋째 요인은 계급투쟁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저항 수준이 중요하다. 지진해일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의 다수는 가난하지 않다. 인도는 핵강대국이다. 타이는 급속히 발전하는 나라다. 타이 총리와 그의 측근들은 억만장자들이다.
문제는 계급 사회에서 부와 권력이 분배되는 방식이다. 계급투쟁이 더 성공적이었던 곳에서 우리는 기업주들을 압박해 더 많은 자원을 인간적 발전에 할당하게 만들 수 있었다. 괜찮은 긴급구호 서비스와 복지국가는 평범한 노동대중이 더 나은 생활수준을 위해 싸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 지역의 어떤 나라에도 복지국가 시스템이나 제대로 조직된 긴급구호 서비스가 없었다. 구급차들조차 거의 없었다.
타이 정부는 군대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다. 이 거대한 군대는 평범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배계급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한다. 전에 타이 군대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총을 쏘았다.
타이 군대는 이런 재앙에 대처하기 위해 제대로 동원된 적이 없다. 예컨대, 후아힌(Hua Hin)에 있는 국왕의 여름 궁전을 지키던 군함 세 척은 서부 연안의 피해자 구조 작업에 긴급 투입되지 않았다. “테러리즘과 싸우기 위해” 타이 남부 세 개 주(州)에 주둔하는 대규모 군대도 결코 움직이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군대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군대 가운데 하나이지만, 수마트라 피해자 지원에 서둘러, 그리고 충분히 동원되지 않았다.
버마의 억압적인 군사독재 정권은 사망자가 “극소수”라고 주장한다. 1988년 민주화 운동 패배 이후 버마 정부는 국민 다수에게 이로운 일을 안 할 뿐더러 버마를 침묵의 벽 뒤로 감출 수 있게 됐다.
타이의 어선들에서 일하다 지진해일에 희생된 버마 어민 수백 명은 대부분 타이의 인종차별 때문에 결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을 것이다. 집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은 결코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지 못할 것이다.

 

지진해일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넷째 요인은 제국주의다. 제국주의에는 여러 수준이 있다. 인도네시아·스리랑카·타이는 “소(小)제국주의 국가들”이다. 이들 나라의 중앙 정부는 자국 국경 내의 모든 지역을 “지배하고 통치할” 수 있음을 전 세계에 “입증해야” 한다. 이것은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자국 자본들의 이익에도 매우 중요하고 세계화 시대에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서도 매우 중요하다.
작은 국가가 자국 국경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면 어떤 자본가들도 그런 나라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인도네시아 국가는 아체의 독립을 허용할 수 없고, 스리랑카 국가는 타밀족의 독립을 허용할 수 없으며, 타이 국가는 주로 무슬림이 거주하는 남부 세 개 주의 자치를 허용할 수 없다.

 

이들 나라의 내전은 미국과 영국 제국주의의 이라크 전쟁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자원을 소모하고 있다. 아체와 스리랑카에서 정부는 국내 상황을 핑계로 구호·복구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지진해일 뒤 미국 군대의 인도주의적 노력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고려하게 된다. 당연히 많은 사회주의자들과 반제국주의자들은 이것이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미국 군함들이 실어다 주는 깨끗한 물·의약품·식료품이 우리 아이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좌우하게 된다면 우리가 도대체 어떤 기분이 들까 잠시 생각해 보자.

 

물론 우리는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미국 제국주의를 칭찬하는 데 열을 올릴 만큼 오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반전 운동 내의 일부 사람들은 그런 유혹에 빠질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우리가 지적해야 하는 것은 더 많은 조처들이 취해져야 하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인 미국이 가장 많이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토록 절실한 원조를 거부하라고 호소해서는 안 된다.
똑같은 태도가 대기업들에도 적용된다. 많은 대기업들이 기업 홍보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온정을 보여 주려 애쓰고 있다. 죽음과 파괴가 닥치면 기업들은 이를 재빨리 이용한다.

 

타이에서는 이번 재앙을 보도하는 TV 뉴스 화면 한쪽 구석에 기업 상품광고들이 등장했다. 민간항공사들은 피해자들이나 의료진을 수송하는 무료 항공편을 제공하고 있다고 광고하는 데 열을 올렸다.
대기업들은 전례 없는 자비로움 ―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문제에서나, 이윤 추구 때문에 현지 주민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문제 등에서는 잘 보여 주지 않았던 ― 을 재빨리 과시했다. 그러나, 시신 수습도 아직 끝나지 않았건만 경제 뉴스는 주가 등락을 논하고 “관광산업”에 미칠 효과를 보도하느라 바쁘다.
우리가 요구해야 하는 것은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더 많은 것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임금을 인상해야 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하며,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세계의 기업들이나 군사 기지들이 해체돼 미국 정부의 원조를 받아도 괜찮다고 느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라크 전쟁이 지금 당장 끝나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다. 그래서 막대한 군사비가 생산적 용도, 특히 당장의 위기가 끝난 뒤 시행될 재건 사업에 투입돼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전쟁·제국주의·자본주의가 모두 서로 연결돼 있고, 세계적인 반전·반자본주의 운동에 몸담고 있는 우리가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려는 노력을 갑절로 늘려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우리의 투쟁을 멈출 때가 아니다.

 

우리는 용기를 내 인류의 진정한 정신을 살펴볼 수 있다. 지금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은 인종·국적·종교를 떠나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슬픔과 연민으로 가득하다.
아체로 구호품을 실어 나른 영국 공군기 승무원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지금껏 했던 가장 값진 일 가운데 하나”였다고 느꼈다. 나는 전쟁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군인을 본 적이 없다. 최근에 아이들을 잃은 베슬란 주민들은 자신들이 기부할 수 있는 것을 모두 기부했다.
재앙이 닥치면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 주러 달려간다. 혈액·식료품·의약품 기증이 쇄도한다. 자원봉사활동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인간적 연대의 새 세계를 말할 때 우리를 비웃는 사람들을 반박하는 증거들이다.

 

그렇다.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를 전쟁터에서 싸우게 만들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기적이고 가증스런 태도를 취하게 만드는 흡혈귀 같은 자들부터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지배계급과 대결하고 체제를 바꾸는 것은 지배 이데올로기나 지배계급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지배계급의 사상에 도전하지 않으면 고통받는 사람들의 분노가 우리 자신을 향하게 될 것이다.

 

타이 현지 주민들은 정부가 자신들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더 많이 도와 줬다고 말하며 모든 외국인들을 미워하기 시작할 것이다.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은 분노를 진정한 표적 ― 계급 사회 ― 이 아니라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상류층의 거짓 자비에 감동할 것이고, 그리 되면 “우리는 모두 하나의 국민”이라는 사상이 더 강화될 것이다. 미국 제국주의가 “나쁘지만은 않구나” 하고 속아넘어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또, 절망감과 불필요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초자연적 해결책으로 그 슬픔을 치유하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정치적 토론과 논쟁을 계속해야 하고 더 나은 세계를 위한 투쟁의 결의를 다져야 한다.

 


 

자이 자일스 웅파콘 (타이 노동자민주주의)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진해일 피해자 구호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 -

아체민중운동연대 


지진해일이 인도네시아 아체 주와 수마트라 북구 일대를 휩쓴 지 엿새가 지났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구호물자 보급을 지연시키면서 수십 톤의 기증품들이 자카르타 공항 등에 가득 쌓여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번거로운 절차와 부분적으로 아체를 국제적으로 고립시켜 온 계엄 상황 때문에 국제원조가 아체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아체 주는 수십 년 동안 인도네시아 중앙정부와 갈등을 겪어 왔고, 2003년 5월 이후 다시 인도네시아 군대의 표적이 되면서 수백 명의 시민이 희생됐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파견한 구호활동가들은 신속하게 피해자를 후송하고 시체를 매장해야 했지만, 적절한 수송수단 부족과 통신시설 파괴 때문에 재해지역에 접근하는 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들은 아체인을 돕고 싶어한다. 자원봉사자들을 재해지역으로 보낼 수 있었던 아체 안팎의 시민단체들은 국가기구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아체민중운동연대(Solidarity of People Movement for Aceh: SEGERA)는 2001년에 아체인의 민주적 권리를 지원하기 위해 결성됐으며, 노동조합·학생회·민주화 운동 단체·정당 등으로 구성돼 있다. SEGERA는 현재 15명의 자원자를 아체 재해지역에 파견했다. SEGERA는 구조활동을 태만히 하고 있는 정부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인도네시아 정부는 계엄을 해제하고 지역과 국제사회의 원조와 구호 활동이 자유롭게 아체로 향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


 

2. 국가기구와 군대는 국내와 국제 시민단체들이 구호 활동을 더 자유롭게 벌이고 필요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


 

3. 인도네시아 정부는 즉각 재건사업을 시작하고 재난으로 파괴된 사회기반시설을 복구하라.


 

2005년 1월 1일
Solidaritas Gerakan Rakyat untuk Aceh ­아체민중운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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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러시아 혁명 1백주년 : 혁명으로 가는 다리

다함께 47 호

혁명으로 가는 다리 -  아닌디야 바타차리야(Anindya Bhattacharyya)  

http://www.alltogether.or.kr

 

혁명으로 가는 다리

 

- 대중 파업은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그녀의 고전적 저작 ≪대중 파업≫을 쓴 1백 년 전보다

2003년 10월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이 대통령궁을 에워쌌다. 그들은 증오의 대상이던 백만장자 대통령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의 퇴진을 요구했다. 며칠 후 그는 불명예 퇴진하고 마이애미로 도망가야 했다. 

 


몇 주 동안 계속된 대규모 파업과 거리 전투의 정점이던 그 운동은 맑스주의자들이 대중 파업이라고 부르는 것의 한 사례였다.
대중 파업은 머나먼 이역만리에서나 일어나는 에피소드도 아니고 역사책 속에나 나오는 케케묵은 이야기도 아니다. 지난 5년 동안 유럽에서는 대중 파업이 일어났던 나라들이 아니라, 대중 파업이 일어나지 않았던 나라들이 예외였다.  

 

그런 파업들은 얼마나 중요한가? 어떤 상황에서 대중 파업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를 사회주의 사회로 대체하기 위한 투쟁을 대중 파업이 도대체 어떻게 진전시키는가?
이런 논쟁들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비슷한 논쟁이 19세기에도 격렬하게 벌어졌다.

1905년 1월 러시아에서 일어난 일련의 놀라운 사건들은 이런 논쟁의 양상을 바꿔 놨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푸틸로프 기계 공장에서 전투적인 노동자 네 명이 해고된 것에 반발해 시작한 파업이 도시 전체의 대중 파업으로 확산했다.
다양한 공장과 작업장의 노동자 약 15만 명이 그 투쟁에 참가했다.
파업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 언론과 집회의 자유, 농민에게 토지 분배,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요구했다. 전에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대규모 파업들이 벌어진 적이 있었지만, 이토록 광범하고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파업은 전례 없는 것이었다.
며칠 뒤, 약 20만 명의 파업 노동자들이 짜르의 동궁으로 행진했다. 짜르의 군대가 군중에게 발포했고, 뒤이어 기병대가 사람들을 습격했다. 적어도 1천 명이 살해당했고 거의 2만 명이 부상당했다.

 

그 학살이 1905년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이 사건들에서 영감을 얻은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사상을 구체화시켰다. 룩셈부르크는 당시 독일의 대규모 노동계급 사회주의 운동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던 폴란드 태생의 혁명가였다.

 

1906년 룩셈부르크는 ≪대중 파업, 정당, 노동조합≫이라는 팸플릿을 썼다. 오늘날까지도 이 팸플릿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대중 파업이 하는 구실에 대한 고전적 맑스주의 분석으로 남아 있다.
팸플릿의 많은 부분에서 룩셈부르크는 1905년 사건들의 복잡한 과정과 결과를 자세히 분석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그녀가 끌어 낸 세 가지 이론적 결론은 대중 파업을 전술과 무기로 이용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둘러싼 그 전의 빈약한 논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첫째, 룩셈부르크는 대중 파업에 대한 이전의 분석들이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분리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투쟁은 개별 공장이나 산업에서 벌어지는 임금이나 일자리 등등 노동조건을 둘러싼 투쟁을 말한다.
정치투쟁은 정치적 권리나 국민연금 정책을 둘러싼 투쟁 또는 사람들이 증오하는 장관의 사임을 요구하는 투쟁 등이다. 
룩셈부르크는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대중 파업≫에서 그녀는 “이 둘 사이에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고 썼다.
“모든 정치투쟁의 고양기 뒤에는 수많은 경제투쟁의 싹을 틔우는 기름진 퇴적물이 남는다. 또한, 역으로, 끊임없는 경제투쟁 덕분에 정치적 휴지기마다 노동자 투쟁이 활력을 유지한다.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에 새로 활력을 불어넣는, 노동계급 역량의 마르지 않는 저수지다.
“경제투쟁은 운동을 하나의 정치적 초점에서 다른 초점으로 이동시킨다. 정치투쟁은 빈번히 경제투쟁을 위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경제적 요인들과 정치적 요인들은 러시아 노동계급 투쟁의 동전의 양면이다. 둘의 결합이 바로 대중 파업이다.”
룩셈부르크 주장의 핵심은 흔히 한두 부문의 노동자들이, 예컨대 한 가지 정치적 문제를 둘러싸고 투쟁을 벌이는 데서 대중 파업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얻어 흔히 첫번째 집단의 요구와는 다른 그들 자신의 요구를 제기하게 된다.

 

 

전에 어떤 행동도 취한 적 없는 집단들이 가장 기본적인 노동조합 문제들을 제기할 수 있다. 또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도약해 근본적인 정치적 변화를 요구할 수도 있다.
1905년에 일부 집단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다른 집단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했다. 그러나 짜르의 퇴위를 요구한 집단들도 있었다.

 

둘째, 룩셈부르크는 대중 파업이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상호작용을 통해 보수적인 이데올로기 ― 노동자들이 체제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 를 무너뜨리기 시작한다고 주장했다.
서로 다른 산업 사이의 전통적인 경계가 무너진다.
“노동계급 전체가 어떤 직접적인 정치 행동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 조직해야 하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노동계급이 공장과 작업장, 광산과 주물공장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일상적 멍에가 강요하는 작업장들 사이의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더욱이, 대중 파업은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노동자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드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같은 이데올로기에 도전한다.
공동의 투쟁 경험은 노동자들의 정치적 염원을 끌어올리고 그들의 집단적 힘에 대한 자신감을 강화한다. 
“그리고 얼마나 높은 이상으로 노동자들이 도약하는가! 그들은 투쟁하는 동안에는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생계수단에 대한 고민을 제쳐놓는다.
“그들은 기술적 준비가 완벽했는지 아닌지 따지지 않는다. 일단 정말로 심각한 대중 파업의 시기가 시작하면, 이 모든 ‘비용 계산’은 양동이로 바다를 재려는 시도와 비슷한 것이다.”

 

물론 룩셈부르크는 일상적 시기에 파업 노동자들이 집세나 융자금을 낼 수 있을지, 일자리를 잃게 되지는 않을지, 아이들을 위해 충분히 돈을 모을 수 있을지, 그 밖의 수많은 걱정거리들을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중 파업의 위력은 노동자들이 새로운 자신감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려운 시기를 맞을 것임을 알지만, 더 커다란 군대의 일부로서 어려움을 견뎌 낼 준비가 돼 있다.

 

 

이것은 룩셈부르크의 세번째 통찰로 이어진다. 대중 파업 때문에 노동자들은 투쟁 속에서 스스로 변화해, 자신들의 염원을 더욱 키우고 사회를 운영하기에 적합한 계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중 파업의 다른 역사적 사례에서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폴란드 그다인스크 조선소 점거 투쟁의 특징은 대중문화 행사가 대규모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작가 조합은 야간 강좌를 열었고, 약 1만 명의 노동자가 시 낭송회나 독서모임 들에 참가했다. 재즈 연주회나, 유명한 영화감독 크쉬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강연회에도 수천 명이 몰려들었다. 
이렇게 대중 파업은 민주적인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보여 준다.

 

1995년 프랑스 대중 파업 당시 드뢰 시에서 일어난 일은 이런 활력과 정신을 잘 보여 준다.
“철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총회를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 언론과 민주적 조직들에게도 널리 개방함으로써 쥐페 정권의 계획에 맞선 투쟁을 개방적 형태로 새롭게 발전시켰다. 그 운동 때문에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파업노동자들이 다 함께 모일 수 있었다. 이것은 더는 ‘그들만의’ 운동이 아니라 ‘다 함께’ 하는 운동이었다.”

 

 

대중 파업은 다른 사회를 위한 투쟁과 오늘의 투쟁을 잇는 다리다. 대중 파업은 노동자들의 힘을 보여 주고, 노동자들에게 미래를 힐끗 보여 주며, 새로운 조직 형태들을 만들어 낸다.
오늘날의 개별 파업들에서도 대중 파업의 모습이 힐끗 드러난다. 이탈리아의 자동차 대기업 피아트는 2004년 봄 30만 명의 노동자들이 참가한 국가적 파업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한때 피아트 공장 중 한 곳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생산이 중단됐다.
그 파업을 촉발한 것은 이탈리아 최남단 멜피의 노동자들이었다. 피아트 회사는 정확히 10년 전 그 지역에 전투적 노동자 전통이 없었기 때문에 그 곳에 공장을 열었다. 
그러나 일단 파업이 시작하자 노동자 총회가 날마다 열려 정말로 민주적인 사회의 모습을 잠깐씩 보여 주었다.

 

1905년에 대중 파업은 소비에트[노동자 대표들의 평의회]를 탄생시켰고, 소비에트는 삶의 모든 측면을 조직하고 토론하기 시작했다. 소비에트는 기존의 사회 운영 방식에 대항하는 새로운 권력 형태였다. 

 

대중 파업은 개혁을 위한 요구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그 끝은 혁명을 향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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