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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의 발톱을 드러내는 일본

다함께 51 호

제국주의의 발톱을 드러내는 일본 - 강동훈

http://www.alltogether.or.kr/

 

제국주의의 발톱을 드러내는 일본 

 

한 동안 잠잠했던 독도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1월 일본 시마네 현 의회가 ‘독도의 날’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알려지면서다.

이 와중에 지난  2월 23일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일본대사가 “독도는 명백한 일본땅”이라고 말하고, 3월 9일에는 <아사히신문>의 비행기가 독도 상공으로 진입을 시도하자 일부 네티즌들은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라고 말하며 반일 감정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이처럼 일본의 독도 소유권 주장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증오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우익의 주장과는 달리, 독도는 일본땅이 아니라 한국 영토다.

그러나 일본 지배자들은 ‘보통국가화’라는 이름으로 동아시아 나아가 국제 사회에서 패권적 지위 향상을 위해 관련 장애물을 하나둘 제거하고 있다.

돌섬일 뿐인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강변하는 것도 동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적 패권 야욕과 관련 있다.

이미 일본은 자위대의 존재를 합법화하는 내용으로 평화헌법을 개정하기, ‘국제공헌’이라는 명목의 해외 군사 활동 확대,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사실상 용인 등을 추진해 왔다.

또한 일본 정계와 재계에 폭넓은 지지 세력을 갖고 있는 우익단체인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4년 전에 이어 일제 식민통치를 미화하는 내용의 역사 왜곡 교과서를 다시 신청한 것은 이런 흐름 속에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이런 행보는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중국 또한 전인대에서 ‘반국가분열법’을 채택함으로써 맞대응하고 있다).
이렇듯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동아시아 정치 지형을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군사대국화와 우경화는 미국의 용인 아래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 비용을 일본과 나눠 맡고, 다른 경쟁국의 출현을 견제하면서 패권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미국은 ‘해외주둔미군재편계획(GPR)’을 통해 일본을 ‘전력투사중추기지’로 규정하면서 주일미군을 동아시아 전역과 중동, 중앙 아시아에까지 이르는 미군의 군사적 전개 축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이 점은 지난 2월 19일에 열린 미국과 일본의 ‘안보협의위원회’의 성명에서 양국의 동맹 범위를 중동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하는 공동 전략 목표를 설정하는 것에서도 확인됐다.

이와 함께 미국은 새로운 미일동맹에 방해가 되는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으며,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적극 돕고 있다.

미국이 일본과 군사 동맹을 강화한다는 것은 어느 선까지는 일본 지배자들의 이익을 옹호해 줘야 한다는 것이며, 미국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이를 지지하거나 묵인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 가능했다.

또, 일본은 북한과는 핵무기·납북자 문제, 중국과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오키노도리 등의 영토 문제, 러시아와는 북방 4개섬 반환 문제를 놓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심지어 미국과 함께 대만 문제에도 개입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정당하게도,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제국주의적 팽창 의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 지배자들은 ‘테러와의 전쟁’과 이라크 파병에서 미국·일본과 함께 하고 있고 한·미·일 군사동맹을 중시하고 있다. 또한 중국과 경제 교류가 확대되고 있으나 여전히 미국·일본과의 경제 교류가 더욱 중요하다. 이 점은 한국 지배자들이 한·일, 한·미 FTA를 강력하게 추진하려고 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독도 문제에서 한국 정부가 초기에 “조용한 외교”를 구사하려고 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한국 지배자들이 미국과 일본의 요구에 순순히 따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나름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이런 모순적 상황이 노무현이 밝힌 “친미적 자주”다. 노무현 정부가 국방비를 대폭 확대하고 있는 것도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 동북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에 일관되게 맞서기 위해서는 노무현과 같은 한국 지배자들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중국 또는 미·일 등의 강대국들과 협력하면서 세계 체제가 강요하는 끔찍한 희생을 우리에게 지우려 한다. 제국주의 동맹국의 이익뿐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독도 문제에 대한 지배자들의 민족주의 선동과는 다른 독립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일관된 반대는 군사대국화의 또 다른 피해자들인 일본의 노동계급과 민중에게서 나올 것이다. 국제주의 관점에서 이들과 연대하는 것이 대안이다.



강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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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비정규직 개악안에 맞서 파업을 건설하라 / 투쟁만이 단결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

다함께 51 호

노무현의 비정규직 개악안에 맞서 파업을 건설하라 / 투쟁만이 단결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 - 전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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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비정규직 개악안에 맞서 파업을 건설하라

 


일찌감치 ‘민주개혁’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낸 노무현이 노동자 공격에 ‘올인’하고 있다. 

법원은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노조와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에 대한 출입금지가처분 판정에 이어 현대차 5공장 비정규직 농성장에 대한 퇴거단행가처분 판정까지 내리려 한다.

노동부는 현대차 불법파견에 대해 ‘정규직 고용 의무가 없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 주었다.

경찰은 현대차와 하이닉스에서 경비대와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폭력 탄압에 앞장서고 있고, 삭발·단식으로 저항하는 경찰청 고용직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전원 연행했다.

이처럼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무현 정부는 기업주들 편에서 대량 해고, 구속·수배, 고소·고발, 손배 가압류, 용역깡패 투입 등 온갖 폭력과 탄압을 퍼붓고 있다.  

이런 탄압의 결과, 2백50일 넘게 투쟁하며 용역깡패의 폭력과 2억 4천여만 원의 손배 가압류에 시달리던 한원CC 노조 원춘희 대협부장이 3월 4일 자살을 시도했다.

나아가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 노동법 개악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열우당 이목희는 “민주노총이 [노사정위] 참여를 결정해도 비정규 법안의 4월 처리는 불가피하다”고 못박았다. 노동부 장관 김대환은 “파견 전면 확대가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경제 5단체장은 이에 힘입어, 정부의 비정규 개악안을 지지하며 비정규직 고용을 더욱 늘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금은 노무현과 대화할 때가 아니라 노무현에 맞선 투쟁에 ‘올인’ 할 때다.



전지윤    

 

투쟁만이 단결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

 


민주노총 이수호 지도부는 ‘사회적 교섭’이 공약 사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수호 지도부는 “선언에 그치는 총파업”을 비판하며 “제대로 된” “준비된 총파업”도 약속했었다.

손석춘 씨가 지적하듯 노무현의 노동자 탄압과 공격이 거세지는 지금 “이수호 위원장이 역점을 둘 공약은 ‘대화’가 아니라 ‘총파업다운 총파업’이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지난해 한 달 간 전국을 돌면서 파업을 호소하고 투표를 조직한 결과, 11월 26일 15만 3천여 명이 6시간 파업에 참가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그 후, 투쟁 건설보다 사회적 교섭에 치중하며 분열을 야기하고 시간을 허비했다. 4월 국회에서 비정규 개악안 통과가 유력한 상황에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투쟁과 파업 건설에 초점을 둬야 한다.

조합원들의 투쟁 의지를 고무하는 활동은 조직하지 않은 채 ‘사회적 교섭에서 뒤통수를 맞으면 조합원들이 들고일어날 것’이라는 식의 발상은 기계적이다.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구체적 상황, 조합원들의 사기와 자신감 상태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혹시라도 ‘2006년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을 핑계로 이번 투쟁에 소홀해서도 안 된다. 정부와 기업주들의 당면한 공격에 맞서 싸우지 않고, 다시 말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투쟁보다 사회적 교섭을 강조해 놓고 내년에 어떻게 잘 싸울 수 있겠는가. 


민주노총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은 “사회적 교섭이 실보다 득이 많다 … 우선, 교섭비용이 줄어든다”며 집회, 시위, 파업 등을 단지 ‘교섭 비용’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교섭이 아니라 이런 투쟁에 기초할 때만이 노동자들의 의식화와 조직화를 제고할 수 있으며 그 성과는 비용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다.  

강승규 부위원장은 또 사회적 교섭은 “전술”일 뿐인데 “지나치게 과민반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고, 오히려 뒤통수만 맞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교섭에 들어가는 것은 잘못된 전술이다.

3월 11일 ‘사회적 교섭,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 강승규 부위원장은 “1996년 노개위(노사관계개혁위원회) 때도 날치기 통과 이후 노동자들이 총파업으로 들고 일어섰다.”며 사회적 교섭이 투쟁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96년에 정부는 민주노총을 노개위에 끌어들여 놓고 노동법 날치기 통과로 뒤통수를 쳤다. 이런 경험에서 뒤통수 맞지 말고 투쟁해야 한다는 교훈을 끌어내는 게 맞다.

이 토론회에서 박용석 공공연맹 부위원장은 “힘이 없으니까 교섭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싸우면서 힘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고 상대가 뻔히 자신을 공격하는데 교섭에 들어가는 것은 항복할 생각이 아닌 다음에야 완전히 어리석은 일이다.         


1998년 노사정위 공공부문 특위에 참가했던 ‘평등사회를 향해 전진하는 활동가 연대’ 임성규 상임의장은 “그 안에서 정부, 기업, 공익의원과 한국노총까지 12대 1로 싸워야 했고, 노사정 회의 다음 날 대량해고와 사유화가 발표되더라”고 말했다.



이갑용 울산동구청장도 “1998년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노사정위에 참여”해 “일방적 거수기 노릇”만 해야 했던 경험을 말하며 “그 때와 지금의 정세는 변한 게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23일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비정규직 개악안을 처리하려는 열우당 의원들을 만나 “강행처리하면 그들[사회적 교섭 반대파] 주장이 맞는 것이고, 우리[사회적 교섭 찬성파]는 명분을 잃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악안이 4월로 미뤄졌다고 명분이 생긴 것은 아니다.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의(준)가 지적하듯, “민주노총은 ‘정부가 비정규법안 강행 처리하면 사회적 교섭 폐기하겠다’고 수차례 선언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사회적 교섭안 처리를 강행하려 했던 3월 15일 대의원대회도 또다시 충돌 속에 무산됐다.

수단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사회적 교섭안을 막고 노무현의 공격에 맞선 투쟁을 호소하려 한 현장파 활동가들의 심정을 우리는 충분히 공감한다. 

이런 현장파 활동가들의 진의는 외면한 채 기성언론은 역시나 “폭력” 운운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비정규직노조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지배자들의 야만적인 탄압이야말로 진정한 폭력이다.

따라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폭력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사회적 교섭 강행 뜻을 밝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마 다음 대의원대회는 녹록치 않을 듯 하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더 이상 “사회적 교섭을 끝까지 사수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분열과 혼란을 자초할 것이 아니라, 늦기 전에 모든 힘을 투쟁 건설로 돌려야 한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보면, 민주노총 지도부는 4시간 파업을 넘어 진지하게 파업을 호소해야 한다.

현장에서 조직되는 강력한 투쟁만이 더한층의 분열을 막고 노동자들의 단결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전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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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경제의 전도사, 한덕수 / 빈곤 - 체제의 정신나간 우선순위가 낳은 비참함

다함께 51 호

개방 경제의 전도사, 한덕수 / 빈곤 - 체제의 정신나간 우선순위가 낳은 비참함

- 김문성 / 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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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경제의 전도사, 한덕수

 

노무현이 이헌재 경제 부총리의 후임으로 한덕수를 지명했다. 한덕수는 김대중 정부 시절 OECD 대사, 정책기획수석, 경제수석 등을 거치면서 시장 개방 추진에 앞장섰던 자다. 특히 한·칠레 FTA 교섭을 이끈 주역으로 유명하다.

농민들의 격렬한 반발을 샀던 한중 마늘 협상 당시 협상 내용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청와대 경제수석에서 사퇴하기는 했지만,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는 국무총리 직속 국무조정실장을 맡아 이른바 실용주의 경제 정책의 포스트로 일해 왔다. “개방 경제의 전도사”라는 그의 별명은 이러한 경력에 대한 칭송인 셈이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주는 표창을 받았는데, 당시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주한 미국기업은 자본주의적 사고와 서구식 경영을 한국에 도입하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한국은 주한 미국기업을 미국기업이 아니라 한국기업으로 대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한덕수는 또 마늘협상 파동으로 사표를 낸 직후 ‘김&장 법무법인’의 고문을 맡기도 했는데, ‘김&장 법무법인’은 대표적 투기자본인 론스타 등의 한국 진출에 법률 자문을 하면서 론스타와 경제관료 사이에서 다리 구실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외 개방을 통한 성장론자’인 한덕수의 경제부총리 임명은 노무현 정부의 본질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김문성

 

 

빈곤 - 체제의 정신나간 우선순위가 낳은 비참함

 


“고등학교 입학금조차 없는 가난한 집의 둘째 딸. 이런 나에게 미래가 있을까 … 사랑하는 엄마, 내가 없어지는 것이 불효라는 것 알아. 하지만 내가 없어지는 것이 돈이 덜 나가 다행일지도 몰라.”

얼마 전 자살한 한 소녀 가장이 유서에 남긴 말이다. 우리는 요즘 이런 얘기를 익숙해질까 봐 두려울 만큼 많이 듣는다.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눈 앞에 둔 한국의 빈곤율은 정부 기준으로도 10.4퍼센트다. 외환위기 전인 1990년대 중반에 비해 2배 가량 높은 수치다. 최저 생계비 이하로 사는 사람과 차상위 계층을 포함한 빈곤층은 7백만 명에 이른다.


당연히, 빈곤은 누구나 인정하는 우리 사회의 핵심 이슈가 돼 버렸다. 그러나 빈곤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결책은 제각기 다르다.

주류 언론은 성장을 해야 빈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우리이웃”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조선일보>는 2002년 수준의 경제성장률(7.5퍼센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이재영 정책실장에 따르면 1999년 경제성장률은 9.5퍼센트나 됐지만, 중위 50퍼센트 이하 소득 빈곤율은 오히려 늘었다. 5년 동안 실행된 이 조사에서 한 번을 제외하고 성장과 빈곤개선의 연관이 나타나지 않았다.

정부 복지 정책의 핵심 중 하나인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결코 국민들의 기초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1인 가구에 36만 8천 원은 밥값에 불과할 뿐 영양 상태도 유지하기 힘든 돈이다. 문화 생활은커녕 아파도 제대로 치료 한 번 받기 어려운 액수다.

그것조차 받지 못하는 빈곤층의 수가 최대 4백2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의 거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받지 못하는 이유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소득이 수혜 기준에서 천 원만 넘어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특히 나쁜 독소조항이다. 2촌 이하 가족이 기준 이상 소득이 있으면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그들 중 60퍼센트가 가족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노무현 정부 복지정책의 기본방향은 “노동을 통한 복지”다. 사람들에게 일을 하게 만들어 빈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내년에 EITC(근로소득 보전 세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EITC는 많이 일하는 사람에게 더 많이 지원해 주는 노동 유인 복지 제도다. 이 제도에서는 일정 수준까지는 일을 많이 할수록 급여를 많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일정 수준이 지나면 지급률이 줄어든다. 따라서 결국 최저생계비보다 별로 높지 않은 소득을 받게 된다.

미국에서 EITC 제도 도입 후 빈곤율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또 저임금 일자리라도 많이 해야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리하게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열악한 일자리가 많이 늘었고, 노동 유연화가 확대됐다.

정부가 EITC 도입을 핑계로 최저임금제나 기초생활보장법을 개악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1997년 이후 가난한 노동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연봉 1천1백만 원 이하 일자리는 1993년 5백8만 개에서 2002년 6백27만 개로 1백20만 개나 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계속 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1997년 이전 40퍼센트대였지만, 2004년 8월에는 56퍼센트에 이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30퍼센트 정도만이 4대보험을 적용받고 있다. 평균 임금은 1백9만 원으로 4인 가족 최저생계비(1백5만 5천90원)밖에 안 된다.

위 사례들은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지고 일자리의 질이 좋아지지 않는 한 빈곤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도 정부는 정규직을 비정규직화하고, 비정규직의 조건까지 악화하는 비정규직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

이것은 이전에 노동자들이 쟁취한 성과를 회수하려는 시도다. 1987년 이후 노동자 운동의 성과로 국민 소득에서 임금 몫이 차지하는 비중인 노동소득 분배율과 노동시간 등이 꾸준히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개선돼 왔다.

그러나 1997년 이후 한국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더 가혹하게 쥐어짜면서 경제를 회복하려 했다. 정성진 교수는 1996∼2000년 사이 착취율 증가는 이 기간 이윤율을 매년 5.4퍼센트씩 상승하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덕분에 부자들은 더 부유해졌다. 삼성 임원들은 스톡옵션으로 앞으로 1조 2천4백억 원을 받을 수 있다. 백화점 명품관은 매년 확장을 거듭한다.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소득 지니계수도 늘었다.

빈곤사회연대(준) 발족선언문은 이 불평등을 잘 묘사하고 있다. “한국의 부자 5퍼센트가 한국 사회 부동산의 50퍼센트를 소유하고, 용산시티 파크 이틀 청약 기간에 우리 나라 사회복지예산 70퍼센트에 달하는 돈이 몰리는 세상이다…”

정부는 복지 예산을 얘기할 때마다 예산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10년 동안 첨단무기를 사기 위해 24조 원을 쓰는 것에 대해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재작년 기업들에게 1백조 원이 넘는 세금을 깎아주고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빈곤이 사회의 우선순위 문제임을 보여 준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양질의 사회적 일자리 제공과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주장한다.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핵심 정책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재원 마련을 위해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는 부유세 도입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 요구들을 지지해야 한다.

정부는 항상 장밋빛 미래가 얼마 안 남았다며 “인내”를 강요해 왔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장밋빛 같은 미래를 원한다면 이 사회의 거꾸로 된 우선순위에 맞서 저항하자!



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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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의 삶과 투쟁

다함께 51 호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투쟁 - 라디카 / 마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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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의 삶과 투쟁

 

지난 3월 5∼6일에 ‘다함께’가 주최한 ‘진보적 대학생이 꼭 알아야 할 10가지 주제’에서 두 이주노동자가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두 사람이 전해 준 이주노동자들의 진솔한 삶과 투쟁 이야기는 많은 청중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라디카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저는 한국 땅에서 1992년부터 살고 있습니다. 20대 나이에 들어와서 30대가 다 됐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까운 나이를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저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이주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얘기하고 싶습니다.

오래 전부터 한국에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여러 방식으로 들어오면서 자기 살림과 자기 가족을 살리기 위해 노동을 해 왔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오랫동안 한국에서 힘들게 살면서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한국 노동자들 그리고 시민들은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일 빼앗긴다고 오해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이 일 빼앗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3D업체의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거에요.

3D업체의 일이라는 것은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노동자들이 안 하는 일이 우리 이주노동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14시간, 15시간 일하면서도 낮은 임금 제대로 못 받고, 강제로 일 하다가 다쳐도 산재 안 되고, 일하는 현장에서 폭행당하고 차별받아야 하고, 누구한테 맞아도 입 다물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이주노동자입니다.

우리는 많이 고통받고 노예처럼 일해 왔습니다. 가족 생존권 위해 모두 아픔을 참고 일해 왔습니다. 언젠가는 한국 정부도 우리의 아픔을 알고 좋은 제도 만들거라는 기대감이 항상 있었어요.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마침내 2003년 7월 31일 국회에서 고용허가제가 통과됐습니다. 그 때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합법화될 수 있구나.” 기대감도 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주노동자를 세 부류로 나눴습니다. 한국 체류 3년 미만자만이 합법적 신분을 얻었습니다. 4년 이상 불법 체류한 이주노동자는 모두 2004년 1월 15일까지 한국에서 떠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합법화된 3년 미만자들도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어 불법 체류자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한국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한국 경제를 위해 일해 왔던 우리 이주노동자들을 아무 책임도지지 않고 나가라고 말하는 한국 정부 때문에 우리는 많이 고생했습니다.

고용허가제 때문에 너무 힘들게 일하고 있습니다. 고용허가제로 합법화된 3년 미만자들도 체류 기간이 다 돼 불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12월 15일부터 지금까지 심하게 단속하고 있습니다. 단속을 언제까지 하는지 언제 끝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계속 잡히고 있습니다. 지난주 의정부에서도 우리 친구들이 많이 잡혀 갔습니다. 한 여성분도 잡혀 갔어요. 나이도 어린데요. 출입국 직원들이 그녀를 잡다가 그녀의 손을 부러뜨렸어요. 손 부러지고 그 분은 쓰러졌어요. 그런데 출입국 직원들은 그녀를 그냥 두고 갔어요. 그 책임은 누가 지나요. 공장도 책임 안 지고 출입국 사람들은 도망가고. 우리의 존재와 마음이 한국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생존권까지 걸려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법무부는 왠지 단속·추방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은 해결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003년 12월 15일부터 명동성당에서 이주노동자들 80명과 20명의 한국 활동가들이 함께 농성했습니다. 우리의 요구는 단속·추방 저지,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사업장 이동 자유였습니다.

농성중이었던 2004년 2월 15일에 우리 농성단의 이주노동자 대표 연행됐습니다. 또, 같이 투쟁하는 이주노동자 3명도 집회하다가 출입국 직원들에게 잡혀 갔습니다. 그 분들 석방을 요구하면서 단식 투쟁도 했습니다. 그 분들은 보호소에서, 저와 이주노동자 3명은 농성장에서 한 달 동안 단식했습니다.


추운 겨울 농성장에 모인 우리는 서로가 국적도 민족도 피부색도 말도 달랐지만 1년 동안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하며 뜨겁게 투쟁했습니다.

1년 동안 수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아픔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강제 추방과 인간사냥 때문에 14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와서 돈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가족과의 약속은 단 1분 만에 무너졌습니다.

그 가족들은 얼마나 울었을까요? 아들을 잃어 버린 엄마, 사랑하는 남편을 잃어 버린 아내, 하나밖에 없는 아빠를 잃어 버린 아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17년 전부터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탄압과 차별을 받으며 노예처럼 살아왔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불법체류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아왔습니다. 바로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많이 이용당했습니다. 많은 이주 여성들은 성폭행도 당했습니다. 이렇게 입 다물게 하고 우리를 언제까지 써먹을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참을 만큼 참아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알려 주고 싶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노동자는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지역에서 수도권 노동조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이주노동자들이 지금까지 받았던 고통과 탄압에 맞서, 권리를 위해 싸우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숨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지금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우리한테 큰 성과가 있어요. 왜냐하면 오늘 학생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도 우리한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에요.

지금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40만 명이 넘어요. 바로 앞에도, 자기 동네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있어요, 자기 나라에서 자기 가족 다 놔두고 한국에 돈 벌려고 나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를 자기 가족처럼 대우해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했어요. “지금 이주노동자들이 모두 합법화하면 자본가들에게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이익이 없어지는 것 아닐까요?” 

이주노동자들 한국에 들어오는 이유는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서에요.

그런데 한국 자본가들은 왜 이주 노동자를 고용할까요? 이주노동자들을 이용해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에요. 그것은 또 한국 노동자들을 착취하기 위해서에요. 이주노동자들이 장시간 일하고 적은 월급 받으니까 한국노동자들한테 “니네도 그렇게 해라.” 하는 거에요.

지금 점점 비정규직 늘어나고 있는 상태예요. 한국의 어느 집안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없는 집안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떤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지는 조금 있으면 학생들도 잘 아시게 될 거에요.

이주노동자들이 합법화돼서 한국에서 일할 수 있으면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훨씬 좋아질 거에요.

건설 현장에 가면 거기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너무 적은 월급으로 일해요. 그래서 한국노동자들이 “니네들 때문에 우리가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식으로 말해요.

한국 노동자들도 월급이나 일당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태예요. 우리가 허가 얻고 한국에서 제대로 당당하게 일할 수 있으면 한국 노동자들과 같이 그 사람들 월급 적으면 올라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같은 일하고 장시간 일하니까.

한국 노동자들도 지금 받는 착취가 덜해질 것 같아요. 이주노동자들은 일 잘하는 사람이고 일 잘하면 그 사람 대우받고 싶어하죠. 인간이니까.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그런 대우를 요구할 수 있어요.

난 한국 노동자들과 똑같은 월급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나도 노동자니까.

나를 이용해 한국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은 나도 인정하지 않아요. 그 노동자는 내 형제예요. 그 분이 착취받는 것은 싫어요. 그렇게 안 되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투쟁하고 있어요.


이주노동자 가족의 교육 문제를 말해 볼께요. 1999년에 이주노동자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이 허용됐어요. 국제노동기구 협약에 의하면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자기 가족들 데리고 와서 같이 살고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데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 거기에 서명하지 않았어요.

그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리비아, 싱가폴 같은 데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자기 가족을 데리고 가서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는데 한국은 초등학교밖에 안 돼요.

미안한 일인데, 제가 9년째 와이프와 떨어져 있는데, 얼굴이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해요. 데리고 오고 싶어도 돈 때문에 못 데려 오고. 우리 딸 데리고 와서 학교에서 교육시키려고 생각해도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요. 제가 일하는 것으로는 못 데리고 와요.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 같은데서 일하는 사람들은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적은 돈으로 자식들을 교육시킬 수 있어요. 고등학교, 대학교 가면 큰 돈이 나가겠지만요. 한국에는 아직까지 제대로 되는 게 없어요.


어떤 분이 외국의 이주노동자 정책과 그 시행에 대해 질문했어요.

저는 방글라데시 출신이에요. 중동에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엄청 많이 가 있어요. 정부들은 “지금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 몇 만 명 필요하다” 하고는 데리고 가요. 거기서는 노동자가 일하고 싶은 공장에서 일해요. 자기가 너무 힘들면 자기 편한 데로 일자리 옮길 수 있어요. 사업장 이동 자유가 있어요. 싱가폴 같은 데도 비슷해요.

현재 한국에서는 내가 아무리 아파도, 아무리 기분 나빠도 “오늘 일 못한다.” 이거 안 돼요. 나는 일 안하면 바로 잘려요. 잘리면 새로운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어요.

그것 때문에 우리는 제대로 된 허가, 노동허가를 원해요.

동지들은 1970∼80년대 한국 노동자들이 독일에 가서 투쟁해 노동허가제를 얻어 놓은 것 알고 계세요? 그 때 간호원들이나 광부들이 독일에 가서 많은 탄압이나 차별받았어요. 투쟁하기도 했구요.

지금 한국에 있는 우리는 40만 명인데, 그 때는 2천5백 명이 투쟁해 노동허가 얻었어요. 독일 사람들이 미등록이나 차별받는 3D업체에서 일하는 분들과 적극 연대하고 도와줬기 때문에 빨리 노동허가 얻은 거에요.

아직도 그분들은 거기에서 살고 있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잘 살고 있어요.

끝으로, 이주노동자들이 테러리스트 아니냐는 얘기가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정부는 반전 집회에 외국인들이 나오면 사진 찍어요. 다 테러리스트로 몰아요. 우리는 한국에서 좋은 추억 갖고 가고 싶어요. 우리는 테러리스트 아니고요. 반한(反韓), 안 했어요.

또, 한국의 정당한 투쟁들을 다 지지하고 적극 연대하고 싶고요.

정부가 아무리 탄압해도 우리는 우리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 길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거 보다 더 좋은 길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끝까지 싸울 거에요. 동지들이 우리와 같이 있으면 우리가 더 힘차게 싸울 수 있습니다.



라디카, 마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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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항쟁들이 진정한 저항인가?

다함께 51 호

이러한 항쟁들이 진정한 저항인가? - 크리스하먼

http://www.alltogether.or.kr/

 

이러한 항쟁들이 진정한 저항인가?

 

[크리스 하먼이 미국이 지원하는 우크라이나, 레바논 등의 ‘민주항쟁’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독재정권과 준독재정권 들은 세계 도처에 존재한다. 이 모든 곳에는 분노하고 저항하고자 하는 여러 부문의 대중이 있다.

내가 최근 방문했던 이집트의 예를 들면,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1981년부터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다. 무바라크 정권은 지난 24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어떤 사회 단체도 국가로부터 독립적으로 조직을 건설할 수 없다.

이것은 노동자와 농민의 투쟁을 고무하고 지원하길 원하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쳤다. 또,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자유주의 지식인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쳤다.

이는 무슬림형제당같이 온건한 이슬람 운동과 좌파 무슬림에도 해를 끼쳤다.

또, 무바라크를 좋아하지 않지만, 서구식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이런 집단들은 모두 억압받고 있으며 정권과 충돌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운동이 분출하면 적어도 처음에는 독재정권에 대한 그들의 일치된 반대 때문에 각 집단들 간의 차이점은 덮어진다.

그러나 이는 불안정하고 모순적인 상황을 낳는다. 이들 운동 가운데 일부는 노동자나 하층 중간 계급이나 농민 등 인구 대다수의 요구를 동력으로 삼고 있다.

이 때 주요 쟁점은 보통 실업·인플레이션·빈곤 등이다. 이는 1998년 인도네시아 봉기와 최근 에콰도르·아르헨티나·볼리비아 봉기의 주요한 배경이었다.

좀더 애매한 상황들이 존재한다. 많은 독재 정권들이 애초에 미국의 지지를 받아 수립됐지만, 미국이 나중에 그 독재 정부에 반대하는 저항을 조종하고 이용하려 할 수 있다.

이것은 미국이 한때 지지했지만 그 뒤 사이가 틀어진 정권에 반대하는 저항일 경우에 특히 두드러진다. 시리아의 예를 들어보자. 시리아 정부는 1991년 걸프전 때 미국의 동맹국이었다.

시리아는 약 30년 전에 우익 팔랑헤 당 ― 미국·프랑스·이스라엘이 후원한 ― 에 맞서 투쟁하는 레바논 좌파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레바논에 군대를 보냈다.

현재, 이라크의 석유 통제권을 직접 장악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부시 주변의 네오콘들은 중동 정부들을 손 봐 더 확실히 미국 편으로 만들려고 한다.

네오콘들은 독재 혹은 준독재 정권을 미국식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바꾸려고 한다. 그들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정책을 추구하는 정당들이 참가하는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정부가 레바논과 시리아를 통치하기를 바란다.


미국은 특정 반정부 운동들을 친미적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미국은 운동에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고 운동 지도자를 선택하려 했다.

몇몇 반정부 지도자들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싸우길 진정으로 원한다. 그러나 작년 말 우크라이나 같은 경우에, 반정부 지도자들은 자기 지위를 끌어올릴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던 부패한 옛 지배 집단의 구성원들이었다.

물론 우크라이나에서 거리로 나온 사람들 중 다수는 사유화로 한몫 잡은 마피아식 집단들이 지배하는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사회를 끔찍이도 증오했다.

그러나 그들이 지지했던 운동은 하나의 마피아식 집단을 또 다른 마피아식 집단으로 교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중부 유럽의 지배권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가 벌이는 치졸한 공작에도 이용당했다.

이러한 정황들을 잘 판단하려면 누가 관련됐고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다른 상황에서는 세력 균형도 우크라이나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1980 ∼ 81년에 폴란드에서 일어났던 연대노조 운동은 지식인들이 투옥될 위험을 무릅쓰고 조직했던, 노동자들의 요구를 전면에 내세운 진정한 운동이었다.

이는 민주적인 자유, 진정한 노동조합을 조직할 권리, 더 나은 임금과 노동조건 등을 요구하는 노동자 대중의 자생적인 운동을 촉발했다.

이 때 미국은 연대노조 운동을 어떤 식으로도 지지하지 않았다. 운동이 패배한 뒤인 1981년 말에 가서야 미국은 운동의 지도자들을 회유했고, 그들에게 미국식 세계관을 심기 위해 돈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1998년 인도네시아의 운동은 미국의 동남아시아 주요 동맹 정부 중 하나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미국은 수하르토 정부를 민주적 외양을 취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수하르토와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정부로 대체하려고 무척 애썼다.

1986년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를 전복하고 “민중권력”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운동은 순수한 대중운동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 뒤로 필리핀의 지배계급은 새 정부가 근본적으로 마르코스와 같은 노선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 미국과 함께 노력했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한껏 고조될 때, 지배계급의 일부 분파들(과 주로 미국)이 그런 압력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기 전에 먼저 변화를 추진하려고 했던 경우는 많다.


사회적 위기가 심화하는 동안에도 미국은 기존 정부를 계속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반정부 운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미국 재단과 비정부기구를 이용해 반정부 운동 지도부에 침투하기 시작할 수도 있다.

1970년대 후반 일련의 학생운동과 노동자 투쟁은 브라질의 군사독재를 약화시키기 시작했다. 장군들은 불만을 달래기 위해 선거 허용을 약속함으로써 이른바 “개방화” 과정이 시작됐다. 

상층계급은 자신들만 선거에 출마하고 당선될 수 있도록 조처를 취했다.


1987년 남한에서는 거대한 시위의 물결이 있었고, 1988년에는 파업들이 벌어졌다.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4년 뒤 선거 시행을 약속하라는 압력이 군부독재 정권에게 가해졌다. “안전한” 야당을 만들어 내는 주의깊은 과정이 있었고, 그 결과 폭발은 없었다.

지금 미국이 이집트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조처다. 무바라크는 선거를 치르겠다고 약속했지만, 미국은 무바라크를 패배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가능성은 오직 가장 명망 있는 자본가 집단에게만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좀더 급진적인 반대 세력에 대한 억압은 계속될 것이다. 그들은 이번 선거를 묵인해 주고 선거 결과를 받아들인다면 몇 년 후에 그들도 입후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에 맞서 사회주의자들은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분명 민주적 권리를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는 과거 독재정권을 수립했던 사람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이용당하지 않겠노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는 한편, 사회주의자들은 옛 정권의 위기를 이용해 독립적인 요구를 내놓고 노동계급의 힘을 강화하며 지배 계급내 어떤 인물이 당선되든 간에 상관 없이 그에 맞설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레바논 사회주의자들은 시리아의 레바논 점령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은 또한 이스라엘의 시리아·서안지구 점령과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는 찬성하면서 시리아 군의 레바논 주둔을 비난하는 자들의 위선을 지적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미국의 중심 계획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점령에 저항하는 세력을 공격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시위가 있을 때는 바로 이러한 쟁점들이 제기돼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계획을 추종하는 동원에 참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집트 사회주의자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당장 물러나라고 요구할 기회가 눈앞에 다가왔다. 무바라크와 관련된 신자유주의 정책, 비상계엄, 노동조합 통제와 같은 것들도 함께 없어져야 한다.

만약 사회주의자들이 그 같은 요구들을 주장한다면 그들은 미국이 의도한 것과는 다른 상황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아무리 강대국일지라도 다른 나라에 개입해서 “정권 교체”를 선동하는 데에는 언제나 위험이 뒤따른다.

독일 정부는 제1차세계대전 중이었던 1917년에, 볼셰비키 지도자 레닌과 멘셰비키 지도자 마르토프를 태운 기차를 러시아로 보내면 상황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들은 분명 러시아를 격변에 빠뜨렸다. 그러나 1년 뒤에는 독일에서도 혁명이 일어났다!

지금 당장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거리에서 우파 기독교 민병대가 주도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의 레바논 폭격을 기억하고 있고 레바논 인구의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시아파 무슬림을 자극할 것이고, 그들이 거리로 나설 수도 있다. 그들의 요구는 지금 들리는 요구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미국의 네오콘들은 어느 사회에나 자신의 비전에 협력할 자본가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바로 네오콘들이 의존하고 협조하며 권좌에 앉히길 바라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피폐해진 중간 계급과 끔찍한 생활수준을 견디도록 강요당해 온 대다수 노동자와 농민 들이 있다는 점을 간과한다. 그들은 미국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거리로 나설 수 있다.

1백 년 전에 레온 트로츠키는 1905년 러시아 혁명에서 자본가들이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길 회피했지만, 노동자들이 이런 요구를 채택해 사회주의적 요구와 결합시켰다고 지적했다. 트로츠키가 연속혁명이라고 불렀던 그 과정은 중동에서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는 악몽이 될 수 있다.


번역 조민정






[크리스 하먼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이자 계간지 ≪인터내셔날 쇼셜리즘≫의 편집자다. 국내에서는 ≪민중의 세계사≫(책갈피), ≪세계를 뒤흔든 1968≫(책갈피) ≪신자유주의 경제학 비판≫(책갈피), ≪저항의 세계화≫(북막스) 등 여러 권이 번역돼 있다.
그는 8월에 ‘다함께’가 주최하는 ‘전쟁과 변혁의 시대’에서 연설하기 위해 한국에 올 예정이다.]



크리스 하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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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의 현실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 포럼안내

총선 뒤 새로 구성될 이라크 정부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다만 이 정부를 ‘새 정부’라고 부를 수 있을지 ― 새롭지도 않고 정부라 부르기도 뭐하다 ― 가 의문이다.

그 정부의 요직 ― 대통령, 부통령, 총리 등 ― 은 미국이 전에 세웠던 ‘꼭두각시’ 정부들에서 한자리씩 했거나 지금 하고 있는 자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최근 통일이라크연맹(UIA) ― 시아파 최고성직자 알 시스타니가 이끄는 연합으로 이번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 이 총리 후보로 지명한 알 자파리는 미국이 점령 이후 조직한 과도통치위원회의 초대 의장을 지내다가, ‘주권이양’ 뒤에는 임시정부의 부통령을 맡았던 인물이다.

‘이라크리스트(IL)’의 총리 후보인 알라위 역시 임시정부에서 대통령을 지내고 있다. 물론 둘 다 미국이 임명했다.

나머지 인물들도 부시가 자랑하는 “자유”나 “민주주의” 따위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쿠르드애국동맹(PUK)의 잘랄 탈라바니는 대통령 자리를 노리고 있다. 그는 이라크 북부에서 저항 세력 소탕에 앞장서고 있는 친미 부역 세력이자 부패한 폭군이다.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한 찰라비는 처음에 총리 자리를 고집하다가 핵심 요직인 경제·치안 장관 자리를 제안받고 한발 물러섰다.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총선에서 미군 철수 일정을 제시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다수당이 된 UIA의 지도자들은 선거 뒤 미군과 타협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력한 총리 후보인 자파리는 AP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군이 있어도 테러가 일어나는데, 미군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나? 먼저 테러리스트들을 뿌리뽑아야 한다.”

이것은 ‘점령 종식의 출발’이라고 지도자들이 호소해서 투표에 참가한 시아파 대중의 열망을 완전히 거스르는 것이다.


진정한 현실은 선거 뒤에도 점령과 학살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2월 말에 미군과 이라크군은 서부 안바르주(州) ― 이번 총선 참가율이 2퍼센트에 불과했다 ― 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히트, 바그다디, 하디타야, 라마디 등의 도시들이 야간통행금지조치 하에서 미군의 전면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

라마디는 저항 세력이 사실상 통제하던 곳이다. 이번 작전을 위해 전투기와 AC-130 폭격기가 동원됐다.

<워싱턴타임스>는 “새 이라크 정부를 워싱턴의 ‘꼭두각시’로 묘사하려는 노력”은 “넌센스”라고 말했다. 지금 이라크에서 돌아가는 상황은 “이라크 선거는 민주주의의 진전”이라는 주장을 믿는 것이야말로 “넌센스”임을 보여 준다.

( '다함께' 50 호에서 발췌 )



 
마포사회포럼은 반전반자본주의 노동자운동 '다함께'가 주최합니다.
포럼에서는 사회 연대와 공익을 위한 캠페인과 주장을 소개하고 공유할 수 있습니다.
포럼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서로의 경험과 주장을 함께 나누는 토론 광장입니다.
 
제25회 마포사회포럼
 
총선 이후 이라크, 민주주의의 봄날은 왔는가
일시 : 2005년 3월 16일 수요일 오후 7시30분
장소 : 
책사랑방 ( 지하철 신촌역 6번 출구앞 40m 직진 티파니호프 건물 5층)
문의 : 016-378-1872
블로그 :
http://blog.empas.com/wp2020 
* 책사랑방은 1인당 이용료가 3천원입니다. 참가비를 준비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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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quot;전쟁에서 사람은 '표적'일 뿐이다&quot;

출처블로그 : 모여라! 꿈동산♣♧♣ - 김문성의 블로그

 

 

"전쟁에서 사람은 '표적'일 뿐이다"

 

울부짖는 이라크 아이의 사진이 다시금 일깨운다

 

유만찬

▲ 두 손이 부모의 피로 흥건하게 젖은, 이라크 여자 아이가 공포에질려 울부짖고 있다. 현장에 있던 'Getty News'의 크리스 온드로스(Chris Hondros)라는 사진작가가 포착한 장면이다. 출처 news.bbc.co.uk  

얼핏 봤을 땐 작품사진인 듯했다.

명암이 뚜렷했고, 사진에 나온 아이의 표정이 생생했다. 조금 더 눈을 가까이 대니 작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밝은 쪽: 땅바닥에 주저앉은 여자 아이는 입을, 얼굴 반만큼의 크기로 벌린 채 울고 있다. 양 손엔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고, 앉은 자리 앞바닥이 핏자국으로 선연하다.
어두운 쪽: 언뜻 드러나는 바지는 군인임을 짐작하게 하는 ‘국방’색이다. 그는 오른 손으로 서치 라이트를 켜고 있다. 서치 라이트는 울부짖는 아이를 향하고 있다.

5~6살 쯤 돼 보이는 이라크 여자 아이였다.

아일랜드 신문 ‘아이리쉬 타임스(The Irish Times)' 인터넷 홈페이지 20일자는 사진과 관련한 기사를 짤막하게 전했다.

“이라크의 한 부부가 승용차로 여행을 하던 중 다섯 명의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미군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어린이들은 목숨을 건졌으나, 온 몸이 피로 젖은 채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면서, 자동차 밖으로 나왔다. 미군들은 어린이들을 병원으로 데려갔다. 미군 당국은 워싱턴 포트 루이스의 제25사단 제5스트라이커(Stryker) 여단 1대대 소속 군인들이 새벽 순찰을 하고 있을 때, 정지하지 않고 군인들 방향으로 다가오는 자동차를 향해 발포했다고 발표했다.
미군 홍보처는 이 사건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하면서도, 군인은 (이라크에서)자동차 폭탄 공격이 성행하는 상황에서, 예상 가능한 위험에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크리스 온드로스(Chris Hondros)라는 사진작가가 이 사건을 목격, 당시의 상황을 극적으로 담았다. 이 사진들은 미군이 자동차로 길을 가던 한 부부를 총을 쏘아 죽게 하는 장면을 생생히 포착했다.
자동차 뒷좌석에 타고 있던 어린이들은 살아남았고, 한 어린이는 총탄이 스치는 경상을 입었다. 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는 자동차에 의한 네 건의 자살폭탄 공격이 일어나, 28명의 사람이 사망한 바 있다...“

사건의 전말은 더 이상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숨진 부부, 그리고 부모의 죽음을 눈앞에서 바라본 다섯 아이들은 끝내 익명으로 남을 것이다. 으레 전쟁에서는 억울한 죽음도, 애타는 사연도 싸늘한 통계 속에 묻혀버리고, 충격적인 한 컷의 사진도 일상적인 풍경으로 스쳐가니까.

부부에게 총질을 한 미군들도 울부짖는 아이들을 보면서 ‘조금은’ 미안한 감이 들었던 가보다. 사진을 보면, 아이들을 병원에 옮기느라 부산했던 분위기가 느껴진다. 미군 당국에서도 이례적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미군 당국이 덧붙인 한 마디 말이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예상 가능한 위험에 적절한 대응을 했다.”

언젠가 미국의 한 언론에 이런 기사가 게재된 적이 있었다. ‘총탄’의 전쟁 이전에, ‘언어’의 전쟁이 도사려있다는 내용이었다.
군 당국은 이라크에 파병되는 병사에게 “이라크 인은 사람(person)이 아니라, 표적(object)이다. 평상시에도 이라크 인을 지칭할 때 사람(person)이 아니라, 표적(object)란 말을 사용해야 한다. ‘표적’을 죽였을 땐 가책이 남지 않는다”며 세뇌시켰다고 한다.

미군 당국의 발표는, 이번 사건이 최근 이라크에서 벌어진 차량 자폭 공격이 잇따른 상황 속에서, 민감해진 병사들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실수’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러나 자폭 공격의 위험성을 이유로, 아무 자동차에나 총질을 해대는 것이 용납되지는 않을 것이다.

새벽녘에 일가족이 탄 자동차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군인들의 가슴 속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었을까.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인 ‘표적(object)’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들의 눈에, 죽은 ‘표적’이 남긴 아이들은 무엇이었을까. ‘표적’이었을까, ‘사람’이었을까.

사진 속의 이라크 아이는 부모의 처참한 죽음을 생생히 목격했다. 든든했던 엄마, 아빠는 순식간에 온기를 잃고, 어린 딸의 두 손에 싸늘한 피만 남긴 채 떠나갔다.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까. 그리고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밤을 가위눌린 채 지새워야 할까.

전쟁은 그 자체로 인간성을 말살하는 행위임을, 한 컷의 사진이 다시금 일깨운다.









▲ 'Getty News'의 사진 작가 크리스 온드로스(Chris Hondros)가 극적으로 포착한 장면들. 출처 news.bbc.co.uk  

200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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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레바논 사태와 중동 정치 전망--Alex Callinicos

출처블로그 : MediaNet SUMBOLON
No 1942 Socialist Worker(영국) 2005년 3월 12일

레바논 사태와 중동 정치 전망

민주주의의 창백한 그늘

앨릭스 캘리니코스(Alex Callinicos)

하나의 제국을 와해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방법들이 이제 또 다른 제국을 확장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아이러니이다.

국제 업무를 담당하는 미 국무부 차관 폴라 도브리안스키(Paula Dobriansky)는 지난주에 이렇게 말했다. “그루지야에서는 장미 혁명이 일어났고, 우크라이나에서는 오렌지 혁명이 일어났고, 가장 최근에는 이라크에서 보라색 혁명이 일어났다. 레바논에서 우리는 ‘삼나무 혁명’이 무르익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 이 나라 국민이 진정한 민주주의와 외세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대의 아래 집결하고 있는 것이다.”

“외세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말에는 잠시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조지 부시와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가 한 목소리로 시리아의 레바논 철군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 지배자들이 얼마나 뻔뻔스러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미군 15만 명이 주둔하고 있지만 이라크는 아마도 “외세”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다. 프랑스 역시 자신의 과거 아프리카 제국으로 계속해서 군대를 파견했고, 가장 최근의 희생자는 코트디부아르였다.

그러나 부시와 시라크의 기호를 다룰 때 우리는 그들의 위선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정작 흥미로운 문제는 워싱턴 신보수주의자들의 꿈이 실현되고 있느냐이다.

전직 수상 라픽 하리리(Rafiq Hariri) 암살에 뒤이어 레바논에서 발생한 사태는 스탈린주의를 일소한 혁명들과 비교해 볼 때 일련의 민주적 혁명 과정의 시작일까?

일부 이라크 전쟁 반대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라크 침공이 중동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압력을 강화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가디언》의 조너선 프리들랜드(Jonathan Freedland)는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레바논의 “삼나무 혁명”은 진정한 민주화 투쟁의 창백한 그늘일 뿐이다.

지난주 토요일자 《파이낸셜 타임스》는, 순교자 광장(Martyrs Square)에서 시리아 철군을 요구하는 항의시위를 조직중인 공동 행동의 책임자 마이클 나프쿠르(Michael Nafkour)와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베이루트의 중간 계급이 저녁에 광장을 찾아 암살 사건 이후 벌어지고 있는 소수의 대중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이제 유행이 되었다.”

“민주주의 혁명”이 제국주의자들의 지배 기술로 타락했다. 워싱턴이 자신을 지역 엘리트와 수완가들의 정권 교체와 결부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것이 현 시기 레바논 사태에 대한 정확한 평가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진정한 성공도 추가로 기록해 두어야 할 것이다.

시리아 대통령 하페즈 알-아사드(Hafez al-Assad)가 레바논에 파병한 것은 1976년 4월이었다. 레바논 좌익과 팔레스타인인들의 내전 승리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미국의 지원과 이스라엘의 묵인 하에서 이 작전을 결행했다.

그러나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를 침략하면서 혼란과 살육이 난무하자 아사드는 이슬람 급진파인 헤즈볼라(Hizbollah)가 이끄는 쉬아파 민병대의 부상을 지원한다. 헤즈볼라는 결국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방위군을 축출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와 시리아의 연계를 오랫동안 전략적 위협이라며 비난해 왔다. 결국 하리리 암살 사건이 아리엘 샤론(Ariel Sharon)과 워싱턴에 있는 그의 동맹자들에게 찾고 있던 구실을 제공해 주었다. 정말이지 암살 범행의 하수인들이 시리아 정보 부대의 멍청이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비밀 첩보 부대 모사드(Mossad)의 공작 대가들일 것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하리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정권과 밀착되어 있었다. 그는 사우드 왕가와 계약을 맺은 주요 토건업자로 부상하면서 40억불 규모의 기업 제국을 건설했다. 결국 하리리 암살 사건으로 시리아는 아랍 세계에서 고립되고 말았다.

현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Assad)가 지난주에 리야드(Riyadh)로 날아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배자인 압둘라(Abdullah) 왕세자를 만났을 때 그는 강경한 어조로 레바논에서 철수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주말에 아사드는 굴복했고 단계적 철수를 발표했다.

워싱턴이 이 지역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유리한 세력 균형을 가져온 1승을 거두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승리가 정말 필요한 이라크에서 이 사태가 부시 행정부를 어떻게 도와줄지는 완벽한 미지수이다.

“보라색 혁명”과 관련한 그 모든 요란한 선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라크에서 (쿠르드족 지구를 제외한) 전 국민이 압도적으로 점령에 반대하는 상황과 직면해 있다. 지난주에 이라크에서는 1500번째 미군 병사가 사망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사실은 크게 공표되지 않았다.

 

★ 兪在寅 옮김/sumbol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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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생태적 야만주의와 ‘환경제국주의’

출처블로그 : himammo님의 블로그

생태적 야만주의와 ‘환경제국주의’

 


- 과학기술은 밝고 어두운 양면을 지니고있다 -
 

 
 
 

 

생태계 파괴와 자원 고갈을 부추기는 과학기술


현대 물질 문명 사회를 만들어온 주역이 과학과 기술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불행은 과학과 기술이라는 두 개의 개념이 왜곡된 채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되어 사용되고 있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논리상 여기에는 철학적 사고가 비경제적인 불필요한 요소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즉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돈벌이가 된다면 공기나 물 그리고 모래통과 석탄을 가지고 필요한 수많은 원료와 상품을 만들어내면 될 일이지,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만들어야 한다는 사고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과학(science)’이란 말의 어원은 ‘scienti’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하고 있으며, 이 단어는 ‘안다(scio)’는 뜻을 가진 동사의 추상명사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를 지닌 과학을 일컫는 것이며, 따라서 과학은 철학적 의미가 아닌 단?지식을 의미한 것이라고 본다. ‘기술(technology)’이라는 말은 ‘mechane’라는 그리스어로 ‘방법’ 또는 ‘절차’에 관한 계획을 고안해 내는 일과 이를 실천에 옮기는 방법을 일컫는다.

자본가들은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세계 도처에 신속히 침투하여 노동의 분화를 촉진시킴으로써 원주민과 노동자를 돈벌이의 객체로 전락시켰다. 이것은 인간의 동질화를 가져와 토착적인 생산성과 문화적 다양성의 파괴를 증대시켰다. 뿐만 아니라 자연의 분화도 촉진시켰다.

 

예컨대 과학기술을 상업용 목재를 생산하는 데 이용하기 시작했다. 산림은 한 가지 나무로 대체됨으로써 종의 다양성 파괴가 촉진되었다. 생물종의 절반 이상이 서식하고 있는 열대우림이 파괴되었으며, 그곳의 일부는 대규모 인공 조림으로 대체되었다. 때문에 열대우림은 지금 생물학적·유전학적인 사막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것은 생물종과 개미 연구의 독보적인 권위자이고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에드워드 윌슨(1929∼)이 자신의 저서 『생명의 다양성』(1992년)에서 1년에 2만7000종의 생물이 멸종되고 있다고 주장한 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라져가는 지구생물들
 
 
존 포스터 교수는 내가 번역한 『환경혁명 ---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을 찾아서』(1996년, 동쪽나라)에서 “지난 40여 년 동안 지구 전체의 삼림 가운데 특히 생물종의 보고인 열대림의 벌목량이 해마다 잔존 열대림의 2%로 계속 제한된다고 해도 100년 후에 남아 있는 열대림마저 대부분이 사라질 것”으로 추정하고, “만일 열대 지방에 있는 나라들의 인구 증가율과 똑같은 수준으로 벌목될 경우 30년 이내에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그는 “오늘날 인간은 식품 공급량의 80%를 20종의 생물종에 의지하고 있으나, 현재 식용 가능한 식물만도 7만5000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지금 인간의 능력으로는 멸종되고 있는 종의 효용성을 채 밝혀보지도 못한 채 수많은 생물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오늘날처럼 계속될 경우 생태계 파괴로 인해 지구는 더 이상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사막으로 돌변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생태계는 일종의 유기체와 같은 복잡성과 상호 연계성을 띠고 있고, 고무줄에 비유할 수 있다. 그것은 복원력이 있는 반면, 일정 정도를 넘어서는 외압이 가해지면 순식간에 연쇄적이고 장기적인 파급 효과를 미쳐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돌변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1940년대 이후 단 20여 년 동안에 인류 역사상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가장 해로운 물질들이 대부분 만들어졌다. 이러한 물질의 축적은 생태계의 복원력을 크게 손상시키고 있다. 이른바 석유화학산업으로 촉진된 오늘날의 합성 제품 시대는 자연의 순환 작용으로 분해되지 않고 장기간 생태계 전반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유해 물질을 엄청나게 쏟아내고 있다. 그 결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종이 상실되고 생명체를 학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달은 자원의 고갈을 더욱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에너지원이 채취될 경우 앞으로 석유는 50년, 우라늄은 60년, 석탄과 천연가스는 200년이면 바닥이 날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필요한 것마저 자동화를 추진함으로써 에너지 자원의 낭비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그 이유는 오로지 돈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돈보다는 후세를 위하는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사람의 손으로 여닫으면 될 출입문마저 굳이 전기를 이용하는 자동화로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지구적 차원의 불평등과 ‘환경제국주의’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역설의 시대에 살고 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눈부시게 발달해 온 근대 과학기술의 힘을 이용하여 오로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자연에 대한 정복과 통제력을 가속화해 왔지만, 지난 200년 동안 이루어진 그러한 힘의 행사는 새로운 차원의 지구적 위기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하느님, 우리를 닥쳐올 위기에서 구원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오존층 파괴, 계속 확대되는 사막화, 산성비, 삼림 벌채, 지구온난화를 포함한 급속한 기후 변화, 전염병의 만연, 생물종의 소멸, 에너지원의 고갈 등 이른바 전 지구적 차원의 환경 위기가 가속화되어 왔다. 역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난 100년 동안 세계 경제는 1300%나 성장했지만 빈부 격차는 계속 확대되어 왔다.

 


 

 

지난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유엔 인간환경회의’가 개최된 이후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유엔 환경개발회의’가 개최되기까지 20년 동안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중심부와 후진국을 중심으로 한 주변부의 빈부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그래서 주변부의 40여개국 이상은 자연 환경을 포함한 모든 삶의 조건이 과거 20년 전보다 더욱 악화되어 왔다.

어디 이것뿐인가. 1750년 무렵에 선진국과 후진국의 1인당 소득 수준은 거의 같았다. 그런데 1930년 무렵에 선진국 1인당 소득은 780달러(1960년 달러 가격 기준으로)인 반면 후진국은 190달러로 1750년 수준에 머물렀다. 1960년에서 1989년까지 세계 부의 배분에서 가장 부유한 20%와 가장 가난한 20%가 각각 차지하는 비율은 30대 1에서 60대 1로 그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앙드레 군더 프랑크가 주장한 것처럼 이들 국가는 지금도 ‘저발전의 성장’이라는 구조적인 경기 침체라는 악순환의 굴레 때문에 해마다 몇백만 명이 순전히 기아로 죽어가고 있지만 손도 못 쓰고 있는 실정이다. 각종 전염병으로 죽어가면서 자기가 무슨 병으로 죽어가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과연 식량이 부족해서 그런가. 그렇지 않다. 유엔식량기구(FAO) 통계에 따르면 지금 세계는 이들을 충분히 먹이고도 남을 식량이 있다. 절대량이 부족하여 해마다 몇천만 명이 기아로 죽어가고 영양 실조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보면, 우리는 이제까지 성장과 발전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마땅히 제기해야 한다. 이와 함께 과학기술의 문제점과 성장의 속도를 조절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20세기 중반 경제 개발을 통해 못 사는 나라들을 도와 주겠다는 미국과 구소련 중심의 발전 패러다임은 파산 선고를 받은 지 이미 오래이다. 특히 1990년도를 전후하여 냉전의 종식과 함께 새롭게 형성된 세계 질서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1995년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함께 이제 세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한 ‘경제 전쟁’, ‘무한 경쟁’, ‘생존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따라서 경제적 불균등과 지구 환경 파괴의 심화는 선진국의 특별한 조치가 없는 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훤하다.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에서 세계 정상들이 ‘유엔 환경개발회의’를 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이른바 ‘리우 선언문’에 서명했지만, 이것의 본질은 이제 선진국이 지구 환경을 위해 오염 저감 방안을 추진할 테니 제3세계 국가들도 이에 동참하고 자기들의 환경 기술을 수입하라는 저의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서 명목상 좋은 의견을 담고 있음에도, 그 선언문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후진국 간의 경제적 불균등 문제와 환경 파괴의 기여 문제 등 더욱 근본적인 의견 마찰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하나만 보더라도 현재 미국 한 나라가 세계 총 배출량의 25%를 차지하고, 선진 공업국의 전체 배출량은 71%를 차지하고 있다. 1980년대 말에 동유럽을 포함한 선진 공업국의 원자재 소비량은 전 세계 소비량의 81%에 이르고 있다. 철강은 81%, 자동차는 92%, 전기는 81%를 소비하였다.

 

미국인들은 115배의 종이, 320배의 자동차, 52배의 고기류, 그리고 46배의 전기를 각각 더 많이 소비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산업혁명 이후 지구를 지탱 불가능하게 만들어 왔고 지금도 그렇게 만들고 있는 주범이 바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 공업국들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진국이 ‘환경제국주의’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도 그들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환경재앙에 직면한 지구촌

 

 

 

 

생태적 야만주의의 종식은 사회 체제의 변혁에서부터

사회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이 없는 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학기술은 생태계와 인류 문명의 파멸을 촉진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띠고 있다. 수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기간이 앞으로 30∼4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경고한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집단 ─ 대부분 권력가, 행정가, 대기업가, 다국적기업 세력 등 ─ 들은 환경 위기라는 주장에 대해, 과학적 불확실성과 자연의 자정 작용이 무한할 것이라는 이유로 근본적인 조치들을 한없이 미루고 있다. 다만 그들이 하는 일은 자동차의 매연을 줄이는 후처리 장치를 달거나, 기업가에게는 자살이나 다름없는 ‘소비를 줄이자’거나 ‘분리 수거를 잘 하자’는 등의 개인적 질서와 행동에 호소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더욱 충격적인 일은, 대다수 인류가 현대 과학기술이 만들어내고 있는 위기 ─ 환경의 파괴, 빈부 격차,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핵무기의 공포 등 ─ 를 과학기술의 발달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믿고 있다는 점이다.

 

무책임한 기득권 세력들은 과학기술의 발달을 통해 석유와 석탄, 천연 가스와 같은 화석 연료가 고갈되면 핵발전으로, 그 다음에는 핵융합 발전을 통해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입하고 있다. 심지어 콩알만한 인조 식량을 먹으면 현재와 같은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환경 오염으로 지구에서 살 수 없는 날이 오면 다른 혹성에 가서 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속삭인다.


 

 
지구온난화로 야기된 엄청난 자연재앙을 형상화한 ‘투모로우’
 
 

정치권력가, 행정가, 자본가 세력 가운데 무책임한 세력들은 오늘 당장 자본의 축적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런 막연한 기대를 설파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이 누구의 도구가 되어 왔는가를 알고 있다면,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반생태적인가를 알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불가사의한 과학기술 혁명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비행기의 개발과 같은 교통 혁명이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 것과 같이, 오늘날 운운하고 있는 정보통신 혁명도 마찬가지 길을 가고 있다. 냉전 시대에 적의 동태를 감시했던 인공위성이 환경 오염을 촬영하는 데 활용될 수는 있다고 해도, 파국적인 위기에 처한 생태계의 파괴를 방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수단은 되지 못하고 있다.

교통과 통신 기술의 눈부신 발달은 이른바 지구촌 시대를 도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기아로 죽어가는 인류를 신속하게 구하는 순기능보다는, 지구상에 빈곤과 착취를 심화시키는 역기능으로 더 많은 기여를 해 왔다. 역사적으로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식민지 세력들은 앞선 자신들의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지구 반대편의 더 많은 노동력과 자연 자원의 착취를 가속화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과학기술을 돈벌이의 도구로 삼아온 세력들이 보여준 역사의 교만과 생태적 야만주의를 종식시킬 수 있는 힘을 모아야 한다는 점이 더욱 자명해졌다. 침략성과 표한성을 지닌 식민지 시대의 제국주의자들에게 인류와 자연을 계속 맡겨두었던 역설의 시대를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손으로 끝장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미래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역설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를 종식하기 위해 양심있고 의식있는 60억 인류가 네트워크적 사고와 행동 조직체를 결성하여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기 위해 힘을 모아나가야 한다. 더 이상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지금 시작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오늘의 지구적 차원의 생태계 위기는 자연의 위기도 아니고, 헐리우드 영화에서처럼 몇몇 탐욕스러운 인간의 잘못과 실수에서 비롯된 것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현대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모든 역설적인 위기와 마찬가지로 사회 체제의 위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 해결의 구체적인 방안은 한 사회 체제를 어떻게 변화시켜 낼 것인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기나긴 고난의 세월 속에서 쌓아올린 현대 문명 사회의 지속가능한 존속과 발전의 여부가 바로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조길영 / http://www.ilsangreen.net/green/go20.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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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운동이 다시 전진할 기회 / 마침내 드러난 팔루자의 진실

다함께 50 호

반전운동이 다시 전진할 기회 / 마침내 드러난 팔루자의 진실

 - 김광일  / 살람 이스마엘 

http://www.alltogether.or.kr/

 

반전운동이 다시 전진할 기회 - 김광일

 

3·20 행동은 무엇보다 반전운동이 부시의 거짓말에 속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중요한 계기다. 부시는 1월 30일 총선이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가져다 줬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점령은 계속되고 있다. 점령이 지속되는 한 반전운동은 계속될 것이다.

부시의 ‘아낌 없이 주는 나무’ 노무현에게도 파병은 여전히 아킬레스 건이다.

부시의 위기가 심화할수록 핵심 동맹국의 구실이 더욱 중요해진다. 점령군 주둔을 장기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추가 파병의 위험도 존재한다.

2월 말에 호주 총리 존 하워드는 450명의 추가 병력을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노무현도 추가 파병의 유혹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3·20 행동은 이라크 점령과 추가 파병을 반대하는 운동의 발판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해 말 ‘개혁입법 사기극’을 벌였다. 그러나 한나라당 등 우익의 눈치를 보면서 ‘개혁 입법’을 2월 임시국회로 미뤘고, 그러다 4월 임시국회로 또 넘겼다. 4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건설되는 3·20 행동은 노무현의 ‘개혁 사기극’에 항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3·20 행동은 한국에서 건설할 중요한 반전·반신자유주의 투쟁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부시가 11월 APEC 정상회담 때문에 한국을 방문한다. 그리고 12월 홍콩에서 WTO 각료회담이 열린다. 반전운동은 이미 전쟁과 이윤의 관계를 연결시키는 정치적 급진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3월은 각 대학에서 등록금을 비롯한 교육환경 개선을 둘러싼 투쟁이 벌어지는 때다. 미국과 영국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구호는 “BOOKS NOT BOMB”(폭탄이 아니라 책을)이었다. 3·20 행동에서 “점령지원이 아니라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이라는 요구를 결합시킨다면 반전운동과 교육환경 개선 투쟁 모두에서 상승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3·20 행동 건설은 지난해 8월 자이툰 부대 파병 강행, 11월 부시의 재선 때문에 다소 의기소침해진 한국 반전운동의 어깨를 토닥이며 운동이 전진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에서 3·20 행동 건설 촉구를 담은 반전 결의안에 393명의 대의원이 서명했다. 이것은 참석한 대의원 중 4분의 1에 해당한다.

·공무원노조 대의원대회에서 3·20 행동 참가를 호소하는 결의문에 120명의 대의원이 서명했다. 참석 대의원 중 3분의 1이 넘게 서명했다. 공무원노조 김영길 위원장은 공무원 노동자들의 3·20 행동 참가를 호소했다.

·서울대학생총연합(서총련)은 3월 투쟁 계획서에서 3·20 행동에 참가할 것을 호소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소속 회원 의사와 약사의 병원·약국에 3·20 행동 포스터를 부착할 계획이다.

·서울 지하철노동조합은 지하철 역사내 3·20 행동 포스터를 부착하기로 했다.

 

※ 3.20 행동에 관한 문의

파병반대국민행동 (www.antiwar.or.kr 02-2631-5055 antipabyeong@empal.com)

 

마침내 드러난 팔루자의 진실  - 살람 이스마엘

 

살람 이스마엘 박사는 1월에 팔루자를 구호차 방문했다. 이스마엘 박사(28세)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까지 바그다드 청년의사회 대표였다. 그는 지난해 4월에 미군이 팔루자를 공습했을 때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팔루자에 있었다. 그가 지난해 11월 조지 W 부시가 재선된 직후 미군이 어떻게 한 도시를 파괴했는지 증언한다.

 


 

처음 나를 엄습한 것은 형언하기조차 힘든 냄새였고, 그 냄새는 절대 가시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죽음의 냄새였다. 팔루자의 집· 마당·거리에서 수많은 시체가 썩어가고 있었다. 남자·여자·어린이의 시체들이 죽은 곳에서 그대로 썩어 가고 있었고, 그 중 다수는 들개들에게 반쯤 뜯긴 상태였다.

나는 그 뒤 며칠 동안 들은 얘기들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팔루자 근처에 위치한 임시 난민 수용소인 사클라위야에서 17살 된 한 소녀를 만났다.

“저는 팔루자의 욜란 지구에서 온 후다 파우지 살람 이사위입니다. 포위 공격이 시작된 뒤 우리 식구 다섯 명은 55살 된 이웃 노인과 함께 집에 숨어 있었어요. 11월 9일 미 해병대원들이 우리 집에 왔죠.

“우리 아빠와 이웃 할아버지가 현관으로 나가자 미군들이 발포했어요. 아빠와 이웃 할아버지가 즉사했죠. 군인들은 우리 언니를 마구 때린 다음 총으로 쐈습니다.”

지난 해 11월 12일 에야드 나지 라티프와 생후 6개월 된 아기를 포함한 그의 여덟 식구가  짐을 챙겨 한 줄로 서서 사원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사원 밖 대로에 다다랐을 때 고함소리를 들었지만, 그 소리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에야드는 그 소리가 영어로 “지금이야(now)”였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발포가 시작됐다.

에야드의 아버지는 심장에, 어머니는 가슴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 에야드 형제 중 두 명도 각각 가슴과 목에 총을 맞았다.

저격수들은 에야드의 형제 중 한 명의 아내를 죽였다. 그녀가 쓰러졌을 때 다섯 살 난 아들이 달려와 그녀 시체 옆에 섰다. 그들은 아들마저 쏴 죽였다.

생존자들은 필사적으로 군인들에게 제발 쏘지 말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누구든 백기를 들 때마다 총을 맞았다고 에야드는 말했다. 몇 시간 후 그는 백기를 들었다. 그러나 미군은 그의 팔에 총을 쐈다. 마지막으로 그는 손을 들었다. 그러자 미군은 그의 손에 총을 쐈다.

나는 눈에 눈물이 가득한 한 할머니를 만난 기억이 난다. 그녀는 내 팔을 움켜잡고 어떻게 자기 집이 공중 폭격 때 투하된 미군 폭탄에 의해 부서졌는지 말해 주었다. 19살 된 아들 위로 천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아들의 양쪽 다리가 잘렸다.

그녀는 지혈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하나뿐인 아들이 죽을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그는 4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다.

우리는 도시 북서부에 위치한 가난한 노동자 주거 지역이자 미군의 4월 포위 공격 당시 저항의 중심지였던 욜란 지구의 집들을 방문했다.

두 번째 공격 동안 미군은 마치 이 지역을 보복 대상 1호로 삼은 듯 했다. 우리는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침대 위나 거실, 부엌 등에 죽어 있는 일가족의 시체들을 발견했다.

어떤 곳에서는 검은 옷에 탄약띠를 맨 전사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러나 집안에 있던 대다수 시체들은 민간인들이었다.

많은 이들은 실내복을 입은 채 였고, 죽은 여성들은 많은 얼굴을 베일로 가리지 않은 상태였는 데, 이는 집안에 가족 외 다른 남자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기도, 빈 탄약통도 없었다.

우리가 목격한 것은 대량 학살의 결과이자, 힘 없고 무방비 상태인 민간인들에 대한 냉혹한 학살임에 분명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점령군은 지금 자신들의 범죄를 은폐하려고 그 지역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있다.

팔루자에서 일어난 일은 잔혹한 만행이다. 전 세계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

번역 조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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