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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 가능성을 보여 주다 / 모든 힘을 다해 투쟁을 건설할 때다

다함께 50 호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 가능성을 보여 주다 / 모든 힘을 다해 투쟁을 건설할 때다

 - 정동석(현대차 정규직 노동자)  / 전지윤 

 http://www.alltogether.or.kr/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 가능성을 보여 주다 - 정동석(현대차 정규직 노동자)

 

   

울산 현대차 5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 투쟁이 한 달 반이 넘게 계속되고 있다.

2월 21일에는 “이제껏 농성장의 많은 젊은 친구들이… 머리가 피로 범벅이 되고, 경비 여럿에게 무자비하게 밟히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5명이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나가볼랍니다”라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현대사측은 이를 폭력으로 짓밟으려 했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웃통을 벗고 결연히 맞섰다. 야만적인 탄압에도 굴하지 않는 투쟁에 갈수록 지지와 연대가 확대되고 있다.


현대차정규직노조 윤성근 전(前) 위원장과 현대정공 안현호 전(前) 위원장이 농성장에 결합했고 5공장 정규직 대의원회는 단전·단수 해제를 사측에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 때문에 사측은 2월 25일에 농성장 단전·단수를 해제해야만 했다.

나는 내가 속한 4공장 정규직 소위원 의장에게 5공장 농성장 지지 방문을 제안했다. 소위원 의장은 동의했고 지지금으로 노조 활동비 10만 원을 인출했다. 소위원 의장은 대의원 대표에게 다시 제안했고,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2월 24일 4공장 대소위원 10여 명은 5공장 비정규직 농성장에 지지 방문을 갔다. 도장부 탈의실은 단전·단수로 컴컴하고 바닥은 아주 차가웠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모여들어 촛불 몇 개를 피우자 서서히 밝아지며 금새 집회장으로 변했다. 비정규직 농성자들은 우리를 반기며 팔을 흔들고 파업가를 불렀다.

한 정규직 대의원은 농성장에 들어서자마자 “회사를 이대로 두면 안 된다! 빨리 어떤 조치를 취해야 되지 않겠냐”며 사측의 단전·단수에 화를 냈다.

다른 대의원은 “너무 늦게 방문해서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조 비대위 위원장 조가영 동지는 “이렇게 대·소위원 동지들이 방문하니 우리는 절로 힘이 난다”고 반겼다. 

비정규직 노조는 해고된 1백여 명의 노동자들 생계비 지원을 위한 CMS 용지를 가져왔고, 나는 곧바로 그 용지에 5천 원을 적어 놓았다.

2월 27일에는 서울에서 민주노동당 당대회가 있었다. 당대회장에서 나는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동지들, 민주노동당내 ‘다함께’ 동지들과 함께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 지지 모금을 벌였다. 순식간에 1백34만 2천 원이 모금됐다.

다음 날 2월 28일, 나는 울산시당 이용진 북구지역위원장과 함께 조가영 동지를 만나 모금 결과를 말해 줬다.

조가영 동지는 아주 반가워하며 “최남선 동지의 분신 치료비 등 재정이 힘들었다.”고 했다. 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현재 7일째 단식하고 있는데, 경비들이 주위에 어슬렁거리면서 욕설을 하며 모욕감을 주고 있다. 그래도 단식자들은 병원에 실려갈 때까지 단식할 거라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고 말해 줬다.

이 날 저녁, 울산 현대차에서는 2천5백여 명의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인 ‘원·하청 노동자 공동 결의대회’가 열렸다.

그 동안 연대에 소극적이었던 현대차 정규직 노조가, 이번에는 고무적이게도 전 공장 잔업을 거부하고 2천여 명의 정규직 노동자를 동원하는 열의를 보였다. 사상 최초의 원·하청 공동 잔업거부가 이뤄진 것이다.

집회에서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모금한 투쟁 지지금을 전달하며 이용진 동지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민주노동당이 선두에 설 것이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집회에서 현대차정규직노조 이상욱 위원장은 “어떤 정규직 조합원들은 우리의 고용 불안이 심각한데 지금 비정규직 동지들의 정규직화가 시기적으로 맞느냐?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나 동지들! 비정규직 동지들의 정규직화 투쟁은 역사의 요구입니다. 저는 이 투쟁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동지들과 우리가 하나로 투쟁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말을 실천으로 옮기도록 하는 것이다.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집회 이후 “현자 노조 깃발과 비정규직 노조 깃발이 같이 입장하[는] …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난 너무나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다. … 참 보기 좋았다. 그래 바로 저거야. 저게 바로 ‘노동자는 하나다’ 라고 하는 거야.”라는 글을 노조 게시판에 올렸다.

소극적이었던 정규직 노조 지도부를 이만큼이나마 움직이게 한 것은 5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하고 영웅적인 투쟁이었다. 현대차의 투사들은 비정규직 노조와 5공장 농성 투쟁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건설하고, 무엇보다 정규직 노조 지도부와 노동자들을 이 과정에 끌어들여야 한다.

노무현이 4월에 국회에서 비정규직 개악안을 밀어붙이려는 지금, 현대차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하는 불법 파견 철폐 투쟁을 건설하는 것은 더할 나위없이 강력한 투쟁의 주춧돌이 될 것이다

 

모든 힘을 다해 투쟁을 건설할 때다 - 전지윤

 

비정규 개악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지 않고 4월로 넘긴다는 저들의 거짓말에 노동자들은 한시름 놓고 있었다. 그러나 아니나다를까 노무현과 열우당은 우리의 뒤통수를 치며 2월 23∼24일 이틀간 개악안 통과를 시도했다.

저들은 공식적으로는 ‘이번에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말하고 비공식적으로는 ‘유보될 수 있다’고 흘리며 교활한 사기극을 펼쳤다. 재벌과 한통속인 한나라당은 민주노동당과 ‘처리 유보’를 합의하며 사기극에 힘을 보탰다.

 

열우당 장복심은 갑작스레 뒤통수를 맞은 노동자들을 우롱하며 “정치는 그때그때 다른 거지”라고 말했다.   

이런 태도 돌변은 전경련과 경총 등 기업주 단체들이 한나라당을 방문하는 등 개악안의 빠른 통과를 재촉하자 나온 것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의가 말하듯 “정부의 ‘비정규보호법안’은 … 전경련과 경총의 법안이며 재벌과 가진 자들을 위한 법안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런 뒤통수치기 사기극을 통해 저들은 비정규 개악안을 ‘처리 직전’까지 조금 더 옮겨 놓았다. 열우당 이목희는 거드름을 피우며 “[이 법안으로] 당사자들끼리 사회적 대화를 하고 싶으면 말리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뒤통수를 맞은 민주노총은 2월 23일 ‘법안 통과시 즉각 사회적 교섭 페기와 무기한 총파업 돌입’이라는 배수의 진을 쳤다.

그러나 저들이 민주노총을 얕잡아 보고 뒤통수를 친 데에는 이수호 집행부의 잘못된 노선도 한몫 했다. 이수호 집행부는 노무현의 악랄한 노동운동 탄압과 공격이 뻔히 보이는데도 투쟁을 건설하기보다 ‘사회적 교섭’에 더 매달렸다.

지난 2월 1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장에서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조가영 비대위원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분신하고 다치고 터지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회적 교섭을 할 수 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민주노총 이수봉 대변인은 “총파업을 한다고 한들, 며칠이나 할 수 있겠나? … 솔직히 말하자면 힘이 약하니까 대화하자는 거다” 하고 ‘고백’했다.(<프로메테우스> 2월 7일 인터뷰)

또, “노무현이나 이해찬이나 이런 사람들은 그래도 막가는 판을 바라지는 않는다 … [비정규 개악안 처리 유보는] 사람과 사람과의 약속이다” 라는 말도 했다.

노무현과 열우당은 스스로 ‘우린 힘이 없다’고 고백하는 민주노총 지도부를 우습게 보고 뒤통수를 치며 개악안을 밀어붙이려 한 것이다.

 

더구나 대화에 매달리면 힘이 커질 수가 없다. 민주노동당 네덜란드 통신원 장광열 씨가 네덜란드 노동운동을 평가하면서 지적했듯이 “타협에 익숙해진 노동조합은 점점 투쟁력도 감소하게 마련”이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 민주노총 대표단으로 참여했던 공공연맹 양경규 위원장은 “노동계는 뭔가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사회적 교섭에 참가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자본과 정권의 들러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개악안 통과의 의도치 않은 조력자로 위치지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프레시안> 2월 18일치 인터뷰)

전국비정규직대표자연대회의는 “사회적 교섭에 대한 일체의 논의를 중단하고 법 개악 저지와 권리 입법 쟁취를 위한 총파업 투쟁에 나설 것을 … 피 끓는 절절함으로 호소”했다.

노무현과의 격돌이 잠시 미뤄진 지금 민주노총의 모든 인력과 자원과 고민은 ‘사회적 교섭’이 아니라 총력 투쟁을 건설하는 데로 돌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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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제7, 8차 중앙위원회 - 날카로운 정치적 긴장이 표출되다 / 아쉬움과 우려를 남기고 끝난 당대회

다함께 50 호

제7, 8차 중앙위원회 - 날카로운 정치적 긴장이 표출되다 / 아쉬움과 우려를 남기고 끝난 당대회   

- 정병호(민주노동당 4기 중앙위원) / 이승민 (민주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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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 8차 중앙위원회 - 날카로운 정치적 긴장이 표출되다 

- 정병호(민주노동당 4기 중앙위원) 

 

지난 2월 19일 민주노동당 제4기 7차 중앙위원회가 열렸다. 이번 중앙위는 2005년 예산안 심의, 당 지역 조직 체계 개편, 북핵 관련 결의안, 사회적 교섭 관련 결의안 등 몇몇 안건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논쟁과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이 불거진 상황을 반영해 팽팽한 긴장과 날카로운 이견이 표출된 중앙위원회였다.

중앙위원들의 서명을 받아 ‘민주노총 사회적 교섭은 재고되어야 한다’는 결의안이 제출됐다.

이 결의안은 “사회적 합의주의는 노동자의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투쟁력을 소진하는 자기살 깎아먹기일 뿐”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민주노총 이석행 사무총장은 신상 발언을 이용해 결의안을 사실상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자 일부 중앙위원들이 야유와 고함을 질렀다.

이석행 사무총장은 중앙위원들의 토론 자체를 막기 위해 안건 반려를 요청했다. 아쉽게도, 2백여 명의 중앙위원 중 1백20명이 안건 반려에 찬성했다.

뒤이어 북핵 관련 결의안이 제출됐다. 이 결의안은 지난 2월 11일에 발표된 ‘북한 외무성 성명에 대한 최고위원회 논의 결과’에 대한 반발 성격이었다. 최고위원회가 미국만 비판할 뿐 북한 핵에 대한 비판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로 이 날 제출된 결의안은 양비론적 견해를 취했다.

나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지지하면서도, 미국과 북한을 동일한 수준에서 비판하는 결의안의 내용에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양비론적 견해는 현실의 세력 관계는 불균등한데 추상적으로 ‘균형적’ 비판을 하다 보니 실천적으로는 일관된 반제국주의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이정미 최고위원은 토론을 무마히기 위해 안건 반려를 요청했다. 이 최고위원은 북한 핵에 대한 무비판적 견해를 지니고 있다.
권영길 의원은 미국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중앙위원회 북핵 결의안은 국회내 “초당적 결의”를 어렵게 만든다는 이유로 안건 반려를 지지했다.

결국 중앙위원 다수가 안건 반려를 지지했지만, ‘동상이몽’이었던 셈이다.

이번 중앙위원회는 첨예한 이견이 존재하는 쟁점에 대해서 번번히 안건 반려를 함으로써 토론을 가로막은 아쉬움이 많은 자리였다.

 

아쉬움과 우려를 남기고 끝난 당대회  - 이승민 (민주노동당) 

 

2월 27일에 열린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는 지난해 하반기 사업 평가를 놓고 긴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당의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 전술을 놓고 첨예한 견해 차이가 불거졌다. 사실, 이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계속되고 있는 논쟁을 반영한 것이다.

당 지도부는 지난 7차 중앙위원회에 “국가보안법을 철폐시키지는 못했지만 헌신적으로 투쟁했고, 수구·보수 대 진보·개혁 구도를 형성하여 한나라당을 반역사적·반국민적 정당으로 낙인찍었다”는 초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당시 중앙위원회는 열린우리당의 기회주의성을 효과적으로 폭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비정규직 투쟁을 효과적으로 배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추가했다.

당대회에서는 이런 중앙위원회의 평가를 뒤집는 시도가 있었다.

신석진 대의원(인천)은 국가보안법 투쟁을 통해 “한나라당을 반역사적·반국민적 정당으로 낙인찍었고, 열린우리당을 무능하고 기회주의적인 정당으로 각인시켰으며 진보 개혁의 대세적 흐름을 조성했다”는 수정안을 제출했다.

그러자 민동원 대의원(서울 양천을)은 수구·보수 대 진보·개혁의 흐름을 조성해 한나라당을 폭로했다는 평가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수정안은 모두 부결됐다.

사실, 국가보안법 투쟁의 핵심 문제는 당 지도부가 열린우리당과의 ‘개혁 공조’에 발목 잡혀 독립적으로 운동을 건설하지 못한 것이었다.

지난해 사업 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지리하게 벌어진 데다, 지나치게 많은 의사 진행 발언 때문에 나머지 중요한 안건들을 토론할 수가 없었다.

당 지도부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들어 일부 안건들(2005년 사업 계획, 당헌과 강령 개정)을 찬반 토론 없이 표결했다.

게다가 예산안과 대의원들이 당대회 시작 전부터 대회장에서 열의 있게 발의를 준비한 반전 결의안, 사회적 교섭 재고 결의안, 북핵 관련 결의안 등은 모두 중앙위원회로 위임됐다.

상당수 대의원들은 이런 중요한 안건들을 최고 의결 기관인 당대회가 아니라 중앙위원회로 위임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사실 이번 당대회는 당이 대규모로 성장하고 나서 처음으로 열렸다. 그 때문에 많은 대의원들이 커다란 열의를 가지고 당대회에 참가했다. 새벽 2시가 다 돼서도 대다수 대의원들은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밤 10시부터 나머지 안건들을 중앙위에 넘길 것을 독촉했다.

이 때문에 당대회가 토론과 논쟁에 장이기보다는 점점 거수기 노릇을 하고 있다는 대의원들의 우려와 불만은 단지 기우만은 아닌 듯하다.

물론 일부 대의원들이 보여준 형식주의적 민주주의와 평당원주의도 진지한 토론을 어렵게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이 점은 개선돼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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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에 맞서 싸웠던 여성들 / 투쟁하는 여성들이 말한다

다함께 50 호

억압에 맞서 싸웠던 여성들 / 투쟁하는 여성들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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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에 맞서 싸웠던 여성들 - 다함께

 

3월 8일은 국제 여성의 날이다. 이 날을 경축하며, 급진적 운동을 이끌었거나 여성해방과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해 온 여성들의 말을 소개한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1759-1797)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불만의 먹이가 되어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가. 그들은 의사가 되거나, 농장을 경영하거나, 상점을 운영하거나, 독자적인 사업을 이용해 독립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연약한 감수성에 짓눌린 채 풀이 죽어 있다. 한때 그들의 아름다움을 눈부시게 만들었던 바로 그 감수성이 이제는 그들의 아름다움을 좀먹고 있는 것이다.

여성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적인 존재로 만들어졌고 여성이 얻는 모든 힘은 그들의 매력과 연약함에서 생긴다는 지배적인 견해 때문에 여성들은 한없이 초라해지고 온갖 종류의 근심 걱정과 슬픔에 빠진다. 그런 것들을 추적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우리 여성들은 도대체 왜 창조됐을까? 누군가는 순결한 상태로 남아 있기 위해서라고 한다. 즉, 여성들은 늘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유명한 저서 ≪여성의 권리 옹호≫에서. 최초의 페미니스트 중 한 사람인 울스턴크래프트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보며 깊은 영감을 얻었다.
 
소저너 트루스 (1797-1883)

“남자들은 여자들이 마차를 탈 때 도와 줘야 하고, 도랑을 건널 때 부축해 줘야 하며, 어디서나 제일 좋은 자리를 여자들에게 내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마차를 타거나 진흙 웅덩이를 건널 때 나를 도와 주거나 나에게 제일 좋은 자리를 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여자가 아닌가? 나를 보라! 내 팔을 보라! 나는 밭을 갈고, 씨 뿌리고, 수확한 것을 곳간에 채웠고, 어떤 남자도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었다!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닌가? 나는 남자만큼 일할 수 있고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을 때는) 남자만큼 먹을 수 있고 남자만큼 채찍질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닌가? 나는 열세 명의 아이들을 낳았는데, 거의 다 노예로 팔려 갔다. 내가 어머니로서 슬피 울부짖을 때, 예수님을 빼고는 아무도 내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닌가?”

 

노예 출신의 소저너 트루쓰는 여성을 대하는 사회의 위선과 이중 잣대를 비판했다.

 

엘리자베스 드미트리에프 (1851-1910)

“파리가 봉쇄됐다. 파리가 포격당하고 있다. 대포의 굉음이 들리는가, 무장하라는 신성한 호소가 울려 퍼지는 것이 들리는가! 파리 시민들이여, 프랑스 대혁명기 여성의 후예들이여, 민중과 정의의 이름으로 베르사유로 행진했고, 국왕 루이를 포로로 잡았던 여성들이여 ― 프랑스 민중의 어머니이며 아내이자 누이인 우리들이 가난과 무지가 우리 아이들을 적으로 삼도록 놔둬야 하는가? 압제자들의 변덕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서로 죽이도록 놔둬야 하는가? 시민들이여, 결투가 시작됐다. 우리는 승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뿐이다.”

 

드미트리에프는 1871년 파리에서 이 선언을 발표했다. 노동자들은 파리를 장악하고 파리 코뮌을 건설했다. 그녀는 파리의 여성들을 조직하는 데서 핵심적인 구실을 했다. 그들은 바리케이드에서 코뮌을 방어하며 모든 구습에 도전했다.

 

클라라 체트킨 (1857-1933)

“우리가 전쟁을 계속하는 것은 그것이 남성과 여성 사이의 투쟁이 아니라, 유산 계급들의 정치 권력에 대항하는 전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그 투쟁의 목표는 언젠가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가 남녀 구분 없이 자본주의 사회 질서에 이렇게 외치며 도전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의지하고 있다, 당신들은 우리를 억압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들이 세운 건물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 보라.’”

 

체트킨은 독일의 지도적 사회주의자였다. 그녀는 국제 여성의 날을 제정하자는 호소를 이끌었다.

 

엘리자베스 걸리 플린 (1890-1961)

“‘응접실의 여왕’은 ‘부엌의 하녀’와 어떤 공통점도 없다. 백화점 소유주의 아내는, 주당 5달러를 받는 점원에게 유일하게 열려 있는 출구가 성매매라는 것을 깨달은 17살 소녀에게 자매 같은 관심을 전혀 보여 주지 않는다.

남성들의 형제애와 마찬가지로, 여성들의 자매애도 노동자들에게는 공허한 속임수일 뿐이다. 그 모든 잘난 체하는 위선과 역겨운 감상주의 이면에는 계급 전쟁의 사악한 모습이 숨어 있다.”

 

플린은 전통을 깨고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모두를 조직한 전투적 노조인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의 지도적 조직자였다. 매카시의 마녀사냥이 절정에 달했던 1951년, 그녀는 2년 동안 투옥됐다.

 

실비아 팽커스트 (1882-1960)

“내가 이스트 엔드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들은 쇠약해진 아이들을 데리고 내게 다가왔다. 나는 환자의 눈에서 굶주림을 봤다. 그 때 나는 다시는 이전의 내 직업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성 참정권 활동을 한 죄로 몸서리칠 만큼 야만적인 투옥과 강제 급식을 당하는 것을 여러 차례 목도해 왔다. 나 또한 투쟁을 벌여 왔고, 내 수명은 그 때문에 단축될 것이다. 

당신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굶주리고 있는데 당신 같은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잘못됐다.

자본주의는 잘못된 사회 체제이고 없어져야 한다. 나는 자본주의를 없애는 데 내 삶을 바칠 것이다.”

 

1920년 선동죄로 기소돼 법정에서 한 연설. 예술가이자 전투적 여성 참정권론자였던 팽커스트는 런던의 빈민가 이스트 엔드에서 여성들을 조직했다. 러시아 혁명에 고무받은 그녀는 가족[어머니를 포함해 팽커스트 집안의 여성들은 영국의 유명한 부르주아 페미니스트들이다 ― 편집자]과 결별하고 자신이 “볼셰비키임이 자랑스럽다”고 선언했다.   

 

로자 룩셈부르크 (1871-1919)

“배반, 부도덕, 피바다, 탐욕 ―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이다. 

문화, 철학, 윤리, 질서, 평화, 그리고 법치의 가식을 쓴 깨끗함과 단정함과 도덕이 아니라 게걸스러운 야수, 무질서한 악마의 연회, 문화와 인간성을 위협하는 역병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것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독일·프랑스·러시아·영국의 노동자들이 취중 몽상에서 깨어나 형제애 속에서 서로의 손을 굳게 잡고, 전쟁광들의 괴성과 자본주의 하이에나들의 소란스런 울음을 노동자들의 우렁찬 함성으로 압도하기 전까지 광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유혈낭자한 지옥의 악몽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룩셈부르크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혁명가 중 한 사람이고, 독일 사회주의 운동의 좌파를 이끌었다. 그녀는 이 글을 제1차세계대전 동안에 썼다.

 

아룬다티 로이 (1961- )

“우리가 모두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 정말로 반대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시선을 이라크로 돌립시다. 우리는 점령에 반대하는 세계적 저항이 돼야 합니다. 우리의 저항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은 제국이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실제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행동을 뜻합니다. 그것은 병사들이 전투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 예비군들이 복무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 노동자들이 배와 비행기에 무기 싣기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지금 전쟁중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룬다티 로이는 [영국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 수상 경력이 있는 인도 소설가이며 자본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전 세계 운동의 지도적 인물이다. 이 연설은 2004년 1월 세계사회포럼에서 한 것이다.

 

투쟁하는 여성들이 말한다  - 다함께

 

● 박덕준  (전교조 여성위원장)

 

대부분의 여성 교사 노동자들은 맞벌이 부부인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인 학교도 다녀야 하지만 가정에서 살림도 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어요.
전교조 조합원 가운데 약 60퍼센트가 여성(전체 교사들 가운데 여성 비율은 훨씬 높아요)이지만, 전교조 간부 중 여성 비율은 훨씬 떨어져요. 이것은 여성의 능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에요.
예를 들면, 교장이나 교감은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근무평점에서 남성에 비해 여성을 낮게 평가해요. 여성들이 집안일 등을 이유로 ‘칼퇴근’하는 것이 나쁘게 평가받는 이유가 되곤 하죠.
또 각 학교에 시간강사, 기간제 교사 같은 비정규직 교사 노동자들이 있고, 영양사, 행정실 회계보조사, 조리사, 전산보조 직원 등과 같은 분들이 학교 비정규직노동조합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교사와 학교 비정규직노조의 구성원들도 대체로 여성이 훨씬 많아요.
따라서 대학의 경우 학교 내에, 중고등학교 내에서는 지역 내에 탁아방을 설치해 줄 것을 교육부에 요구하고 있어요. 여성의 권리를 위한 이런 요구들을 “역차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것은 역차별이 아니라 그 동안 여성들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열악한 현실에서 일해 왔는지를 반증해 주는 것일 뿐입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여성 억압은 여전히 존재하므로, 오늘날 국제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것은 당연히 의미가 있어요. 남성을 이기고 억누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죠. 평등한 세상으로 가는 길에 여성들도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해야 합니다.

 

● 김경숙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대교지부 서울지회 준비팀장 )

 

저는 학습지 교사한 지 굉장히 오래됐어요. 1990년에 입사해서 16년 간 일해 왔어요. 근속연수로 치자면 회사에서 탑10에 들 정도인데 월급이 오히려 줄었어요. 지난 10년 간 정규직 임금이 10배 인상됐다면, 학습지 교사들은 오히려 10년 간 월급이 5분의 1로 줄어들었어요. 어떠한 보장(4대보험 같은)도 없고, 월급도 권리보장도 없고 회사가 시키는 대로 모든 일을 해야 하는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일하고 있어요.
우리는 90퍼센트 이상이 여성이에요. 그런데도 모성보호는 하나도 안 되고 있어요. 회사는 그냥 우리를 소모품으로밖에 취급하지 않아요. 임신하면 그냥 그 날로 계약해지돼요. 애낳고 다시 돌아오면 그 동안의 경력은 하나도 인정받지 못해요. 
이런 일들은 여성노동을 비하시키는 일이에요. 출산율 저하가 사회적 문제라고 하지만 애 낳을 조건부터 사회가 만들어줘야 합니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노동자라는 인식을 많이 느끼게 됐어요. 2003년에 학습지 업계에서 현장투쟁이 많이 폭발했어요. 노동청 앞에서 1년 동안 매주 한 번씩 시위했어요.
학습지 교사들은 평균 근무기간이 8개월밖에 안 되기 때문에 연속성을 갖기가 어려워요. 자본을 상대로 한번 파업해 보는 게 투쟁의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 현장투쟁이 한 차례 끝난 후에도 조합원을 꾸준히 관리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 라디카  (네팔 출신 이주 노동자)

 

1992년에 한국에 올 때는 TV에서 본 것처럼 크고 깨끗하고 안전한 공장에서 일하게 될 줄 알았어요. 와 보니 우리가 일하는 공장은 매우 작고 대부분 지하에 있었어요. 네팔에서 대학 다니다 왔는데 여기 와서 아침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렇게 힘들게 일했는데 사장이 월급도 안 주고 도망갔어요.
공장에서 일하다 보면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일하는데 여자라고 차별해요. 우리는 이주 여성 노동자니까 차별이 더 심하죠. 한국 여성들에게는 생리 휴가도 있는데 우리는 그런 거 전혀 없어요. 한국 사람들이 일 끝나고 가도 우리는 남아서 일하고, 쉬는 날도 나와서 일했어요.
추석 때 사장이 또 우리에게만 일을 시켰어요. 저와 한 남성 이주노동자가 일을 하지 않겠다고 버텼죠. 근데 그 공장은 제가 일을 하지 않으면 그 라인 전체가 멈추는 곳이어서 결국 사장은 다음부터 반드시 야간·휴일 근무를 하면 수당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처음에 동료들은 제 말을 믿지 않았는데, 진짜 돈이 나왔어요. 모두 깜짝 놀랐죠.
2003년 10월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단속해 추방하겠다고 발표한 다음부터 농성을 시작해 1년 가까이 했어요. 농성 처음 할 때는 너무 추웠어요. 우리는 세수도 못하고, 샤워도 못하고 그렇게 지냈어요.
우리 권리를 찾아야 하니까 힘들어도 버텼어요. 앞으로도 이주노동자들 계속 올 테니까, 내가 이 활동하다 잡혀도 지금 자리를 만들면 그 사람들은 지금보다 잘 지낼 수 있잖아요.
작년에 처음으로 여성의 날 집회에 갔어요. 여성의 날은 여성들의 날, 여성들의 축제였어요. 이 집회에서 우리는 이주 여성들의 상황을 알릴 수 있었어요. 또 한국의 여러 여성 노동자들의 상태와 문제도 알게 됐어요.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노동자이니 함께 싸워야 해요. 그래야 여성들의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성의 날에 한국 여성들과 이주 여성들이 함께 모일 거예요. 여기에 한국 남성 노동자들도 많은 관심 가져 줬으면 좋겠어요.

 

● 정금자 (서울대병원 간병인지부)

 

여성들이 많이 활동한다고 하지만 활동할 때 남녀 차별도 심하고 또 주부들이 일하는 일터가 너무 좁아요. 간병인 일터는 40·50·60대 여자 주부들이 마지막 갖는 일터인데, 급여가 너무 적어요. 최저임금도 안 돼요. 시급 1천6백60원, 8시간 일해서는 40~50만 원도 못 돼 이것으로 가정을 일굴 수 없으니까 자기 몸을 다 불태워서라도 24시간 일해야만 가정을 일굴 수 있어요.
여성들은 나약하다, 순종적이라는 얘기가 많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저는 지금 우리 여성 노동자들이 자랑스럽고 당당하다고 느껴요. 제 주변 우리 조합원들 80명이 다 여성이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그걸 기쁨으로 해 내요.
2003년 8월 31일에 병원이 폐쇄된 뒤 다음 날 부터 투쟁을 시작했어요. 병원 현관 앞에서 단식 투쟁도 하고 2층 로비에서 철야 농성도 하다가 12월에 출입금지가처분을 당했어요. 우리는 12월 2일 인권위원회 점거농성을 했어요. 그 때 ‘다함께’랑 함께한 거 같아요.
2004년 2월에 노동청 점거 농성에 또 들어갔죠. 25일에 점거농성 들어갔다가 27일에 경찰력 투입으로 쫓겨났다가 4월 26일에 서울대병원 노조하고 (사측이) 교섭해서 이겼어요. 서울대병원처럼 온몸을 던져서 [비정규직 투쟁을] 하는 데가 없어요. 서울대병원 노조가 없으면 저희는 지탱 못해요. 우리는 특수고용직이라 노동 3권이 없어 교섭도 못해요.
간병인은 가장 힘없는 자들이었어요. 20년, 30년 직장에 다녀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전국에 20만 명이라는 거대한 숫자를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올려놓은 게 노동조합이에요. 노동조합은 이 땅의 가장 열악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조직이기 때문에 그에 동참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자랑스럽고 당당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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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에 맞서기 위해 50개 나라의 활동가들이 모이다

다함께 50 호

WTO에 맞서기 위해 50개 나라의 활동가들이 모이다  - 김어진 / 박준규

http://www.alltogether.or.kr/

 

WTO에 맞서기 위해 50개 나라의 활동가들이 모이다 - 김어진 / 박준규

 

2월 26∼27일에 홍콩시립대학교에서는 50개 나라에서 온 2백40여 명의 활동가들이 모여 WTO에 맞서 싸우기 위한 국제회의를 열었다.

특히 아시아 활동가들이 많았다. 남반구초점, 주빌리사우스, 글로벌익스체인지 같은 NGO뿐 아니라 홍콩의 노동조합 활동가들, 인도네시아 우편노조, 대만 통신노조, 인도 노동조합 등 노동자 운동이 성장하고 있는 나라에서 온 활동가들이 눈에 띠었다.

한국에서는 전농, 다함께, 아래로부터 세계화, 한국노총의 활동가들이 참가했다.

홍콩 정부와 언론은 이 회의 때문에 상당히 긴장했다. 한 홍콩의 언론은 세계의 ‘테러리스트들’이 WTO를 무산시킬 계획을 하기 위해 모일 것이라고 보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제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홍콩 정부는 이 회의의 대표단들을 만나고 싶다며 한발 물러섰다. 경찰청장은 현지 준비단체인 홍콩민중연합(HKPA)과 만날 의사가 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참가자들의 투쟁 의지와 사기는 매우 높았다. WTO “각료회담을 무산시키자”는 구호와 주장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홍콩민중연합의 아우롱은 홍콩 노동자들도 WTO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 많은 일자리가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다. 홍콩 자본가들은 서비스·항공사·컴퓨터 산업 등을 중국으로 이전하고 있다.”

필리핀의 아시아태평양리서치네트워크(APRN) 활동가 토니는 “WTO는 필리핀에서 광산업 사기업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폭로했다.

WTO가 아시아의 농민을 죽이고 있다는 폭로도 많았다. “북반구뿐 아니라 남반구에서도 국가의 농업 보조금은 모조리 기업들한테 가고 있다.”


 

‘남반구초점’의 니콜라 블라드는 G20에 대한 환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WTO 협상 과정의 핵심국은 미국·호주·캐나다·브라질·인도 5개국이다. 그런데 브라질과 인도의 농업장관들은 농민의 이해가 아니라 농업 기업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농산물 기업의 사장들이다.”

WTO에 맞서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홍콩내 필리핀 이주 노동자 단체 활동가는 “만리장성은 홍콩의 정규직 노동자들과 홍콩내 이주 노동자들 사이에 있지 않고 WTO와 전체 노동자들 사이에 있음을 보여 줘야 한다.”

참가자들은 WTO에 맞선 전략을 놓고 매우 다양한 입장을 지니고 있었지만, WTO에 맞서 공동의 동원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했다. 

12월 13일 각료회담 개막일과 18일 폐막일에 대규모 집회와 행진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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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에 초대합니다 - 총선 이후 이라크, 민주주의의 봄날이 왔는가



 
마포사회포럼은 반전반자본주의 노동자운동 '다함께'가 주최합니다.
포럼에서는 사회 연대와 공익을 위한 캠페인과 주장을 소개하고 공유할 수 있습니다.
포럼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서로의 경험과 주장을 함께 나누는 토론 광장입니다.
 
제25회 마포사회포럼
 
총선 이후 이라크, 민주주의의 봄날은 왔는가
일시 : 2005년 3월 16일 수요일 오후 7시30분
장소 : 
책사랑방 ( 지하철 신촌역 6번 출구앞 40m 직진 티파니호프 건물 5층)
문의 : 016-378-1872
블로그 :
http://blog.empas.com/wp2020 
* 책사랑방은 1인당 이용료가 3천원입니다. 참가비를 준비해 주세요 ^^
 
초대의 글
 
이라크 총선 이후 부시는 이라크에 '민주주의'와 '자유'가 도래했다고 거짓말 합니다.
이 자유와 민주주의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이라크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봄은 왔습니까. 마포사회포럼에서 함께 얘기해보지 않을래요.^^
 
"2004년 10월 29일 발표된 영국의 의학 잡지 <랜싯>의 분석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최소 10만 명의 이라크인들이 학살 당했습니다.
 
계엄령 하에서 치러진 2005년 1월 30일 이라크 총선을 부시는“대단한 성공작”이라고 말하지만 이라크의 민주주의는 점령이 종식될 때만 가능합니다. 미국은 선거 이후 점령을 ‘합법화’해 장기적으로 이끌어 나가려 합니다. 이집트 주간지 <알아흐람 위클리>는 "이제 미국이 석유와 군사전략 거점 확보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됐다. 14곳에 달하는 군사거점과 이라크 전역의 유전이 최소 25년 이상 미국에 조차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라크 전쟁과 점령 2년 동안 노무현 정부는 일관되게 부시를 지원해왔습니다. 한국 정부는 3,600 명의 군대를 이라크에 파병해 미국, 영국에 이어 3번 째 규모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파병의 댓가는 김선일씨와 오무전기 노동자들의 비극적인 죽음이었을 뿐입니다. 자이툰 부대원들의 안전이 더욱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테러위험 지대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노무현 정부는 추가 파병을 추진할 수 도 있습니다. 부시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노무현 정부의 지원은 더욱 사활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는 3월 20일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지 2년 째 되는 날입니다. 국제 반전운동은 다시금 도약할 기회를 부여잡고 있습니다. 국제반전행동을 앞두고 열리는 마포사회포럼에 주변 친구, 지인들과 함께 오십시오. 이라크 파병 철회 서명에도 동참하여 주십시오.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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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메모리즈 - 비극적인 기억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남긴 몇가지 화제거리중에 하나는, '제페니메이션' ( 이하 - 아니메 ) 이었습니다. 당시만해도 '어둠의경로' 라고 하면 자막이 존재하는 동영상 파일이 아니라 자막없는 원어 그대로의 해적판 비디오물을 가르키는 시기로, 그러면서도 일본문화, 특히 일본만화에 대한 소개가 상당부분 진척되어 많은 사람들이 갈증을 느끼고 있었기에 대다수의 매니아들이 뜻도 모르는 일본어 대사를 들으며 그 해적판 비디오들을 애지중지 소장하던 때였다고 기억합니다. 짐승도 예외는 아니었구요 ^^;


그러던 시기였기 때문에, 국제영화제에서 아니메가 정식으로 상영된다는것은 충분히 센세이션 한것이 될 수 밖에 없었죠. 게다가 상영작들은 상당히 높은 퀄리티를 갖춘 따끈따끈한 화제작들, 바로 공각기동대와 이 메모리즈 였었으니, 국제영화제 참가자들 사이에 아니메가 예매 1 순위가 되었던것도 당연하다고 할까요.


그랬던것에 비하면 공각기동대가 꾸준히 재평가되며 지금까지 화제거리로 이어온것에 비해 메모리즈는 다소 그늘에 가린 느낌입니다.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공각기동대는 스토리 자체가 난해하고, 담고 있는 메시지는 그보다 더 심오해서 많은 화두거리를 남기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만 메모리즈 역시, 스토리는 단순 명쾌할지 몰라도 메시지 측면에서는 결코 공각기동대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메모리즈는 '노인 Z' 로 유명한 오토모 카즈히로 감독의 원작 스토리들을 바탕으로 오토모 자신을 포함한 세명의 감독이 각각의 스토리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연결해둔 작품입니다. 보통 이럴경우 하나의 공통적인 대주제가 이들 작품들을 엮어내는데 메모리즈는 딱히 엮어낼만한 대주제가 발견되지 않습니다. SF 호러에, 블랙코미디에, 환타지까지 쟝르도 다 제각각이죠. 최근에 메모리즈를 다시 보면서 이들 작품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대주제를 굳이 선정한다면, '비극' 정도가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첫번째 에피소드, Magnetic Rose (그녀의 추억) 은 오토모의 원작에 모리모토 코지가 감독을 맡은 작품입니다. 우주의 폐기물들을 청소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들은 낡은 구형 우주선에서 나오는 sos 신호를 따라 들어가게 되지만 그들이 발견하는것은 한 오페라 가수의 원혼, 아니 강력한 집착이지요. 애인에 대한 사랑과, 그 사랑의 배신으로 인한 분노가 전자장치를 통해 살아남아 우주선 자체를 통제합니다. 호러영화의 소재중 하나가 '유령의 집' 이라면, 그녀의 추억은 그 우주판 이라고 할수 있을 정도로 음산하고 기괴한 작품이죠.


보통 이런 경우는 주인공들이 기지로 유령을 퇴치하고 탈출하는것이 정석입니다만, 여기에서는 우주선의 폭발과 함께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됩니다. 한 오페라 가수의 편집증적인 관념이 살아있는 인간을 죽음으로 이끌어 버리는 암울한 스토리죠 ^^; 작품 중반부터 끝까지 어떤 오페라곡이 계속 나오는데, 클래식을 좋아하지 않는 짐승으로서는 무슨 곡인지 알수가 없다는... -,-


'그녀의 추억' 이 너무 암울해서 기분이 쳐질까봐 그랬는지 모르지만, 두번째 에피소드인 채취병기 는 꽤 경쾌한 이야깁니다. 역시 오토모 원작에 오카무라 텐사이 감독이구요. 여기에서는 한 제약회사의 평범한 연구원이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인해 정부가 개발한 비밀병기 - 악취를 이용한 화학무기 ^^ - 를 복용하게 되고 그로인해 일본 열도 전체가 위기에 빠진다는 스토립니다. 정치가, 군인 등의 권력집단들에 대한 통쾌한 풍자극이면서 동시에 '장사가 되는것' 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대는 언론의 속성을 폭로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직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라면, 주인공인 타나까 노부오가 악취를 끊임없이 생산하며 오토바이를 몰고 터널을 지나자마자 그를 죽이기위해 상공에 새까맣게 떠있는 공격 헬기들의 군집이죠. 아니메에서 이만큼 군대와 자본에 의지하는 권력의 속성을 통렬하게 묘사한 장면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 작품도 마지막엔 잡았다고 생각한 노부오가, 권력의 중심부에서 악취를 터트림으로서 비극 (아니, 희극인가요? ^^) 로 끝나죠. 일본열도는 살인적인 악취의 구름속에...


'채취병기' 를 보고 실컷 웃으셨겠지만 마지막을 장식하는것은 또 암울한 스토리로, 대포의 거리 는 오토모 자신이 직접 감독한 작품입니다. 이곳에서는 모든 일상이 보이지도 않는 적과의 싸움에 맞춰져 있습니다. 거리의 집집마다 지붕에는 크고 작은 대포들이 배치되어 있고, 아이들은 대포를 쏘는 포병이 되기 위해 학교를 다니며, 아빠는 포를 쏘러 나가야하며 엄마들은 대포와 포탄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합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포병들은 대포 발사를 위한 부속품으로 전락되어 그 외의 다른 일은 생각할수조차 없습니다.


아마 이만큼 우울한 스토리도 없을겁니다. 이곳에서는 사회운동 단체들 조차도 사람들이 대포의 부속품이 되는 그 자체가 아니라 '좀더 몸에 좋은' 화약을 쓸 권리가 있다며 리플렛을 돌리고 있으니까요. 저녁에 TV 를 키면 언론들은 실제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는 '적' 에 대한 전과를 떠들어대며 다음날도 또 포를 쏘러 나가라고 부추깁니다. 비록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런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과정을 통해서 지배계급들이 사람들의 의식을 억압하고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을것임은 쉽게 추론할수 있는 것이지요. 


각각의 에피소드에 맞는 이미지를 구하려고 했는데, 오래전 작품이라 그런지 쉽지가 않군요. DVD 도 발매가 되어 있고, '어둠의경로' 를 통해서도 보실수 있겠지만 아무튼 가능한 한번쯤들 보시면 좋은 작품입니다. '공각기동대' 가 주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라면, '메모리즈' 는 인간 사회에 대한 의문이라고 할수 있겠죠. 비록 비관주의가 바탕에 짙게 깔려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사회적인 의식을 다루고 있는 모든 아니메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니 뭐 굳이 이녀석만을 탓할일도 아닌거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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